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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친일파 안용백’ 흉상 철거 목소리

2019년 5월 24일 4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부산 경남고 앞 항의행동 부산 경남고등학교에 세워진 ‘친일파’ 안용백의 흉상을 둘러싸고 철거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에 이어 부산지역 교육단체도 “흉상을 철거해 친일 잔재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부산교육희망넷)는 23일 부산 경남고를 찾아 ‘친일파’ 안용백 흉상 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행동에 나섰다. 두 단체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수년간 흉상철거 시위를 벌였음에도 이를 아직도 존치하고 있다”며 학교 측과 동문회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날 행동은 부산교육희망넷이 최근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 운동 전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관련기사:부산 학교 곳곳 친일잔재 청산 나선다> 내선일체·황국신민화 선동 친일파‘안용백’ 흉상이 경남고 교정에철거 등 “친일파 청산”요구 이어져교육단체도 함께 동참 일제강점기 시기 안용백은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며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친일 행적에도 해방 후 경남중고등학교 초대 교장, 이승만 정부 시절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등을 역임했다. 전남 보성 국회의원 선거까지 출마했으나 부정개표로 당선무효 굴욕을 겪었다. 이후엔 2대 전남 교육감을 지냈다. 이런 이력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안용백을 친일·반민족 행위자 1006명 중 1명으로 포함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4월 경남고 개교기념일에 졸업생의 기증으로 안용백 흉상이 건립되면서 논란을 예고했다. 흉상에는 “교장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한다”는 기증자의 글만 있을 뿐 진상규명위가 지적한 안용백의 친일행적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가 ‘친일파 안용백’ 문제를 거론하며 대응에 나섰다. 부산지부는 경남고 앞에서 안용백의 행적을

민족사랑 2019년 05월호

2019년 5월 24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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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14편 “홍찬” 대표적 친일영화인 해방 후 반민특위와해 공작 가담

2019년 5월 22일 59

[바로듣기] ☞ (5.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4편 “홍찬” 대표적 친일영화인 해방 후 반민특위와해 공작 가담 ☞ (5.14)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3편 “윤치호” 근대적 지식인이었으나 패배주의에 물든 개량주의자로 변절 ☞ (5.07)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2편 “황신덕” 여성인권에 앞장섰지만 제자를 근로정신대 지원을 독려 ☞ (4.30)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1편 “박인덕” 여성계몽운동가로 화려한 활동 그러나 황국식민의 여성으로 급격한 변신 ☞ (4.23)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독립운동했는데 ‘빨갱이’ 낙인… “재조명해 유공자로”

2019년 5월 22일 59

사회주의운동 이유로 처형… 유족 등 “학암 이관술 선생 유공자 서훈 검토해야” 움직임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사회주의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 당하고 가족들까지 고통 받았던 울산 출신 학암 이관술(1905-1950) 선생의 재조명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학암 선생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을 통해 유공자 서훈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약산 김원봉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유공자 서훈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이들의 활동이 더 주목된다. 앞서 이관술 선생 유족은 지난 2012년 “학암 선생이 국가 공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2015년 3월 27일 대법원은 “국가가 유가족들에게 그동안 입은 피해를 배상을 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같은 대법원 판결에도 이관술에 덧씌워진 ‘빨갱이’ 프레임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이에 지난 4월, 시민사회단체와 연구자, 이관술의 후손은 뜻을 모아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재조명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울산 동구 지역구인 김종훈 의원(민중당)이 주관한 ‘항일운동가 이관술 국회 세미나’가 22일 오전 10시30분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렸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후원했다. 해방 후 역량 있는 정치지도자로 꼽힌 이관술 1902년 울산 입암에서 출생한 이관술은 서울 중동고와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로 동덕여고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학암 이관술은 일제강점기 1930~40년대 국내에서 항일운동에 앞장서다 수배, 체포를 거듭하며 투옥돼 모진 고문을 겪었다. 해방 직후 잡지 <선구>의 최초 정치여론조사(1945.12)에서 여운형, 이승만,

