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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멸종위기 딛고 ‘옛명성 되찾은’ 犬公-대전일보(06.12.08)

2006년 12월 20일 321

멸종위기 딛고 ‘옛명성 되찾은’ 犬公  일제강점기 가죽 수탈 멸종위기 맞아 경북대 교수들 노력으로 복원푹신해 보이는 커다란 몸, 흐트러진 긴 털은 두 눈마저 가리고 있다. 온몸을 덮은 털은 산중의 신선이나 도사의 풍모를 연상시킨다. 삽살개는 진돗개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개로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삽살개의 ‘삽’은 쫓는다, ‘살’은 귀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신이나 액운을 쫓고 복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삽살개는 특별한 교육 없이도 주인의 표정을 보고 해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정도로 영리하다. 낮선 사람에겐 심하게 짖지만, 주인과 친한 정도에 따라 금방 태도를 바꾼다. 탁월한 집 지키는 개다. 삽살개는 신라 때부터 왕실과 귀족들에 의해 길러졌다. 신라가 망한 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민가로 흘러나와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민족과 동고동락하며 살았다. ‘문배도’라 하여 액운을 막기 위해 대문 등에 붙였던 그림의 소재나, 춘향전과 같은 고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오래도록 민족과 함께 했기에 전설 또한 많다. 경북 구미 낙동강 가에 있는 삽살개의 의로운 죽음을 기린 ‘의구총’이야기, 고려 공양왕의 마지막을 지킨 삽살개 이야기, 삼척 환선굴에 얽힌 전설 등 헤아리기도 어렵다. ‘개야 개야 삽살개야 이웃집 총각 오시거든 짖지 마라’ ‘삽살개야 나뭇잎만 달싹해도 멍멍 짖지 마라’는 민요는 삽살개에 대한 민족의 친근함이 어떠했는지 말해 준다.삽살개는 일제 강점기 때 수난도 민족과 함께 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총독부령을 통해 1939년부터 1945년 사이 우리

한센병 변호단 구니모네 대표-연합뉴스(06.12.08)

2006년 12월 20일 330

<사람들> 한센병 변호단 구니모네 대표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역사관이요? 국경요? 그런 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람이니까 권리가 지켜져야 하는 것이죠.”8일 인권의 날 기념식이 열린 정부종합청사 별관에는 국내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빼곡한 가운에 외국인 1명이 유난히 주목받았다.한국ㆍ일본ㆍ대만인들의 한센병보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일본 변호단 대표 구니모네 나오코(國宗直子.여)씨.국가인권위원회는 일제 강점기에 소록도에 강제 격리된 한국 한센인들의 피해배상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공로로 이날 구니모네 변호사가 이끄는 일본 변호단을 표창했다.구니모네씨는 1907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일본의 한센인 격리 정책으로 차별당한 일본인들을 모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 투쟁을 벌여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다.일제강점기에 함께 차별을 당했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도 눈을 돌려 2003년부터 소록도를 방문해 조사를 시작했고 2004년 대한변협에 도움을 요청, 한일 공동 변호단을 결성했다.일본 정부에 대한 한국인의 보상청구가 2004년 10월 기각되는 등 좌절도 있었지만 사회 각계의 인사들을 독려해 결국 2006년 2월 `한센인 요양원 입소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후생노동성에 보상을 청구한 한국인 441명 가운데 155명이 보상을 받게 됐다.구니모네씨는 `일본인들에게 신경 쓰기도 바빴을 텐데 한국인들에게 왜 신경을 쓰게 됐느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그는 “일본 한센인들을 위해 활동하다 보니 한국 한센인들의 권리도 침해가 됐다는 걸 확인하게 됐는데 일본 문제가 거의 해결되자마자 그 길로 바로 한국인의 보상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길을찾아서] 좌·우 항일단체의 통합 노력과 분열

2010년 1월 29일 352

[길을찾아서] 좌·우 항일단체의 통합 노력과 분열(한겨레신문, 10.01.27)

‘대한민국 수립→정부 수립’ 역사박물관 전시계획 수정

2010년 1월 29일 348

‘대한민국 수립→정부 수립’ 역사박물관 전시계획 수정(한겨레신문, 10.01.28)

