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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한겨레] ‘미안해요 베트남’ 시로 쓰는 사과문…“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2026년 9월 2일 117

아카이브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내달 초 출간 한베평화재단이 수집한 사진과 증언, 시로 재탄생 4·3처럼 마을 합동제사 다룬 시 절절해서 더 아파 가해의 역사 성찰없이 사과·화해 가능한지 되물어 “우리는 아직 빈안(平安)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아직 빈호아(平和)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아직 호아지아이(和解)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 60여년이 흘러/ 총탄에 바수어진 뼈가 녹아내려/ 흙의 일부가 되어 스러질 때까지/ 그들의 혼백은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본 적 없다”(도종환, ‘빈안으로 가는 길’) “‘미안해요 베트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우리는 함께 빈안으로 나아갑니다/(…)/ ‘용서를 빕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용서를 빕니다!’/ 오늘의 세상에도 이 말들은 필요합니다/ 폭격이 쏟아지고 흐르는 피 멈추지 않을 때”(탄타오, ‘우리는 함께 빈안으로 나아갑니다’) 한국 시인이 가해국의 사과 부재를 안타까워하자 베트남 시인은 한국 시민들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온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도종환 시인과 베트남 시인 탄타오(타인타오)가 한시의 창화(唱和) 형식을 좇아 주고받은 이 시들은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사회평론)의 맨 앞에 실려 책의 기조를 알려준다. 다음달 초에 나오는 이 책은 ‘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 주교, 이하 재단)이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들을 활용한 아카이브 시집이다. 한여진·송경동·김현아 등 시인 9명이 재단이 제공한 사진과 증언 등 자료를 바탕으로 시를 창작했다. 여기에다가 김명인·송기원·김태수 등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거나 베트남 기행을 다녀온 시인들의 기존 작품 가운데 16편을 추려 실었고, 재단의 워크숍을 거쳐 나온 ‘블랙아웃 포에트리’ ‘파운드 포에트리’

“이완용” 자타공인 매국노의 대명사|〈일제를 빛낸 친일파들〉시리즈

2026년 8월 31일 203

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국적 ‘매국 3관왕’ 일제로부터 받은 포상금 ’15만원’ (현재 가치 최소 20억원) 소유했던 토지 ‘여의도 면적의 7.7배’ “대한민국의 누구나 인정하는 매국노 대명사 이완용” 최근 SNS에서 친일파를 우상화하고, 독립운동가를 폄훼하는 SNS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적극 활용해 친일파의 행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일제를 빛낸 친일파들〉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역사는 무엇일까요? 〈일제를 빛낸 친일파들〉 시리즈에서 확인하세요.

[시민언론 민들레] 부친 친일 행적도 기록한 한 친일연구가의 춘추필법

2026년 8월 31일 162

『친일문학론』 60주년, 임종국이 남긴 숙제(상) 하영 증조부 논란이 소환한 친일 미청산 흑역사 감춰진 한국문학사 1937~45년 기록 생생히 복원 복사기 없던 시절에 손으로 베껴가며 자료 수집 출판사들 전전 끝에 평화출판사에서 출간 올해 81주년 광복절을 전후해 언론과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빚은 주인공은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이었다. 지상파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증조부가 고종을 진료한 적이 있는 ‘4대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가 증조부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증조부가 안상호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일가에 대한 ‘파묘’ 수준의 추적과 폭로가 잇따랐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속설이 새삼스럽게 회자하며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흑역사까지 소환됐다. “선조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증손자에게 묻는 것은 연좌제”라는 반론도 있긴 했으나 “일제강점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집안 이야기를 자랑삼아 소개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에 묻혀버렸다. 결국 하영은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회복하기 힘들 만큼 큰 상처를 입었으며 파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언론에까지 하영 증조부 논란이 보도되는가 하면 본관과 성씨를 입력하면 독립유공자와 친일파 등재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6월 공포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16년 만에 부활하는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도 관심이 쏠려 있다. 『친일문학론』은 필생의 역작이자 친일 연구의 금자탑 1세기가 지난 일이 뒤늦게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것은 1948년 제헌국회가 꾸린

[오마이뉴스] 일본인도 공부하는 국치일, “중요한 날인데 왜 달력엔 없죠?”

