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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호소문]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함께 해 주십시오

2016년 9월 22일 9007

■ 발기인(10만원 이상)·후원회원 참여 우리은행 1006-401-235747 (시민역사관건립) ■ 시민참여 우리은행 1005-703-038353 (시민역사관) ※발기인으로 참여하시려면 아래 첨부파일의 <동의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표메일: minjok@minjok.or.kr   팩스: 02-965-8879 ※클릭 다운로드 ▣ [PDF – 동의서]  l  [한글 – 동의서]  l  [워드 – 동의서]     

시대의 비극, “박근혜는 하나가 아니다”

2017년 4월 30일 75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인터뷰 ① 지난 20일,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임헌영 소장을 만났다. 가톨릭프레스 편집위원 신성국 신부와 함께 만난 임헌영 소장은 “민족문제연구소와 가톨릭은 인연이 깊다”면서 그간 연구소 활동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ㅣ민족문제연구소 활동 목적은 ‘동아시아 평화정착’ (임헌영 소장) 먼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가톨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연구소 초대 이사장이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이었던 이돈명 변호사였습니다. 2대 이사장은 조문기 독립운동가, 3대 이사장이 김병상 몬시뇰이었습니다. 그리고 4대 이사장이 함세웅 신부님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일체의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 때는 ‘없애야 하는 단체’로 지목될 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런 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주신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를 해 주신 것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기자) 네, 저희도 모두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도부터 현재까지 수 없이 많은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이 되는 활동은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임헌영 소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입니다. 우리 연구소의 활동목적은 과거가 아닌 ‘현재’,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분단된 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하고 중국, 일본, 한국이 호외평등 이웃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역사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역사청산이 되지 않으면 세 나라 국민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유럽인처럼 정답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친일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30)“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안 준비” 보도에 ‘빨갱이’로 몰아 연행

2017년 4월 30일 9

ㆍ‘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기자 필화 세 가지 “어둠의 시간에 그가 있었다./ 아픔의 시간에 그가 있었다./ 거짓에 길들여지는 시간에 그가 있었다. (…)/ 그는 한반도의 상공에 날고 있는 각성의 붕(鵬)이다. 이와 함께 그는 한반도와 한반도를 에워싼 모든 힘의 논리를 이성의 논리로 이겨내는 물질적 정화(精華)이다./ 리영희!”(고은 ‘어떤 서사’, <리영희 저작집>, 한길사) ■ 리영희의 첫 필화 리영희(李泳禧, 1929~2010년)의 첫 필화는 케네디·박정희 회담(1961년 11월14일) 취재기였다. 5·16쿠데타의 후속 절차였던 박정희의 도미 여정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합동통신 3사 기자만 엄선됐는데, 그는 합동통신 소속이었다. 회담 후 언론들은 공식 발표문대로 “군사원조도 약속하고, 경제원조도 해주고 정치적 승인도 했다는 따위의, 두 손 벌려 박정희의 요구를 전면 수락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냈다.”(리영희-임헌영, <대화>, 한길사) 그런데 리영희는 워싱턴 포스트의 주선으로 심층 취재하여, 케네디가 박정희에게 요구한 구체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쿠데타군의 원대 복귀와 정치관여 금지 및 민정이양 실시 때까지 경제·군사 원조를 잠정 동결한다. 조속한 한·일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사태에 대한 한국의 협력 등이 거론됐다’는 요지였다. 합동통신은 박두병 사장 주재로 몇 시간 회의 끝에 이 기사를 내보내 민주화를 열망하던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열광시켰다. 박정희가 월남 파병을 케네디에게 먼저 제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96년 미 국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였다. 맥아더 원수를 예방한 자리에서는 6·25 때 북한에다 “원자탄을 투하했어야 했다”라는 박정희의 발언이 배석했던 최덕신 외무장관에 의해 공개됐다. 거기서 나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김재춘(합동수사본부장)은 리영희에게 “서울에 가서 보자!”고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모든 것

2017년 4월 28일 217

[기고] 영국 명예훼손 재판의 이해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진실이 법정에 서게 된 파라독스 영화 <나는 부정한다>(믹 잭슨 감독, 2016)는 실제 재판에 기초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라고 이름 붙은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이를 규탄하는 역사학자 사이의 대결을 극화하고 있다. ‘어빙 사건’은 유럽 곳곳에서 신나치 등 극우세력들이 등장하고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미국의 립스타트 교수는 용기 있게 이런 흐름을 고발하는 책을 썼다. 이에 대해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영국학자 어빙은 영국 법원에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했다(영국의 Hight Court라는 법원은 대개의 영한사전에는 ‘고등법원’이라고 번역되고 있고, 영화의 번역도 이에 따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제도에서 말하는 항소법원으로서의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제1심 법원 역할을 한다). 립스타트는 졸지에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피고의 자리에 서야만 했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어빙이 민사든 형사든 피고석에 앉았어야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된 이 역설은 어빙과 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서 재판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생겼다.(재판이 끝난 뒤, 그녀는 과연 2005년에 “History on Trial”(법정에 선 역사)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소송이 제기된 1996년의 시점에는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는 물론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부정하는 것도 범죄로 처벌하고 있었다. 어빙은 전략적으로 그렇지 않은 영국을