한센병 변호단 구니모네 대표-연합뉴스(06.12.08)

2006년 12월 20일 375

<사람들> 한센병 변호단 구니모네 대표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역사관이요? 국경요? 그런 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람이니까 권리가 지켜져야 하는 것이죠.”8일 인권의 날 기념식이 열린 정부종합청사 별관에는 국내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빼곡한 가운에 외국인 1명이 유난히 주목받았다.한국ㆍ일본ㆍ대만인들의 한센병보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일본 변호단 대표 구니모네 나오코(國宗直子.여)씨.국가인권위원회는 일제 강점기에 소록도에 강제 격리된 한국 한센인들의 피해배상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공로로 이날 구니모네 변호사가 이끄는 일본 변호단을 표창했다.구니모네씨는 1907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일본의 한센인 격리 정책으로 차별당한 일본인들을 모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 투쟁을 벌여 승리를 쟁취한 인물이다.일제강점기에 함께 차별을 당했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도 눈을 돌려 2003년부터 소록도를 방문해 조사를 시작했고 2004년 대한변협에 도움을 요청, 한일 공동 변호단을 결성했다.일본 정부에 대한 한국인의 보상청구가 2004년 10월 기각되는 등 좌절도 있었지만 사회 각계의 인사들을 독려해 결국 2006년 2월 `한센인 요양원 입소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후생노동성에 보상을 청구한 한국인 441명 가운데 155명이 보상을 받게 됐다.구니모네씨는 `일본인들에게 신경 쓰기도 바빴을 텐데 한국인들에게 왜 신경을 쓰게 됐느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그는 “일본 한센인들을 위해 활동하다 보니 한국 한센인들의 권리도 침해가 됐다는 걸 확인하게 됐는데 일본 문제가 거의 해결되자마자 그 길로 바로 한국인의 보상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edaily리포트)까레이스키의 조국-이데일리(06.12.07)

2006년 12월 20일 329

(edaily리포트)까레이스키의 조국    한겨울에는 영하 35도까지 떨어지는 러시아 극동의 섬 사할린. 이곳은 자원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 기업들도 속속 진출하고 있구요. 하지만 사할린은 우리에게는 `한 맺힌 땅`이기도 합니다. 사할린 한인동포들의 얘기를 산업부 안승찬 기자가 전합니다.러시아 사할린 섬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유즈노사할린스크의 한 한식당. 불판에서 구워지는 삼겹살 위로 술잔이 오갔습니다. `보드카 석잔을 같이 마셔야 친구가 된다`는 러시아 속담을 떠올리며서 말이죠.사할린에서는 이런 한국식 음식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일반 카페(러시아에서는 카페가 대중음식점입니다)에서도 `김치볶음밥` 등 한국식 메뉴가 보일 정도죠.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은 5만여명으로 사할린 전체 인구의 8%에 달합니다. 벌써 4세, 5세까지 내려간 이들 한인동포들은 특유한 성실함으로 사할린에서 비교적 중상류층을 형성하고 있죠.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좀 뜬금없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한국과 러시아가 축구시합을 하면 사할린의 한인동포들은 어느팀을 응원할까` 하는 것이었죠.저녁자리에 합석한 한 동포는 예상을 깨고 “자신의 경우는 당연히 러시아를 응원한다”고 당당하게 답하더군요. 한인동포 4세인 그는 한국어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취업을 위해 학원에서 따로 배운 경우죠.어찌보면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학교를 다니고 러시아에서 직장을 얻어 살고 있는 그에게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들의 나라는 러시아가 당연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왠지 묘한 기분도 들더군요.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됐던 동포들이 광복과 함께 사할린 코르샤코프의 언덕에서 한국에서 자신들을 데려갈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던 서글픈 역사 때문이었을까요.당시

-문화(박물관건립위 “1948년..)