“교가, 교목, 비석까지” 광주·전남 학교 친일청산 본격화

2019년 5월 21일 93

광주, 예산 확보…설명회·TF구성·용역·철거 11월까지 매듭 전남, 전문가그룹 TF 1차 전수조사 친일 잔재 115건 확인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광주·전남지역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광주는 예산이 확보됨에 따라 11월까지는 청산작업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고, 전남은 전문가그룹의 1차 전수조사를 마쳤다. 20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1차 추경을 통해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사업비 8200만원을 확보했다. 시교육청은 앞서 ‘친일 잔재조사 및 청산 TF팀’을 구성하고,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교가와 교표, 교기, 교목 등 학교상징물은 물론 기념비나 시설 등에 대한 기초조사를 요청한 상태고, 8월까지 구체적인 조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이 과정에서 설명회와 학교별 TF구성, 전문가그룹 판별작업, 예산교부, 철거 작업 등을 11월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또 각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사이버 학교역사관’에 친일잔재 관련 자료를 게시토록 하고, 특정 인물이나 상징물 부각 차원에서 벗어나 친일 관련 자료수집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학교상징물의 경우 교육공동체간 협의로 변경하고, 친일 잔재 기념비와 건축물, 동상 등은 존치시킨 뒤 ‘다크투어리즘’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시교육청의 친일 잔재 청산은 2016년 친일인사 김백일(일본식 이름 가네자와 도시미나미·1917∼1951)의 이름을 따 논란이 된 백일초의 교명을 성진초로 개명하는 등 주로 파편적으로 이뤄져 왔으며, 전수조사나 다름없는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통한 청산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일 흔적 지우기’는 광주시 의뢰로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이 진행해온 친일 잔재 조사용역 결과와 역사교육 활성화 조례 등을 근거로 이뤄질 예정이다. 첫 성과물도

EBS 노조, 사장·부사장 퇴진 서명 운동 돌입

2019년 5월 18일 95

반민특위 다큐 제작 중단 사태 책임자 인사에 각계 비판… EBS 직능단체협회 “사장의 인사로 회사가 골병” 전국언론노조 EBS지부(지부장 이종풍)가 오는 20일 김명중 EBS 사장과 박치형 부사장 퇴진 서명 운동에 돌입한다. 언론노조 EBS지부(이하 EBS 노조)는 17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두 사람에 대한 책임을 묻기로 총의를 모았다. EBS 노조는 지난 7일 경기 일산 EBS 사옥 1층 로비에 농성장을 꾸려 점심시간에 맞춰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사장과 부사장이 계속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제작 거부를 포함한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은 부사장 등을 포함한 인사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5일 임명된 박치형 EBS 부사장은 2013년 반민특위 다큐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 제작을 하던 담당 연출자 김진혁 전 EBS PD(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를 수학교육팀으로 인사 이동시키는 등 제작 중단 사태 책임자로 내부서 평가되는 인물이다. 제작 중단 사태 이후 김 전 PD는 그해 6월 사표를 제출하고 EBS를 떠났다. 제작 자율성 침해 인사라는 비판이 EBS 안팎으로 쏟아지자 김명중 EBS 사장은 지난달 29일 반민특위 다큐 제작 중단 사태 등을 대상으로 EBS 감사에 특별감사를 청구했다. 김 사장은 “EBS 방송의 공영성 훼손에 관한 문제 제기는 현재 재정 적자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다시는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조는 “책임을 엉뚱한

[최재봉의 문학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2019년 5월 17일 101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얼마 전 흥미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11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열린 친일문인기념문학상 관련 세미나에서였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이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임 소장은 지난해 작고한 소설가 최인훈이 민족문제연구소의 발간을 위한 후원금을 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임 소장 역시 그 일을 모르고 있었는데, 최인훈의 아들 최윤구(음악 칼럼니스트)씨가 부친 장례 뒤 자신을 찾아와 전후 사정을 들려줘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 그에 따르면 최인훈은 자신이 후원자로 이름을 올리면 불필요한 잡음이 일어날까 염려해 아들 이름으로 후원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후원자 명단에는 최윤구씨의 이름이 올라 있다. 임 소장은 이날 강연에서 또 다른 아버지와 아들의 사례 역시 들려줬다. 에 등재된 파인 김동환과 그 아들 김영식씨 이야기였다. 파인 김동환은 여느 친일 문인들과 달리 해방 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했으며 회고 글에서도 자신의 친일 행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반성한 바 있다. 경찰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김영식씨는 아버지의 친일 글들을 가감 없이 담은 작품 전집을 간행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1994년에 낸 이라는 책의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아버지가 일제 말엽에 한때 저지른 치욕적인 친일 행위를 뉘우치고 변절 고충을 고백하면서 ‘반역의 죄인’임을 자처했던 바 있음을 되새겨보면서, 저는 가족을 대신하여 국가와 민족 앞에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그러나 최인훈-최윤구나 김동환-김영식 같은 부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씨는 2010년 에 쓴 글 ‘아버님에 대한

