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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한겨레] 결국 뒷통수만 맞다 끝난 윤석열표 대일 외교

2025년 2월 3일 237

‘윤석열표 대일외교’의 최종적 실패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하시마(군함도) 탄광을 포함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면서 했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여전히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거듭 확인되면서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일본에 양보했지만, 일본은 과거사 왜곡으로 양보에 화답하면서 한·일 관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이하 위원회)는 31일(현지시각) 일본이 제출한 메이지산업혁명 유산 관련 후속조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증언 등을 전시해달라는 한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의 요구사항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오히려 2020년 6월 도쿄 신주쿠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에 “‘한국병합 재검토 국제회의’에서 국제법의 귄위자인 구미의 법학자로부터 일한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법 관행에 비춰 ‘무효’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가 제시됐다”는 내용의 전시물을 설치해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권침탈의 합법성을 주장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23년 3월 한·일 관계 최대 쟁점이었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제3자 변제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양보안을 발표하면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촉구했다. 이에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2023년 5월 방한 당시 한국 쪽 강제동원 해법을 언급하면서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언급하는 등 최소한의 형식적인 측면이나마 성의를 보이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8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오마이뉴스] “야스쿠니에서 애비 찾아라”… 이 곡 부른 친일파 가수의 정체

2025년 2월 3일 203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최팔근 일본은 한국인 2만 1000여 명을 억류하고 있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강제동원됐다가 전사한 이 희생자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공범이자 일왕의 충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일본은 그들이 일왕을 위한 전쟁에서 전사했다며, 위패를 안치해 놓고 신(神)으로 추앙한다. 그들이 약 246만의 전체 전사자들과 더불어 하나의 신으로 승화됐다면서, 전체를 합쳐 제사 지내는 합사(合祀)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불명예스럽고 모욕적인 합사에 맞서 한국인 후손들은 위패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17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국인 합사자 유족 27명이 제기한 합사취소소송을 배상책임 기간인 20년의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유족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합사 철회다. 이와 더불어 사과 및 유골 양도와 손해배상액 ‘1엔’도 청구했다. 최고재판소가 기각한 것은 1엔 배상이다. 합사가 정당한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합사가 옳지 못하다는 점은 이런 판결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인들은 자기 조상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동원돼 희생된 것에도 억울해하지만, 그렇게 희생된 조상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신으로 추앙되는 것에도 억울해한다. 한국인들이 이런 한을 갖게 된 것은 ‘죽어서 야스쿠니신사에 묻힐 것’이라며 한국인들을 자신들의 전쟁터로 끌고 간 일본제국주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제를 돕겠다며 한국인들의 참전을 부추긴 친일파들 때문이기도 하다. 가수 최팔근도 그런 부역자 중 하나다. 최팔근의 나니와부시가 미친 악영향 최팔근은 일종의 J-팝 가수다. 판소리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는 나니와부시(浪花節)가 그의 장르다. 2017년도 <동아시아문화연구> 제69집에 수록된 박영산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오마이뉴스] 김원봉과 함께 기억해야 할 ‘밀양사람’ 윤세주

2025년 1월 31일 102

최필숙 작가, 소설 <끝나지 않은 석정의 노래>로 석정 윤세주 조명한 까닭 “친일파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이 소설을 외면할 권리는 없다. 아니, 설령 친일파라 할지라도, 이 작품을 다 읽기도 전에 옷깃을 여미며 두 눈을 감게 될 것이다.” 김춘복 소설가가 최필숙 작가의 소설 <끝나지 않은 석정의 노래>(경상국립대 출판부 기획, 지앤유 간)를 읽고서 보낸 찬사다. ‘독립군 며느리’를 자처하는 최 작가가 펴낸 이번 소설을 읽으며 김 소설가의 말처럼,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책을 손에 잡은 지 며칠만에 독파했다. 이 소설은 의열단, 조선혁명간부학교,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로 활약했던 석정(石鼎) 윤세주(1900~1942,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의 출생과 성장, 항일투쟁, 그리고 죽음까지 그려놓았다. 영화 <암살>에서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라는 대사로 더 유명한 약산 김원봉(1898~1958) 장군 등과 함께 항일 무장투쟁의 주역인 윤세주의 치열한 독립투쟁기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최필숙 작가가 많은 밀양 독립운동가 가운데 오롯이 쫓은 윤세주는 가장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웅변가이며 이론가였고, 예리한 판단으로 편집‧방송을 맡았으며, 적극적인 항일운동으로 후진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훗날 존경 받는 인물이 된 윤세주는 1919년 밀양 3‧13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그해 11월 만주에서 의열단 창립에 가담했고, 1920년에는 밀양 폭탄 의거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필숙 작가는 우리가 일제강점기 역사의 빈틈을 알지 못하는 속에, 윤세주의 행적을 통해 인물 간 대화를 복기해 놓았다. 석정과 의열단의 항일투쟁기는 그 어떤

