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랑
정상을 향하는 유럽 극우 vs 불나방 한국 극우
[돌려보기] 정상을 향하는 유럽 극우 vs 불나방 한국 극우 목수정 작가 한국 사회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12·3 계엄이 속전속결로 저지되고, 내란범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했을 때, 우린 시민들의 용기와 성숙한 의식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체포영장을 거부하던 윤석열 수호 세력이 등장하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난 일군의 무리가 온라인과 거리에서 공포를 자아내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구부정한 몸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어설픈 구호를 외치던 소위 어버이연합류의 보수단체에, 온라인 게임이 더 익숙해 보이는 근육질의 청년세대가 더해진 낯선 집합이 광장 전면에 등장했다. 점점 더 자극적 현실왜곡을 경쟁적으로 유포하는 우파 유튜버들과 전광훈을 대표로 하는 우파 기독교 집단을 두 기둥으로 삼은 공간 속에 그들은 서 있다. 윤석열을 지키고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자신들의 숭고한(!) 명분 아래 그들은 각자 내면에 응축된 분노를 폭력으로 드러낸다. 그들 안엔 얼마든지 몸을 던져 표출할 수 있는, 뜨겁게 달궈진 증오와 울분이 있다. 탄탄한 자본과 신도 그룹을 가진 기독교 단체, 내란으로 블루오션을 만난 극우 유튜버들이 그들이 일찍이 갖지 못하던 그럴싸한 명분을 차곡차곡 제공해 주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사실이건 아니건, 분노를 부추겨줄 연료만 된다면 무비판적으로 수용, 더 대범한 폭력의 양분으로 삼는다. 처음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던 국민의힘도 이제 그들의 무리에 온전히 가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한국 사회가 숱한 피의 대가를
광장의 뜨거움 이어갈 ‘시민사회처’ 설립을 제안한다
[돌려보기] 광장의 뜨거움 이어갈 ‘시민사회처’ 설립을 제안한다 방학진 기획실장 “마을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말한 토크빌이 지금의 한국을 보았다면 “광장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수정했을 것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한국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광장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이미 지난 3월 10일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현재는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과 야 6당은 연석회의를 통해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첫째,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고 처벌하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둘째, 내란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흔들림없이 연대하겠습니다. 셋째, 내란의 재발방지를 위해 시급하고 필수적인 법제도 개선을 위해 협력하겠습니다. 넷째, 내란 세력의 심판과 재집권 저지를 위해 힘을 모으겠습니다. 다섯째, 차별과 혐오 정치를 배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를 함께 구현하겠습니다. 여섯째, 윤석열의 파면 이후에도 시민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 실현, 사회대개혁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겠습니다. 일곱째, 이상의 공동의 결의를 이행할 방안에 대해 후속 협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이 참여한 원탁회의도 4월 15일 “사회대개혁,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등 국가 미래 과제를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고, 차기 정부 국정과제로 실천”할 것을 선언했다. 이 두 개의 약속만 보면 대선 후 광장의 에너지, 즉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요구가 국정에 반영될 가능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이러한 전망은 2017년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이선홍의 친일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연구소 글방 21] 이선홍의 친일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권시용 선임연구원 도쿄에 박춘금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이선홍이 있다. 식민지 시기를 살았던 조선 사람들 가운데 친일파가 있었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긍정하고 거기에 협력하는 데서 삶의 방향을 찾았던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이른바 ‘식민 본국’ 일본에서 이름을 드높인 친일파도 있었으니, 박춘금과 이선홍이 첫손에 꼽힌다. 제주 출신 고권삼은 ????오사카와 조선인????(1938)이란 책에서 “박춘금 씨는 도쿄에서 상애회를 조직하고 이선홍 씨는 오사카에서 조선인협회를 조직했다. 동과 서에서 각각 내선융화(內鮮融和) 운동을 시작했다”고 서술했다. 박춘금과 이선홍 두 사람을 도쿄와 오사카 내선융화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한 것이다. 이렇게 도쿄를 무대로 상애회라는 친일단체를 지휘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눈에 들려고 애썼던 박춘금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조선인협회를 이끌었던 이선홍이 있었다. 이제 오사카 내선융화 운동의 핵심 인물, 친일파 이선홍의 친일 인생을 따라가 본다. 우선 이선홍의 친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몇 장면을 살펴보자. <장면1> 1931년 6월 일본 오사카에 있는 조선인단체인 ‘조선인협회’는 매우 이색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결혼매개소(結婚媒介所)’라는 것이다. “내선융화의 열매는 제2세로부터”라는 구호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을 결혼시키자, 진정한 내선융화는 민족 간 결혼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운동이었다. <장면2>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이봉창 의거가 일어났다. 신년을 맞아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가던 일왕을 향해 청년 이봉창은 폭탄을 던졌다. 조선인이 살아 있다, 부당한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위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에 살던 친일 인사들은 깜짝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한달음에 달려간 최화식 장군
