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새책소개]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 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 / 대담 유성호

2021년 10월 12일 199

■ 책 소개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은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유성호가 치열한 민족의식의 언어로 풀어낸 대화록이다. 이 책은 임헌영의 유년 시절부터 두 번의 수감생활을 거쳐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현재의 생애까지를 집약한 자전적 기록이기도 하다. 임헌영은 우리 문학사와 민족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문학평론가다. 그는 『친일인명사전』(2009) 출간에 앞장서며 근현대사의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시대를 앞장서서 걸어간 현대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유성호가 대담을 이끌어가며 조명한 임헌영의 생애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한줄기 빛과 같다. 광기와 야만의 세월을 살아낸 임헌영은 살아 있는 역사이자 역동적인 정치적 산물로서 문학작품을 바라본다. 그가 읽고 섭렵한 문학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그 시대를 증언해주는 기록이다. 한평생 문학의 길을 걸어온 그가 말하는 문학은 역사 그 자체다. 낙관과 비관이 공존하는 우리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명한 두 평론가의 대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학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역사 격랑 속에서 꽃피워낸 문학의 길 “문학은 아주 먼 곳을 그리워하는 연정 같은 것” 임헌영은 아주 독특한 이력을 지닌 문학평론가다. 그는 80년의 세월 동안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독재와 항쟁을 끝없이 경험하며 역사의 격랑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섯

[한국일보] “진보도 무능하고 부패하고 분열하면 보수가 된다”

2021년 10월 13일 75

민족문제연구소 캐치프레이즈가 동아시아 평화 정착입니다. 그러려면 민족 주체성을 살려야 하는데 어떤 민주 정부도 못 살리고 있어요. 국민들이 서포트(지원)해주지 않지요. 평화가 뭔지, 제국주의가 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의식의 격차가 빈부격차보다 더 큽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소공배수를 찾아보자. 진보는 진보세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도 합리화하면 진보가 되고, 진보도 부패하거나 분열하거나 무능하면 보수가 된다. 그게 이 책의 이야기입니다. 국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13일 서울 중구의 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임 소장은 이달 펴낸 대담집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담집은 유성호 한양대 인문대 학장이 질문을 던지고 임 소장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임 소장은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만 5세 때부터 한국사의 굴곡에 휘말린다. 1946년 대구 10ㆍ1항쟁에 삼촌들이 연루되면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역사와 평화, 민주화, 통일을 의미를 고민했던 임 소장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면서는 독재정권 아래서 필화사건과 간첩사건에 휘말려 두 차례나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담집은 임 소장의 삶을 따라가면서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사건들과 인물들을 소환한다. 임헌영이란 인물의 자전적 기록이자 그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 한국 사회사인 셈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한 유 학장은 “책에는 문학작품들을 비롯해 많은 문학인들, 정치인들, 역사가들, 사상가들이 나온다”라면서 “한반도의 역사를 식민부터 분단, 독재시절로 이어가면서 선생님의 의식이 개입해 풍요롭고도 개성적 해석을 읽어낼 수 있다. 문학비평가 임헌영의

[경기신문] 독립의 노래가 일상에서 퍼지는 날

2021년 10월 19일 15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항일음악 330곡집 등 출간 방학진 기획실장 “독립운동가 부재 시대, 교육 어떻게 시킬 것인지 고민 필요한 시기” 여전히 남아있는 제국주의 행태, 돌아봐야 “터졌구나 터졌구나 조선 독립성, 십년을 참고 참아 이제 터졌구나. 삼천리금수강산 이천만 민족, 살았구나 살았구나 이 한 소리에 만세 만세 독립 만만세.” 독립을 향한 열망과 독립운동에 대한 반가움이 담긴 이 노래는 1919년 3·1 운동 당시 ‘대한 독립만세’ 함성과 함께 곳곳에서 부르던 ‘독립가’의 가사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노래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에 맞선 투쟁의 음악인 항일음악, 해방 쟁취와 자주독립을 이루고 민족국가 수립을 목표로 불렸던 이 노래들은 자주독립을 한 현재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런 점에서 지난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출간해 전파에 나섰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금,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민들이 항일음악을 쉽게 듣고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방학진 민족연구소 기획실장은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 노래의 특징은 서정적인, 고향을 그리는 부분이 많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향을 떠나 망명을 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항일노래를 학교의 종소리, 대중교통 속 음악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들이 독립운동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한일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그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잔재의 흔적을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4편 신흥무관학교 24시

2021년 10월 14일 100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신흥무관학교 제4편 : 신흥무관학교 24시 ☞ 신흥무관학교 제3편 : 서간도는 어떤 곳일까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JTBC] 잔혹한 일 강제동원 ‘증거들’…우리가 없애려 하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421

