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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몰락했던 뉴라이트의 부활, 어떻게 가능했나
[분석] 1994년 남북정상회담 반대로 집결한 후 점차 진화… 뿌리는 반공 수구세력 지난 8월 6일 휴가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형석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함으로써 막장 인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써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에 이어 독립기념관까지 주요 역사 관련 기관을 모두 뉴라이트 인사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 국민들 수준은 1940년대 영국 국민보다 못하다”는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출한 것”이라는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손보겠다”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한마디로 인사가 아니라 가장 부적격한 인물을 배치한 ‘망사’라 할 만했다. 김형석 씨는 8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대한민국이) 1945년에 광복됐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관장 자격으로 이야기해 달라’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광복절을 광복절이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독립기념관장이라니. 독립기념관법에는 독립기념관의 목적이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조사·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독립기념관의 목적이 이러함에도 윤 정부는 거꾸로 정반대 성향의 인물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쯤 되면 국민 여론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과 탈선’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역사 관련 주요 기관장을 무리하게 뉴라이트 일색으로 채운 데에는 분명
[새책소개] 『식민지 비망록』 (전3권)
바로가기 >>>☞ [도서구매] 〈주요내용〉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식민지 비망록』 (전3권) 일제가 패망하여 이 땅에서 물러간 지 벌써 8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제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해방의 감격이 쉽게 잊힐 리야 없겠지만, 그만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그 시절을 몸소 체험한 세대의 인구구성비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바꿔 말하면 일제강점기의 일을 기억하는 방법이 그야말로 오롯이 간접체험이나 사료발굴에만 의존해야 하는 비율이 그만큼 더 높아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탓인지 일제강점기의 일이라고 하면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마치 남의 집 얘기인 듯 여기는 이들도 더러 있고, 일제침탈사와 관련한 잘못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짚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그것이 일제잔재에 속하는 줄도 모르고 그러한 용어나 제도를 버젓이 사용하기도 하고, 설령 그것이 일제가 남겨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서둘러 이를 바로잡지 않는 상황이 무심코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이번에 『식민지 비망록』(전3권)이라는 이름으로 펴내는 이 책들은 부제(副題)에 밝혀놓았듯이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각권 24꼭지씩 도합 72꼭지(1,053쪽 분량)에 달하는 각각의 글은 컴컴한 망각의 문 안에 갇혀 있는 아스라한 기억 한 조각을 되살려 보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고단했던 식민지의 일상, 혹독했던 전시체제기와 침략전쟁의 광풍, 그리고 이 땅에서 무수하게 벌어졌던 별스러운 일제침탈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 실상을
[한겨레] 묘비 없이 수풀 밑 집단 매장…일 시민들, 조선인 기리는 박물관 세웠다
사사노보효, 일본 첫 민간 강제동원 박물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묘비도 없이 조릿대 밑에 묻혔다는 곳은 어디인가요?” 지난 28일 일본 홋카이도 호로카나이초 슈마리나이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추도묘’를 찾은 이들 사이에서 질문이 나왔다. 이날 안내를 맡은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무덤 뒤편으로 조릿대들이 흔히 보이죠? 이 인근이 전부 당시 강제동원됐던 조선인과 일본인 하층 노동자들이 숨졌을 때, 무덤도 없이 묻혔던 매장지로 추정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우류댐 공사, 신메이선 철도 공사 희생자들이 매장된 땅’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덩그런 무덤 하나가 서 있다. 앞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단체 ‘평화 디딤돌’이 이런 비명을 새겨놨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중 홋카이도 슈마리나이(우류)댐과 신메이선 철도 공사에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혹독한 강제노역으로 45명이 희생되었다. 가족들조차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유해들은 이역 땅 조릿대 수풀 밑에 묻혀서 잊혀져갔다.” 일제강점기 참혹한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이던 슈마리나이에 이날만큼은 모처럼 박수 소리와 웃음이 퍼졌다. 이날 홋카이도 우류군 호로카나이에 일제강점기 슈마리나이에 일본 정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강제동원했다가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사사노보효 강제노동박물관’이 개관했다. 두 줄로 마주 본 어른들이 양팔을 들어 올려 ‘손 터널’을 만들자,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골함을 든 학생들이 그 사이를 지나 박물관에 유골을 안치했다. 사물놀이패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박물관 앞 행사장을 가득 채운 150여명의 한·일 시민들이 함께 기뻐했다. 일본에는
[오마이뉴스] ‘윤석열표’ 새 독립기념관 추진… 이 정권의 진짜 속내?