2026년 8월 31일 140

[현장] 경술국치 116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친일파 기록카드’ 만든 우타나씨와 어린이 방문객들 “달력에 삼일절이나 광복절처럼 표기돼 있지 않아서, ‘뭐지?’ (중략) 중요한 날인데 달력에 안 써져 있는 게 의아했어요” – 이유진(초등학교 5학년) 이완용 명의로 일본과 체결한 한일 강제병합 조약문이 공포된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역신의 무리가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던 경술국치로부터 116년이 지난 오늘,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민족문제연구소 산하)을 방문한 한 어린이는 ‘국치일’을 두고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29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8·29 국치일은 부끄럽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날”이라며 ‘친일파 기록카드 만들기’ 행사를 열었다. 이날 방문객들은 전시를 관람하며, 대표적인 친일파인 고영희·권중현·민병석·박제순·송병준·윤덕영·이근택·이병무·이완용·이재곤·이재면·이지용·임선준·조준응의 행적을 기록하는 카드를 만들었다. 방문객들이 직접 쓴 카드는 박물관 입구 쪽 벽 한 켠에 전시됐고, 일부 방문객은 카드를 만들고 ‘경술국치’ 키링을 받았다. 국치일 박물관 첫 방문객은 8월 내내 경술국치 공부한 일본인 이날 박물관에 처음 입장한 방문객은 일본인 우타나 사토미(48)씨였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전시를 한 시간 반 가량 집중해서 관람한 그도 ‘이완용’ 카드를 골라 ‘친일파 기록카드 만들기’에 동참했다. “박물관에 방문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그는 이달 내내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공부한 흔적이 담긴 자신의 노트를 보였다. ‘국치일’, ‘이완용’, ‘친일파’라는 한국어 단어도 군데군데 적혀 있던 이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8/29 국치일에 대해 경술국치, 경술국치일. 29일을 ‘국치일’이라고 한다. 8월 22일 :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조인됐지만,

[서울신문] [세종로의 아침] ‘친일 행적 후손’ 논란이 남긴 질문

2026년 8월 31일 93

‘4대째 의사’ 칭송에 떠오른 물음 흔적은 옅어지고 망각은 빨라져 16년 만에 열린 친일 청산의 문 미완의 작업, 제대로 정리할 때 그날 밤 리모컨을 누르다 눈여겨보던 배우 하영이 나오기에 손가락을 멈췄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한 회차만 나오고도 잔상을 남겼고,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에서도 눈에 띄던 배우다. 그렇게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는데, 볼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내력과 미국 명문 예술학교 출신이라는 이력이 되풀이됐고, 출연진은 감탄을 연발했다. 머릿속에선 다른 계산도 돌아갔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고 증조부까지 거슬러 오르면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다다른다. 그 시기에 서양 의학을 배운 조선인 엘리트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의 증조부는 어느 쪽이었을까. 그토록 자랑스레 얘기할 정도면 그쪽은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이튿날 일이 터졌다. 증조부 안상호(1872~1927)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면허를 얻고 고종과 순종을 진료했다는 게 방송에 나온 전부였지만 이후 이토 히로부미 추도 모임 준비위원(1909년), ‘일선동화의 선구’로 칭송(1913년 ‘조선공론’),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이력(1916년)이 드러났다.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도 썼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14일 입장문에서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명백하다고 밝히면서도, 책임을 후손에게 묻는 데는 선을 그었다. 대신 일제강점기에 쌓은 지위와 재산이 해방 후 정산 없이 다음 세대로 넘어간 경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친일 부역자의 후손인 배우가 아니라 이렇게 된 구조와 역사적 성찰에 방점을 뒀다. 지금이 그 질문을 하고 답을 얻을 마지막

민족사랑 2026년 8월호

2026년 8월 27일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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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방송] 연구의 현장 : 중일전쟁 시기 ‘한국청년’의 항일 선전·예술 활동과 항일음악

2026년 8월 25일 259

국악방송 – 연구의 현장 (매주 일 20:00~21:00) 2026년 8월 16일(일) 20시 방송 「중일전쟁 시기 ‘한국청년’의 항일 선전·예술 활동과 항일음악」 초대 : 민족문제연구소 이명숙 연구실장 다시듣기: 「중일전쟁 시기 ‘한국청년’의 항일 선전·예술 활동과 항일음악」 1. New World Arirang – 청주시립국악단 2. 광복군아리랑 – 정은하 3. 반달 – 이정숙, 이채원

