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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지금도 말할 수 없다(3화)

2011년 10월 14일 504

    만화로 해부하는 금단의 역사, 친일파! 강요된 침묵과 은폐의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한 역사 바로잡기를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다. 열렬한 국민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반민특위의 활동, 그리고 이승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시대의 진실이다. 이 만화는 인문만화교양지 “싱크(SYNC)”에 연재하고 있는 조남준 작가의 “지금도 말할 수 없다” 제3화이다. 전재를 허락해 준 싱크 편집진과 조남준 작가께 감사드린다. 글, 그림 조남준 : 시사만화가. 1966년 서울 출생. 8년간 <한겨레21>에 “시사 SF”를 연재. 그외 내일신문 “만화같은 세상”, 경향신문 “메모리즈” 등으로 활동했다.   ※반민특위 제3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2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1화 바로보기 ※프롤로그 바로보기  

한기총,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설립 추진 논란

2011년 10월 12일 547

한기총,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설립 추진-논란 활활   이영란 선임기자   보수 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한기총 회장인 홍재철 목사는 12일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와 대치했던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국가를 세운 공이 크다”며 “장기집권 등 일부 문제가 있긴 하나 초대 대통령으로써 업적이 뚜렷한데도 기념관이 없어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기총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등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해 국가를 운영했던 점 등을 감안해 ’이승만 초대대통령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한기총이 중심이 돼 출범시켰다고 덧붙였다. 추진위원장인 홍목사는 ”오늘날은 어느 때 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보수, 반공, 민족주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기총은 소속 교단과 단체를 상대로 기념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했으며,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담은 탄원서를 곧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이 전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하지만,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의 원칙을 파기한 인물”이라며 “취임시에도 하느님에게 맹세하고, 군종제도에서 기독교를 우대하는 등 타 종교의 자유를 위배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실장은 “이같은 기독교우대정책은 종교 갈등을 초래할 수 있어 이 전 대통령을 종교계에서 다시 기념하자는 것은 사회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부산시는 지난 6월 한국전쟁 당시 2년6개월가량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등으로 사용돼오던 임시수도 기념관(사빈당) 옆 옛 부산고검장 관사를 헐어 임시정부 전시교육장으로

한나라당 신지호의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또 한번 짓밟는가

2011년 10월 11일 947

한나라당 신지호의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또 한번 짓밟는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월 11일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기업체 모집, 1942년부터 1943년까지는 조선총독부 알선,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 형식”이었으며 “박원순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이며,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을 대신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박원순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가 1941년 강제징용 됐다는 말은 거짓말”이며, “할아버지 대신 강제징용을 간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양자로 갔다” 는 박원순 후보의 설명은 병역면탈을 노린 `반(反)사회적 호적쪼개기’였음이 명백해 졌다”고 박후보를 비난했다. ▲ 신지호 의원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며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신 의원의 말대로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동원은 모집-알선-징용 3단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신 의원의 주장과 달리 징용만이 강제동원이 아니었으며, 1939년 모집 단계부터 강제동원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가 설치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보상지원대상자를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일제의 의하여 군인ㆍ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 되어 그 기간 중 또는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 행방불명된 사람,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사람” 단 “사할린 지역의 경우는 1938년 4월 1일부터 1990년 9월 30일까지의 기간 중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례조사나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일제는 모집단계에서

“신지호, 박원순 검증하려면 공부 좀 해라”

2011년 10월 11일 731

“신지호, 박원순 검증하려면 공부 좀 해라” [기고] 피해자 심정 안다면 역사의 비극을 함부로 이용 못할텐데…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 ‘전’ 대변인인 신지호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작은 할아버지 강제 징용은 역사적으로 허구”라고 주장한데 대해 <프레시안>은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등이 조사한 실태를 근거로 신 의원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도했다. 신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나경원 후보 측이 제기하고 있는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의 ‘보충역’ 판정 의혹 공세에 대한 측면 지원으로 보이지만, 근거는 현저히 부족하다. 오히려 나경원 후보의 자위대 50주년 창립 기념 행사 참석 관련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과 겹쳐 한나라당의 ‘친일파 옹호’ 이미지만 강화시키고 있다. 관련해 <프레시안>은 민족문제연구소에도 신 의원의 주장에 대한 의견을 구했었다. 이에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이 신 의원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프레시안>은 양해를 구하고 김 연구위원의 글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신지호의원의 어설픈 공격 김민철(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며칠 전 음주방송으로 사고를 친 뉴라이트 출신의 한나라당 신지호의원이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건수 하나를 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기업체 모집, 1942년부터 1943년까지는 조선총독부 알선,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 형식이었다”면서 “박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며,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의 징용영장을