[김종성의 히,스토리] ‘국내 독립운동 조명’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 윤석열 정부가 천안 독립기념관과 별도로 가칭 국내민족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금년 3·1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이 독립운동 재평가를 강조한 것과 관련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았으면 합니다”라며 “3·1운동을 기점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형태의 독립운동이 펼쳐졌습니다”라고 한 뒤 이런 말을 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무장독립운동을 벌인 투사들이 계셨습니다. 국제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에 나선 실천가들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투사·선각자·실천가로 분류한 뒤, ‘선각자’와 뜻이 통하는 ‘선구적 노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렇게 강조했다. “제국주의 패망 이후 우리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선구적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투사·선각자·실천가의 활동을 종합하는 대목에서 ‘독립은 선구적 노력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이승만 등이 활동한 외교 분야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뒤 “저는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역사가 대대손손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무장투쟁보다 외교 분야 독립운동가들이 윤석열 정권의 남은 임기 중에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발언이다. 한일 협력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권이 무장항일투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3·1절 기념사가 발표된 직후에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의 언론
[오마이뉴스] “윤석열, 역사에 대한 백지 상태에서 뉴라이트 씌워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28일 마산YMCA “한국뉴라이트 기원과 역사전쟁” 강연 “윤석열 머리 속에 역사 관련해서는 백지였다. 이명박‧박근혜조차 서울시장이거나 정치인으로 있으면서 삼일절‧광복절 기념식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사나 검찰총장은 그런 자리에 갈 의무가 없었다. 독립운동 관련한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역사에 대한 백지상태에서 뉴라이트가 씌워진 것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 28일 오전 마산YMCA가 마련한 106회 아침논단에서 “한국뉴라이트 기원과 역사전쟁”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한 말이다. 충남‧경기교육청 역사교육위원을 지내기도 한 방학진 실장은 헌법을 부정하면서까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듯 보여주는 행보들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전쟁에 대해 설명했다. 헌법부터 설명한 그는 “130조를 다 외우지 않아도 되는데 전문은 알아야 한다”라며 “독립정신, 민주정신, 평화통일정신을 천명해 놓았다. 헌법 전문은 모든 법령 해석의 기준이다. 헌법이 구현되는 게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 실장은 “독립운동과 민주정신을 가르쳐야 하고, 통일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 쪽 사람들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말만 하고 있다. 헌법은 장식이 아니라 공직자라면 지켜야 한다. 윤석열정부 인사청문회에서 들어봐서 알겠지만 헌법을 어기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국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에 이어 독립기념관장도 뉴라이트 인사가 기용된 사실을 언급한 그는 “설마 국민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독립기념관장까지 뉴라이트로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 그렇게 했다”라며 “김형석씨가 윤석열이 취임하던 2022년에 펴낸 <끝나야 할 역사전쟁>이라는 책이 있다. 연구하기 위해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오마이뉴스] 아들 잃은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남긴 놀라운 ‘가훈’
[독립운동가외전] 아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고통받은 항일투사 채충식 ‘대구 10월 폭동’으로 많이 불렸던 사건이 지금 대구광역시에서는 ’10월 항쟁’으로 불린다. 2022년 10월 11일 개정된 ‘대구광역시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는 입법 목적을 설명하는 제1조에서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시기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함으로써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권증진 및 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그 사건이 폭동이 아니었다는 점은 대구시는 물론이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인정된다. 이명박 정부 때 발행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제4권은 이렇게 말한다. “대구10월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 등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과 일부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군정이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토지개혁을 지연시키며 식량 사정을 악화시키는 것에 맞서 대구 지역민들이 미군정 경찰과 행정당국을 상대로 일으킨 것이 10월 항쟁이다. 항쟁으로 부를 만한 이유가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대구항쟁으로 불리는 것은 대구에서만 벌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구에서 시작했다는 의미다. 또 10월 항쟁으로 불리는 것은 10월 한 달간 벌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10월에 시작했다는 의미다. “10월 6일까지 경북 지역으로 번졌고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말한다. 대구에서부터, 10월부터 시작된 이 항쟁은 해방 이후에 폭발한 최초의 전국적 의거다. 이것은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역발상 S3] 동아시아의 유행가 시대 1914~1945_3부
