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딛고 ‘옛명성 되찾은’ 犬公

일제강점기 가죽 수탈 멸종위기 맞아 경북대 교수들 노력으로 복원
푹신해 보이는 커다란 몸, 흐트러진 긴 털은 두 눈마저 가리고 있다. 온몸을 덮은 털은 산중의 신선이나 도사의 풍모를 연상시킨다. 삽살개는 진돗개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개로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삽살개의 ‘삽’은 쫓는다, ‘살’은 귀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신이나 액운을 쫓고 복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
삽살개는 특별한 교육 없이도 주인의 표정을 보고 해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정도로 영리하다. 낮선 사람에겐 심하게 짖지만, 주인과 친한 정도에 따라 금방 태도를 바꾼다. 탁월한 집 지키는 개다. 삽살개는 신라 때부터 왕실과 귀족들에 의해 길러졌다. 신라가 망한 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민가로 흘러나와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민족과 동고동락하며 살았다. ‘문배도’라 하여 액운을 막기 위해 대문 등에 붙였던 그림의 소재나, 춘향전과 같은 고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오래도록 민족과 함께 했기에 전설 또한 많다. 경북 구미 낙동강 가에 있는 삽살개의 의로운 죽음을 기린 ‘의구총’이야기, 고려 공양왕의 마지막을 지킨 삽살개 이야기, 삼척 환선굴에 얽힌 전설 등 헤아리기도 어렵다. ‘개야 개야 삽살개야 이웃집 총각 오시거든 짖지 마라’ ‘삽살개야 나뭇잎만 달싹해도 멍멍 짖지 마라’는 민요는 삽살개에 대한 민족의 친근함이 어떠했는지 말해 준다.
삽살개는 일제 강점기 때 수난도 민족과 함께 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총독부령을 통해 1939년부터 1945년 사이 우리 토종개를 무차별 도살, 가죽을 태평양전쟁에서 사용할 방한복과 방한모의 재료로 사용했다. 삽살개는 긴 털과 방습·방한에 탁월한 가죽 덕분에 다른 개들에 비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멸종위기까지 봉착했던 삽살개는 1960년 경북대학교 하성진·탁연빈 교수들에 의해 수집·보존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은 경북대 하지홍 교수의 노력으로 199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며 보존협회가 생겼다. 삽살개보존협회는 복지단체에 동물매개치료용 애견 10마리, 독도경비대, 육군 50사단등에 삽살개를 기증,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삽살개는 2004년 기준 전국에 3000여 마리가 길러지고 있다. 이중 2500여 마리는 한국삽살개보존협회 회원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길러지고 있으며, 500여마리는 보존협회 육종연구소에서 집단으로 사육관리 하고 있다.
요즘 삽살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경북 경산시는 3만여평 규모의 삽살개 육종연구를 위한 테마 공원을 짓는다. 완공 때는 인근 갓바위와 연계한 관광상품화를 통해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될 수 있게 됐다. 또한 삽살개 한류열풍의 신호탄도 올랐다. 대구시는 주용식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44)를 ‘삽살개 홍보대사ꡑ로 위촉했다. 존스홉킨스대에서 사단법인 한국삽살개보존협회 미국지부를 운영하게 될 주 교수는 앞으로 2년 동안 삽살개의 국제적인 홍보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 하게 된다.
한국삽살개보존협회 회원 신혜경씨(45·대전 서구 산직동)는 “삽살개는 주인과 교감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견공”이라며 “특이한 외모로만 삽살개를 찾지 말고 사랑으로 키워줄 각오를 한 후 책임감을 갖고 삽살개를 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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