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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일제패망기에 매달 8일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까닭

2020년 12월 30일 142

보라, 성전(聖戰) 이에 3년, 다시 겨울은 복수의 날, 해방의 아침, 잊을 수 없는 8일을 맞이하네. 그대 아는가, 아시아의 수호신은 무쇠가 아니라 아시아의 수호신은 일억(一億)의 피, 젊은이의 치솟는 혈기. 피는 쇠보다 강하며 아시아는 하나의 피 무엇인가 능히 깨뜨릴 수 있는 불괴(不壞)의 결속임을. 그렇다면 이날 우리들은 붓을 던져 검을 들고 내일은 또 그대와 저 넓은 하늘에 서로 마주하리라. 마음은 오로지 달려가네, 마유하(マユ河, 버마 인도 접경지)의 선혈에 혈관은 힘차게 뛰는 산호도(珊瑚島)의 총탄빗발. 용서하라 벗이여, 눈물을, 우리들의 두 뺨에 쏟아지게 잠시 흐르도록 내버려 두어라. 보아라 그대, 아시아의 수호신이야말로 참으로 무쇠가 아니라, 탄약더미가 아니라 실로, 그것은 오직 십억(十億)의 분노에 찬 눈물 젊은이의 치솟는 혈기와 뒤섞인 뜨거운 눈물인 것을. 뭐가 이런 정신 나간 글이 있나 싶지만, 이것은 <경성일보> 1943년 12월 8일자에 수록된 「12월 8일의 맹서」라는 시(詩)의 전문이다. 여기에 그려진 삽화는 에구치 케이시로(江口敬四郞)의 것이고, 글은 마츠무라 코이치(松村紘一)가 썼다. 이 이름은 다름 아닌 주요한(朱耀翰, 1900~1979)의 창씨명이다. 일제패망기의 12월 8일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이다. 이른바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태평양전쟁)’의 시작이 바로 이날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령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와 필리핀 클라크공군기지에 대한 기습공격과 영국령 말레이반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신호탄으로 하여 대미대영 선전포고(對美對英 宣戰布告)의 조서(詔書)가 내려진 것이 이날이고, 그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천우(天佑)를 보유(保有)하야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조(天祚)를 천(踐)하는 대일본제국천황(大日本帝國天皇)은 소(昭)히 충성용무(忠誠勇武)한 여유중(汝有衆)에 시(示)하노라. 짐(朕)

냉전시대의 고정관념 허물기(2)

2020년 12월 30일 132

연줄로 미군 JACK부대 경비원이 되었는데, 마침 종군작가로 해군중령이었던 염상섭의 조카와 그 딸이 같이 근무하는 걸 알고 그 소개로 자기 소설을 염상섭에게 전하게 되어 싹수가 있다는 촌평을 들었다. 1953년(22살), 미군 기관 경비원으로 상경한 그는 황순원과 연이 닿아 문예살롱으로 찾아가 소설 습작을 본격화했다. 1954년, 한국은 예술원을 설립했는데, 초대 회원으로 염상섭 박종화(이상 서울 출신), 김동리 조연현 유치진(이상 경상도 출신), 서정주(호남) 윤백남(공주 출신)으로 월남 문학인은 전무했다. 제2대에야 황순원(평남) 이헌구(함북 명천) 모윤숙(함남)이 김말봉(부산) 곽종원(경북 고령)과 함께 추가되었고, 1960년에는 신석초(충남 서천) 박영준(평남 강서)이 추가됐다.  그러나 주요한 오상순 유치환 김광균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광섭 김동명 신석정 이은상 노천명 김현승 김용호 등 시인, 주요섭 안수길 계용묵 박계주 정비석 오영수 등 작가, 김팔봉 백철 등 평론가들은 초기에 소외되어 있었다. 이 명단을 참고하면 예술원의 편파성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게 한국문단을 파벌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황순원과 인연을 맺은 이호철이 보기에 한국문단은 조연현과 <현대문학>의 독무대였다.  예술원이 발족하자 이에 대한 반감으로 한국자유문학자협회가 창립(1955.4)되었는데, 위원장 김광섭, 부위원장 이무영, 백철 모윤숙 김팔봉 서항석 이헌구 등이 주도했다. 문단 비주류 파인 한국자유문학자협회는 기관지로 <자유문학>(1956.6)을 창간했으나 1963년 8월호 통권 71호로 종간됐다. 비록 단명으로 끝났지만 <자유문학>은 <현대문학>과는 달리 현실비판 의식이 강한 작가 남정현 최인훈 박용숙 유현종 등과 시인 권용태 황명걸 이세방 등을 등단시켰다. 역시 비주류파가 주동이 되어 나온 <문학예술>은 1954년 4월에

