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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한국광복군창설80주년기념특강] 독립전쟁과 ‘이름없는 별들’

2020년 9월 17일 94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 기념 특강] 독립전쟁과 ‘이름없는 별들’ – 강사: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주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후원: 서울특별시 / 민족문제연구소

[오마이뉴스] 50년 10월 1일 38선 돌파한 1군단장·3사단장은 국가공인 친일파

2020년 9월 17일 81

[광복군, 여전히 찬밥 ②] 친일의 그림자 어른거리는 국군의 날, 이대로 괜찮은가 오늘(2020년 9월 17일)은 한국광복군 창군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방부는 2018년 업무보고에 국군의 기원이 광복군임을 명시했다. 그러나 2020년 지금도 대한민국 국군의 날은 6.25전쟁 중 38선을 넘은 10월 1일에 기념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광복군 창군 8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를 살펴봤다. [편집자말]   “국군의 날인 10월 1일은 육군 3사단이 1950년 한국전쟁 중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한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날이 대한민국 국군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광복군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이 11일 서울시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창설80주년 초청강연’ 후 <오마이뉴스>에 한 말이다. 10월 1일이 한국전쟁 중 38선을 돌파한 날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국가기록원은 “1956년 9월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에 의해 육·해·공군 기념일을 통합하여,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였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날이 국군의 날로 기념되기까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심지어 친일의 그림자도 스친다. 이승만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기까지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9월 21일 “육해공군 기념일에 관한 건은 폐지한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대통령이 이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육해공군은 각각의 기념일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육군은 1946년 1월 15일 미군정 아래서 남조선국방경비대 1연대가 창설된 날을 기념했고,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조선해안경비대의 근간이 된

[사월혁명60주년기념특강] 2강. 4·19혁명과 한국문학

2020년 9월 14일 258

[전체보러가기]   강사: 유성호(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2020년 독립민주시민학교 시민강좌 사월혁명 60주년 기념 특강(9.5~20) 문학과 예술로 보는 4·19 “잔인한 사월 위대한 혁명”

[사월혁명60주년기념특강] 1강. 문학에서 본 4·19혁명

2020년 9월 14일 118

[전체보러가기]   강사: 임헌영(문학평론가) 2020년 독립민주시민학교 시민강좌 사월혁명 60주년 기념 특강(9.5~20) 문학과 예술로 보는 4·19 “잔인한 사월 위대한 혁명”

[오마이뉴스] “안익태 기념관도 있는데 차리석은 강의실 하나 없다”

2020년 9월 9일 247

[현장]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 75주기 추모식 9일 오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의 75주기 추모식이 서울 효창공원(효창원) 내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서 열렸다. 차리석 선생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전 여정을 함께 한 임시정부의 파수꾼이었다. 선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독립운동가 수당 정정화는 ‘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음에도 임정의 살림에 보태라며 푼돈을 내주었을 정도로 그 자신에게는 인색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나처럼 임정 살림 뒤치다꺼리를 맡은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그분들에게 손을 벌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지출금액을 일일이 장부에 기록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임정의 살림은 형편없었다. 특히나 돈을 받아쓰는 사람의 마음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푼전을 내주어야 하는 그분들의 심정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것이었으리라. 동암(차리석)과 우천(조완구)은 그런 궁색한 살림을 맡아하면서 자신들에게만은 특히 인색하게 대했을 터이니, 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다.” – 정정화, <장강일기> 中 그러면서도 결코 사무에는 소홀하지 않았으니 1948년에 열린 선생의 장례 당시 “탁월한 사무 처리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추모사에서 그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은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던 중 1945년 9월 9일, 과로로 그만 병사하고 말았다. 환국한 김구 선생은 가장

[경남도민일보] 독립운동가 알리기, 지역 화폐로

2020년 9월 9일 281

지역사랑상품권에 지역 독립운동가 넣자 전국 최초 개념 지자체 되기 어렵지 않다 “독립운동을 한 나라의 화폐에 독립운동가 한 명이 없다.” 지난 8월 경남도의회에서 ‘경상남도 대일항쟁기 일제 잔재 청산 등에 관한 조례 제정 토론회’가 열렸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 발제를 맡았고, 화폐 이야기를 꺼냈다. “신사임당이 5만 원권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선시대 이 씨 남자들만 오직 화폐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고액권 화폐 논의가 진행됐고 5만 원권 초상 인물은 신사임당, 10만 원권에는 김구 선생이 선정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바뀌고 정치권에서 김구 선생 초상에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10만 원권 발행은 무기한 연기됐다. 친일청산 반대 논리로 등장한 색깔론에 법적으로 처벌받은 친일파가 한 명도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해방 후 1950년대 발행된 우리나라 화폐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거북선, 무궁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물 등이 새겨졌다. 1972년 이후부터 지금 우리는 경제활동을 하며 퇴계 이황(1000원권), 율곡 이이(5000원권), 세종대왕(1만 원권), 신사임당(5만 원권)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7년 5만 원·10만 원권을 발행하기 앞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초상 인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김구·김정희·신사임당·안창호·유관순·장보고·장영실·정약용·주시경·한용운'(이상 가나다순) 등 10명으로 압축됐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2차 후보군 가운데는 독립운동가(김구·안창호·유관순·한용운)들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여성인물이 선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유관순 열사의 등장은 후보 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달굴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은 어디서부터 막혔던 걸까. 김영진