2010년 1월 29일 368

<고침>-문화(박물관건립위 “1948년..)(연합뉴스, 10.01.28)

박물관건립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2010년 1월 29일 315

박물관건립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연합뉴스, 10.01.28)

(edaily리포트)까레이스키의 조국-이데일리(06.12.07)

2006년 12월 20일 264

(edaily리포트)까레이스키의 조국    한겨울에는 영하 35도까지 떨어지는 러시아 극동의 섬 사할린. 이곳은 자원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 기업들도 속속 진출하고 있구요. 하지만 사할린은 우리에게는 `한 맺힌 땅`이기도 합니다. 사할린 한인동포들의 얘기를 산업부 안승찬 기자가 전합니다.러시아 사할린 섬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유즈노사할린스크의 한 한식당. 불판에서 구워지는 삼겹살 위로 술잔이 오갔습니다. `보드카 석잔을 같이 마셔야 친구가 된다`는 러시아 속담을 떠올리며서 말이죠.사할린에서는 이런 한국식 음식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일반 카페(러시아에서는 카페가 대중음식점입니다)에서도 `김치볶음밥` 등 한국식 메뉴가 보일 정도죠.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은 5만여명으로 사할린 전체 인구의 8%에 달합니다. 벌써 4세, 5세까지 내려간 이들 한인동포들은 특유한 성실함으로 사할린에서 비교적 중상류층을 형성하고 있죠.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좀 뜬금없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한국과 러시아가 축구시합을 하면 사할린의 한인동포들은 어느팀을 응원할까` 하는 것이었죠.저녁자리에 합석한 한 동포는 예상을 깨고 “자신의 경우는 당연히 러시아를 응원한다”고 당당하게 답하더군요. 한인동포 4세인 그는 한국어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취업을 위해 학원에서 따로 배운 경우죠.어찌보면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학교를 다니고 러시아에서 직장을 얻어 살고 있는 그에게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들의 나라는 러시아가 당연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왠지 묘한 기분도 들더군요.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됐던 동포들이 광복과 함께 사할린 코르샤코프의 언덕에서 한국에서 자신들을 데려갈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던 서글픈 역사 때문이었을까요.당시

토지대장 ‘일제잔재’ 털어냈다-서울신문(06.12.07)

2006년 12월 20일 344

토지대장 ‘일제잔재’ 털어냈다   서울 광진구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소축적(3000분의1)의 임야대장을 대축적(1200분의1)의 지적대장으로 통합하는 토지등록 변경사업을 최근 완료했다.해당 토지를 소유한 주민들은 서류상에서 땅이 줄어들거나, 늘어도 과세부담이 커진다며 반대했지만 자치구가 의지를 가지고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은 것이다.   ●일제가 만든 엉터리 토지대장 광진구는 소축적을 사용한 임야대장을 없애고 대축적으로 작성된 지적대장으로 통합하는 등록작업을 3년 만에 모두 끝냈다.대상은 임야대장에 등록된 347필지(239만 6277㎡)이다. 이를 토대로 지적도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민원인들은 지적도를 발부받을 때 복사본 대신에 인쇄된 원본을 받게 된다.일제는 1910년부터 16년 동안 우리나라 토지수탈을 목적으로,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주택과 농지는 지적대장에 등록하고 조세가치가 없는 임야 등은 임야대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대장에 등록했다. 지적대장의 지도는 보다 정밀한 축적을 사용했고, 임야대장의 지도는 경계선도 불분명한 축적을 사용했다. 지적도 한쪽 구석에 선을 대충 그은 지도가 덧붙여 있는 꼴이다.문제는 행정기관이 도로를 내거나 소유주가 토지를 매매할 때 특정한 지역의 축적이 서로 달라 차질을 빚거나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광진구는 2004년부터 9662만원을 들여 대한지적공사 전문가들과 함께 정확한 면적을 측량했다. 토지측량의 기준이 되는 측량기준점 185개도 땅에 묻었다. ●힘겨웠던 주민 설득 작업 명분과 취지가 훌륭해도 일부 주민들은 작업을 반대했다. 사업 첫 해에는 능동, 모진동 22필지(1만 7355㎡)에 대해 정리작업을 했다. 실제 땅 면적이 39㎡ 늘었다. 지난 해에도 구의동, 자양동, 광장동의 땅이 6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