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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보도자료] 보훈처, 김일성 외삼촌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2016년 6월 27일 602

[보도자료] [다운로드] 보훈처, 김일성 외삼촌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뒤늦게 사실관계 파악, 조직적 은폐 작업 국가보훈처가 현 박승춘 처장이 재임 중이던 지난 2012년, 67주년 광복절을 맞아 애국지사 198명을 포상할 때 북한 김일성 주석의 외숙 강진석을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자에 포함시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 『(대한민국정부)관보』제17863호(2012.8.30) 민족문제연구소는 6월 27일 배포한 자료에서, 보훈처가 강진석에게 애국장을 추서한 뒤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숙인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강진석은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의 큰오빠로 평양청년회와 백산무사단 제2부 외무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다 1921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8년간 옥고를 치렀다. ▲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와다 하루끼 지음, 이종석 옮김, 창작과비평사), 30∼31쪽 민족문제연구소는 “보훈처가 『독립유공자공훈록(제21권)』에서 서훈 사유로 적시한 강진석의 독립운동 공적은, 동명이인의 행적과 관련된 출전이 부기된 오류 외에는,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그간 정부가 북한 정권 참여자는 물론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에게도 서훈한 전례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검증 부실로 인한 ‘사고’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은 독립운동사 전공자들에게는 상식이며, 인터넷상에도 공개되어 있어 심사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연구소 관계자는 “부실심사의 원인은 박승춘 처장이 취임 직후인 2012년 초 정치적 의도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 위원들을 대폭 물갈이 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보훈처는 이 때 전체 심사위원 50인 중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서중석

“역사 왜곡과 싸우는 게 우리 역할이다”

2016년 6월 27일 1353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이준식 기념관장과 윤봉석 학예사를 만나다 ▲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 북한산 둘레길에 근현대사 기념관이 생겼다. 근현대사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생긴 첫번째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 ⓒ 정인곤 관련사진보기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위쪽 북한산 자락에 근현대사기념관이 생겼다.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지역주민들과 북한산 둘레길 순례자들이 기념관을 찾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근현대사 기념관이 생겨났는지 궁금증을 품고 이준식 관장과 윤봉석 학예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이준식 관장을 포함해 여섯 명이 일하는데, 윤봉석 학예실장과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이준식 관장과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각각 만났다. 이준식 관장은 일제 식민지 농민운동을 포함한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왔으며,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과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봉석 학예실장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였고 이후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반민특위가 와해된 일을 겪으며 평생을 친일문제 연구를 해온 고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 1991년에 설립됐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과거사 청산 활동을 해오고 있다. 동학부터 4.19까지 담겨있는 곳 ▲ 윤봉석 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 학예사 건국절 논란 등 역사적인 이해에 큰 혼란이 생겨난 시점에서 올바른 근현대사 기념관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 정인곤 관련사진보기 – 지난 해 초에 이곳에 근현대사기념관이 세워지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위탁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 궁금했습니다. 윤봉석 : “근현대사기념관은 강북구에서 주관하고 서울시에서 지원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강북구에는 4·19민주묘지도 있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6위의 묘가 있습니다. ‘평등, 자유,

[논평] 정부는 친일 망언 공직자를 일벌백계하라

2016년 6월 24일 681

[논평] 정부는 친일 망언 공직자를 일벌백계하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고위 공직자들의 ‘눈도장 찍기’용 친일 친독재 역사왜곡 발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결정판이라 할 만한 망언이 터져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출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지난 1월 세종시에서 KEI 주최로 열린 환경문제 관련 워크숍 뒷풀이 자리에서, 자신을 친일파라 밝히고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마지막 사장이었다”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다” 등 망언을 늘어놓은 뒤 “천황폐하 만세” 삼창까지 외쳐 참석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두루 알고 있듯이 ‘덴노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 萬歲)’는 군국주의의 상징 구호로 일본에서도 기피하는 용어이다. 2013년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공식 행사에서 이 구호를 외쳤다가 국내외의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한 적도 있다. 정부 산하기관의 고위인사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반국가적 망언을 서슴없이 늘어놓았다는 사실에 온 국민들은 경악을 넘어 격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한 망나니의 망발로 치부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는 정치인 관료 학자를 막론하고 현 집권세력과 주변에서 도를 넘는 발언들이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권 핵심부가 반민족적 반역사적 행태를 조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지닌 극우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중용하는 도발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토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빈번하게 되풀이되는 배경임에 틀림없다. 정부는 망언 당사자를 즉각 해임함으로써 일부 공직자의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계기로

민변 “역사교과서 국정화 근거 법률 위헌심판 해달라”

