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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선생 ‘김대중학술상’ 수상
1991년 창립 때부터 우리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힘이 되어 주신 강만길 선생께서 제5회 후광 김대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3일 10시 30분 전남대 국제회의동에서 열린다. -편집자 강만길 선생 ‘김대중학술상’ 수상…오는 3일 오전 전남대서 시상식 한국 현대사와 통일문제’ 특별강연 개최 제5회 후광 김대중학술상 시상식이 오는 3일 전남대학교에서 거행된다.전남대학교는 지난 5월 김대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한 한국 역사학계의 거목인 강만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78, 사진)에 대한 시상식을 3일 오전 10시30분 국제회의동 용봉홀에서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수상자인 강 교수에게는 상장 및 메달, 그리고 상금으로 1,000만원이 수여되며, 시상식 후에는 ‘한국 현대사와 통일문제’를 주제로 강 교수의 특별강연이 이어질 예정이다.경남 마산 출신의 강 교수는 1960~1970년대 식민사학 극복의 관점에서 조선시대 상업 자본의 발달과 수공업 경영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 한국 역사학의 주체적 발전에 공헌했으며, 1970년대 후반부터는 분단과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등 다수의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또한 ‘사회평론’ 발행인, ‘청명문화재단’ 이사장,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설립자 겸 이사를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을 위한 지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민족사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강 교수는 사회발전을 위한 실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전남대학교와 직접 관련된 ‘교육지표 사건’을 비롯해 ‘5.18 민중항쟁’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함으로써 사회민주화에 기여했으며, ‘김대중으로부터 자금수수’ 내용으로 연행되면서 교수직으로부터 해직되었다가 복직되기도 했다. 또 동아시아 평화·인권국제회의 한국위원회 대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보도자료] 제5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보도자료> 제5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학술부문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부문 이민석 변호사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정신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언론·사회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한 주관단체의 사정으로 시상이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다섯 번째이다. 지난 10월 14일 열린 예심에서 3배수의 수상후보가 추천되었으며, 10월 21일 본심에서 제5회 수상자가 최종 결정되었다. 본심에는 심사위원장인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비롯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언론인 주섭일 선생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각 부문별로 추천된 후보자들에 대해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결정하였는데, 치열한 경합 끝에 학술부문에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회부문에 이민석 변호사가 최종 선정되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이재승 교수는, 인권법 전문가로서 인권문제는 물론 사법개혁과 과거청산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환부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어 주목할 만한 분석들을 내왔다. 또 한국법철학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평화군사법연구회
[만화로 보는 역사] 안승희 作,
이 만화는 ‘인문교양잡지’ <싱크>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로, 안승희 작가의 작품이다. 애니메이터 겸, 만화가로 활동 중인 안작가는 <보리와 짜구>, <쿵야쿵야>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 미술감독 및 연출을 맡았다. 게재를 허락해 준 출판사와 작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만화] 프롤로그 바로보기 ※제 1부 “길 위의 작은 섬”
[책소개] 김영조,
▲김영조,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인물과사상사, 2011 옛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을까? 백성은, 선비는, 임금은…. 아니 그것이 지금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러나 여기 “옛 사람들의 삶”에서 향기를 찾아내어 알려주는 책이 나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쓰고,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에서 펴낸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가 그 책이다. 김영조 소장은 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터넷으로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수많은 사람에게 보내왔다. 그것들 가운데 365일에 맞게 골라 곁에 두고 볼 수 있게 엮어낸 것이 이 책이다. 책은 우선 명절과 24절기를 빠짐없이 챙기고 그날에 행하던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속을 따스한 시선으로 소개하고 있다. “입춘엔 적선공덕행이라는 독특한 세시풍속이 있습니다. 적선공덕행은 입춘이나 대보름날 전날 밤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해야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이지요.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일 따위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71쪽) 그뿐만 아니라 정월 초이레의 “이레놀음”, 입동의 “치계미”, 동지의 “고수레” 같은 풍습을 소개하면서 김남주 시인이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을 노래했다면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더불어 사는 정신을 곳곳에서 느끼게 해준다.또한 “자살하는 백성이 나오지 않게 하라.”(166쪽)는 임금의 명령에 따라