[앵커] 추적보도 훅, 오늘(11일)은 우리 땅에 남은 일제의 강제동원 흔적을 찾아봤습니다.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를 외면하고 있지만, 수탈과 만행의 현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산들이 사라져버릴 위기입니다. 신진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기자] 193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을 병참 기지로 삼겠다고 선포합니다. 인천은 만주와 일본을 오갈 때 요충지이기 때문에 거대한 군수 보급소가 됐습니다. 이곳 인천 신흥동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관료와 사업가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방공호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면 곡괭이 자국도 그대로 보입니다. [유동현/인천시립박물관장 : 아사히 학교라고 일본인들만 다니던 학교였습니다. 학생들과 주민들을 위한 방공호 시설이죠.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곡괭이나 이런 걸로 파서 들어갔던 거죠.] 특히 조선인이 대규모로 강제 동원된 시설들은 역사적 가치가 큰 걸로 평가됩니다. 부평 캠프마켓 부지의 일본 육군 조병창이 대표적입니다. 일본이 식민지에 세운 유일한 무기 공장입니다. 광복 이후 미군기지로 쓰이다 내년 4월 우리나라에 완전히 반환될 예정입니다. [김재용/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장 : 소총이 4000점, 탄환이 70만발, 군도가 2만개, 그 포탄 이런 걸 해서 엄청 많이 만들었어요. 그걸 만들기 위해 강제동원을 한 겁니다.] 매년 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이곳에 동원돼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김우식/조병창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자료) : 총, 방아쇠. 주로 방아쇠 깎았어. (먹을 것) 주는 거는 조금밖에 안 주고. 그래서 몰래 훔쳐 먹기도 하고 들키고.] 해외로 강제동원 되거나

[e수원뉴스] 친일 관련 문화재 어떻게 해야 할까

2021년 10월 14일 47

수원박물관 ‘수룡수리조합기념비’와 ‘치산치수지비’, 친일 청산 교육으로 활용해야 지난 8월 YTN 보도에 따르면 강원도 춘천에 친일파 민영휘의 무덤을 관리하는 가옥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해당 가옥이 가지고 있는 친일 관련 역사를 함께 기록해야 한다는 지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안내 문구 하나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이며 문화재로 지정된 탓에 가옥 유지보수는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는 문화재 지정 해지를 춘천시에 요구했지만 개인 소유인 문화재의 경우 소유자의 해지 신청이 있거나 문화재로서 가치를 잃을 정도로 훼손될 때에만 지정 해지가 가능하기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서야 춘천시에서 안내문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내판이 설치된 곳이 사유지라 땅 주인인 민영휘 자손의 동의를 구해야 최종 가능할 것이라 한다. 전문가들은 매국 행위에 앞장선 친일파 연관성을 함께 기록할 때 문화재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해방 이후 친일 잔재를 제대로 단죄하고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그 후손들이 뻔뻔하고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다. 얼마 전 친일파 박제봉이 살던 고택을 경기도문화재로 지정해 달라는 후손들의 건의가 있었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파 박제봉이 살던 고택 앞에 친일 행적을 알리기 위한 단죄비를 세우고 친일파와 같은 부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의 장 또는 난징대학살기념관 같은 다크 투어 등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제 잔재 청산은 결코 잊어버리고 지우자는 의미가 아니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오마이뉴스] ‘총장님 힘내세요’ 고대생이 응원 시위 벌인 김준엽

2021년 10월 12일 192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대전현충원17] 부민관 의거 조문기, 행동하는 지성 함석헌 대전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매년 현충일이면 찾아가는 국립대전현충원 묘소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의 묘다. 파묘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몇 해 전부터 묘소가 한 곳 더 늘었다. 파묘 시위가 끝나면 국립묘지법을 꼭 개정하겠다고 다짐하기 위해 들리는 곳인데 다름 아닌 고 조문기(1927~2008) 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묘다. 그는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강관 주식회사에서 조선인 노동자 2000여 명을 모아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국내로 돌아와 대한애국청년단을 결성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특히 1945년에는 아시아 각국의 거물급 친일파들이 모여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시아민족분격대회’가 친일부역자인 박춘금 일당의 주도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열렸는데, 조 이사장을 비롯한 청년들이 미리 설치해 둔 폭탄을 터뜨렸다. ‘부민관 폭파 의거’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서울 한복판에서 이같은 의거가 일어나 친일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폭탄이 터지면서 대회장은 엉망이 되었고 일본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수색했지만 폭탄을 터트린 이들을 잡지 못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비밀에 부쳐졌다가 1945년 11월 13일 <자유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사건이 발발한 당시에는 민심 동요를 우려한 일제의 보도 통제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조 이사장은 생전 “변변히 한 일도 없이 독립운동을 팔아먹고 싶지 않다”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의거 당사자임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해방 뒤 활발한 민족주의 운동을 벌이던 조

[인천일보] ‘캠프마켓에 시민기금으로 조봉암 석상 건립 추진 바람직…’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역사포럼에서 지용택 이사장 입장 밝혀