“동인문학상·팔봉비평문학상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2019년 5월 16일 84

작가회의·민족문제연구소 주최 학술세미나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서 다룬 문학상은 동인문학상(조선일보)과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동인문학상과 관련해서는 고인환(경희대), 하상일(동의대), 임성용(시인)의 발표와 서영인(국민대), 이동순(조선대), 손남훈(부산대)의 토론이, 팔봉문학상 관련해서는 이명원(경희대)의 발표와 최강민(우석대)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임헌영 소장은 친일파 청산이 ‘빨갱이’로 매도되는 현실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공인된 친일판단기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회고했다. 또 친일문학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함으로써 의 미당문학상 폐지라는 성과를 거뒀다며 문인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한층 더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학자들의 발제와 토론 가운데 김동인 관련 논의를 중심으로 김동인의 문학과 해방 후 그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기왕에 알려진 동인의 친일 행적이 주로 문학을 통해 드러난 부역이라면, 해방 후의 활동에서 드러난 것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집요한 노력이다. 1945년 8월 15일, 김동인은 총독부 정보과장을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해방 당일까지 일본의 패망을 눈치채지 못했던 김동인에게는 ‘친일문학’에 대한 자의식이 아예 없었다. 김동인, 친일문학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다. 김동인은 해방 후 발표한 <망국인기>를 통해 문예지 <창조>에서 주장한 ‘참예술’에 대한 신념 아래 ‘조선어(조선문학)’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이 무엇을 표현하든, 오직 조선어를 지켜 쓸

[보도자료] 한국 과거사청산 문제, 유엔 자유권 위원회에 보고

2019년 5월 15일 120

[다운로드] [보도자료] 한국 과거청산 문제, 유엔 자유권 위원회에 보고   ❏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한국 과거청산 문제 해결을 위한 심층보고서 첫 제출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부터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계엄령 선포 계획 등 현재까지 이어지는 국가의 자유권 규약 상의 의무 위반에 대한 해결책 재촉 과거에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와 반인도적 범죄 등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국가책임을 물어온 시민사회단체모임인 진실과 정의 네트워크가 유엔 자유권 위원회에 한국 정부의 5차 자유권 규약 보고 전 쟁점목록(List of Issues Prior to the Report)에 대한 시민사회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국 자유권 규약 심의를 위해 과거 발생한 국가폭력 문제를 심층적으로 제기하는 보고서가 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과 정의 네트워크는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국 근현대에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와 국가폭력의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배상과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해 온 8개의 과거청산 전문 시민단체로 구성됐다. 소속 단체들은 각각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등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전쟁 동원과 인권침해, 제주 4.3.,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권위주의 정권에서 발생한 의문사, 간첩조작, 부랑인 강제구금 시설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활동해왔다. 국제사회에서 진실, 정의, 배상과 재발방지는 중대한 인권침해 해결의 기준이 된다. 올해 3월, 한국을 방문한 파비앙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 또한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진실, 정의, 배상은 국가의 의무라고

“강제징용 최종판결 순간 돌아가신 피해자 생각에 눈물 났죠”

2019년 5월 14일 127

[짬]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보상입법 일한공동행동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본의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보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일본제철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야노 히데키(69) 조선인 강제노동피해자보상입법 일한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7년 전 판결 때 와 인터뷰에서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주주 총회에서 신일철주금 경영진이 “판결은 유감이지만 최종 확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힌 터였다. 아시아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판결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온 직후 일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야노 사무국장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근처에서 와 만났을 때도 그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쿄에서 공무원으로 노동운동 참여 1995년 재일조선인 여운택씨와 인연 신일철주금에 배상·임금 반환 ‘소송’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 25년째 ‘최고의 반일 인물’ 위협에도 “피해자와 약속 끝까지 지켜야 해요” 7년 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진 사건은 지난해에야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왔다. 그 사이 아베 정권이 들어섰고 사건을 다시 돌려받은 박근혜 정권의 대법원이 5년 넘게 재상고심 선고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이 사건을 두고 일종의 거래를 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드러난 건 최근이다. “1995년부터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와 인연을 맺었어요. 그는 ‘내 인생이 일본에 휘둘렸다. 임금이라도 받았으면 소를 몇마리 샀을 텐데…’라며 늘 혼잣말을 하셨죠. 끝내 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