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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식민지역사박물과 건립 썰 풀어본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어떻게 ‘민주주의와 깃발’전을 준비할 수 있었는지 박물관 건립과정을 통해 그 내막을 샅샅이 파헤쳐보았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건립되고 운영되는 박물관! 시민의 이야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박물관 후원 안내 : https://online.mrm.or.kr/8NWK2pe
[YTN] 광복 80주년인데…진주성에 ‘친일파 비석’ 버젓이
[앵커] 올해로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전국 곳곳에 친일 잔재가 있습니다. 호국정신의 상징이라 할 진주성에는 친일파를 기리는 비석들이 버젓이 서 있습니다. SCS 서경방송 김순종 기자입니다. [기자]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이 일어난 곳으로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상징하는 진주성.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만큼, 이곳에는 진주성을 지켜온 이들의 비석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비석들 사이로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있는 이들의 비석들이 섞여 있습니다. 특히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정상진의 ‘시혜불망비’도 있습니다. 정상진은 일제의 전쟁에 쓰일 비행기 ‘진주호’의 구입 자금을 지원하고, 조선특별지원병 진주후원회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친일 인사들의 비석이 진주성에 옮겨진 건 1973년 진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 비석을 이곳에 모으면서 부터입니다. 하지만 비석이 누구의 것인지, 어떠한 내용인지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는 실정입니다. [심인경 /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 : 친일파들 혹은 친일혐의자들 같은 경우에는 그 비석들을 따로 모아서 관리하고,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진주성 외에도 진주 곳곳에는 여전히 수십 기가 넘는 친일 인사들의 비석이 있습니다. 금곡면의 한 마을 입구 앞입니다. 도로변 옆에는 이름 모를 비석이 서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김기태의 시혜불망비입니다. 진주에는 이 같은 비석이 30여 기가량 있습니다. 김기태는 일제강점기 군자금을 헌납하고 조선의 젊은이를 전쟁터에 내보내는 데 가담했습니다. 광복 80주년, 비석과 같은 친일 잔재들의 실태 파악과 정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SCS 김순종입니다.
[프레시안] 이영조-김광동-박선영, ‘망언의 역사’는 되풀이 되나?
[기고] “기억하지 않는 권력은 언제나 똑같은 거짓말을 되풀이한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정치이며, 진실을 둘러싼 싸움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과거의 부정과 왜곡을 제도적으로 수행하는 기이한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이영조, 김광동, 박선영. 이름은 다르지만 셋은 기묘하게 닮았다. 과거에 대한 시선, 역사에 대한 태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가까운 동정심. 이들이 주도했고 현재 주도하는 진실화해위원회는 마치 ‘진실 은폐와 화해 요구 위원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영조, 김광동은 각각 진화위 위원장직을 거쳐 갔고, 박선영은 현재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이들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언행을 들여다보면, 시기만 다를 뿐, 하나의 목소리처럼 완벽히 닮아 있다. 역사인식의 궤적은 기묘하게 일치하고, 그 공통분모는 한결같이 ‘국가폭력의 정당화’와 ‘피해자의 재심문’이다. 먼저 이영조 전 위원장. 그는 제주 4·3과 5·18 민주화운동을 외국 학술회의에서 “폭동”과 “반란”으로 서술했다. 유족과 시민들이 수십 년을 바쳐 바로잡은 역사적 정의를, 영어 몇 줄로 송두리째 되돌렸다. 이 발언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도의 선택이며 국제적 메시지였다. 그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국가의 입장에서 사건을 배열했다. 총 대신 언어를 든 또 다른 진압이었던 것이다. 미국 공공기관 심포지엄이라는 무대에서, 이영조는 명확한 목적어를 갖고, 번역과 어휘를 선별해가며.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계산된 국제적 여론전이며, 역사를 향한 정밀한 재해석의 시도다. 4·3 유족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복권하고 회복해 온
[경기일보] [의정단상]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 취소는 사필귀정
