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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정책브리핑] [기고] ‘군함도’ 국제 약속 안지킨 일본, 고립을 자초하다

2021년 7월 28일 258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l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모처럼 상식적인 이야기가 중국에서 전해졌다. 지난 7월 16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의제 중 하나인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석탄산업(이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등재 후속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초안대로 채택했다. 초안은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산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이 올해 6월 7일부터 9일까지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 방문과 온라인 회의를 통해 정리한 보고서와 결론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조사단의 임무는 ①각 시설의 전체역사 해석전략 ②한국인 등 강제노동 이해 조치 ③희생자 추모 조치 ④국제 모범 사례 ⑤당사자간 대화 등 다섯 가지 사항에 대해 일본정부가 2015년 등재 당시, 그리고 이후에 한 약속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를 조사해서 보고하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조사단은 위원회 결정의 여러 측면이 준수되었고 일부는 모범적인 방식으로 준수되었고 당사국의 여러 약속도 충족되었지만,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등재 당시 당사국이 한 약속이나 등재 당시와 이후에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아직 완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조사단 보고서, 22쪽).” 디지털 해석 전략이라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증강현실(AR) 지도와 몰입형 다중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여 세계적인 모범 사례를 구축했다고 평가했으나 한국 정부와 한일 시민단체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문제로 제기한 ‘전체 역사’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충분하며”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강제노동에 대한 기술이 없고, 희생자 추모를 기리는 시설도 없음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일 양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 현장 방문과 관련 자료 조사 등을

[KBS1Radio] “일본의 군함도 역사왜곡, 더이상 국제사회에 통하지 않아… 유네스코 권고 이행해야”

2021년 7월 28일 109

2021년 7월 28일 [주진우 라이브] KBS 1 Radio FM 97.3MHz 월-금 17:05~19:00 ▷[훅인터뷰]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 일본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역사왜곡이 아닌 과거사 직시의 현장이 되어야

[단디뉴스]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⓶ ‘진주국민보도연맹 대학살 사건’

2021년 7월 29일 43

진주 민간인 학살 유족 증언록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1주년이다. 전쟁과정에서 남북한에 걸쳐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학살과 함께 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도 자행되었다. 진주에서는 명석면과 용산면에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를 중심으로 많은 민간인학살이 있었다. 단디뉴스는 민간인학살 유해 공동발굴단에서 제1차~11차까지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김영희님의 글을 통해 전국각지 유해발굴 현장의 기록과 발굴을 둘러싼 사연, 증언록에 실린 생생하고 가슴 아픈 증언, 남겨진 과제 등을 15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연재가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고 화해와 치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 ▲ 진주국민보도연맹 사건 배경 한국전쟁 기간 동안 진주지역은 왜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보도연맹(保導聯盟)’ 가입자와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을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진주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사회-문화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주는 물산이 풍부한 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중요한 거점 행정단위인 ‘목(牧)’이 설치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정 3품에 해당하는 목사(牧使)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00년 이후부터 세도정치의 발호로 인해 국가 기강이 무너지면서 각종 수탈과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진주는 이 지역만의 사회-문화사적인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진주지역이 갖는 독특한 특징을 규정 지울 수 있는 역사적 사건 세 가지가 최초로 발발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큰 사건들은 진주지역을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내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결국 한국전쟁 기간에 민간이 대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합뉴스] 시민사회 원로들 “日간토학살 진상규명·추모사업해야”

2021년 7월 26일 99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 시민사회 원로들은 26일 성명을 내고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추모사업 진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2023년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해로 이제라도 일본 정부는 진상을 공개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와 국회도 나서 자료 보존과 공개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9월 1일을 국가 추모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송인동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시민모임 독립 이사장,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 원로 17명이 참여했다. <2021-07-26>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사회 원로들 “日간토학살 진상규명·추모사업해야”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최소 6600여명의 학살… 일본 의원도 나섰는데 우리 의원은 왜 말이 없나 ☞오마이뉴스: “일본을 벌하라, 나는 죄가 없다” 예순 두군데나 찔린 조선인이 남긴 유언

민족사랑 2021년 07월호

2021년 7월 26일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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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 군함도 역사왜곡은 침략전쟁 인정 않겠다는 것”

