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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해시, ‘조선총독부 식 시각’ 보도자료 냈다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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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그 후] 일제강점기 기록물 ‘사적조서’ 발굴 관련 … ‘모범’ ‘공적’ 등 표현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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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옛 김해군이 작성했던 “사적조서” 문서 표지.ⓒ 김해시청

경남 김해시가 일제강점기 기록물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조선총독부의 시각’에서 냈다는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나간 후 김해시가 문제가 된 표현을 없앤 후 다시 보도자료를 냈다(관련기사: 김해시 일제강점기 기록물,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썼다? ).

김해시는 지난 9일 오전 <일제강점기 김해 기록물 사적조서 발굴>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 사적조서는 1932년 김해군의 ‘면장’과 ‘근농공제조합 보도(지도)위원’의 행적이 담긴 문서다. 그런데 김해시가 이를 소개하면서 ‘업적이 뛰어난 인물’이라거나 ‘마을의 공적’, ‘모범’, ‘귀감’, ‘칭찬’ 등이라는 표현을 쓰자 논란이 일었다.

이 같은 표현에 대해 “당시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면서 조선을 후방기지로 삼던 때로 면장 등이 수탈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다”며 “업적이 뛰어난 인물, 모범, 귀감 같은 표현은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쓴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에 김해시 공보실은 수정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현재 공직자의 업무 처리에 귀감이 되는 내용도 포함돼 직무교육 자료로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는 문장만 삭제하고 나머지 표현은 그대로 두었다.

결국 이날 늦은 오후 <김해시 일제강점기 기록물,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썼다?> 보도가 나가자 김해시 공보실은 긴급하게 정정 보도자료를 냈다.

이 정정 보도자료에는 문제가 된 표현을 삭제했고, ‘면장’과 ‘근농공제조합 보도위원’의 이름도 성씨만 밝혀 놓았다. 그러면서 김해시는 “김해 사람들의 일제강점기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희귀성이 높다. 일제강점기 김해지역 실상을 전해주는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김해 지방사 연구 기초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김해시 공보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고 긴급하게 수정 자료를 냈다”고 밝혔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늦게라도 보도자료를 수정해 다행이나, 기록물을 누구의 시각으로 볼 것이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김해시의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들에 대해 추가로 살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광희 김해시의원도 “수정된 보도자료를 봤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해시사> 편찬 과정이 제대로 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해시가 낸 ‘수정 보도자료’ 전문이다.

일제강점기 김해 기록물 사적조서(事績調書) 발굴

김해시사편찬 기초자료 조사 중 일제강점기 김해의 행정과 사회사, 김해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문서 『사적조서』가 발굴되었다. 부산대학교 전 사학과 최원규 교수(현대사 전공)가 소장하고 있던 문서로 현재 대성동고분박물관(시사편찬실)에 기증, 보관중이다.

이 문서는 김해군이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작성한 등사인쇄본 문서철로 32면 분량으로 되어 있다. 김해군 녹산면 ○○리(마을), 진례면장 송○○과 진례면 김○○, 가락면 이○○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문서 32면 중 20면에 걸쳐 진례면장 송○○의 행적인 출납, 호적, 재산관리, 토목사업 등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번에 발굴된 사적조서는 개인이 아닌 한 마을의 기록이 첨부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마을의 시설 사항과 연혁, 교육회, 청년회, 경로회, 금주회, 교풍회 창립 등의 활동 사항을 기록했다.

이 문서는 당시 지역 정치, 경제, 행정, 교육 등 통치정책과 실상뿐만 아니라, 김해 사람들의 일제강점기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희귀성이 높다. 일제강점기 김해지역 실상을 전해주는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김해 지방사 연구 기초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윤성효 기자

<2019-07-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김해시, ‘조선총독부 식 시각’ 보도자료 냈다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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