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랑
[시론] 북핵 위기, 진단과 전망
북한은 지난 7월 두 차례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마침내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이 현실화되었다. 동북아 전략 구도의 게임체인지 순간이 다가왔다. ICBM은 현대 군사 기술의 집약체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속옷도 제대로 못 만드는 북한의 ICBM 개발이 미스터리라고 하면서, 성공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첫째, 지난 수십 년 간 ICBM 관련 과학자들을 꾸준히 관리했으며, 둘째 스스로 확보한 비공식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사일 개발 비용을 감당했고, 마지막으로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에 정권의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연합뉴스』2017.7.10).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워싱턴포스트 분석보다 뿌리가 더 깊다. 북한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고립무원의 외톨이가 됐다. 이에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했다. 모든 국가자원을 다 쏟아 부었다. 북한 스스로 핵개발 의도를 미국의 핵위협 대처, 재래식 무기의 엄청난 비용 부담에 따른 코스트 측면에서 핵개발, 그리고 민족통일의 원동력 구축임을 밝히고 있다. 북한의 ‘피포위 의식’과 미국의 대북 핵위협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통일 무기로서의 핵’이라는 데에 북핵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은 실패했다. 왜 실패하고 말았는가?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우려하면서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가 군산복합체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었고, ‘불량국가’와의 협상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제국 미국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미국은 좀체 북한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더위 사냥’은 전시총동원으로
“찌는 듯이 무더운 남방에서는 아귀 같은 미국과 영국을 쳐물리기 위한 싸움이 매일같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의 더위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43년 8월 1일, 국민 총력조선연맹에서 발간한 제32호 애국반 회보 다. 애국반 회보는 1941년 9월 인가를 받아 매 월 1일에 발행되던 간행물로 내용은 전시상황 에서 후방은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특히 32호는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에 발행한 것으로 주요 기사의 내용도 여름 철 후방의 전시준비태세에 관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더위에 지지 말고 몸 을 튼튼히 해서 근로보국에 힘씁시다’에서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더 덥게 느껴지니 더위를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며, 전투 중 인 병정들을 생각하면 덥다는 생각조차도 하 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몸이 약하면 더 위에 지게 되니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방법 으로 ‘신사나 절, 공원을 청소’, ‘개천이나 하수 도, 농촌이나 공장에 근로봉사’, ‘5리쯤 되는 데 는 걸어 다닐 것’ 등을 소개한다. ‘전시살림은 이러케!’에서는 전쟁은 제일선의 병사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 일터, 거리 등 싸움터가 아닌 곳이 없으며 특히 부엌에서 밥 지어 먹는 것도 ‘전쟁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생 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싸움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활전선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 어나고 지각과 결근하지 말라고 선동한다. 저금은 나라의 힘이며 시중에 돈이 돌지
식민지역사박물관 주변 답사코스
[국치의 길을 걷다, 남산권역] [이방인의 길에서 독립을 꿈꾸다, 용산권역1] [침략전쟁의 길에서 민족의 수난을 보다, 용산권역 2]
[여는 글] 역사적폐 청산의 상징!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함께 해주십시오
이이화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 안녕하십니까? 격변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적폐 청산을 위해 달려온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저는 항상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원 여러분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이라는 무겁지만 행복한 소임을 제게 맡겨 주셨으니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팔십 평생 마지막 역사적 소명으로 생각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고대하며 하루하루 결의를 다집니다. 오늘도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일본은 아베 총리 집권 이후 더욱 노골적으로 일본군‘위안부’와 독도 문제뿐 아니라 일제 침략사 전체를 왜곡하거나 삭제, 미화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 잔재들이 다시 부활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오도하고 있는 꼴입니다. 주변국인 중국도 1990년대부터 이른바 ‘동북역사공정’을 내걸고 우리 고대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왜곡하는 억지를 부려왔습니다. 