역사 왜곡·미화 움직임 언제든 고개들어 많은 시민 관심으로 맞서 진실 지켜내야 올바른 역사 교육이 대한민국 미래 밝혀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활동 중에 칼럼을 통해 꼭 기록해두고 싶은 일이 있다.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이 진행한 한국사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친일 반민족적 시각을 담은 이른바 ‘뉴라이트’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충격적 ‘사건’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포장된 이 교과서는 친일·독재를 옹호한 인사의 활동을 희석하거나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에 대한 기술에 오류도 담고 있었다. 왜곡된 역사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위험이 다분했다. 이에 국회 교육위원회가 나서 문제점을 철저히 점검했고 결국 수십 군데나 되는 왜곡된 서술을 바로잡도록 교육부에 요청해 상당 부분 수정이 이뤄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현직 역사교사와 연구자로 구성된 검증단, 또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촌각을 다퉈가며 교과서를 분석해준 것에 각별히 감사드린다. 그리고 얼마 전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문제 출판사인 ‘한국학력평가원’이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을 얻기 위해 엉터리 출판 실적을 쌓았다고 판단했다. 즉, 실적을 충족하지 못한 출판사가 교과용 도서를 만들었기에 ‘검정 합격 취소’ 사유가 된다고 봤다. 교육과정을 뒷받침할 핵심 자료인 교과서 검정이 허술했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다만 교육부 장관의 청년보좌역이었던 김모씨가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점을 규정 위반으로 단정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한 점은 매우 아쉽다. 김씨는 엄연히 공무원 신분임에도 소속 부처에 이를 알리지 않고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본인
[뉴스1] 70여년 전 ‘반민특위 습격’ 앞장선 경찰…역사를 대하는 태도[경찰본색]
편집자주 …영화 ‘영웅본색’의 팬 사회부 사건팀 김민수 기자가 ‘경찰본색’을 연재합니다. 본색이란 본디의 생깔이나 정체, 특색을 말합니다. ‘경찰 본색’은 범인을 잡고 시민을 지키고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경찰다움’을 의미합니다. 창설 80주년을 맞이한 경찰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재판받고 있다. 경찰 1·2인자인 두 사람의 재판이 어떻게 결론 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결국 비상계엄 사태도 우리가 돌아봐야 할 ‘역사’가 되리라는 점이다. 특히 당시 경찰 지휘부의 행적들에 대해선 향후 철저한 역사적 평가와 반성이 수반돼야 한다. 문제는 역사적 평가와 반성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 이와 관련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망했을 정도로 세월이 흐른 뒤라면 그러하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다가 제대로 된 평가와 반성은 흐지부지되기 쉽다. 경찰에게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흑역사가 존재한다. 70여년 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습격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방 후 ‘친일 청산’ 염원에 탄생한 반민특위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친일파 청산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뜨거웠다. 미군정이 끝난 후 1948년 친일 청산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됐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반민법으로 정부에서 축출될 가능성이 있는 친일 혐의에 연루된 관리들을 보호하고자 이를 거부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결국 반민법은 그대로 공포됐다. 반민법에 근거해
[경향신문]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랑스러운 역사, 친일과 독재”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해방 80주년’ 기획 ② 민주공화제의 탄생, 1919년? 1948년? 민주공화제, 1919년 시작돼 1948년 공포 제헌헌법 명시 1990년대 ‘건국절 주장’ 등장 ‘임시정부 부정’이 핵심 논리 김문수는 ‘일본 선조’ 발언도 이인 초대 법무, 국적법 관련 “8·15 이전에 국가가 있었다” 대한민국, 남이 준 게 아니라 우리 민족 힘으로 이뤄낸 것 “민주공화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느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919년에 시작됐고, 지금은 10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연구자로서 또 역사운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친일 독재 역사를 비판하면 일부에선 자랑스러운 역사를 얘기해야지 왜 우리 역사를 자꾸 그렇게 비판적으로만 보느냐, 자학사관에 빠졌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자랑스러운 역사는 친일과 독재입니다. 정작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역사는 독립운동의 역사, 민주화운동의 역사, 동시에 통일운동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 얘기를 오늘 하면서 이를 지우려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2025 현재사’ 시리즈 시민강좌의 두 번째 시간 제목은 ‘민주공화제의 탄생, 1919년? 1948년?’.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기도 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24일 강연에서 독립운동에서 싹튼 자랑스러운 민주공화제의 시작과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대한민국 1948년 건국설’의 허구성을 사료와 헌법에 비추어 조목조목 짚었다. 민주공화제 기원은 독립운동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임시헌장 제1조에 민주공화제라는 단어가 들어갔습니다. 유럽 최초의 민주공화국 헌법은 1920년의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라고 얘기하는데,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이 이들 나라보다 1년 더 빨리 민주공화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