[JTBC] 일제 강제동원 피해 승소 이끌어 낸 이춘식 옹 별세…”국민에게 고맙고 줄 게 없어 미안해”

2025년 1월 27일 213

17살 때 “기술 배우러” 간 일본서 강제노동 2018년 대법원 ‘손해배상 승소’ 이끌어 내 일제 강점기 전범 기업에 강제 징용된 뒤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빼앗긴 시간에 대한 배상을 받는데 앞장 서왔던 이춘식 할아버지가 오늘(27일) 오전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환으로 지난해부터 광주광역시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하던 중이었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온 시민단체들은 “우리들의 버팀목이자 역사의 산 증인으로 피해자의 존엄을 직접 보여주셨다”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간 17살 소년 이춘식은 제철소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기술을 배우긴 커녕 임금조차 주지 않는 노동착취가 3년 넘게 이어졌고 일제가 패망한 뒤 고향에 돌아온 그에겐 빈손과, 고된 노동으로 얻은 흉터만 남았습니다. 60년이 지나서야 이춘식은 포기했던 징용의 대가를 받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5년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함께 고생한 동료 3명과 같이 시작했지만 13년 뒤인 2018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줄 때 살아서 그 소식을 들은 건 이춘식 혼자였습니다. 이춘식은 승소 판결을 들은 2018년 10월 30일 법원을 나오면서 “오늘 나 혼자 나와서 내가 마음이 슬프고 눈물이 많이 난다”, “같이 나와서 이렇게 판결받았으면 엄청 기뻤을 텐데 혼자 나와서 눈물이 나고 울음이 나오네”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원 승소 판결 뒤에도 일본 정부와 가해

[YTN] 계엄 모의 ‘삼청동 안가’ 미스터리… 대통령의 은밀한 밀실, 사실은

2025년 1월 27일 97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5년 1월 24일 (금)□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출연자 :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아나운서 (이하 박귀빈) : 2024년 12.3 계엄 회동은 롯데리아에서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지도에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공간, 바로 ‘삼청동 안가’가 그곳인데요. 이곳은 박근혜 국정농단에서도 등장하는 곳이죠. 탄핵 때마다 등장하는 ‘삼청동 안가’. 이 공간에는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이 있습니다. ‘삼청동 안가’의 미스터리 이분과 풀어보겠습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 안녕하십니까? 방학진입니다. ◆ 박귀빈 : 네 일단 ‘삼청동 안가’ 이번에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 뉴스를 통해서 들은 말인 것 같습니다. 어디고 어떤 곳입니까? ◇ 방학진 : 지도에서 검색하시면 나오는데요. 지붕만 나오죠. 삼청동 145에 6번지 그다음에 19번지, 20번지, 32번지 이 4개 지번이 붙어 있거든요. 그래서 지도에서 보시면 이제 골목길 로드뷰까지는 안 나오고 왜냐하면 차가 못 들어가니까요. 지붕만 나오는 곳이고 거의 삼청동이 요즘에 핫플레이스가 돼가지고 외국인들이 주말만 되면 한복 입고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곳이고 거기 맛있는 식당 카페도 있어서 그 앞길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공간인데 그 뒤쪽 골목으로 50m만 가면 갈 수가 없는 그런 곳이죠. ◆ 박귀빈 :

[오마이뉴스] ‘역곡동 고택’은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집이다

2025년 1월 27일 290

경학원(經學院) 사성(司成)을 지낸 유학자 출신 박제봉 2021년 부천을 뜨겁게 달궜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역곡동 고택에 대한 부천시 향토문화재 심사였다. 2019년 12월 역곡동과 춘의동 일대가 ‘부천역곡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택에 대한 보존 유무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역곡동 고택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은 2020년부터 시작되었다. 경기도에 경기도 지정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2020년 11월 26일에 열린 제7차 유형문화재분과 회의에서 변형으로 인해 문화재 지정가치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지정되지 못하였다. 경기도 지정문화재 지정에 탈락한 것이다. 이어 부천시 향토문화재에 신청하였다. 하지만 부천 지역 내에서는 이 집이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집이라는 그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다수의 언론에서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 고택을 보존해야한다는 기사를 보낼 뿐이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이하 부천지부)는 2021년 3월 23일 부천시에 친일파 박제봉의 집 앞에 단죄비(斷罪碑)를 세우고, 시민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한 부천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과 시민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시청과 중앙공원 그리고 부천시청역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1인 시위는 5월 17일 시작하여 7월 3일까지 총 33회 진행하였으며, 특히 이 기간에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였는데도 많은 회원이 참여하였다. 부천지부는 왜 성명을 발표하고 1인 시위를 했을까 부천지부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부천에서는 친일파 박제봉에 대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며,

민족사랑 2025년 1월호

2025년 1월 23일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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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