[인터뷰] 노래로 만인보(萬人譜)를 엮어내다

2020년 12월 30일 149

찌뿌드드한 하늘, 새벽부터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 하루종일 해를 볼 수 없었던 날, 가수 이지상 씨를 만났다. 역촌동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 흔히 예술인의 작업공간이라면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살짝 지저분함을 상상했겠지만 뜻밖에 그의 사무실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이런 걸 상상하진 못했는데……. 암튼 깔끔한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를 처음 본 건 28년 전인 1992년 그가 마지막 학생이던 시절이었다. 경희대학교 노천극장에서 통기타 하나를 어깨에 메고 정오차의 ‘바윗돌’을 부르던 모습이었는데, 그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당시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첫 질문은 그의 가수생활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 언제부터 노래를 시작하셨나요? ● 군대를 다녀오고 1989년에 국문과 노래패를 만들었어요. ‘궁상각치우’라는 이름의 노래패를 만들어 활동하면서부터일 겁니다. 노래패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그 활동이 잘 되니까 옆 과들도 노래패들을 만들기 시작했죠. 또 당시 단과대 학생회의 제안으로 단과대 차원으로 과노래패협의회(과노협)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게 모태가 되어서 ‘장작불’이란 단과대 노래패도 만들게 되었어요. 말 그대로 계통을 제대로 밟아가며 노래패를 만들고 조직화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는 학생회 활동, 학생운동이 융성하던 시절이었으니 가늠이 되었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 어떤 계기로 그런 활동을 했나요? ● 따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과 노래패 ‘궁상각치우’를 만들었는데, 기타 칠 사람이 없다고 해서 기타 반주를 해 줬어요. 그러다가 노래패 회장을 하게 되었고, 과노협 회장도 하고, 단과대 노래패 패장도 했죠. 그리고 1991년도에는 ‘전대협

효창독립커피 4탄 김창숙 커피, 5탄 지청천 커피 출시

2020년 12월 30일 127

[초점] 효창독립커피 4탄 김창숙 커피, 5탄 지청천 커피 출시 연구소는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자 효창독립커피를 기획하여 4월 차리석 커피를 시작으로 이상룡, 권기옥 커피에 이어 12월 24일부터 김창숙 커피와 지청천 커피를 선보인다. 김창숙 커피의 디자인은 국외 독립운동유적지를 찾아 알리고 있는 사진작가 김동우 회원이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안에 있는 김창숙 선생 동상을 촬영했으며 한글 글씨는 이진경 작가가 써주었다. 지청천 커피의 디자인은 이윤엽 판화가가 제작했다. 효창독립커피 구입은 hyochangmall.com(효창몰)에서 가능하다.

