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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보도자료] 제20회 ‘임종국상’ 시상식 (11.12)

2026년 11월 6일 296

[다운로드] ☞ [보도자료] 제20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강인철 전 한신대 교수 사회부문      한베평화재단 특별상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20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2건, 사회‧언론 부문 9건 등 총 21건이 올라왔다. 지난 9월 21일, 28일, 29일 세 차례 열린 예심에서 각 부문 3건씩 6건을 후보자로 압축해 본심에 회부했다. 10월 20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심사위원회는 열띤 토론을 거쳐 학술 부문에 강인철 전 한신대 교수와 사회 부문에 한베평화재단을 제20회 임종국상 부문별 수상자로 선정했으며,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에는 특별상을 수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도면회 대전대 명예교수, 이지원 대림대 명예교수, 장완익 변호사, 조재곤 서강대

[미디어 데모스] ≪100일의 거짓말≫ 현실판은 더 참혹했다 | 위폐범 누명 쓰고 총살된 독립투사 이관술

2026년 11월 3일 168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드라마≪100일의 거짓말≫ 속 구국단 요원들처럼, 일제강점기 완벽한 신분 위장으로 적을 농락했던 진짜 독립투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은, 가장 위대한 독립투사에게 ‘위폐범’이라는 추악한 누명을 씌웠습니다. 드라마보다 더 비극적인 이관술 지사의 감춰진 역사를 추적합니다. 일제강점기, 여러 차례 체포와 투옥,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항일운동을 이어간 경성트로이카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 이관술. 해방 후 불과 1년여 만에 그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서 처형됐습니다. 79년이 흐른 2025년 12월 22일, 법원은 마침내 재심에서 그의 위조지폐 관련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불법 구금 등을 통해 얻어진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법적 명예 회복이 이뤄진 지금,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그의 독립운동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서훈은 언제 이뤄질까요? 역사의 뒤안길에 감춰졌던 독립운동가 이관술의 세 가지 진실을 미디어 데모스에서 추적합니다. <2026-10-29> 미디어 데모스 ☞기사원문: ≪100일의 거짓말≫ 현실판은 더 참혹했다 | 위폐범 누명 쓰고 총살된 독립투사 이관술

[오마이뉴스] 강명구 작가의 ‘민족혼’ 북토크 성황리 마무리

2026년 11월 3일 114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잇는 사업 지속적으로 추진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아래 부천지부)는 30일 오후 7시, 일쉼지원센터(원미구 장말로 107, 6층) 대강당에서 강명구 작가를 초청하여 ‘민족혼’ 북토크를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는 정인조 부천희망재단 명예이사장의 제안으로 추진되었으며, 부천지부 회원, 시민을 비롯해 원불교 신자분들이 많이 참여하여 그 의미를 깊게 하였다. 북토크 진행은 정한교 사무국장이 하였으며,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지부장인 필자 인사말로 시작했다. 필자는 “부천시는 지난 2009년 자매도시인 중국 하얼빈시로부터 동상을 기증 받아 중동에 안중근공원을 조성하였으며, 안 의사의 의거일인 10월 26일에는 의거기념식을 하고, 순국일인 3월 26일에는 추념식을 진행하고 있는 안중근 정신을 가장 잘 잇고 있는 도시”라며 “부천지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의거일을 맞이하여 안중근음악회를 진행하였고, 2012년에는 남북관계가 호전될 시 안 의사의 고향인 해주시에 안중근공원 건립을 위한 시민포럼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강명구 작가의 ‘민족혼’ 북토크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였다. 정인조 명예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2018년 평화행사에서 강명구 작가를 처음 만나 인연을 계속 유지해왔으며, 특히 2021년에 진행한 <고향사랑 평화기원 고향길 500K>에게 귀중한 시간을 내어 함께 동행하였다”라고 하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또한 “평화마라토너로 유명한 강명구 선생이 작가가 되어 ‘민족혼’을 언제 썼는지 그 도전 정신에 정말 존경을 표한다”라며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널리 들었던 근현대사 위인들을 만날 수 있고 우리가 배웠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거라”라고 하였다. 오승호 시인(부천시국회의 의장)은

[제주의 소리] “안창호 인권위원장, 극우 유튜버인가”…제주4.3 단체들 분노

2026년 11월 3일 131

제주4.3 관련 공식 진상조사보고서에 북한군이나 김일성의 관여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없는데도 추가적인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고 밝힌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향해 제주4.3 관련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제주4.3범국민위원회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평화재단 등은 30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국가폭력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보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장이 극우 유튜버 수준의 참담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앞서 안 위원장은 지난 29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한규 국회의원이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북한군이나 김일성의 관여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는지 묻자 “보고서에는 없으나 역사적 고증은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의 거듭된 질의에도 안 위원장은 “조사한 바도 없고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며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 단체들의 설명이다. 이에 단체들은 “공식 진상조사보고서에서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배후설에 대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극우 유튜버 수준의 참담한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4.3희생자들과 유족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국가폭력 피해 회복을 위해 수십 년간 이어온 제주도민들의 노력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깊은 분노와 실망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소위 ‘4.3 김일성 지령설’은 국가진상조사보고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객관적으로 허위임이 입증된 사실”이라며 “4.3 지령설을 발언했다가 유족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1심 재판에서 패소한 태영호 전 국회의원의 수준을 이어가는 극우세력의 인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이 부여한 책무에 따라 인권 보장과 피해자 보호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한다”며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과 윤리를 저버린 행위로,