이승만 다큐는 여러 가지 속임수가 내재된 것

2011년 10월 11일 514

kbs 이승만 다큐..진실을 보지 못한 후대를 걱정하며 김정륙 임정기념사업회 부회장(연구소 회원) KBS다큐멘터리 담당 프로듀서로부터 취재요청이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제작취지부터 짚어봤다. 세간에 이승만 박사 찬양 미화 의도라 하는데 사실이냐고…PD는 전혀 사실이 아닌 오해라 했다. 그래서 재차, 수많은 단체가 거부하는 이 프로그램을 왜 굳이 고집하느냐고 물으니 만약, 이박사 고무찬양이라면 반민특위에 관한한 과오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인데 왜 비켜가지 않고 굳이 내용에 담겠느냐며 믿으라했다. 수긍이 되기에 취재에 응했었다. 방송을 본 후, 제일 먼저 자라나는 우리 후대들이 걱정 되었다. KBS는 이박사의 功과 過를 모두 아우른 영상을 제작하려는 의도를 가졌으나, 이 프로그램을 반대한 단체들의 예상대로 여러 가지 속임수가 내재된 것을 확인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첫째, 국회에서 기초한 최초의 헌법은 내각제였다. 이박사는 대통령제로 바꾸지 않으면 응하지 않겠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요즘, 뉴라이트계열측은 느닷없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논리를 개발해서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건 자유민주주의건 그 요체는 ‘의회정치’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다면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의제로 상정해서 다수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원칙인데 이박사는 초기부터 원칙을 버린 채 아집만 부려 대통령제로 고쳐 당선된 것이나, 영상을 보면 앞뒤의 요점은 빠져있고 이승만 몇 표, 김구 몇 표, 그래서 이승만의 당선을 선포한 것처럼 되어있다.백범 김구 선생은 조국의 분단을 고착하는 이 단정수립을 반대해 정치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당대의 지도자와 경합해서 당선됐다는 판단을 하게한 트릭이 있는 것이다. 둘째,

이승만 동상 상할까봐? 경찰 24시간 과잉 보호

2011년 10월 10일 489

<한국일보, 11.10.10> 이승만 동상 상할까봐? 경찰 24시간 과잉 보호

시민역사관 건립 모금 콘서트 성황

2011년 10월 7일 631

 [송민희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시민과 함께하는 역사문화운동 2탄으로 내건 시민역사관 건립운동의 첫 공개사업인 모금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5일 오후 7시 원불교 서울회관에서 열린 ‘친일·독재의 역사청산과 역사왜곡 저지를 위한,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 모금 콘서트’는 원음방송 대공개홀 600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역사 청산 의지를 다지는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 권해효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콘서트에는 시인 고은, 역사학자 이이화, 개그맨 노정렬,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이야기 손님으로 참석했다. 또 꽃다지, 이지상, 평화의나무합창단, 안치환 등의 공연도 이어졌다. ▲원불교 서울회관 대공개홀 600석을 가득 메운 채 성대하게 열린 ‘친일·독재의 역사청산과 역사왜곡 저지를 위한,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건립 모금 콘서트’ 이이화 시민역사관 건립위원장은 “최근 수구세력의 조직적인 역사조작으로 대한민국은 사실상 ‘역사전쟁’의 상태에 들어갔다”고 규정했다. 특히 정부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해 “친일독재 비호세력, 뉴라이트 등이 주동해서 만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전쟁 도발을 합리화하기 위해 야스쿠니신사가 만든 유슈칸 역사자료관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이어 “이 자리는 시민역사관 건립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의미 있는 자리”라며 “시민 여러분들이 조금씩 힘을 보태 반드시 건립해야만 역사가 죽지 않고 깨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시민역사관 건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콘서트의 시작을 연 이이화 시민역사관 건립위원장. 시인 고은 선생도 “역사가 지금 벌판에서 비를 맞고, 굶주리고, 거리 시궁창에 처박혀 있다”고 개탄하면서 “우리는 이런 역사를

사회갈등 부추긴 6억짜리 ‘이승만 찬양’