2021년 7월 25일 308

[한겨레S] 기획 인터뷰/신카이 도모히로 강제연행 재판 지원모임 사무국장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결정문 채택 “군함도 강제노역 피해 외면 유감” 일 강제동원 피해 규명 활동 시민들 “피해 목소리 들을 때 역사 숨쉬어”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 피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 추모 조치 역시 미흡했다는 데 강한 유감을 표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22일 일본 나가사키현 군함도(정식 이름 하시마·端島) 등에서의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강제동원 진실을 감춘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통상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유네스코가 ‘강한 유감’이란 표현까지 동원해 날을 세운 것은 일본 정부의 태도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도쿄 신주쿠 총무성 제2청사 별관 건물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과거 군함도 주민 입을 빌려 “군함도에서 (조선인이) 괴롭힘당했다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친절했다”는 식의 가짜뉴스 홍보를 하고 있다. 애초 일본 정부는 2015년 7월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제39차 회의에서 군함도 포함 메이지산업혁명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조건으로, 이 센터를 통해 군함도 등에서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5년이나 뜸을 들인 끝에 문을 연 센터는 오히려 강제동원 역사 왜곡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재 때 해당국이 약속한 이행 조건을 2년마다 점검하는데, 지난달 조사단을 파견한 뒤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알리라는 권고를 여태껏 이행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지난 12일 누리집에 공개했다.

[오마이뉴스] ‘욱일기’ 삭제 스위스 게임업체 “의도하지 않았다” 사과

2021년 7월 26일 43

[보도 그 후] ‘미니풋볼’ 제작사, 메일로 입장 보내와… “한국인에 상처될 줄 몰랐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 이상 다운로드 한 구글플레이 인기 게임 ‘미니풋볼(Mini Football)’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경기장이 삭제 조치됐다. 19일 <오마이뉴스> 기사 <천만 다운 게임에 버젓이 등장한 전범 상징 ‘욱일기’>(http://omn.kr/1ui8h)가 나간 직후에 취해진 조치로, 해당 내용을 제보한 김아무개씨는 “이렇게 빠르게 변화가 생길 줄 몰랐다”면서 “이제 마음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미니풋볼을 제작한 미니클립 측은 보도 당일 오후 6시께 기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이 사안에 대해 사과한다”면서 “미니클립 측은 욱일기 경기장이 (한국인에게) 상처가 될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게임에서 제국주의 깃발이나 메시지를 묘사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이와 같은 문제를 유발한 인식부족에 대해 사과드린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 마디로 욱일기의 의미를 몰라서 사용했다는 것인데, 앞서 18일 <오마이뉴스>는 미니클럽 측에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다르지 않은 일제의 상징(욱일기)을 게임에 사용한 의도’를 직접 물은 바 있다. 앞서 개발사 미니클립은 지난 9일 공지를 통해 “7월 15일 떠오르는 태양 시즌(Rising Sun Cup)이 시작된다. 새로운 이벤트가 8월 12일까지 이어진다”라고 알리면서 게임 속 경기장인 ‘Rising Sun(욱일)’ 운동장 바닥에 욱일기와 같은 무늬를 새겨넣었다. 해당 게임에서 경기장 바닥 배경으로 사용된 ‘욱일’ 문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사용한 제국주의 깃발 모양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작성한

