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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硏 일제시대 자료 역사관 개관
민족문제硏 일제시대 자료 역사관 개관(연합뉴스, 10.02.28)
전국 곳곳서 91돌 3.1절 기념행사 열려
전국 곳곳서 91돌 3.1절 기념행사 열려(이뉴스투데이, 10.03.01)
“납치 비난하는 일본, 강제징용은 왜 얘기않나?”
오마이뉴스 박철현 기자 ▲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도쿄지부(회장 조한철)는 단체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도쿄대학의 강상중 교수의 특별강연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 박철현 “지금 일본에서 북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비판을 나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북핵, 납치문제를 들면서 무조건 북한을 비판하고 있는 여론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재일동포들이 과거에 일본땅에 끌려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냉전시대의 납치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한국의 햇볕정책을 동북아시아라는 틀 속에서 평가해야 하며, 나는 이 햇볕정책이야 말로 6자회담에 큰 역할을 담당해 왔고, 또 앞으로도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일본의 탈식민/제국주의 대표적 논객이자 평화적인 동북아시아 공동체 건설이론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일본 미디어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도쿄대학의 강상중(56) 교수가 최근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 및 일본내의 북한비판 여론등에 대해 자신이 품어왔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았다. 11월 25일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도쿄지부(이하 OKTA Tokyo. 회장 조한철)가 단체 설립 25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신주쿠 오쿠보에 위치한 아스카 신용금고의 15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7층 홀에는 강연시작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강연이 시작된 오후 3시에는 200여명의 청중으로 가득찼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재일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한 강상중 교수는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동북아시아의 평화, 6자회담, 납치문제, 햇볕정책등을 1시간에 걸쳐 강연했다. “동북아시아는 지금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김성수와 사이토 총독의 부적절한 만남-오마이뉴스(06.11.20)
김성수와 사이토 총독의 부적절한 만남 [김성수 집안 재산 축적기 ④]경성방직은 어떻게 살아났나 개항과 국권침탈 이후 농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조선 지주계급의 상당수는 일제시대에 자본가 겸 지주가 되거나 혹은 자본가로 전환하였다. 김성수 집안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집안은 1920년대 이후 지주 겸 공업자본가로 변신했다.1910년대 중반 일본에서 돌아온 김성수는 방직회사 설립을 의욕적으로 준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호황 속에서 일본의 섬유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개항 이래 김성수 집안은 일본의 동향에 안테나를 맞추고 있었다.와세다대 출신의 젊은 재원(才媛) 김성수(당시 28세)의 의욕적인 준비 끝에 경성방직(지금의 주식회사 경방)은 1919년에 일제 당국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창립총회는 1919년 10월 5일 명월관의 지점인 태화관에서 열렸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경성방직 ▲ 경성방직 창립총회가 열린 명월관 지점 태화관. ⓒ <경방 80년> 설립 당시의 자본금은 100만원(圓)이었고, 제1회 납입주금(納入株金)은 25만원이었다. 실질적인 사업 밑천은 25만원이었던 셈이다. 사장에는 친일파 귀족인 박영효(철종의 사위, 1861~1939년)가 임명되었다. 김성수는 취체역(이사)을 맡았다. 실질적인 책임자인 김성수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대신 박영효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갑신정변(1884년) 이후 일본에 체류할 때에 야마자키로 개명한 바 있는 박영효는 동학농민전쟁(1894년) 이후 제2차 김홍집 내각(친일내각) 하에서 내무대신을 지냈고, 1907년에는 이완용 내각의 궁내대신이 되었으며, 일제 강점 이후에는 후작·중추원 고문·일본귀족원의원이 된 인물이다. 그는 경성방직 초대 사장일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초대 사장이기도 하다.박영효가 경성방직 사장으로 추대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친일중의 친일 ‘3·1운동 자제단’은 누구?
친일중의 친일 ‘3·1운동 자제단’은 누구?(한겨레신문, 10.03.01)
‘징게 맹갱 외에밋들’ 부산 전시
민족문제연구소 ‘징게 맹갱 외에밋들’ 부산 전시회가 2006년 12월 5일부터 17일까지 부산민주공원 전시실에서 열린다. ▲ 소설 ‘아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번 전시는 지난 10월에 있었던 김제전시회에 이은 지방 순회전시 두번째 행사로 전시회에서는 소설에 그려진 식민지 조선인의 삶과 죽음을, 농촌지도자를 꿈꾼 청년의 일기, 추억을 담은 졸업앨범, 교과서에 쓴 낙서, 무수히 자행된 학살 기록사진, 징용징병 피해자들이 남긴 유품, 당시의 기록영화 등을 통해 생생히 만날 수 있다. 또 일제의 시정업적에 대한 다양한 선전자료들도 전시되어 식민지시기의 근대화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신기루였는지를 확연히 깨닫게 해준다. <전시회 안내> – 때 : 12월 5일(화)-17일(일)– 곳 : 부산민주공원 전시실– 부제 : 조정래의 아리랑을 통해 본 식민지 조선인의 삶
독일 유력 출판사 ‘독도’ 표기 바로 잡아
민족문제연구소 ▲ 변경 전 베텔스만 발간 지도(동해와 일본해, 독도와 다케시마가 병기되어있다) ▲ 변경 후 2006년 11월 베텔스만에서 새로 발행한 지도(독도 표기 밑 괄호안에 다케시마 병기, 일본해단독 표기) 독일 유력 출판사인 베텔스만(Bertelsmann)은 최근 펴낸 세계지도『Der grossere Welt Atlas』에서 그동안 「Tok doTake shima(J)」라고만 되어 있던 독도 표기를 「DokdoTakeshima(Admin. by South Korea and claimed by Japan)」로 바꿔 출판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독도를 다케시마와 함께 병기하면서 일본령이라는 뜻의 ‘J’를 표기한 반면 최근 펴낸 지도에서는 독도와 다케시마를 병기하기는 했으나 ‘한국이 관리하고 있고 일본이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설명을 써 놓은 것이다. 이 같은 성과는 재독 민주화 운동가인 원병호 회원(59)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으로 원 회원은 현재 독도수호대 독일지부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관련기사 독일서도 외치는 독도 수호 의지(연구소, 05.03.31)80년대 재독 민주화운동 관련자료들 고국 품에(한겨레신문, 05.08.17) 이에 대해 원 회원은 “독일에서 출판되는 세계지도는 많은데 대개가 일본인들의 정보를 그대로 베낀 것이었습니다. 지금 일본이 독도 강탈 전초작업으로 곳곳의 세계지도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달기 위하여 엄청나게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노력을 하고 있는데, 독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독일에서 출판되는 세계지도를 보면 한심할 뿐”이라며 한국 외교 당국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독일에도 한국대사관이 존재하지만, 독도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2005년 교민모임에서 주독일 한국대사에게 ‘독도의 날 청원서’에 서명을 좀 부탁하였더니, 대사가
일제시대 자료 역사관 개관
일제시대 자료 역사관 개관(뉴시스, 10.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