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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유성문의 길]나눔의 집과 수요집회-뉴스메이커(07.08.28)

2007년 8월 30일 508

[유성문의 길]나눔의 집과 수요집회 우산을잃어버리다  강일출 할머니는 1943년 가을에 동원되어, 1944년 정초 목단강위안소에 도착, 이후 1945년 해방되기 얼마 전 탈출할 때까지 위안부로 생활했다.할머니는 1928년 10월 26일 경북 상주군 화동면 의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아이를 모두 열둘을 낳았는데 일출은 그중 막내다. 일출이 태어났을 때 이미 위의 다섯 형제가 죽어 일곱이 남았다. 일출이 막내니 부모는 이미 많이 늙었고 농사를 지었다.…그때 방으로 데리고 갔어. 그러다가 뭐 첨에 가고 거석하니까니, 나는 그때 그거 여자들보다 나이가 어리고 작고 하니까니 애기 같지. 젖도 송긋 안 일어났으니까니. 그것도 안 왔어요. 여자들 오는 것도.…하고 나서 그 담에는 또 거석하니까니 피도 나고 이러니까니 약이랑 넣어야 되잖아요. 그러니 딴 방에다 옮겼어요. 그래 가지고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쪼그만 하니까, 자꾸 바꿔서 부르니까, 그러고 나서 내가 그렇게 막 오줌 싸면 막 피가 나오고 이러니까, 그것들이 그 담에는 딴 방으로 날 옮겨주데요. 그래 가지고 병원에 가서 약도 넣고 했어요. 그 쪼그만한 걸. 그래 그렇게 해가지고, 또 내가 좀 있다가 내가 좀 앓았어. 막 그러니까, 요 아래가 헐고 하니까 또 열이 나요. 열이 나다 또 나쁜 병이 또 왔지. 그래 엎친 데다 뭐 덮치게 됐지.여름이 되자 군인들은 일출의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는다고 차에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착해보니 산기슭에 장작을 쌓아놓았다.“불을 놓고 기름을 붓고 사람을

“벽골제는 방조제” 조정래 소설 근거 비판한 이영훈 교수 새 주장-‘중앙'(07.08.30)

2007년 8월 30일 723

“벽골제는 방조제” 조정래 소설 근거 비판한 이영훈 교수 새 주장이영훈(55·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소설가 조정래(64)씨의 역사소설 『아리랑』(전12권)의 역사적 근거를 재차 비판하며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삼국시대에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로 알려져 있는 벽골제가 사실은 바닷물의 침입을 막는 방조제(防潮堤)라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같은 새로운 학설을 뉴라이트재단 기관지 ‘시대정신’ 가을호에 발표했다.이 주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 교수와 조 작가와의 논란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시대정신’여름호에서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평야가 소설에서처럼 원래부터 비옥한 땅이 아니라 황무지였으며, 곡창지대로 변한 것은 일제 식민지기에 개발된 수리사업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했었다. 이에 대해 조씨는 대학 강연 등을 통해 “백제시대부터 벽골제라는 국내 최대의 수리시설이 있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이 교수는 “15세기 초 『세종실록지리지』 김제군편을 보면, 벽골제에 대해 ‘신라 흘해왕 21년에 비로소 둑을 쌓았는데, 길이가 1800보다. 본조 태종 15년에 다시 쌓았으나 이익은 적고 폐단은 많았으므로 곧 허물어뜨렸다’라고 돼있다”며 “조선왕조 500년 내내 벽골제는 허물어진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이어 “현장 답사와 19세기 말~20세기 초 지도로 분석해 볼 때 광대한 평야지대를 막아 저수지를 만든다는 발상은 실현되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촉구’ 행사 다채

2009년 11월 4일 526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촉구’ 행사 다채(ytn, 09.11.03)

‘광주학생운동’ 기념식 못 여는 반쪽짜리 기념관

2009년 11월 4일 788

‘광주학생운동’ 기념식 못 여는 반쪽짜리 기념관(SBS, 09.11.04)

우리나라 ‘마지막 황제’ 미공개 사진 나왔다-주간한국(07.08.28)

2007년 8월 30일 1429

우리나라 ‘마지막 황제’ 미공개 사진 나왔다8월 27일 순종 즉위 100주년- 의친왕 손자 이혜원 씨 개인 소장 자료 공개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에 즉위식 기사 실려… 실질적 재임 3년, 열차로 부산· 함흥 등 순행   비운의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이 짧은 재위 기간 전국을 순행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최초로 공개됐다.본지가 순종 즉위 100주년(8월27일)을 맞아 국립고궁박물관 이혜원(52) 연구원에게서 단독 입수한 사진들은 순종이 일제 강압을 받던 어려운 환경에서도 국정에 역투했음을 시사한다. 이혜원 연구원은 순종의 동생인 의친왕의 손자로 이번에 공개한 사진은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자료다.1910년 한일합병조약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을 일본 천황가의 하부단위로 격하시키고 순종을 ‘창덕궁 이왕(李王)’으로 낮추었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이왕직체제’다. 때문에 순종이 실질적으로 국왕 역할을 한 시기는 즉위한 1907년부터 1910년까지 3년에 불과하다.사료에 따르면 이 짧은 기간 순종은 주로 열차를 이용해 전국을 순행했다. 일종의 민정시찰이었던 것. 순종의 전국 순행에는 부산도 포함됐고, 부산에 기항한 일본군함에 올라가 선내를 둘러봤다는 기록이 나온다.이 연구원은 “순종의 전국 순행 때, 일본이 자국 군함을 부산항에 띄운 것은 자신들의 군사적 파워를 순종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며 “순종이 일본천황에게 ‘귀국에서 보내주신 함대 잘 관람했다’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고 천황에게서 답신이 왔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고 설명했다.순종의 순행은 개성, 의주, 함흥으로 이어졌다. 순종은 함흥에 들러 조선 창업기 태조의 즉위식이 거행됐던 함흥본궁(咸興本宮)도 둘러본다.100년전 순종의 즉위식을 전한 당시 신문기사도 이번에 발견됐다.

