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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진주 죽이기 – 김경현의 역사·문화·논개 비평

2025년 1월 31일 105

[책소개] 진주 죽이기 – 김경현의 역사·문화·논개 비평 김경현 저 | 곰단지 김경현 작가가 2024년 1월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을 펴낸 지 10개월 만인 11월에 후속편인 『진주 죽이기』를 출간하였다. 단기간에 500여 쪽의 두툼한 책을 완성한 저자의 치열한 노력과 성실함에 경탄해 마지않는다. 전자가 수백여 년의 진주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길어올린 것이라면, 후자는 저널리스트로서 2000년대의 진주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 비평집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진주 죽이기’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김경현의 역사·문화·논개 비평’이라는 부제를 단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렇게 하여 이 책의 제목이 『진주 죽이기』로 정해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책 제목은 진주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적의감(敵意感)이 넘치는 ‘죽이기의 절망’을 넘어서 과거를 치유하고 상생하는 ‘살리기의 희망’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죽이기’이지만 ‘진주역사 살리기’와 ‘진주문화 살리기’ 및 ‘논개 살리기’를 의미하고 그런 뜻에서 『진주 죽이기』의 부제로 ‘김경현의 역사·문화·논개 비평’이라고 붙이게 되었다. 어차피 죽고 사는 문제는 얼마나 서로를 잘 이해하고 생각하느냐, 앞으로 역사와 문화를 얼마나 공유하며 얼마나 공동체 정신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진주 죽이기』는 제1부 진주역사 죽이기, 제2부 진주문화 살리기, 제3부 논개를 위한 변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진주역사 죽이기는 『경남도민일보』에 연재한 칼럼 중에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글이다. 여기서 다룬 주제는 진주와는 떼려야 뗄

남도 한말의병의 기억을 걷다·남도 임진의병의 기억을 걷다

2025년 1월 31일 56

[책소개] 남도 한말의병의 기억을 걷다·남도 임진의병의 기억을 걷다 김남철 저 | 살림터 우리가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사에서 어느 민족도, 어느 나라도 이만큼 긴 세월을 동질성을 지키면서 꿋꿋이 버텨온 사례가 없다. 그 밑바닥에는 저항의 역사와 함께 기록이 있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이를 모두 기록하면서 반성했기 때문에 드물게 5천년을 이어오는 민족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 할 수 있는 언어라는 수단(문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온동네 개들이 떼창으로 짖어댈 수는 있지만,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른 마을에 알릴 수 없고, 어제 우리 마을에 낯선 사람이 왔었다고 전할 수도 없다. 기록은 우리 일을 옆 동네에 알리는 수단이고, 오늘 이야기를 내일에 전하는 수단이다.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있었지만 기록이 있고없고에 따라 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등급이 매겨지기도 하고 수명이 달라지기도 했다. 반만년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저항이 있 었다. 안으로는 부당한 지배자에 대한 저항이 있었고 밖으로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지배세력들에 의해 ○○란亂이라고 이름붙여진, 이름을 다 외우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백성(민중)들의 저항이 있었고, 항쟁으로 불리는 수많은 시민(민중)들의 저항이 있었다. 몽고의 침략에도 30년 가까이 버텼고, 임진년부터 왜놈과 7년의 전쟁도 치러냈다. 일제의 침략에도 30여 년을 버텨냈다. 지배층은 도망갔어도 민초들이 끝까지 지켜냈다. 위정자들은 나라를 팔아먹었어도 백성들이 의병이 되어