[뉴스1] “남인수 친일행위 수용하지만 성찰로 새 출발 할 것”

2026년 11월 3일 195

남인수기념사업회 “사회적 합의로 문화예술 가치 보존” (진주=뉴스1) 한송학 기자 = 남인수기념사업회가 남인수 선생의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성찰과 대화로 사업회의 활동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겠다고 밝혔다 원호영 남인수기념사업회 의장은 3일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족문제연구소와의 협의 경과와 제4회 남인수가요제 개최의 의미를 설명하고 역사적 책임과 문화 예술적 가치의 보존을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합의로 위해 단계별 후속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부 시민단체, 언론이 제기해 온 남인수 선생의 친일 행위 문제에 대해 기존의 반박과 부인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을 수용하고 성찰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11월 13일 제4회 남인수가요제 개최를 시작으로 민족문제연구소 방문, 역사 자료 정리와 ‘남인수 백서’ 제작 협의 등을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일정은 공식 협의를 거쳐 확정하고 합의된 사항은 가요제와 기념 사업 운영에 반영해 역사적 성찰과 문화적 계승은 실천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원 의장은 “민족문제연구소와의 대화를 이어가며 부족한 부분과 남은 과제를 책임 있게 풀 것”이라며 “사업회의 변화와 실천이 지역문화 보존과 성숙한 사회적 합의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주 출신 남인수는 15세 때 가수 생활을 시작해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하며 ‘인생극장’,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히트곡을 남기며 가요 황제로 불렸다. 하지만 친일 군국가요인 ‘강남의 나팔수’, ‘혈서지원’을 부르는 등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면서 1996년부터 이어져 온 남인수 가요제는 2008년

[성명]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 8주년에 즈음한 성명: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판결을 이행하라!

2026년 10월 30일 471

☞ 다운로드: [성명]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 8주년에 즈음한 성명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 8주년에 즈음한 성명>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대법원판결을 이행하라! 오늘 우리는 2018년 10월 30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최종 승소를 확정한 역사적 판결로부터 8주년을 맞이한다. 판결의 이행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하루빨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판결을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대법원판결의 역사적 의의를 다시금 되새기며, 피해자의 존엄 회복과 역사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싸워나갈 것을 밝힌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을 전제로 하는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선언한 역사적 판결이다. 이 판결은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발전을 반영하여 식민주의 극복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선언한 역사적인 성과이다. 아울러 이 판결은 1997년 일본 법정에서 시작되어 한국 법정으로 이어진 20여 년간의 기나긴 투쟁의 결실이다.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이에 연대한 한일시민사회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른바 ’65년 체제’의 종언을 실현한 역사적 인권선언을 완성했다. 그러나 대법원판결의 이행을 책임져야 할 국가 권력은 오히려 피해자들의 가슴에 또다시 못을 박았다. 윤석열 정권은 한일관계 정상화와 한미일 군사협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제3자 변제안’을 강행했다.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여성 독립운동가 박자혜 생가터 확인

2026년 10월 28일 547

☞ 다운로드: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여성 독립운동가 박자혜 생가터 확인 민족문제연구소, 여성 독립운동가 박자혜 생가터 확인 2026년 10월 29일(목) 오후 4시 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봉로 57길 16, 수유동 433-12번지, 현 우리동네키움센터 강북구 7호점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 소장 김민철)는 독립운동가 박자혜(朴慈惠, 1895~1943)의 생가터를 문헌 조사와 여러 차례의 현장 방문을 통해 최근 확인했다. 앞서 민족문제연구소는 2020년 박자혜 산파(産婆) 터를 확인하였고 현재 서울 종로구 남인사마당 입구에 ‘박자혜 산파 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단재 신채호의 부인이자 독립운동의 동지인 박자혜는 그동안 출생지와 유년 시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부족해 역사적 조명에 아쉬움이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1913년 3월), 해방 후 토지대장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박자혜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생가터의 정확한 위치(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봉로 57길 16, 수유동 433-12번지, 현 우리동네키움센터 강북구 7호점)를 규명했다. 박자혜는 어린 시절 아기 나인으로 입궁했으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궁궐을 나와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다. 이후 조산부 자격을 취득해 조선총독부의원 간호부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1운동 당시 다친 시민들을 치료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리고 동료 간호사들을 모아 독립운동 단체인 ‘간우회’를 조직하고 동맹파업과 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당시 일제 경찰의 감시 보고서에는 박자혜를 “과격하고 언변이 능한 자. 병원 간호사 전원을 동요시킨 주모자”로 기록할 만큼 치열하게 저항했다. 이후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해 단재 신채호와 결혼하고 국내로 돌아와 산파를 운영하며 1926년 12월