1.酒は淚か溜息か(후지야마 이치로(藤山一郞). 1931년 음반) 앞서 발표한 ‘影を慕いて’와 함께 작곡가 고가 마사오의 입지를 다진 히트작. 노래를 소재로 영화까지 만들어져 같은 해 12월에 개봉됐고, 조선과 대만에서도 번안곡으로 유행. 형식적인 면에서 엔카의 전범과도 같은 작품. 후지야마 이치로는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 2.ああそれなのに(미치 얏코(美ち奴) 1936년 음반) 조선에서 성장하고 음악학교 경력이 없다는 점에서 일본 대중음악 작곡계에 매우 예외적인 존재였던 고가 마사오. 그의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스타일, 이른바 ‘고가 멜로디’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 미치 얏코는 게이샤 출신 가수. 가사 중 의미 없이 어감을 위해 사용된 ‘네’가 ‘에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검열의 집중 대상이 된 에로 유행가들 중 몇몇은 금지곡이 되기도 3.東京ラプソディ(후지야마 이치로. 1936년 음반) 역시 고가 마사오의 다양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예 고가-후지야마 콤비의 인기 절정과 전전 ‘모던 도쿄’의 번영을 보여 주는 작품. 이 곡 역시 영화로 만들어져 같은 해 12월에 개봉했고, 가수 후지야마 이치로는 주연으로 출연 4.新妻鏡(기리시마 노보루(霧島昇)·후타바 아키코(二葉あき子). 1940년 음반) 조선에서 성장한 배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3박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일본 대중가요에서 3박자 히트곡이 많은 편인 고가 마사오. 원래 이난영이 일본에서 발표한 곡이었던 ‘合歡の木蔭で(네무노코카게데)’를 다듬어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新妻鏡'(1940년 5월 개봉)의 주제가로 다시 발표 5.漁光曲(왕런메이. 1934년 음반) 1934년 6월에 개봉한 동명 무성영화(?) 주제가로, 런광의 대표작. 왕런메이는 영화 주연이면서 주제가도 녹음.
[오마이뉴스]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이장, 국회 논의 시작… “역사 바로 세울 것”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 개최 지난 21대 국회 때 논의조차 되지 못했던 국립묘지 현충원에 인장 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이장을 위해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민족문제연구소는 2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역사는 이념이 아닌 우리 삶의 문제”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친일파 이장법’을 발의한 김용만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하남을)은 이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바로 사명”이라며 발의 배경을 밝혔다. 김 의원은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 것은 국민이라는 걸 우리는 윤석열 정부를 통해 목도하고 있다”라며 “역사는 단순히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친일행위자를 밝혀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부터가 우리 주권 회복의 시작”이라며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는 친일 청산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꼭 시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추미애 의원(경기 하남갑)은 “단순히 묘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친일 청산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의 안식처”라며 “친일 행적을 남긴 인사들이 그곳에 함께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친일 청산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재강 의원(경기 의정부을)은 “2020년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현재 현충원에는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2명,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기준으로는 68명이 묻혀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 선열들이 통탄하고
민족사랑 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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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공무원에 ‘뉴라이트’ 사상 심기?…국가인재개발원, ‘극우’ 강사 대거 동원
극우 유튜버 출신 김채환 원장 중심돼 ‘일제 식민지배 옹호’ 논란 김형석 비롯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 등 강사 참여 4급 이하 공무원 대상으로 14차례 교육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교육 과정에도 극우·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강사로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극우 유튜버’ 출신 김채환 원장이 이끌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윤석열 정부 국정철학의 이해 과정’ 관련 자료를 보면, 4급 이하 국가공무원(총 275명)을 대상으로 14차례 진행된 이 과정에는 기수마다 뉴라이트 성향 연사가 포함됐다. 김채환 원장 본인이 ‘국정철학의 이해’ 강의를 맡은 것을 비롯해, ‘역사적 관점에서 본 국민 통합’ 강의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자유시장 경제의 이해’ 강의는 현진권 강원연구원장이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과거 유튜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 중국 공산당이 영향을 행사했다’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긴급명령을 발동해 헌정 질서 파괴 세력들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비상식적인 발언들을 이어왔던 인물이다. 특히 지난 9일 인재개발원 공식 유튜브에서도 “채 상병 특검이 어떻다, 대통령 격노가 어떻다, 디오르 파우치가 어떻다, 이런 건 역사적 줄기 관점에서 보면, 그저 하찮은 먼지로 사라질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말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김형석 관장은 일제 식민 지배를 옹호한 과거 행적들 탓에 지난달 임명 직후 광복회는 물론 역사학계의 맹폭을 받았던 인물이며, 현진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