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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5월 민연 포럼 “3·1혁명”과 대한민국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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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2025년 민족문제연구소 활동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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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빈 모금] 오키나와 ‘한의비’를 함께 기억해 주세요
※ 해피빈 모금 참여 같은 모양의 ‘한의비’ 경북 영양과 오키나와 요미탄에는 같은 모양의 브론즈로 만든 ‘한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건립됐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전개된 곳입니다. 지형이 변형될 만큼 폭격을 받았고 일본군의 무모한 작전에 수많은 주민들이 휘말렸습니다. ‘한의비’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소중한 목숨들을 빼앗고 동아시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우리는 ‘한의비’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기록하려 합니다. 밭에서 일하다 강제동원된 강인창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강인창은 1944년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밭일을 하다 강제동원됐습니다. 그는 미군의 공격에 대비해 아카섬에 배치됐으나 미군이 섬을 점령하자 일본군은 산속으로 피난하며 조선인 군부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일본군은 조선인에게 식량도 나누어 주지 않았고, 벼나 고구마를 훔쳐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머니에서 겨가 발견된 조선인 군부 13명을 도둑으로 몰아 총살했습니다. 총살 직전 살아난 조선인 군부 7인은 미군에 투항해 약 1년간 포로 생활 뒤 귀국했지만 오키나와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동료들을 끝내 잊지 못했습니다. 신혼 2개월 만에 강제동원된 서정복 1944년 6월, 경북 달성 출신 서정복은 신혼 2개월 만에 오키나와 본섬 남서쪽 미야코섬으로 강제동원 되었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일본인 상관은 조선인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네 교육이 잘못되었다”며 서정복을 대나무 막대로 때리고 구타했습니다. 다행히 미야코섬에는 미군이 상륙하지 않아
[신청] 202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수련회 (6.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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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2025년 공익법인 공시(기부금품의 수입 및 지출명세서 포함)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명세서>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기부금 수익인식 방법에 따라 작성했습니다. 현금주의를 바탕으로 집계한 수입, 지출 내역이라 발생주의로 기록한 운영성과표 지출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더 자세한 제정현황은 홈택스 결산 공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홈택스 결산서류 등 공시자료 내려받기 홈택스 ‘공익법인 결산 등 공시열람’ 바로가기
[채용공고] 『민족문제연구소』 활동가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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