2016년 6월 22일 734

▲ [자료사진] ? News1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로 헌법상 권리가 침해됐다며 집필진, 학부모, 학교장을 대리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소송과 헌법소원을 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관련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김용철) 심리로 22일 열린 1회 변론기일에서 민변 측은 “초중등교육법 제29조 2항이 헌법상 포괄위임금지 원칙과 교육제도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해 어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요청했다”며 “먼저 제기한 헌법소원과 함께 한꺼번에 판단을 받고 이에 기초해 소송이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재판부가 채택해달라”고 밝혔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2항은 ‘교과용 도서의 범위·저작·검정·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변 측은 이 규정이 교육제도를 법으로 정하도록 한 헌법 제31조 6항과 헌법 제75조가 규정한 포괄위임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아직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관련해 구체적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재량만으로 판단하기엔 부족하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재판에서 민변 측은 “역사 교과서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국정화 교과서로 교육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례없고 구시대적”이라며 “독재시대에서나 가능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갑자기 꺼내든 것 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시·도 교육감과 일반국민들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아 절차적으로도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측은 “영토 분쟁 있는 일부 국가에서 국정화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정화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뉴라이트의 이승만 추앙, 왜곡”

2016년 6월 19일 2713

200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이나 ‘백년 전쟁’ 영상 제작으로도 유명한 해당 연구소의 대변인 역을 맡고 있는 교육홍보실장 박한용 박사를 <주간현대>가 만났다. 박한용 박사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들과 대척점에 선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결국 친일파들에 대한 정당화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설명 했다. ※관련기사[주간현대가 만난 사람]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③ “친일파 자손, 반성 의무…” [주간현대가 만난 사람]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② “역사 진실 침묵할 때 거짓이…” [주간현대가 만난 사람]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① “친일 청산 외치니, 모함하더라” 뉴라이트 경제학자들, 통계만으로 ‘역사 해석’하는 경향 있어 일제 때 근대화됐다는 그들의 주장, 사실과 많은 부분 달라… 반공 개념 없던 시기, 공산 독립 운동가들과 싸운 것도 포장 일제 말기 100% 무상교육 계획안…日군사요원 양성이 목적 [주간현대=조미진 기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앞서 3번째 인터뷰에서 뉴라이트 측이 ‘조선총독부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이 해방이후 1960년대 이승만과 협력해 대한민국 건국을 했고, 박정희 때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다. 따라서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조국 근대화의 건국의 아버지로 부르자’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인터뷰를 이어서 진행했다. – 뉴라이트의 주장이 정말 그런가? 그런데 일제 강점기 우리가 빼앗긴 것이나 손해가 훨씬 더 많겠지만, 플러스 요인이 하나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 플러스된 것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뉴라이트 측 주장처럼 이뤄지지

민족사랑 2016년 06월호

2016년 6월 16일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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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는 하등 상관없는 ‘박근혜 오동나무’

2016년 6월 15일 1271

[박정희 기념사업 파헤치기①] 800억 새마을공원, 박정희 신격화의 끝판왕 이 글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기념사업의 규모와 실체를 파헤치는 시리즈입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내세우는 박정희 기념사업이 얼마나 미화되고 있는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허구성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박근혜 오동나무’가 아니라 ‘박재옥 오동나무’로 해야 ▲  박정희의 하숙집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 ⓒ 인터넷제보 관련사진보기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리에는 ‘청운각’이 있습니다. ‘청운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경서부심상소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머물렀던 하숙집을 기념하기 위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또한 청운각에는 ‘박근혜 오동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아래처럼 박근혜 오동나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숙할 당시 이 물을 마시면서 마음을 다잡은 약샘으로 우물 벽에서 난 오동나무는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우물 중간쯤 되는 돌 틈에서 자연히 싹이 나서 자란 것이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내려앉는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 지어 국가 최고 권위자인 대통령을 상징하며 세인의 발길을 끌고 있다.” (청운각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 안내문) 청운각에 있는 오동나무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는 아버지 박정희가 하숙했다는 연관성 이외는 없습니다. “봉황이 내려앉아서 상서롭다”는 설명은 무슨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이지, 현직 대통령과 연관된 이름은 아닙니다. ‘박정희가 하숙집에 있었기 때문에 딸의 이름을 나무에 붙였다’고 한다면 ‘박근혜’가 아닌 ‘박재옥’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청운각에 머물던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의 첫 번째 부인은 육영수가 아닌 김호남이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태평양전쟁 강제징용 희생자 강인창씨 증언집 한일 양국서 출간