2025년 1월 22일 158

[이코리아] 최근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신사에 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빼달라”라는 유족들의 요구를 기각했다.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는 다른 소송을 통해 야스쿠니 합사 취소 결정을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 <중략> ———— 2001년부터 유족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야스쿠니 신사의 강제합사를 즉각 철폐할 것을 촉구하며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들과 일본·오키나와의 양심 세력과 연대하여 싸우고 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유족들이 선조들의 야스쿠니신사 합사를 일본 정부에 동의해 준 적이 없다”라며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야스쿠니 신사 조선인 합사 명부를 넘긴 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 여서 유족들은 그 이전에 합사 사실 자체를 알 수가 없었는데 1959년을 기준으로 제척기간 20년을 적용하는 것 말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는 다른 소송을 통해 야스쿠니 합사 취소 결정을 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후원을 원하는 이는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후원하기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후원회원은 다달이 펴내는 ‘민족사랑’ 회보를 받아 볼 수 있으며 연구소가 마련하는 토론회, 워크숍, 전시회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연구소에서 출간하는 책, 교육 강좌의 할인 혜택도 받는다. 유호경 기자 <2025-01-20> 이코리아 ☞기사원문: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

[오마이뉴스] 52년 백골단의 원조… 전주 친일 부호가 한 일

2025년 1월 20일 211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백남신 백골단은 이승만 대통령의 퇴임이 임박한 시점에 등장했다.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4년제 대통령에 당선되고 24일 취임식을 가진 이승만의 임기 만료 시점이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상반기에 논란이 됐다. ‘7월 19일이다’, ‘7월 23일이다’와 더불어 ‘정부수립일인 8월 15일이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런 시기에 공포심을 조장하며 이승만을 도운 것이 백골단과 땃벌떼·의혈단·민족자결단 등의 극우단체다. 여소야대 때문에 국회 간선제로는 재선이 힘들었던 이승만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헌법 절차를 무시한 채 직선제 개헌을 밀어붙였다(발췌개헌·부산정치파동). 전쟁 때문에 선거 실시가 힘들면 현 대통령이 계속 재임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결국 그의 뜻대로 6월 23일 국회에서 ‘현 대통령 임기는 8월 15일까지’, ‘선거 실시가 힘들면 계속 재임’이 결의되고, 7월 4일 국회에서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됐다. 백골단 등은 국민들과 이승만 반대파를 상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5.14)한 이승만이 계엄령을 선포(5.25)하기 직전인 23일이었다. 다음날 나온 <동아일보> 2면 우상단에 따르면, 천여 명의 극우 시위대가 임시 국회의사당인 경남도청을 포위했다. 마이크가 장착된 택시 4대에서는 선전 방송이 나오고, 청년들을 태운 트럭에서는 삐라가 살포됐다. 그런 가운데 백두건을 두른 청년 약 300명이 ‘반민족 국회의원들'(이승만 반대파)의 이름을 적은 십자가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은 꽹과리도 치고 고함도 질렀다.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며 의사당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사태는 백골단 명의의 사전 예고가 있은 뒤에 일어났다. “데모대가 일대 소동을 일으키기에 앞서

[오마이뉴스] 내란 모의 ‘아지트’로 전락한 삼청동 안가, 해체할 때가 왔다

2025년 1월 20일 330

[제안] 삼청장과 그 터, 독립운동가 김규식 기념공간으로 만들어 역사교육에 활용해야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3월 “과거 권위주의 시대 밀실정치의 산실이었던 안가를 철거하고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라고 발표하면서 궁정동, 청운동, 삼청동 등에 있는 안가 12채 모두 철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결과 박정희가 ‘대행사’를 즐기다 암살된 궁정동 안가가 7월 1일 무궁화 동산으로 탈바꿈하여 공원이 되면서 궁정동, 청운동 안가는 사라졌다. 삼청동 안가의 경우 서울시와 협의해 처리하되 기념품 가게까지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혔다. 하지만 삼청동 안가는 헌법재판소장 공관,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 윤석열 일당의 불법 계엄과 내란 모의의 아지트가 되고 말았다. 서울중앙지검이 작성한 전 국방부장관 김용현의 공소장에는 ‘삼청동 안가’가 네 차례 등장한다. 또한 윤건영 의원은 윤석열 정권 초기 삼청동 안가를 술집 바(bar) 형태로 개조하려 했다는 제보도 공개했다(필자는 현장 답사와 소유관계 등을 미뤄볼 때 술집 바 형태로 개조하려던 공간은 현재 고급 한옥과 마당이 있는 삼청동 145-20번지의 안가로 추측한다). “대통령 윤석열은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2024. 3. 말 ~ 4. 초순경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대통령 안가에서 당시 국방부장관 신원식, 국가정보원장 조태용,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 및 피고인(당시 경호처장)과 함께 식사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시국상황이 걱정된다고 하면서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였다.” “대통령 윤석열은 2024. 5. ~ 6.경 위 삼청동 안가에서 김용현 및 여인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