[인터뷰]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한달음에 달려간 최화식 장군 방학진 기획실장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와 급기야 12·3 내란을 계기로 우리나라 사관학교 교육 내용이 궁금했다. 육사·해사·공사·간호사관학교의 『교육과정집』을 통해 우리 헌법 전문에서 명시하고 있는 독립과 민주주의 교육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지 검토했다. 그 결과 네 곳의 사관학교 모두 『한국사』 교과목이 1학년 교양필수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를 한 학기 동안 교육하는 까닭에 독립운동사 이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주의 관련 과목은 해군사관학교와 간호사관학교에만 각각 전공필수, 교양선택으로 개설되어 있어 민주주의 관련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채 졸업하는 사관학교 생도가 태반임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사관생도들에게 수준 높은 민주시민 교육 이수가 필수불가결하다. 더불어 고위급 예비역 장군들도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때마침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예비역 장성들의 시국성명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1월 7일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 구속 및 파면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예비역 장군 시국성명’이 나왔다. 12·3 내란 이후 예비역 장군들의 첫 시국선언이었다. 성명에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 국회의원과 황인권 전 제2작전사령관, 김도균 전 수방사령관을 비롯해 황기철, 부석종, 김도호, 김태성, 진호영, 이재각, 최화식, 김사진, 하영재, 김기노, 이진용, 김용식, 문원식 등 육군·해군·공군 예비역 장성들이 동참했다. 이중에서 12월 3일 비상계엄 발표 직후 용인 자택에서 여의도 국회로 달려간 최화식 장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상계엄을 TV에서 보면서 ‘이거 미친 거
역사기행 전문 여행사 후라(HURA) 출범
[초점] 역사기행 전문 여행사 후라(HURA) 출범 그동안 우리 연구소는 독립운동과 과거사와 관련된 다양한 국내외 역사기행을 추진해왔다. 이를 보다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인 3월 26일 관계자들이 연구소에서 발기인 총회를 열고 역사기행 전문 여행사 ‘HURA’ 설립을 결의했다. 여행사 명칭인 ‘HURA’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외쳤던 ‘Corea Hura’에서 가져왔다. 안 의사는 공판과정에서 만국공통어인 에스페란토어로 만세를 외쳤다고 밝힌 바 있다. 역사기행 ‘HURA’는 4월 중으로 모든 등록절차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들어간다. 주력사업으로는 독립운동, 일제잔재, 일제 침탈사, 강제동원 등 한일과거사, 한국현대사 등과 관련한 국내외 답사가 있으며, 유적지 실태파악과 DB 구축, 표석 설치, 정보 서비스 등 기록과 기억, 보존을 위한 학술탐사도 병행할 예정이다. 매년 10회 내외의 해외답사를 진행할 계획이며 올해는 6월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기획답사 1탄 〈장정과 조선 혁명가〉 역사기행을 시작으로 4차례의 해외답사를 진행한다.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 특별전시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개막
[초점]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 특별전시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개막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4월 15일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 기념 특별전시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의 개막식을 열었다. 이날 개막식 행사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윤경로 관장(전 한성대 총장)과 여러 상근자들을 비롯해 이학영 국회 부의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도 참석했다. 특히 조문기 지사의 사위인 김석화 님과 의거의 동지였던 유만수, 강윤국 지사의 아들인 유세종, 강경옥 님도 함께해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윤경로 관장은 개막식 축사에서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사장이던 조문기 지사의 애국 의지 덕분”이었다면서 “생전에 독립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조문기 지사를 기리는 것은 친일청산을 너머 민주사회 건설과 남북통일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 연구소 제2대 이사장이자, 1945년 7월 24일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폭파의거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조문기의 삶과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는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의 어린 시절과 일본에서의 활동, 부민관 폭파 의거, 광복 이후 친일청산을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우리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특별전에 조문기 지사가 직접 쓴 회고록 초고인 「조국(祖國)이 뭐길래」와 각종 원고와 서신, 연구소 소장자료인 「일한합병기념엽서」, 「부민관 사진엽서」 등 총 44건 320점을 대여했다. 이번 전시는 화성시 향남읍에 위치한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에서 오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 김현지 대외협력실 활동가
충남지역위원회, 충남 야5당 및 시민단체들과 함께 제106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가져