[현장보고] 효창원 삼의사 묘역 각서 ‘유방백세’ 채색 복원

2026년 8월 24일 404

[현장보고] ☞ 다운로드: [보도자료] 효창원 삼의사 묘역 각서 ‘유방백세’ 채색 복원 효창원 삼의사 묘역의 전면 석축에 새겨진 ‘遺芳百世(유방백세)’ 글씨의 채색복원작업이 드디어 완료되었다. 이 각서(刻書)는 본래 채색이 되어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풍화와 퇴색이 심해져 원상이 잊힌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특임연구원(서울시 국가유산위원회 표석분과위원)이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한 뒤, 옛 사진자료를 고증해 원형을 확인하였다. 연구소는 이에 기초하여 지난 2023년 7월 11일에 「효창공원 삼의사묘역 각서 ‘유방백세’ 채색 상태가 원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관계당국의 주의와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시민(민진홍, 용인 거주)이 2024년 3월 용산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최근에 이르러 채색 복원작업이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용산구청 담당주무관에 따르면 이 채색복원 정비작업은 올해 5월부터 한 달 가량 진행하여 6월 중순에 완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순우 특임연구원이 고증자문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채색복원이 완료됨에 따라 ‘유방백세’의 측면에 ‘무자춘일 김구제(戊子春日 金九題)’라고 새겨진 부분도 명확히 드러나면서, 이 글씨가 1948년 봄에 김구 선생이 쓴 것이라는 사실도 시민들이 널리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의 유해를 봉환하여 1946년 7월 6일 국민장(國民葬)의 형태로 옛 효창원 자리에 묘역을 조성하는 과정을 주도한 당사자가 백범 김구 선생이다. 이에 관해 『백범일지(白凡逸志)』에는 “…… 장례에 임하여 봉장위원회 책임자들이 장지를 널리 구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결국 내가

[경북매일] 최부잣집 곳간에 간직된 ‘국채보상운동’ 이끈 생생한 증거

2026년 8월 20일 211

17>신돌석과 국채보상운동 명성황후 왕릉 축조 참여하게 된 최현식 아들 최준이 약관 20세에 만석 살림 맡아 대소사 두서있게 처리하며 가주노릇 톡톡 교촌마을서 머물던 ‘항일 의병장’ 신돌석’ 최부잣집에도 남다른 괴력 전설 남기기도 1907년 3월 경주로 전파된 국채보상운동 최현식·경주향교가 앞장서 의연금 모아 2018년 여름 발견된 고문서 2만여 점엔 광고문·명단·기록 장부 등 총 33점 포함 아버지 최현식이 아들 최준에게 가사 일체를 맡긴 때는 언제일까. ‘교동의 얼’은 1904년경부터라고 했다. “(최준은) 약관 20세에 큰살림을 맡아 대소사 모두를 두서 있고 조리 있게 잘 처리하였다.” 한데 1910년 이후라고도 했다. “선친(최현식)께서는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경술(1910년) 후부터는 세상사를 싫어하고 가사 일체를 모두 공(최준)에게 맡겼다.” 최준은 1904년엔 20세였고, 1910년엔 26세였다. 필자의 견해로는 최준이 가사일체를 맡은 것은 더 일찍인 듯하다. 이러지 않았을까. 1895년, 어처구니없는 참변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가 경복궁 건청궁에 자객을 침투시켜 조선의 국모(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불태웠다. 전대미문의 만행이었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이다. 1901년, 최현식은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 왕릉 축조에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다. 경릉 참봉 재직 때 보여주었던 뛰어난 실무 능력 때문이었다. 명성황후의 홍릉(洪陵) 위치는 경기도 남양주였다. 아직 기차가 없던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이 염려했다. “만석꾼 살림을 어찌하고 그 멀리 떠난단 말입니까? 마음만 먹으면 아니 갈 수도 있잖습니까?” 최현식은 주저 없이 황명을 받들었다. “황제께서 쓸모가 있다 하여 부르시는데, 내 어찌 딴 속셈을 갖겠는가.” 집안일은 최준에게 맡겼다. “열일곱이

[헤드라인 제주]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 광복절 기념 ‘춤 815를 추다’ 성황리 개최

2026년 8월 19일 200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는 지난 9일 광복 기념 행사인 ‘춤 815를 추다’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100여 명에 가까운 지역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해 뜨거운 열기를 더했다. 이날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진행한 역사특강에서는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정미의병’이며,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강력한 대일전쟁의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의 역사적 발언을 재조명했다. 이어 독립운동사를 재미있게 풀어낸 ‘역사겨루기(역사 골든벨)’ 프로그램이 진행돼 청소년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강태선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이해하고 애국가를 춤 퍼포먼스로 표현해 보는 교육 시간도 가졌다. 사전 교육과 연습을 마친 청소년들과 참가자들은 지난 15일, 자생한방병원이 주최한 ‘광복잇길’ 행사에 공식 초청돼 준비한 예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광복잇길’은 생존 애국지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강태선 지사의 고향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제주올레 1코스)에 조성된 길이다. 참가자들은 엄숙한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역동적인 춤 퍼포먼스를 펼치며 현장의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또한 독립군가와 함께 강태선 지사를 주제로 한 창작곡을 연주하며,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미래 세대에게 바람직한 역사의 전승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했다. 2년째 행사에 함께하고 있는 중앙여고 2학년 임가현 학생은 “이 행사를 만나 역사 교사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며,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해 뜻깊은 경험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 관계자는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춤 815를 추다’에 1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해 역사 골든벨과 특강으로 정미의병부터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국군의 자랑스러운 정통성을 배웠다”며 “생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