2011년 10월 5일 685

사회갈등 부추긴 6억짜리 ‘이승만 찬양’ 이승만의 과오는 모두 “불가피했거나, 몰랐거나, 오해” [민주언론시민엽합 논평] 28일부터 30일까지 KBS가 방송한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이 방영되었다.KBS가 이른바 5부작의 ‘이승만 특집 다큐’를 제작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독립유공자 단체, 4.19관련 단체, 민간인학살희생자 단체 등 시민사회는 KBS에 제작 중단을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독재자 이승만’에 대해 6억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 다큐를 제작한다는 자체가 ‘이승만 되살리기’ 의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6월에 방송된 친일파 백선엽 찬양 다큐, 뉴라이트 세력 등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승만 우상화’와 ‘역사 뒤집기’ 시도는 시민사회의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켰다. 그러자 KBS는 “이승만의 공과를 모두 다룰 것”이라며 3부작 다큐의 제작과 방송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KBS가 내놓은 ‘이승만 다큐’의 실상은 시민사회의 우려대로 이승만에 대한 미화와 찬양이었다. KBS는 이승만의 ‘공’은 최대한 부각한 반면 ‘과’에 대해서는 모두 ‘불가피한 일’, ‘이승만은 몰랐던 일’, ‘오해에서 비롯된 일’로 해명하며 두둔했다. 이런 식으로 두둔할 수조차 없는 이승만의 과오들은 아예 침묵했다. 28일 방송된 1부 ‘개화와 독립’ 편은 이승만이 배제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 미국 망명생활을 거쳐 해방 후 귀국할 때까지를 다뤘다. 이 시기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서는 ‘미국의 선처’에 의존한 그의 친미노선과 ‘외교독립론’, 공적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미국 내 한인조직에 분열을 가져온 점, 임시정부 대통령 참칭, 무장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비난, 독립운동가들의 변호 거부 등 비판의

[시론] 이승만 미화는 주권자 국민 모독

2011년 10월 4일 624

“이승만 미화는 주권자 국민 모독”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한국사   <한국방송>(KBS)은 논란 속에 이승만 특집을 강행하면서 ‘이승만은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건국자 이승만 때문에 존재한다는 발상이다. 그에 따라 이승만의 행적을 꾸미고 포장하여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비판받아 온 부분은 교묘하게 변명했다.   방송에서 부정적인 견해도 여러차례 소개해 객관적 균형을 갖춘 듯했지만 구색에 지나지 않았다. 큰 줄기는 이승만이 남긴 기록을 비롯해 그 주변 인물들의 주관적 의견과 우호적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내세워 구성했다. 심지어 4·19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승만이 스스로 사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4·19 항쟁조차 그의 공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과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역사에는 늘 고비가 있고 그때마다 소임을 떠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침 이승만은 민족사의 가장 큰 시련기에 활동했다. 그리고 그의 행적은 민족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후과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위상 때문에 그는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우선 이승만은 빈번한 정치적 암살을 비롯해 한국전쟁 전후 자행된 무고한 수많은 인명 살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국민들을 결집하여 방어에 나서기는커녕 야반도주하면서 서둘러 대부분 이념과는 무관하게 동원하여 억지로 가입시킨 보도연맹원들을 수만명이나 집단학살했다. 적이 점령했을 때 협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예방책으로 미리 제거한 것이라고 했다. 문명사회에 이런 잔인한 경우가 또 있을는지. 이승만이 주장한 외교독립론도 기실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미국은

“친일파후손 득세하는 현실은 역사전쟁”

2011년 10월 4일 645

이이화 시민역사관 건립위 대표 “인명사전 수익환원”   [김효정 기자] “친일인명사전은 일반 시민의 모금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판매 수익을 필자들이 가져갈 겁니까? 환원해야죠.” 지난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온 민족문제연구소가 방대한 보유 자료와 그간의 성과를 다시금 시민과 나누려고 ‘시민 역사관’을 건립한다. ‘역사 정의를 실천하는 시민 역사관'(가칭) 건립위원회 상임대표 중 한 명인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친일인명사전이 문자 자료였다면 역사관은 시민에게 감동을 줄 ‘산 교육장’이 될 것”이라며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친일인명사전 판매 수익이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이제는 대중에게 다가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이씨는 “고리타분한 석기시대 유물을 가져다 놓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갖춰 청소년들이 찾아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소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추진되던 2007년 이미 역사관 건립 준비위를 발족했고 내년 개관을 목표로 올 상반기 건립 준비에 착수했다. 역사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보유한 식민통치 자료, 친일 군상을 보여주는 각종 문서, 강제동원 기록과 유물 등 2만여 점의 실물 자료로 채워진다. 일제 강점기 의복과 교과서 등 생활용품, 각종 지도 및 선전화, 영상 및 녹음 자료 등을 통해 당시 생활상과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애초에는 ‘민중 생활 역사관’ 개념이었지만 추진 과정에서 명칭이 재논의됐다. 이씨는 “건립 기금에 사전 판매 수익이 전액 투입된다. 국민이 사전을 한 권 사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