김성수 전 부통령 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취소 행정소송 판결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논평> 김성수 전 부통령 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취소 행정소송 판결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조일영)는 김성수 전 부통령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을 취소해 달라면서 유족과 인촌기념회가 제기한 소송에서 사실상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가 반민족행위자 결정에 있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호(징병이나 징용을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와 제17호(일본제국주의 통치기구 외곽단체의 간부로서 적극 협력한 행위) 법조 적용은 타당하다고 보았으나, 제13호(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한 행위)에 대한 부분은 유족들의 주장을 일부 인용하여 김씨가 이를 적극 주도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김성수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은 문제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연구소는 이번 판결이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지만,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국가의 결정이 유지된다는 점을 평가하며 이를 환영한다. 거대 보수언론의 설립자이자 부통령을 역임한 거물에 대한 심판을 내리기까지 재판부의 고뇌가 적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온갖 압박 속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 나온 것은, 역사정의실현을 소망하는 국민여론이 그만큼 압도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하여 진지하고 객관적인 검증과정을 거치고 소송 당사자들에게도 충분한 의견 개진의 기회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사법부의 판단까지 내려진 만큼 관련자들도 역사적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간 국가나 민간에서 이루어진 친일청산작업이 객관적 증거자료에 기초한 엄밀한 검증과정을 거쳤음에도, 자숙해야 할 후손들이나 관련단체들은 오히려 근거 없는
독재’ 인정 않는 친일세력, 민주화 성과까지 차지하려 해”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1년 10월 18일 (화) 오후 7시■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 이인재 교수▶정관용> 이번에는 교과서 논란입니다. 얼마 전부터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를 쓰자,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역사교과서에 독재라는 용어를 삭제하자, 이런 움직임이 있어서 또 논란이라고 그러네요. 이 사실 확인을 위해서 교과서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국사편찬위원회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었는데,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인터뷰가 곤란하다, 이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고 계신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학교 이인재 교수를 전화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이인재> 예, 안녕하십니까?▶정관용> 예, 지금 독재라는 용어를 빼자, 라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요?▷이인재> 집필기준에 있어서 독재라는 표현이 지금 삭제하려는 시도가 이번에 있습니다.▶정관용> 예, 그걸 좀 설명해주세요. 뭘 근거로 그런 게 나오는지요.▷이인재> 예, 2010년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작성된 중학교 역사교육과정 해설서에도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4.19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또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등장한 박정희 정부는 정치적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학생, 지식인, 종교인, 야당들은 연대해서 박정희 정부에 대항하였다. 1980년 신군부 정권의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우리 정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흐름에 접어들고 있음을 국내외 배경과 연계해서 이해하도록 권장한다.” 이것이 지금 2010년에 설명되어 있던 내용입니다. ▶정관용> 예, 그건 뭐 정확하게 다 독재라고 표현이 되어 있네요?▷이인재> 예, 그런데 2011년
[인터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보탬이 된다면 …
☎ 손석희 / 진행 :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게시판에 얼마 전에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라는 글의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윤수병의 친손자 되시는 윤모씨가 할아버지의 친일을 사죄하기 위해서 직접 글을 올린 건데 이것을 공개하는 데도 또 동의를 해주셨다고 하는군요. 요즘 뭐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마당에 특별한 분인 것 같습니다. 윤모 선생님 직접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성함은 밝혀드리질 않겠습니다. 윤 선생님 나와 계시죠? ☎ 윤석윤님 : 예. ☎ 손석희 / 진행 : 반갑습니다. ☎ 윤석윤님 : 예, 안녕하세요. ☎ 손석희 / 진행 : 할아버지께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최근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요? ☎ 윤석윤님 : 9월 초에 제가 확인을 했는데요. 제가 가족에 대한 글을 어디에 이제 써야 되는 그런 기회가 있어서 지금 저희 작은아버지가 88세로 생존에 계시는데 할아버지에 대해서 제가 어려서부터 궁금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좀 단편적으로 해주시는 얘기가 좀 부족해서 또 확인을 했는데 별로 이야기가 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우연히 생각하게 된 것이 일제 초기에 저희 할아버지가 군수를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혹시 친일인명사전에 있지 않을까 해서 도서관에 가서 찾아봤는데 거기에 저희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기록이 다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확인을 해서 작은 아버지에게도 말씀을 드리니까
저는 친일파 손자…역사와 민족앞에 사죄드립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윤수병(尹壽炳 1876~1953)의 친손자인 윤석윤 님(경기 군포 거주)이 9월 7일 회원으로 가입하고 더불어 할아버지의 친일행위를 사죄하는 글을 연구소 누리집에 올렸다. 10월 6일 윤석윤 회원을 직접 만나 전문 게재를 허락받았다. 윤 회원의 용기 있는 결정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 엮은이-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생전에 뵙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1953년에 타계하셨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부모님을 통해 들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셨던 할아버지가 상투를 자르고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 따라 가셨던 증조 할아버지가 펑펑 우셨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와 일본의 게이오 의숙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한제국의 농상공부의 관리로 출발하여 나중에 군수까지 하셨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난 할아버지가 늘 궁금했다. ▲2009년 11월 8일 백범 선생 묘소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그러다 작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혹시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 초기에 군수를 하셨다면 친일파 명부에 있지 않을까 하여 도서관에 달려가 찾아보았다. 내가 궁금해 하고 찾던 할아버지가 바로 거기에 계셨다. 2011년 9월 3일은 나의 뿌리인 할아버지를 찾은 날이다.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도 알지 못하시던 할아버지의 50여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력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