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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한 그릇 밥도 나라 은혜”… 유홍준 소장품 유묵 쓴 박중양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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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글씨로 소개·전시된 박중양 유묵 논란… 19일 국중박 국감 앞두고 살펴본 박중양 행적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9월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연계 ‘맛 대 맛’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일반시국은’ 글씨가 보인다. ⓒ 연합뉴스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 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다.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중앙박물관(아래 국중박) 국정감사에서는 이 문구가 적힌 유묵의 검증과 전시 경위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전시했던 작품을 국중박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의 것으로 결론 내린 데 이어, 유홍준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중박은 ‘박원근’이 박중양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지난 8월 10일 작품을 철수했다. 이후 전문가 검증을 거쳐 9월 7일 박중양의 유묵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유 관장의 추천을 받아 작품을 차용해 전시했다고 밝혔다.

박중양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관료로 활동한 그는 의병과 3.1운동 탄압에 협력하고, 일제 말기에는 학병 지원을 독려했다.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2009)>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관련 연구를 통해 그의 행적을 살펴봤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속 박중양. ⓒ 민족문제연구소

– 박중양 :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관료로 활동한 인물.
– 1874년 5월 3일 출생
– 1896년 일본으로 유학. 아오야마학원과 도쿄부기학교 등에서 수학.
– 일본 측 보고서(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는 ‘박원근이 게이오기주쿠 입학을 위해 왔다’고 기록돼 있음. 이때까지만 해도 박원근이라는 이름 사용.
– 1900년~1903년에 도쿄경시청에서 경찰제도 연구생으로 경찰사무, 감옥제도 연구.

– 대한제국으로 귀국 후 1903년 6월 관리서 주사 임용. 바로 그만 둚.
–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하자 고등통역관으로 일본군에 종군.
– 1906년 7월 이토 히로부미 후원으로 주전원 경위국 경무관 거쳐 경북 대구군수 겸 경상북도관찰사 서리로 승진.
– 대구군수 재임 시 성벽을 허물고 도로를 내 일본인이 상권 장악하도록 협조.
– 1907년 6월 평안남도관찰사 승진. 이 기간 의병 토벌 지원 및 회유 공작.

– 1908년~1910년 경상북도관찰사 부임. 경북 관내 의병 실태와 토벌 상황을 조사해 내부대신과 경무국에 보고.
– 1908년 12월 일한민 간찬회에서의 발언 : ” 이 땅의 한국인들이 희망하는 바는 귀국인(일본인)이 스승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
– 1910년~1915년 충청남도장관.
– 1915년~1921년 조선총부 중추원 찬의.

– 1919년 3.1운동 이후 : 3.1운동 탄압에 협력하는 ‘대구자제단’ 조직하고 단장으로 활동.
– 박중양의 3.1운동 평가 : “국민이 독립생활의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부강할 도리가 없다. 독립만세를 천 번 만 번 외친다고 해도 만세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친일인명사전 서술 인용)

– 1921년 황해도지사(고등관 1등).
– 1923년 충청북도지사.
– 1924년 일본 ‘황태자’ 결혼식에 조선총독부 지방장관 대표로 참석.
– 1927년~1933년, 1933년~194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 1941년~194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 1943년~1945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 1943년 11월 경북 지역 ‘학도 임시지원병 간담회’ 주재.
– 1944년 국민총력조선연맹 고문.
– 1945년 4월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 1945년 7월 국민의용대 조선총사령부 고문.

– 1949년 1월 대한민국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됨.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병보석으로 풀려남.
– 1959년 4월 23일 사망(만 84세).

“학생들 동원은 우리가 책임지고”… 박짝대기의 술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됐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으로 확인된 ‘일반시국은’ 유묵.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일본 유학 시절 박원근이라는 다른 이름을 사용한 박중양의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는 3.1운동 탄압 활동이다. 그는 대구자제단 단장이었다. 이형식 고려대 교수의 논문 <친일관료 박중양과 조선통치>에 따르면, 박중양은 김천·선산·칠곡 등지를 돌며 만세운동을 저지하는 활동을 벌였다. 데라우치 전 총독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조선인 지방장관들이 사태 진정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중양은 전쟁 동원에도 힘을 실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인용된 1943년 11월 5일자 <매일신보>에 따르면, 전날 중추원에서 열린 학병 지원 독려 간담회에는 부의장 박중양을 비롯해 고문·참의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학생들의 동원은 우리가 책임지고 격려하겠다”고 결의했다.

박중양의 별명은 ‘박짝대기(박작대기)’였다. 그는 개화장이라는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박창원 계명대 교수의 <매일신문> 기고에 따르면 이 물건은 스스로를 ‘개화한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중양이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회고록 <술회>의 내용을 두고 “친일행위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라고 평가한다(2019년 11월 게시글). 박중양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파를 향한 비판 여론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남겼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같은 인식을 가진 인물의 글씨를 애국지사의 글씨로 알고 박물관에 전시한 셈이 됐다.

“암흑시대 조선이 현대조선으로 개신된 것을 세상 사람이 모두 아는 바다. 조선인의 고혈(膏血)을 흡취(吸取)하였다고 일정시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정치의 연혁을 모르고 일본인을 적대시한 데서 헛소리한 편견이다.”

 김지현 기자

<2026-10-19>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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