괴한 민족문제연구소에 스프레이 테러

2017년 4월 24일 478

괴한 민족문제연구소에 스프레이 테러 4월 23일 일요일 오전 1시경 정체불명의 괴한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사용하고 있는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금은빌딩 3층에 올라와, 연구소의 보안장치를 훼손한 뒤 현판과 출입문을 붉은색 스프레이로 난장판을 만들고 도주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그간 친박단체를 비롯한 수구극우단체들의 데모와 난입은 적지 않게 있어 왔지만, 야간에 이런 방식으로 위협을 가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박정희 이승만 비판, 국정한국사교과서 반대 활동 등으로, 욕설전화 테러협박 SNS음해 등 극우세력의 지속적인 공격 표적이 되어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연구소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폭력적인 의사표시는 용납할 수 없다”며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정의실현과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설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연구소는 24일 오전 경찰에 CCTV 녹화 사본을 제출하고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다.   ※관련기사 ☞뉴시스: [종합]민족문제연구소에 스프레이 테러…수사 착수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에 괴한 침입 스프레이 낙서…경찰 수사 ☞민중의소리: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붉은 ‘스프레이 테러’ 당해 ☞경향신문: 민족문제연구소에 괴한이 스프레이 낙서, 경찰 수사 착수 ☞연합뉴스: 민족문제연구소 출입문에 붉은 스프레이 낙서…경찰 수사 ☞SBS: 민족문제연구소 출입문에 붉은 스프레이 낙서…경찰 수사 ☞KBS: 민족문제연구소 출입문에 스프레이 낙서…경찰 수사 ☞아시아투데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침입해 스프레이 낙서…경찰 수사 中 ☞YTN: 민족문제연구소에 빨간 스프레이…백색테러? ☞국민일보: 민족문제연구소에 괴한 침입 ☞헤럴드경제: 민족문제연구소 스프레이 낙서…경찰 CCTV 토대로 범인 추적 ※ 뉴스영상 ☞SBS News: 민족문제연구소에 괴한 침입…’스프레이 테러’ 후 도주 ※사건

[성명] 촛불 민심 부정하는 반헌법적·반민족적·반교육적인 ‘주적’ 발언 즉각 중단하라

2017년 4월 21일 295

[성명] 촛불 민심 부정하는 반헌법적·반민족적·반교육적인 ‘주적’ 발언 즉각 중단하라 1. 지난 19일에 있은 대통령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바른 정당 유승민 후보의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라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국방부가 할 일이지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대답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놓고, 보수언론이 문 후보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선거판에서 ‘주적’ 문제가 급속히 부상하였다. 20일에는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가 토론회에서 “북한은 주적”이라고 말해, 공세에 동참함으로써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18대선에서의 NLL(북방한계선) 대화록공개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색깔론이 등장하는 형국이다. 2. 대선 후보들은 자신의 ‘주적’ 발언이 반헌법적·반민족적·반교육적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반헌법적이다. 헌법은 전문에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남북한의 통일은 평화주의에 기초한 통일이어야 한다는 평화통일이 대한민국 통일의 기본원칙인 것이다. 또한 헌법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하였다. 평화통일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책무인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엄숙히 선서한다. 평화통일의 상대인 북한이 ‘주적’이라는 주장은 냉전시대의 대결적 남북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반 헌법적 사고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반민족적이다. 1972년의 7·4공동성명과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하여,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의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의 방향을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 정상이 최초로 합의한 통일 장전이었다.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의 평화정착과 평화통일 추진노선을 한층 더 굳게 정착시키기 위해,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의

[스토리펀딩] 9화 유네스코에서 일본 영향력 막강한 이유

2017년 4월 19일 872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민족사랑 2017년 04월호

2017년 4월 19일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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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28) 황용주 논문 ‘통일론’ 공작 필화

2017년 4월 14일 498

ㆍ박정희 절친의 ‘중립화 통일론’…야당 의원까지 동원 ‘반공법 공세’ 황용주(南天 黃龍珠·1918~2001) 필화사건만큼 분단사의 치부를 알몸으로 보여준 예는 드물다. 박정희와 대구사범 입학(1932년) 동기였던 그는 독서회 사건으로 퇴학당해 도일, 와세다대 불문과, 학병, 8·15 후 동향인 밀양 출신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비서 등으로 혼란기를 보냈다. 이병주가 뒤를 이은 국제신문 주필에서 부산일보 주필(1958년)로 옮긴 그가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박정희 사령관을 만난 건 1960년 초였다. 흉중에 쿠데타의 불씨를 품었던 박정희에게 황 주필은 불쏘시개를 지폈다. 그가 “우리도 군사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탈피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라고 묻자, “박정희는 씽긋 웃으면서 ‘나도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라고 답”(안경환, <황용주-그와 박정희의 시대>, 까치)했다. ■ “이념보다 권력에 철저한 박정희” 역사는 흘러 4·19혁명 뒤 허정 과도정부 때였다. 둘이 조총련 자금으로 ‘인민공화국’ 수립을 모의한다는 첩보로 이종찬 국방장관이 조사차 하부(下付)했지만 오해를 풀었다(안경환, 위의 책). 여순사건 관련부터 여러 정보들로 박정희는 5·16쿠데타 후 국내 반공세력과 미국에 적잖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강원용 목사도 둘을 의심할 만한 정보를 주한 미 대사관의 하비브 참사관에게 제보했지만 박정희는 그대로 권좌를 지켰다. 월남으로 전근된 하비브가 한국을 떠나며 강원용에게 한 말이 그 이유를 밝혀준다. “그때 당신이 박 대통령의 배경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준 정보는 상당히 유익했습니다. 우리들이 내린 결론도 그가 좌익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건 틀림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가만 그의 사람됨을 살펴보니까

[스토리펀딩] 8화 강제노동, 일본인도 함께 싸웁니다.

2017년 4월 15일 362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