[서울신문] 日학자, 하영 증조부 논란에 “한국서 친일파는 매국노…일본 좋아하는 사람 아냐”

2026년 10월 26일 435

“韓서 친일파는 매국노…120년 전부터 사용”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을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과 연결해 해석하는 일본 내 시각에 대해 일본의 역사학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한국에서 ‘친일파’는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협력한 매국노를 뜻하는 역사적 용어인 만큼, 친일파 청산 논쟁을 현재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조선 근대사 연구자인 오노 야스테루 규슈대 준교수는 지난 11일 공개된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친일파는 일본을 좋아하거나 일본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오노 준교수는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전부터 사용된 말로, 매국노라는 의미로 쓰인 지 약 120년이 됐다”며 “일본에서는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4월 일본에서 한국의 친일파 문제를 다룬 저서 ‘친일파-매국과 애국의 한국사’를 출간했다. 앞서 하영은 지난 8월 7일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사 가문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고종을 진료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로 알려지면서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했다. 논란은 일본에도 전해졌다. 일부 일본 언론과 논객들은 조상의 과거 행적을 이유로 후손이 비난받는 상황을 ‘현대판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이 논란의 배경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오노 준교수는 한국의 친일파 청산 문제가 현재 일본에 대한 호감이나 반감으로 설명할

[서울신문] “진실을 파고든 본능적 비평… 문학은 살아있는 염라대왕”

2026년 10월 26일 221

한국문학관장·평론가 임헌영 어린 시절 한국전쟁으로 멸문지화 문인 간첩단 조작 피해자로 옥살이 친일인명사전 펴내 각종 협박 받아 문학, 시대의 산물… 역사와 궤 같아 나쁜 자가 평생 제재받지 않는 현실 권력 비판이야말로 문학의 ‘몸통’ 고픈 말이 많아서 문학을 했다. 굴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깨달은 것은 문학도 역사와 시대의 소산이라는 사실이다. 국립한국문학관장으로 일하는 문학평론가 임헌영(85·본명 임준열)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공사다망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도, 문인으로서 써야 할 글도 한가득 쌓였다. 노(老)작가가 어린아이와 같은 욕심과 열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얼마 전 임헌영을 만났다. 가벼운 오찬을 겸해 그의 문학과 삶을 들여다봤다. “시도 쓰고 소설도 써봤는데 잘 안됐어요. 대학에 와서 평론을 처음 써봤는데 학교에서 유명해지더라고요. 문학평론가는 참 고약한 직업이에요. 일생 책을 봐야 하니까. 어머니가 저더러 ‘책 갉아 먹는 좀이었나 보다’ 하시곤 했어요.” ‘임헌영’이라는 이름은 필명이다. 어떤 사람은 ‘헌영’이라는 이름이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의 실질적 당수였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 1956)에게서 따온 것 아니냐고 섣부르게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임헌영은 이에 대해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제가 북한을 좋아했으면 오히려 박헌영이라고 짓지 말아야죠. (북한에서) 숙청된 사람이잖아요. 그것과 관계없이 그저 안정된 삶을 바라고 지은 이름이에요. 소년기 삶이 안정되지 못했어요. 라디오 하나 없는 동네에서 자랐고 교과서 외에는 책도 없었거든요. 마루가 넓은 집을 뜻하는 ‘헌’(軒)과 길다는 뜻의 ‘영’(永)을 붙였어요. 안정된

[OSEN] ‘친일파 후손’ 전범선, 5대조 이인직 사진 기증 “후손 직접 나서는 경우 이례적”

2026년 10월 26일 223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전범선이 신소설 ‘혈의 누’ 작가이자 대표적 친일파인 5대조 이인직의 실물 사진을 국립문학박물관에 기증하며 뜻깊은 소신을 밝혔다. 전범선은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내년 4월 개관을 앞둔 국립문학박물관을 방문해 집안 대대로 보관해 온 이인직의 실제 사진을 기증한 사실과 함께 소회를 전했다. 전범선은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인직 초상은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른 상상화”라며 “어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십년 넘게 간직하고 있다가 국립문학박물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 내어 연락드렸다”고 기증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내셨던 임헌영 관장님이 잘 찾아왔다며 반겨주셨다”며 “김동환 시인의 아들분이 아버지의 문학 성과를 기리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 후손이 직접 이렇게 나서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관장과의 면담 후 사진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해 “참 홀가분했다”며 “‘한국사 테라피’라는 책을 내고 여러 방송과 강연을 통해 저 스스로 치유가 되는 경험을 했다.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전범선은 “저의 현조 할아버지가 한국사 속에서 명과 암 모두 온전히 기억되길 바란다”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덧붙이며 역사에 대한 담담하고 올곧은 태도를 드러냈다. 공개된 사진 속 전범선은 국립문학박물관을 찾아 임헌영 관장에게 이인직의 액자 사진을 전달하고 기증 인수증을 든 채 환하게 미소 짓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편 전범선은 밴드 ‘양반들’의 리더이자 융합형 창작자로,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