이는 단지 고대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남북통일 문제에도 중요한 논란거리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난 보수정권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이를 국정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역사도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청산했지만 우리에게는 친일의 잔재와 반민주적인 행태 등 뿌리 뽑아야 할 적폐가 여전히 많습니다. 오늘 친일청산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대중들에게 깊이 이해시킬 수 있을지 더 고민하고 더 실천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근래에 크고 좋은 박물관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국민성금으로 조성된 독립기념관에 가보면 수장고에 많은 자료들을 수집해 놓았습니다. 드넓은 야외 공간에 각종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이순우 책임연구원 흔히 용산(龍山)이라고 하면 용산역 앞이거나 미군기지 일대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원래 용산은 마포 바로 상류에 위치한 포구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단위의 하나인 ‘방(坊)’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용산방’은 청파역, 공덕리, 마포나루 등에 걸쳐 있으며 대개 만초천(蔓草川)을 경계로 서쪽 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해가 쉽다. 이 물길의 동쪽에 해당하는 구역으로는 한강 모래펄에 자리한 사촌리와 신촌리 등이 살짝 포함된 것이 전부이다. 애당초 용산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1899년 12월 ‘용산행’ 전차가 처음 개통되었을 때의 종착점이 지금의 원효로 끝자락인 한강변에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와는 달리 용산역 방향으로 전차선로가 부설된 것은 1910년 7월에 가서야 이뤄진 일이며, 그나마도 이곳에는 종전의 용산과 구분하기 위해 ‘신용산(新龍山)’ 종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경인철도 개통 당시 만초천 물길의 동쪽 지역에 ‘용산정거장’이 개설되면서 위치관념이 약간 변경된 탓도 없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용산 주변의 지리적 위상관계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러일전쟁 직후 일본군 병영지의 건설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이 당시 일제가 이른바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1904년 2월 23일)’에 근거하여 서울지역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한 대상지로 정한 곳은 갈월리, 이태원, 둔지미, 서빙고 일대였는데, 이곳은 원래 ‘둔지방(屯芝坊)’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편의상 ‘용산군영지’로 명명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일본군영지는 곧 ‘용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한국주둔(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의 편제 변동 연혁 당초 이 지역을 대상으로 일본 측이 징발을 요구한 면적은 무려 300만 평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운동, 앞으로도 일본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하, 역사관) 건립을 일본에 알리고 함께 뜻을 모으기 위해 2015년 11월에 결성되었습니다.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특임교수,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여학원대학 명예교수, 히구치 유이치 고려박물관장(당시), 히다 유이치 고베학생청년센터관장, 안자코 유카 리쓰메이칸대학 교수 등 동아시아 평화와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전문가들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약 15명의 시민이 사무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임 결성 직후 『함께만들자! 식민지역사박물관 in Seoul』이라는리플릿4만부를만들어 일본 전국각지에 배포했습니다. 평화운동, 호헌운동, 전후보상운동, 강제동원진상규명운동, 역사교육운동, 야스쿠니반대운동 등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펼쳐온 다양한 단체가 힘을 모아줬습니다. 회보를 발송할 때 리플릿을 함께 보내주기도 했고 회보를 통해 직접 역사관 홍보를 해준 단체도 있었습니다. 기사를 실어준 언론도 있었습니다. 『주간금요일』(시민의목소리를대변하는대중잡지), 『사회신보』(사회민주당기관지), 『신문우즈미비』(전쟁반대,인권사회구현을 내세우는월간신문), 『페민』(대중여성단체부인민주클럽기관지)등이역사관소개기사와우리가보낸기고를실어줬습니다. 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도쿄대공습·전재자료센터, 고려박물관, 마루키미술관, 사키마미술관 등 각지의 평화박물관에서는 관람자들에게 리플릿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이어온 우리의 운동은 이처럼 수많은 시민, 단체, 언론, 평화박물관이 힘을 모아준 결과 전국 각지에서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800명의 시민들과 10개 단체가 역사관 건립 기금을 보내왔으며 그 액수는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5,000만 원을 넘었습니다. 또 아오모리, 기후, 도쿄, 오카야마, 히로시마, 오사카, 미에, 나가사키, 구마모토, 오키나와 등지의 시민들이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시민연대의 기록자료 기증에 참여해줬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운동이 전국 각지 다방면에서 찬동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의 역사인식, 식민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