2021년 10월 13일 36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는 지난 12일 오후 인천광역시 중구청 월디관에서 ‘죽산 조봉암의 생애와 사상’을 기리는 ‘2021년 제2회 인천지역 역사 포럼‘을 개최했다. 이민우 전국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행사에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모세 조봉암 추모사업회장, 조봉암 평전 저자인 이원규 작가, 홍인성 중구청장,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 등 각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조봉암 선생의 선양사업을 주도해 온 지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죽산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물로 ‘석상’을 건립할 계획”이라며 “건립 장소는 부평 미군기지 자리인 캠프 마켓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평 지역을 최적지로 판단하는 이유에 대해 지 이사장은 “죽산이 부평에서 제헌 의원을 지낸데다, 부평지역 주민들이 어느 곳보다 열성적으로 석상 유치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새얼문화재단에서 추진한 기념물 조성사업은 대부분 자체 사업비로 충당했지만, 죽산의 석상만큼은 인천시민들의 선생에 대한 추모의 뜻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아래 시민들의 자발적 기금으로 건립하기로 제안하고 추진해왔다”며 “지금까지 8억 원가량의 기금이 적립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지 이사장은 특히 “강화군 갑곶리 진해공원에 세워진 죽산 추모비 등 지금까지 진행된 죽산 선양 사업은 보수·진보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민들이 참여했다”면서 “죽산의 석상과 기념관 설치 등 앞으로 펼쳐 나가야 할 사업도 모두가 뜻을 모아 이뤄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발제를 맡은 오유석 성공회대 교수는 인천 출신의 위대한 독립 운동가이자 탁월한 정치지도자인 죽산의 생애, 활동, 업적에 대해 설명했다. 오

[한국타임즈] 고려인마을극단, ‘나는 고려인이다’ 특별공연 성료

2021년 10월 13일 35

가슴 뭉클하고 뜨거운 눈물과 감동 [한국타임즈 김혜경 기자] 가슴 뭉클하고 눈물과 감동없인 볼 수 없는 연극 ‘나는 고려인이다’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아시아문화전당 특별공연을 마무리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가치와 감동이 배가 되고 있는 고려인 중앙아시아 이주 스토리텔링극 ‘나는 고려인이다’는 ‘역사마을 1번지’ 광주고려인마을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 제작하고 아시아문화원과 고려인콘텐츠사업단이 주관했다. 지난 9일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2에서 진행된 이날 공연에는 고려인마을을 품고 있는 광주 광산구 월곡2동 선주민들로 구성된 달빛마을해설사들과 고려인마을 주민, 전성현 고려인광주진료소 설립자,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김기준 광주오페라단 단장, 주경미 광산구공익활동지원센터장를 비롯한 지역사회 주요인사, 고가영 한국외대 교수와 김영주 국세공무원교육원 초빙교수 등 전국 각지의 많은 인사 200명이 공연장을 찾았다. 연극을 관람한 관객들은 “공연 내내 심금을 울리는 고려인선조들의 피어린 삶에 손수건 없이는 관람할 수 없는 감동의 연극이었다”며 극찬했다. 특히 고려인마을어린이합창단의 고향의 봄, 고려인아리랑가무단의 이국적인 노래와 아코디언 연주, 정추선생이 통일 조국을 노래한 ‘내 조국’ 등은 관객들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운동에 헌신했으나 조국에 돌아 온 그 후손들이 ‘여전히 유랑민으로 살아가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특별법 제정에 힘을 모을 것도 다짐했다. 고려인마을극단은 2017년 고려인강제이주 80주년을 기념해 창단됐다. 단원은 우즈벡 출신 고려인 3세 리조야씨를 비롯한 단원 21명과 최영화 단장을 비롯한 제작진 29명 등 5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영화 단장은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 뮤지컬 연출자로 정평이 나있다. 음악감독

[세계일보] 신석정 고택 ‘비사벌초사’ 철거 위기 벗어나… 전주시 “보존 지원”

2021년 10월 10일 123

신석정(1907~1974) 시인의 고택이자 전북 전주시 미래유산인 ‘비사벌초사’가 주택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철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7일 전주시에 따르면 신석정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가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문화유산 긴급보수 예산을 활용해 비사벌초사 보존을 지원한다. 또 비사벌초사 인근에 ‘비사벌초사문학관’을 건립하고, 한옥마을 최명희문학관과 고하문학관을 연계한 문학기행 등 프로그램을 운영해 전주를 빛낸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정원을 만드는 ‘시인의 정원’ 사업을 함께 추진한다. 비사벌초사를 중심으로 시인을 기리는 공간을 점에서 면으로 넓히는 용역도 발주할 계획이다. 비사벌초사는 신석정 시인이 1961년 부안에서 전주로 이사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14년간 생활하면서 창작과 후학 지도를 했던 곳이다. 고택 이름은 전주의 옛 지명 ‘비사벌’과 볏짚 등으로 지붕을 인 집을 뜻하는 ‘초가’를 결합해 시인이 지었다. 신석정 시인은 생애 5권의 시집을 냈는데, 이 중 ‘빙하’,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등을 이곳 비사벌초사에서 집필했다. 나머지 2권은 생가인 청구원에서 펴낸 ‘촛불’, ‘슬픈 목가’다. 시인은 당대 시조시인 이병기, 청록파 시인 박목월, 박두진, 순수 서정시를 추구한 김영랑, 원로시인 김남조 등 많은 문인이 이 집을 사랑방 삼아 교류하며 문학과 인생을 논했다. 시인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목가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제에 항거하며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절필하는 등 민족정신이 남달랐다.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1961년 조국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시 ‘단식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