[오마이뉴스] 춘향 영정 공모하겠단 남원시… 납득할 수 없는 이유

2021년 7월 26일 41

[주장] 최초 지역축제 춘향제 위상, 최초 영정 돌려놔야 제대로 정립 날도 뜨거운데 남원은 ‘춘향영정 문제’로 나날이 더 뜨겁다.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춘향영정 봉안 문제는 잘 모르는 시민들에게는 한심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최근 <연합뉴스>(7.22) 기사(친일 작가가 그린 남원 광한루원 ‘춘향 영정’ 교체 왜 늦어지나)에 달린 댓글만 봐도 ‘소설 속의 인물인데 무슨 영정이냐? 춘향이한테 제사도 지내냐?’ 하는 볼멘 소리가 끝도 없다. 춘향제는 1931년에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 축제다. 일제강점기 남원 예기권번의 수기생이었던 최봉선의 제안으로 춘향 사당을 만들고 영정을 봉안한 뒤 제향을 올린 게 춘향제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최봉선과 전국의 예기권번 기생들, 그리고 남원의 뜻있는 인사들은 왜 춘향제를 시작했을까? 당시 권번의 기생들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창기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전통예술의 맥을 잇는 예술인들이었다. 그런 기생들이 춘향의 제사를 지낸 이유를 알면 영정 문제를 결코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할 수 없다. 춘향제는 남원 사람들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전국의 예기권번에서 성금을 냈고 100여명의 대표 기생들이 참여해 제향을 올리고 광한루에서 판소리 명창 대회를 했으니 가히 전국구 행사였다. 구경꾼들도 전국에서 수만 명 씩 몰렸다. 춘향사당을 짓는 운동은 1929년부터 시작되었다. 1929년은 만세운동 10주년이 되는 해였고 전국의 신간회와 청년동맹, 형평사 같은 항일운동 단체에서 제2의 만세운동같은 대규모 시국대회를 준비했다가 발각이 되어 조직이 와해되기 시작한 해다. 11월에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검거되자 신간회가 다시 일어서고자 했으나 탄압을

[경기신문] 일제잔재 청산, 지속적 실천운동 돼야

2021년 7월 25일 46

경기도, 친일잔재 청산 관련 조례 발의… 2019년 9월 18일 도내 유·무형 문화유산 대상, 잔재 조사연구 용역… 지난해 4월 완료 이재명 경기지사, ‘2021년 경기도 친일청산 원년’ 선포… 청산 박차 생활 속 무형의 잔재 주목… 실질적 실천운동 확산 노력 우리가 일제잔재를 청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고유문화가 불순한 의도에 의해 훼손되거나 왜곡, 심지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인 문화가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화를 위한 민족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강압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주입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한국인이 ‘싸움이나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하는 상태’를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말이 있을까. 일제잔재 청산의 문제는 이제 ‘지속적인 실천운동’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더 이상 간헐적인 지적과 막연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 나갈 것인가 하는 방향성과 대상의 채택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경기도에서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 복원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 2019년 9월 18일이다. 이 조례는 일제에 의해 도에서 사라진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복원하고 지원하는데 필요한 사항 규정을 목적으로 한다고 제1조를 통해 명시했다. 또한, 4조에는 도지사가 실태조사를 할 수 있고, 전문성과 인력을 갖춘 연구기관이나 법인 또는 단체에 이를 의뢰해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다. 사업의 경우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 연구, 문화 복원 및 청산, 문화에 관한 출판물 발간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관리와 교육·홍보,

[프레시안] 철거냐 존치냐, 서울 복판 박정희 흉상을 보며

2021년 7월 23일 336

[손호철의 발자국] 59. 서울 문래근린 공원 : ‘역사전쟁의 현장’ 5‧16쿠데타의 발상지 “자, 이제 작전을 시작합시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6관구 지하벙커에는 별 두 개가 달린 모자를 쓴, 한 마른 군인이 날카로운 눈매로 앞에 모인 장교들에게 결연한 어투로 말했다. 한국현대사를 근본적으로 바꾼 5‧16쿠데타가 시작된 것이다. 5‧16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는 당시 제2군 부사령관이었지만, 쿠데타 1년 전까지 서울을 방어하는 이곳 6관구(이후 수도경비사령부로 변함) 사령관으로 근무해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곳이 서울중심부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라는 점을 고려해 박정희는 이곳을 5‧16쿠데타 지휘본부로 선택했다. 사전에 모의한대로, 이날 새벽 출동한 김포의 해병대와 공수특전단 등 2500여 명의 군인들은 한강대교애서 가벼운 총격전을 한 뒤 한강을 건너 육군본부와 서울의 주요시설을 장악했다. 4‧19혁명이라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피로 얻어낸 민주주의가 1년 만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 역사적인 장소는 1985년 6관구의 후신인 수도경비시령부가 이전하면서 문래근린공원으로 변했다. 이 공원은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서 내려 5분정도 걸어가면 만나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많은 지역 시민들이 산책을 나오는 이곳이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서울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주민들 중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이 근처에 살았었지만, 전혀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 특히 이 지하벙커는 공원 제일 구석에 위치해 있고 굳게 닫힌 그 입구에는 아무런 표시조차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