[머니투데이] ‘교표에 욱일기라니’…제주 학교에 여전한 일제 잔재

2020년 9월 9일 159

제주대 산학협력단, 학내 일제 잔재 연구 중간보고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교가에 국화·향나무도 버젓이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욱일기 문양의 교표,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등 제주 학교 곳곳에 여전히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어 청산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제주도교육청 일제강점기 식민잔재 청산 연구용역’을 수행 중인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최근 도내 학교 내 유·무형 일제 잔재에 대한 1차조사를 마쳤다.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도내 4개 초등학교는 옛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바탕으로 도안된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교표 한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원이 있고, 그 원에서 빛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형상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나 과거 일제강점기 군 관련 배지에서 자주 사용된 월계수 등과 함께 결합돼 있다. 또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9년 식민통치를 알리며 우리나라에 심었던 가이스카 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35곳(초 18·중 11·고 6)에 달했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나 일제강점기 일본이 들여온 영산홍을 교화로 지정한 학교 역시 각각 8곳(초등), 13곳(초 10·중 2·고 1)으로 파악됐다. 이 뿐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작사가 김기진·이원수, 작곡가 이홍렬이 만든 교가를 아직도 부르고 있는 학교도 3곳(초 2·고 1)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현황’ 등에 이름을 올린 도내 교장도 현재까지 3명으로 집계됐다. 제주대 산학협력단은 10월까지 현장조사와 공청회, 자문회의 등을 마치고 11월 초 최종보고회를 연다는

[한국타임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고려인마을에 마스크 후원

2020년 9월 9일 137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는 최근 광주고려인마을을 방문해 코로나19 재 확산 방지를 위한 이웃사랑 마스크 500장을 기탁했다. 고려인마을 방문에는 김순흥 지부장과 이지훈 국장, 김홍길 국장, 정영해 전 동신대 교수 등이 함께 했다. 김순흥 지부장은 “최근 잠잠했던 코로나19가 재 확산됨에 따라 또 다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다 함께 극복하자는 마음을 담아 마스크를 준비했다”며 “광주고려인마을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고려인마을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고려인선조들의 후손이기에 눈물어린 애정이 가슴에 남아있다”며 “앞으로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려인선조들의 잊혀진 항일 역사를 복원, 고려인동포들이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자랑스런 긍지를 갖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마스크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며 “기탁하신 마스크는 마을거주 고려인동포를 대상으로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순천 회원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마마나스)이 광주이주 독립투사후손 고려인동포들의 안정된 정착과 민족적 자긍심 고취를 위해 면마스크를 기증했다고 전했다.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sctm01@hanmail.net <2020-09-09> 한국타임즈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고려인마을에 마스크 후원

[오마이뉴스]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 혁명과 학살의 상징 아우내에서 열려

2020년 9월 3일 303

동학혁명, 3.1혁명을 학살로 억압한 일제, 1923 간토대진재 시 학살재현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와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가 공동주최한 간토학살피해자 제97주기 추도식이 한국 천안시 병천면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지난 1일 열렸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간토학살사건 관련단체인,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기억과평화협동조합, 1923인문학연구소, 기장 1923진상규명위원회의 임원들과, 연대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천안민족문화연구회 대표자,그리고 씨알재단에서도 참여하였다. 임광순 사협 기억과평화 이사의 사회로 오후 2시에 개회하여 헌화를 시작으로 제97회 메시지, 추도사, 연대사, 추도노래가 이어졌다. 이번 행사를 주최주관한 1923한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는 간토학살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일본 내각과 군대, 경찰, 민간자경단을 향한 분노가 일었지만, 10년 넘게 진실규명과 추도활동을 해오면서 점점 분노의 대상이 한국 정부로 바뀌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종수 대표는 한국 언론이 코이케유리코의 추도사를 내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공식적인 추도사 한 번, 추도식 한 번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에서조차 이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100년이 되는 2023년을 맞을 때에 간토피학살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민관협력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 100년을 맞기 전까지 남과 북이 함께 간토학살조사에 나서자. – 100년을 맞기 전까지 1923역사관의 학살지역별 전시를 위해 함께 협력하자 – 간토학살백서제작을 위한 남북한일재일 공동기구를 제안하자. – 간토학살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시민, 의원이 함께 협력해 가자. 일본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사무국장 다나카마사타카 교수(일본 센슈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