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뉴시스(07.08.29)

2007년 8월 29일 717

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    29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제776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시아에 정체성이 있는가?

2009년 11월 4일 578

동아시아에 정체성이 있는가?(연합뉴스, 09.11.04)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공동기획전시

2009년 11월 4일 703

「침략신사, 야스쿠니」 특별전 열려 민족문제연구소보도자료 내려받기이미지자료내려받기   70여 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과 하토야마 내각이 공식적으로 야스쿠니신사참배 중지를 천명한 가운데, 한·일 양국의 정치권이 향후 야스쿠니신사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모색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시민사회도 구체적인 대책 수립을 가시화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과거사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시점에 과거사 핵심현안의 하나인 야스쿠니문제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11월 4일부터 15일까지 8일간 국회도서관에서 개최되는「침략신사, 야스쿠니」특별전은 강제동원피해자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대표 이희자)와 한·중·일·대만·오키나와 시민단체가 참여한 국제연대기구인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한국위원회(위원장 이해학)가 공동 주최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이 후원하였으며,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전시 주관단체로 제반 실무를 진행했다.  전시회는 먼저 야스쿠니신사를 비롯한 침략신사의 역사적 연원과 본질을 조명한다. 일제 식민지배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한국인들조차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분개하면서도 정작 침략신사의 실체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편 일본인들은 전통신앙으로서 신사문제를 바라보며 인근제국들이 왜 신사참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전시회는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왜 무수한 신사들이 식민지에 세워졌는지,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일본어상용과 함께 신사참배를 강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일제 침략전쟁에 끌려가 죽은 강제동원희생자들이 왜 지금도 야스쿠니신사에 일본의 A급 전범과 함께 천황을 받드는 신으로 강제로 모셔져 있어야 하는지를 실물과 문헌자료를 활용해 체계적으로 설명해준다.  또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야스쿠니신사가 일본 우익세력의 정신적 본산으로 복원되는 과정과 일본정부의 의도적인 문제 회피, 그리고 일본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통영 위안부 할머니 영결식-연합뉴스(07.08.29)

2007년 8월 29일 640

통영 위안부 할머니 영결식    위안부 피해자 김기아 할머니 영결식 납북 남편 그리다 간 거제 할머니도 (통영=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지난 27일 뇌경색으로 생을 마감한 김기아(83) 할머니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경남 통영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장으로 치러졌다.가족이 없었던 김 할머니의 영결식은 통영.거제시민모임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 통영시청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쓸쓸하게 거행됐다.정태호 한국정신대문책협의회 생존자 복지위원장은 추도사에서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일본정부의 사과도 받지 못하고 계속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며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행복한 삶을 사시길 간절히 기원드린다”고 흐느꼈다.이어 추모식 낭독과 살풀이춤에 이어 김 할머니의 생전 육성과 위안부 피해 증언내용을 담은 영상이 5분 동안 상영되면서 영결식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김 할머니의 유해는 화장된 뒤 지역 사찰에 안치된다.김 할머니는 15살때인 1938년 ‘공자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과 타이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8년동안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후 1946년 귀국했다.1995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고 가족이 없어 통영.거제시민모임의 지원으로 혼자 살아오면서 뇌경색으로 3년동안 투병하다 지난 27일 새벽 별세했다.한편, 납북된 남편을 그리다 지난 27일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모(70) 할머니의 영결식도 이날 오전 거제 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남북자가족들과 친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엄숙히 치러졌다.

식민지 아이는 이렇게 성장했다-부산일보(07.08.28)

2007년 8월 29일 451

식민지 아이는 이렇게 성장했다소설가 김하기, ‘아버지’ 모델 일제 강점기 성장사 ‘식민지 소년’ 펴내  소설 ‘완전한 만남’의 작가 김하기(49)가 일제 강점기 어린아이의 성장사를 다룬 소설책을 냈다. ‘식민지 소년'(청년사/8천800원). ‘복사꽃 그 자리’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소설이다.천방지축이던 식민지 소년 김덕경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주인공 김덕경은 지난해 폐암으로 돌아가신 김하기의 아버지. 병상에서 아버지가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을 만들었다. 사실상 부자 간의 합작품인 셈. 발가벗긴 채 아이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벌 서는 장면, 소치기 감자산굿 황새알훔치기 같은 재미난 놀이, 길거리서 우연히 주운 돈으로 책을 사서 공부에 매진하게 된 사연도 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들이다. 고향 천전리 마을의 풍경도 그래서 사실적이다.가슴 아린 작가의 가족사도 드러난다.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내에게 시집을 갔다가 영도다리에 몸을 던진 고모의 이야기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작가는 “아버지로부터 비로소 이야기를 듣고서야 고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가슴 아픈 가족사가 알알이 박혀 있지만, 작가의 목소리는 많이 순화됐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 기왕의 작품들이 어느 정도 목소리를 크게 냈다면 여기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부분에서도 목소리를 낮췄다. 언뜻언뜻 묻어놓았을 뿐이다.작가는 “황민화정책과 일제 강점기 억압적인 교육정책을 어린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한글을 간신히 깨친 덕경이가 마음 잡고 학교에 갔더니 일본어만 쓰게 해 낭패를 봤다는 식으로 일제의 잔혹했던 국어 말살정책도 아이의 눈으로 순화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