2016년 6월 13일 1251

강씨가 주도한 日 오키나와 ‘한의 비’ 건립 10주년 추도식 맞춰 첫선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로 끌려가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한(恨)의 비(碑)’가 10여년전 한일 양국에 순차적으로 세워졌다. 한의 비는 1999년 경북 영양군에 세워진데 이어 2006년에는 일본 오키나와 요미탄(讀谷) 마을에 건립됐다. 오키나와 건립 10주년을 맞아 이 비석의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징용 피해자인 고(故) 강인창씨의 증언집이 양국에서 출간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씨의 증언집 ‘전 조선인 군부 강인창 증언 한을 품고 – 할아버지의 유언’이 오키나와에서 한의 비 건립 10주년 추도식이 열리는 11일에 맞춰 일본에서 첫선을 보인다고 밝혔다. 편집이 마무리되는 대로 국내에서도 한국어판이 출간된다. 한의 비는 태평양전쟁 오키나와전(戰) 당시 강제징용돼 희생된 조선인의 넋을 기리고자 강씨와 일본 시민활동가 마메타 도시키씨 등 양국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만든 위령비다. ▲ 오키나와에 세워진 ‘한의 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오키나와전에 징집된 강씨는 전쟁 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경북 영양군 지회장직을 맡으며 1996년 일본군 ‘유수명부’를 조사했고, 경북에서 오키나와로 끌려간 조선인 3천여명의 기록을 찾아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는 1997년 오키나와에서 마메타씨가 개최한 태평양전 희생자 추모 행사에서 고통스러운 전쟁의 진상을 생생하게 증언했고, 그 충격은 한의 비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번 증언집 발간은 일본 시민단체인 ‘오키나와 한의 비 모임’이 주도해 이뤄졌다. 아사토 에이코 모임 대표는 2010년 3월 허점숙 일본 메이오대 교수와 함께 강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뒷짐 지고 관조? 문학 아니다

2016년 6월 11일 1088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강조했다. “자기 생명이 있는 한, 몸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위해서 포효해야 한다.” 류우종 기자 지난 2월 <한겨레21>은 물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짚었다. “농민은 병실에 누워 있고, 노동자는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 오른다.”(제1098호) 이후 넉 달.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잔인한 비언어의 시대에 문학의 가치와 교훈을 탐사하기 위해 시작한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이 지난 5월 16회로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하는 글] 기획연재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 격변기 문호들을 찾아 떠나다 [연재] 1화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연재] 2화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연재] 3화 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 빅토르 위고 [연재] 4화 무시무시한 시절의 위고 [연재] 5화 늙어서 오히려 진보한 위고 [연재] 6화 민중의 눈으로 전쟁을 본 톨스토이 [연재] 7화 “나는 침묵할 수 없다!” 인도주의 상징 톨스토이 [연재] 8화 지복을 누린 괴테 바이마르 권세에 취하다 [연재] 9화 정치는 우리의 운명 스탕달 [연재] 10화 실러의 위대한 투쟁 [연재] 11화 ‘감옥의 벽’ 허물려 한 자유의 투사 횔덜린 [연재] 12화 ‘오리새끼’에서 ‘혁명가 친구’ 된 푸시킨 [연재] 13화 유언비어 용의자 1호 러시아의 푸시킨 [연재] 14화 천재 연애대장 바이런 [연재] 15화 양심의 이름으로, 헤세 [연재] 16화 이런 ‘반공주의자’ 펄 벅 일본의 도쿠토미 형제 문인이 정반대로 걸어간 길에서 시작한 연재는 용인할 만한 반공주의자 펄 벅에서 끝맺었다. 연재에서

경희대는 왜 신흥무관학교 흔적과 뿌리를 없앴을까

2016년 6월 8일 5411

[토요판] 뉴스분석 왜? 창학 105주년 신흥무관학교 드러내 자랑할 수 없는 우리의 선배님, ‘속사포’ ▲ 경희대학교의 역사는 1911년 만주에 설립됐던 신흥무관학교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만, 경희대학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서울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학교의 모습으로, 왼쪽 앞 건물은 1956년 완공된 석조전 본관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 딱 105년 전 6월10일 만주 서간도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민족지사들이 만든 이 학교 출신들은 항일독립투쟁의 주역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요람이자 민족교육의 산실이라는 이 신흥무관학교의 빛나는 전통과 맥을 이어받은 대학교가 있다. 그러나 이 대학은 자랑스런 역사를 내세우기는커녕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인연을 끊기에 바쁘다. 서울 경희대학교에 관한 얘기다.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암살>은 지난해 7월 개봉돼 120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한국 영화 사상 흥행순위에서 역대 7위다. 감독(최동훈)이 설명한 이 영화의 모티브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형제들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배우 조진웅)가 생계형 독립군이라는 주요 배역으로 나왔다. 영화에서처럼 신흥무관학교는 숱한 독립투사를 배출한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이다. 신흥무관학교가 없었다면 항일독립운동사는 찬란한 빛을 발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했던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 폐교될 때까지 만주에 있었던 학교다. 창학으로 따지면 105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는 오래전에 존재했던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도 엄연히 살아 있는 실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맥을 이은 대학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의 경희대학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신흥무관학교는 역사에만 존재할 뿐 이미 ‘사라진’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