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img-top-news[1]

주요기사

[호소문]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함께 해 주십시오

2016년 9월 22일 7312

■ 발기인(10만원 이상)·후원회원 참여 우리은행 1006-401-235747 (시민역사관건립) ■ 시민참여 우리은행 1005-703-038353 (시민역사관) ※발기인으로 참여하시려면 아래 첨부파일의 <동의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표메일: minjok@minjok.or.kr   팩스: 02-965-8879 ※클릭 다운로드 ▣ [PDF – 동의서]  l  [한글 – 동의서]  l  [워드 – 동의서]     

진주 민간인 학살지에서 한국전쟁 유해·유품 발견

2017년 2월 25일 9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24일 이어 25일 작업 계속 오랜 시간 동안 땅에 묻혀 있던 한국전쟁 유해·유품이 발견됐다. 25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2차)학살지에서 많은 유해와 유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24일에 이어 이틀째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까지 가로 세로 7~8m 넓이 정도의 땅을 팠다. 유해·유품은 얕게는 3cm 안팎부터 깊게는 70~80cm 안팎에서 나왔다. 사람의 뼈 조각, 치아에다 허리에 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버클 등이 나왔다. 공동조사단 박선주 발굴단장은 “사람의 뼈는 조각으로 나오고, 많다. 뼈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형태다”며 “아직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고, 좀 더 발굴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오는 3월 1일까지 발굴작업을 계속한다. 이번에 발굴하는 현장은 2014년 2~3월에 발굴했던 현장에서 20m 정도 떨어져 있다. 1차 발굴 때 이곳에서 머리뼈 조각 20개, 허벅지뼈 78개, 정강뼈 15개, 위팔뼈 6개 등 모두 129점의 유해를 수습했다. 출토된 유해는 최소 39명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당시 유해 매장지에서는 탄피 15개, 버클 21개, 안경, 단추 등 유품 90점이 출토되었다. 공동조사단은 “유해 매장지 안에서 출토된 탄피와 탄두는 카빈소총이고, 유해 내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근접 내지 확인사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주 명석면 용산리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진주지역 민간인 희생자가 가장 많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67년만에 드러난 ‘보도연맹 학살’ 유골

2017년 2월 24일 35

진주 명석면 민간인 유해 발굴 첫날부터 ‘유해·유품’ 드러나 한국전쟁기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7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진주시 명석면 민간인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24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진행된 경남 진주시 명석면 2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425번지 2차 유해발굴은 첫 삽을 뜨기 시작하자마자 땅속 10cm 지점에서 유골 일부와 유품인 단추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차 유해발굴지는 1차 유해발굴지와 불과 20여미터 떨어져 있다. 이날 드러난 유해 일부는 67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까닭에 부식돼 흡사 나무뿌리와 같은 형태로 드러났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오래전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땅을 한번 파 헤쳤던 곳이라며 이 때문에 유해가 많이 손상됐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곳은 지난 2014년 2월 1차 유해발굴조사 시기에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이 발굴되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충북대 명예교수)은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며,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일명 용산고개라고도 불리는 용산치는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학살자가 발생한 곳으로 당시를 목격한 주민들은 용산치 3개 골짜기

[논평] 문명고 사태는 교육부와 경북교육청, 문명고 재단이 결자해지하라 

2017년 2월 24일 32

[논평] [다운로드] 문명고 사태는 교육부와 경북교육청, 문명고 재단이 결자해지하라 새 학기를 앞둔 경산의 문명고등학교가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평가는 이미 끝났다. 애초에 박정희를 위한 박근혜의 교과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작년 11월 현장검토본 공개와 금년 1월 최종본 공개 이후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오류와 편향으로 가득찬 불량교과서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다수의 국민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은 더 거세져 지금은 70% 이상에 이른다. 당연히 국민의 뜻에 따라 국정교과서는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교육부는 연구학교에서의 국정교과서 사용이라는 꼼수를 부렸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부의 비교육적 꼼수가 경산의 한 평범한 고등학교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이 추위에 연구학교 지정에 따른 국정교과서 강제 사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철저히 청와대의 기획에 의해 시작된 박정희를 위한 비교육적 정치 교과서이다. 제작과정과 내용도 문제투성이다. 복면집필, 편찬기준 비공개, 뉴라이트 일색의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회 구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대한민국 수립’ 서술, 친일행위 축소 서술, 박정희에 대한 과도한 미화 등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최종본에서도 끝없이 발견되는 수많은 오류이다. 오류로 가득 찬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교사는 없다. 그리고 그런 교과서로 배우고 싶어 하는

[스토리펀딩] 1화 “너 일본에 간다” 16살 때 받은 징용장

2017년 2월 23일 1136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헤이그특사 110주년’ 이준 열사 안국동 집터 첫 확인