[오마이뉴스] 고개 숙인 진화위 직원들 “자격 없는 박선영, 5·18 영령에 대신 사과드린다”
5·18 단체가 연 진화위 위원장 퇴진 촉구 기자회견 찾은 직원들에 눈시울 붉힌 유족들 “5·18 영령과 피해자 유족에게 박선영 진화위 위원장을 대신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 김애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지부 지부장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 직원들이 국가 폭력 피해 단체들이 연 박선영 진화위 위원장 퇴진 촉구 기자회견 현장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직원들의 사과를 듣던 5·18 피해자 유족들을 비롯한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고맙습니다”, “여러분 잘못이 아니에요”라면서도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용만 (사)5·18서울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옛날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지각이나 결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언제나 그 자리에는 지각이나 결석을 한 사람이 없지 않나. 사과해야 하는데 사과 안 하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대신 사과를 하는 아이러니와 역설이 우리 역사에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28일 오후 3시 (사)오월어머니집, (사)5·18서울기념사업회를 비롯해 27개 국가 폭력 피해 단체들은 서울 중구 진화위 앞에서 박선영 위원장 퇴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화위 직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카메라 뒤에서 자리를 지켰다. 박선영 위원장은 24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 질의에 “아직도 논란이 많이 있다”는 사실 무근의 ‘망언’을 내놔 퇴장당했다(관련기사 : 사실 무근 ‘5.18 북한군 개입설’에 “아직 논란 있다”는 진화위원장 https://omn.kr/2d7jf). 5·18 피해자 유족들 “박선영 위원장, 마지막 양심 남았다면 사퇴하라” 김애자 진실화해위지부 지부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박선영 위원장은 다시 한번
[한겨레] ‘한국의 호찌민’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별세
1991년부터 양심수후원회 이끌어 남민전 사건으로 3년4개월 옥고 비전향장기수도 ‘양심수’ 규정해 북한 송환 운동 적극적으로 펼쳐 ‘양심수의 대부’로 불리던 권오헌(88) 사단법인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민가협 양심수후원회에서 2019년 개칭) 명예회장이 25일 낮 12시9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2017년 폐암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1937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등학교를 나와 고향에서 신용협동조합 설립과 야학 등 농촌 사회운동을 펼친 이후로 평생 사회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헌신했다. 1964년 서울로 와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1968년에는 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에 가입해 당원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국장까지 지냈다. 유신 말기인 1979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간첩 조작한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3년4개월 옥고를 치렀다. 당시 물고문을 당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뒤로 찬 수갑이 끊어지기도 했다고 고인은 훗날 회고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 ‘평생 청년’으로도 불린 고인은 1989년 출범한 양심수후원회를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이끌었다. 이 단체 초대 회장은 고 문익환 목사이다. 1985년 설립된 민가협이 양심수 가족 단체라면, 후원회는 양심수 석방 운동과 체계적 후원을 목표로 하는 대중조직 성격의 단체다. 그는 후원회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비전향장기수도 양심수에 포함시켜 장기수들의 북한 송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성과를 내기도 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고인의 고희 기념문집(2006년)에서 절친인 권 명예회장을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찌민에 견주기도 했다. ‘체구나 외모, 단순 소박 검소한 생활, 진솔성, 투지와 의지, 보잘것없는 학력(초등학교 졸업)’ 등의 측면에서 닮은 데가 많다는 것이다. 고인의
민족사랑 202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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