[후원회원마당] 줏대있는 중립이 우리의 몫이다

2020년 12월 30일 52

이 땅 한반도에서 오천년 역사를 일궈온 우리민족은 당연히 한반도의 토박이고 주인이다. 우리의 무사안일과 외세의 침탈로 인하여 식민지나 분단이라는 쓰디쓴 역사도 있지만, 오늘의 북한 땅이나 남한 땅 모두 한 덩어리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갖은 곡절 끝에 지금은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내 땅에 살면서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태도는 타파해야 하며 그 책임은 우리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이제 당당하게 주권을 찾아야 한다. 첫째,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의 주체성 확립이 선결조건이다.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本立道生)는 옛 성인의 말씀을 빌릴 필요가 없이, 우리가 피동적으로 남에게 끌려가거나 의탁하지 않고, 줏대 있게 사는 것은 우리의 당당한 고유권한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세계 10위 이내 강국 내지 중견국의 지위에 있다. 자생 자립 자위에 필요할 정도의 물질적 실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정신적으로 다시금 ‘3.1 독립혁명정신’이나 ‘사월혁명정신’을 발휘하면 확실히 ‘자기확립’이 되는 것이다. 주인다운 주인이 되려면 타자의 간섭이나 강요는 배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초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상대적으로 약소함을 비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국들이 우리를 서로 ‘자기 편’ 또는 ‘자기와 유대관계 유지’를 바라고 있는 것은 우리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의 반영임으로, 우리의 지혜 있는 대처가 ‘중요도’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둘째,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고 말고는 우리와 상관없다. ‘투키디데스

[기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일제잔재 청산이다

2020년 12월 30일 99

12월 1일 한국진보연대를 비롯, 137개 사회단체와 161명 인사가 “국가보안법 이제는 폐지해야 합니다”를 외쳤다. 이날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청년학생 기자회견이 열렸고, 여타 많은장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행사를 가졌다. 이날 국가보안법 폐지 행사가 집중된 것은 국가보안법이 1948년 12월 1일 제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대법전을 펼치면 나오는 국가보안법 제정날짜만보면 그렇다. 현행 법조문만으로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는 ‘단견’이다. 문제는 이 ‘단견’이 국보법 운동의 의미와 실제 효과를 크게 반감시킨다는 것에 있다. 지금이라도 빨리 수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짚어본다. 일단 현재 사용하는 대법전을 접고,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자. 보안법에 대해 “1907년 7월 24일(27일의 오류-편집자주) 집회와 결사·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기 위해 일제가 대한제국 정부에게 제정, 반포하게 한 법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분위기를 설명해 보자.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통감부를 설치해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행정권을 행사했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에 <대한매일신문>과 <황성신문>이 일제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조선 팔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이완용 내각을 강제해 법률 제1호(1907.7.24.)로 제정한 것이 바로 신문지법(新聞紙法)이다. 그리고 3일 후 일제는 자국의 치안경찰법을 본따 보안법(保安法)을 강제했다.(법률 제3호는 출판법) 그 주요 내용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결사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경찰관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집회 또는 다중(多衆)의

기증자료

2020년 12월 30일 68

• 11월 19일 이경훈 씨가 일본육군미술협회 근제謹製 대동아전쟁엽서를 비롯하여 덕수궁 석조전 엽서 등 총 27점을 기증했다. 이경훈 씨는 군 관련 사료 수집가로 타 박물관들에 자료기증을 한 바 있으며 상기 자료를 기증하기 위해 검색을 통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알게 되어 자료를 기증하게 되었다. • 11월 24일 송치중 선생이 사단법인 자행회가 주최한 재활문고 읽기운동에서 1988년 9월 17일 수상한 상장 1점을 기증해 주었다. 평소 역사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자료 중 하나였는데, 이번 교원연수 프로그램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읽기>에 참여하면서 박물관에 기증하여 널리 활용되기를 바란다며 연수 마지막 날 기증해 주었다. 연구소와 박물관에는 학교생활과 관련한 상장, 성적표, 시험지 등 다수가 기증되었다. 그러나 장애인 관련 단체인 자행회와 관련한 자료기증은 첫 사례이며, 특히 자행회 대표였던 ‘이방자’ 여사의 마지막 행적이 기록된 사료라서 눈길을 끈다. 개인의 귀중한 사료를 기증해 준 송치중 선생께 감사드린다. • 오카베 토시오(岡部壽郞) 씨가 11월 한달 동안 <도쿄신문> 기사 등 총 12점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기증했다. 이번 기증받은 기사 중에는 재일코리안에 대한 생활 속의 차별사례와 함께, 이런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일본인의 전쟁에 대한 피해사관과 더불어 식민지에 대한 반성과 식민지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점에 있다고 한 도쿄조형대학의 마에다 아키라(前田朗) 교수의 지적을 소개하고 있다. – 김진희, 김슬기 학예실 연구원   • 11월 5일 김광업 씨(독립운동가 김승학의 손자)가 <김승학의 항일운동 역사실록 소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2020년 12월 30일 70