2017년 2월 23일 263

최초의 ‘부인상점’ 있던 자리…민족문제연구소, 기념 표석 건의하기로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던 이준 열사의 집터가 최초로 확인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준 열사가 고종 황제에게 특사 신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열사의 서울 종로구 안국동 집터를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이 열사는 1907년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됐지만 서구 열강의 외면과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분강개한 이 열사는 머물고 있던 호텔 방에서 순국했다. 헤이그 특사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밀사’라는 특성 때문에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열사의 사위 유자후가 쓴 ‘이준선생전’ 등에 이 열사의 자택 주소가 ‘북서 안현 11통 16호’로 적시돼 있지만 1910년 전후 일제식으로 지번주소체계가 바뀐 뒤에는 정확한 지번이 남겨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몇달에 걸쳐 당시 신문, 책, 토지대장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이준 열사의 집터가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도움이 됐다. 당시로서는 여성이 상점을 내고 영업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 열사의 후처 이일정(1935년 작고)이 1920년대 중국요리점 장송루 자리에서 최초로 잡화점을 운영했다는 자료가 남아있었다. 확인작업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헤이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며 “집터가 시내 중심가에 있는데도 어떤 자리인지 모르고 지내 왔는데 이번 계기로 공간의 역사적인 의미를

[책소개] 역사와 책임 10호

2017년 2월 22일 203

[바로구매] [바로가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최순실에서 시작된 사태가 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음이 저간의 언론보도나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마다 경악과 분노, 충격의 연속이다. 어떤 권한도 없는 사인 최순실이 국가의 주요 사안에 개입해서 대통령을 대리해서 국정을 주물렀다는 사실도 어처구니없는 일이거니와 대통령 또한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심지어 지시를 받아 일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나라냐’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권력의 사유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국민들 눈치는 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눈치라는 단어마저 사전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다. 정상적인 정책의 입안과 집행 시스템이 박근혜-최순실 하에서는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것을 넘어 권력의 일반적인 작동시스템이나 민주적인 사회 운영의 기본원리마저 부정하는 일이 너무 태연하게 벌어졌다. 비정상성의 일상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정윤회의 국정 개입을 폭로한 세계일보의 조한규 전 사장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강조하며 내뱉은 말도 바로 ‘이게 나라냐’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도저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과 사법권력, 재벌들의 동맹체제라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꽤나 설득력 높은 해석이 있다.

민족사랑 2017년 02월호

2017년 2월 21일 249

[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 283, 3층(청량리동 금은빌딩) 대표전화: 02-969-0226 / FAX: 02-965-8879 *누리집: www.minjok.or.kr / *이메일: minjok@minjok.or.kr *트위터: https://twitter.com/minmoonyeon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injok   * PDF 하단 첨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4차 유해발굴 조사 진행

2017년 2월 23일 124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이 경남 진주에서 곧 활동을 시작한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공동조사단)은 오는 24일부터 3월2일까지 7일 동안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서 ‘제4차 유해발굴조사’를 진행한다고 22일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 유해를 수습할 목적으로 지난 2014년 2월18일 꾸려진 연대단체다. 이번 조사는 ▲2014년 2월24일~3월4일 경남 진주 명석면 1차 발굴 ▲2015년 2월23일~3월2일 대전 동구 낭월동 2차 발굴 ▲2016년 2월25일~3월4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3차 발굴에 이은 네 번째 발굴이다. 공동조사단에는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조사가 진행되는 경남 진주 용산고개(용산치)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진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던 장소다.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용산치 일대 주민들은 3개 골짜기 5군데에만 718구의 시신이 매장됐다고 증언했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뚜렷한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은 지하 광산이나 산속 등지에 버려진 채 방치됐다”며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조사는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하는 동시에 과거 청산 작업이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향후 공동조사단은 유해발굴을 이어가면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국가가 진상규명에 나설 수 있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심동준 기자 | s.won@newsis.com

친일경력 육당·춘원 기리는 문학상 현실로…문인들 반발

2017년 2월 23일 446

동서문화사 지난해 12월 ‘육당학술상”춘원문학상’ 제정하고 시상 친일경력을 가진 문인들인 육당 최남선(1890∼1957)과 춘원 이광수(1892∼1950)를 기리는 상이 제정되어 지난해 12월12일 시상식까지 치러진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문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친일문학상도 폐지해야하는 판국에 친일지식인의 거두(巨頭)였던 두 인사를 기리는 상을 새로 제정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상을 제정한 측의 목소리도 강경해 양쪽의 대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출판사 동서문화사에 따르면 제1회 육당학술상은 전성곤 중국 베이화(北華)대학 교수, 제1회 춘원문학상은 원로 소설가 박순녀씨에게 돌아갔다. 상을 제정한 동서문화사는 이미 지난해 12월 시상식까지 치른 것을 일부 단체들과 문단내의 반발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21일에야 보도자료를 냈다. 동서문화사의 고정일 대표는 “한국 학계와 문단의 대표인 육당과 춘원을 빼놓고 우리 사학과 문학을 논할 수 없다”면서 “이들은 도쿄 2‧8독립선언, 서울 3‧1독립선언 등 독립운동을 하고 옥살이도 했는데, (그들의) 내재적 독립운동을 이해 못하고 그들의 선구적 업적을 폄하해선 안 된다”면서 상 제정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이 상을 제정한 출판사나 심사위원, 수상자 모두가 대단히 치욕스럽다는 것을 언젠가 절감하게 될 것”이라면서 “친일파라면 정치인들은 후손까지도 비판받는 시대에 (정치인보다) 더 역사의식이 강해야 할 학자들이나 문화예술인이 어떻게 이런(상을 주고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인 맹문재 시인 역시 “적폐청산을 하자고 국민들이 앞장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은 말이 안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응교 숙명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