[초점] 충남지역위원회, 충남 야5당 및 시민단체들과 함께 제106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 가져 우리 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위원장 최기섭)는 천안민주단체연대회의,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야5당(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정의당) 충남도당과 함께 4월 11일 천안 남부오거리 석오 이동녕 선생 동상 앞에서 ‘제106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을 공동주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윤경로 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은 개회사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부인하는 세력들이 등장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이동녕 선생 고향인 천안에서 열리는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올바른 역사 인식과 자주독립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식은 당초 이동녕기념관에서 개최 예정이었지만 기념관을 관리하는 천안시(시장 박상돈)는 “인근 마을 주민들 민원 발생 등으로 이동녕 선생 추모행사를 제외한 모든 외부 행사의 대관이 불가하다”고 통보하여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미 여러 행사가 이동녕기념관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따라서 천안시의 불허 결정은 국민의힘 소속인 박상돈 시장의 방해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이에 대해 문진석 국회의원(민주당 충남도당 위원장)은 “내년부턴 기념관에서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념식을 처음 제안한 충남지역위원회는 앞으로도 여러 역사 관련 행사를 지역의 정당·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충남지역위원회는 3월 25일 천안NGO센터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 방학진 기획실장
부천지역위원회, 부천항일운동기념비 제막식 거행
[초점] 부천지역위원회, 부천항일운동기념비 제막식 거행 우리 연구소 부천지역위원회(위원장 박종선)와 부천시민연합은 작년 6월부터 공동으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 결과 부천의 3·1운동이 일어난 3월 24일에 맞춰 안중근공원에서 ‘부천항일운동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제막식에는 두 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조용익 부천시장, 김병전 부천시의회의장, 정인조 전 부천희망재단 이사장, 이재영 경기도의원, 황진희 경기도의원, 이종문 시의원, 김선화 시의원, 김명원 전 경기도의원,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했다. 박종선 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부천의 자랑스런 항일독립운동을 알리는 기념비를 시민모금과 부천시의 관계부서 협조로 건립하게 되어 그 의미가 더욱 깊다고 말하며, 부천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자는 여론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부터 진행되었는데 ‘부천항일운동기념비’로 6년만에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또한 시민사회가 조례 제정, 항일독립운동 연구, 일제잔재 청산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천시에 이를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음에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한 뒤, 이 기념비를 출발점으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최재숙 부천시민연합 상임대표도 기념사를 통해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되게 마련이라고 하며, 일제에 의해 고통받은 역사도 항거한 역사도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세대를 위해 부천의 항일독립운동을 알리고 동시에 역사정의를 위한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익 부천시장은 축사를 통해 3·1운동은 우리 헌법전문에 실려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독립운동으로 부천시 차원에서도 이를 기념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며, 2년 진행되다
일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긴 경술국적(庚戌國賊)
[소장자료 톺아보기 69] 일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긴 경술국적(庚戌國賊) 1910년 7월 23일 서울에 부임한 제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일본 수상으로부터 강제병합 조약 초안의 대강과 병합 후의 통치방침까지 지시받았다. 데라우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인의 저항 언로를 막기 위해 『대한민보』와 『대한매일신보』 등을 발행금지시켰다. 7월 29일 이완용을 총리대신으로, 박제순을 내부대신으로 한 이완용 내각을 새로 조각하였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이완용과 조중응을 통감관저로 불러 강제병합조약의 초안을 보여주고 비밀리에 논의한 뒤, 8월 18일 대신들을 모아놓고 내각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학부대신 이용직은 조약을 반대하다 쫓겨났고 ‘경술국적’이라 불리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시종무관장 이병무, 궁내부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황족대표 이재면(이희), 그리고 3·1운동 당시 이용직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작성해 작위를 박탈당한 중추원의장 김윤식이 조약에 찬성하였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 내각이 순종 앞에서 형식상의 어전회의를 개최해 ‘한일병합’이란 안건을 통과시켰다. 곧바로 양국의 전권위원인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 사이에 강제병합조약이 조인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한국민의 격렬한 반항을 염려하여 사회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원로대신들을 가둬놓은 뒤인 8월 29일 이를 반포하였다. 이른바 강제병합조약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에 특수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고려, 상호의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이 선책(善策)이라고 확신, 이에 양국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민족사랑 2025년 4월호
[바로보기] * 왼쪽 바로보기로 들어가셔서 표지의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