[초점]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노동은 편저) 발행을 시작으로 항일음악회 개최(2011년, 2017년, 2018년) 등 독립군가 복원과 보급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YTN 라디오가 경기도 후원으로 진행 중인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자문하고 있다. 올해 10편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꾸준히 제작·방송할 예정으로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선친을 회상하여 더욱 의미를 더하고 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는 연구소 후원회원이기도 한 이은지 YTN PD가 담당하고 있다. 노래는 연구소 누리집에서 들을 수 있으며 현재까지 제작된 노래는 아래와 같다. 1편 : 국치추념가(이준식 독립기념관장), 2편 : 안중근 옥중가(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3편 : 신흥무관학교 교가(이항증 석주 이상룡 선생 증손자), 4편 : 압록강 행진곡(김영관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5편 : 격검가(차영조 동암 차리석 선생 아들), 6편 : 새야새야 파랑새야(정남기 동학농민군 정백현 선생 손자), 7편 : 광복군 아리랑(장병화 광복군 장이호 선생 아들) • 방학진 기획실장

독립민주시민학교 시민강좌 Ⅱ <위대한 희생, 빛나는 투쟁> 진행

2020년 12월 30일 40

[초점] 독립민주시민학교 시민강좌 Ⅱ <위대한 희생, 빛나는 투쟁> 진행     근현대사기념관은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을 맞아 <위대한 희생, 빛나는 투쟁>이라는 주제로 독립민주시민학교 시민강좌를 진행하였다. 이번 강좌는 독립운동가들의 인생 여정을 통해 의열투쟁의 의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강좌는 11월 28일에서 12월 13일까지 매주 토, 일요일에 현장과 온라인 수강을 병행할 계획이었지만 1강과 2강 진행 이후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3강에서 6강은 온라인 수강만으로 변경되었다. 강의는 촬영 후 편집 영상을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많은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쉽게 수강할 수 있도록 진행하였다. 첫 번째 강의는 대전대학교 한성민 교수의 <3개의 총탄이 만든 역사, 안중근>이란 주제로 ‘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나?’라는 물음과 함께 당시 이토의 ‘만주시찰 목적’을 알 수 있는 강의였다. 2강은 <끝나지 않은 3·1운동의 전율, 강우규> 주제로 춘천교육대학의 김정인 교수가 강의하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3·1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강우규의사의 의거와 함께 3·1운동의 흐름을 다시 되짚어줌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3·1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강의였다. 첫 주 강의는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강사와 현장참여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한 상황에서 강의를 진행하였다. 3강에서 6강은 수강생 없이 온라인 수강을 위한 강의 촬영으로 진행되었다. 3강 <위대한희생 빛나는 투쟁, 의열단>은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강의하였다. 의열단은 어떤 단체인가 알아보고, 특히 1923년 ‘제2차 대암살파괴계획(황옥경부폭탄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의열단원 김시현과 밀정 황옥을 통해 의열단의 활동과 조선총독부의

한일공동기획 강제동원 문제 온라인 연속강좌 열려

2020년 12월 30일 56

[초점] 한일공동기획 강제동원 문제 온라인 연속강좌 열려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본기업에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역사적인 승소판결을 내렸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들이 30년에 가까운 기나긴 소송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연구소는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이 소송의 사무국을 맡아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싸워왔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가 강요한 이른바 ‘65년 체제’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 극복한 역사적인 연대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역사적인 승리를 쟁취하기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손잡고 역사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워온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연구소는 지난 10월부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온라인 연속강좌 “강제동원의 현장에서 전후보상을 생각하다”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강좌는 연구소와 일본의 시민단체 ‘나시노키(梨の木) 피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기획했는데, 12월까지 네 차례 진행된 강좌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은 일본에서 소송을 지원해온 일본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강좌에서는 일본제철 소송, 미쓰비시 나고야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후지코시 소송이 다루어졌으며, 내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