경부선 경의선 복선공사와 맞물린 경성조차장(수색역)의 건립 내력

2025년 1월 31일 59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5] 겉시늉으로만 남겨놓은 ‘경성조차장 제3공구내 무연합장 묘비석(1940년)’ 경부선 경의선 복선공사와 맞물린 경성조차장(수색역)의 건립 내력 이순우 특임연구원 경의중앙선 화전역(花田驛, 2023.11.21일에 ‘한국항공대역’으로 개칭)에 내려 지하통로를 따라 항공대 운동장 방향으로 올라가면, 이곳에서 남동쪽 수백 미터 남짓한 지점에 ‘화전동공동묘지(경기도 고양특례시 덕양구 화전동 633-9번지 일대)’가 나타난다. 공동묘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지난 2019년 11월에 고양시에서 3·1독립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조성한 ‘기림의 길’이 죽 이어진다. 이 길의 끝에서 약간 휘어진 언덕길로 올라서면 이름 모를 무덤들 사이에 제법 큼직한 비석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 전면에 이르기를 “경성조차장 제3공구내 무연합장지묘”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주식회사 하자마구미 수색출장소가 소화 15년(1940년) 3월에 세운 것이라는 표시가 남아 있다. 이를테면, 이 비석은 일제가 수색역(水色驛) 일대에 대규모 경성조차장(1939년 5월 13일 기공)을 새로 조성할 때에 그 공사구역 안에 포함된 묘역들 가운데 기한 내에 이장(移葬)하지 못한 무연고묘지를 일괄처리하면서 만든 합장묘비인 것이다. ‘경성조차장 제3공구내 무연합장지묘’의 비문 풀이 하지만 비석 뒷면에 용지매수 대상지 여섯 곳의 지번은 그럭저럭 표시되어 있으나 이것과는 달리 정작 몇 기의 무연고무덤이 처리된 것인지를 나타내는 자리는 아예 공란(空欄)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묘비조차도 얼마나 형식적으로 만든 것인지가 여지없이 잘 드러난다. 그저 연고도 없는 조선인의 불쌍한 혼령을 위한 묘비를 세워주었다는 사실만 생색을 낼 따름이지 이 묘비석에는 아무런 알맹이도 담겨있지 않고,

‘끝나지 않은 석정의 노래’를 쓴 까닭

2025년 1월 31일 123

[기고] ‘끝나지 않은 석정의 노래’를 쓴 까닭 저자 최필숙 역사를 잊으면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의 작태를 보면서 ‘친일부역자를 청산하지 못한 해방 직후 역사의 대가(代價)’라 여깁니다. 동시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를 생각합니다. 가족을 볼모로 하는 협박을 누가 견딜 수 있었을까요? 가족의 목숨까지 담보해야만 할 수 있었던 것이 민족해방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을 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당연한 은혜로 생각했습니다. 선열의 희생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가 된 듯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살지 않았던 나는 당시 독립운동가를 이념으로 재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땅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그들을 재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 고향 밀양에는 그 이념의 굴레가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 굴레는 약산 김원봉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활동하다 희생당하신 분들,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추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6·25전쟁 당시 겪었던 학살의 기억은 그들을 움츠러들게 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외부인과의 접촉을 경계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이런 밀양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암살’이라는 영화가 단비가 되어 밀양 땅을 적셨고,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툭 던져진 한마디 “가 선생께 전하시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이 말은 밀양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숨겨야 했던 약산 김원봉은 물론 그 그늘에 가려진 많은 독립운동가가 재조명되었고, 밀양인의 마음에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도

민족문제연구소 2024년 10대 뉴스

2025년 1월 24일 257

재조일본인과 전후 재외재산 처리 문제 국제학술회의 개최 우리 연구소는 2월 22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식민지시기 재조일본인과 전후 ‘재외재산’ 처리 문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국제학술회의는 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 “재조일본인의 사회경제자료 통합DB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 학술회의에는 한국, 일본, 대만 등 각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일본인의 식민지 이주현황 및 생활상은 물론, 귀환 일본인의 식민지 인식 및 ‘재외재산’ 보상청구 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논문 7편을 발표하였고 이어 참가자들과 청중이 어우러져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재조일본인의 자산 실태조사 등 프로젝트의 이행과정을 점검하는 한편, 귀속재산 관련 자료 분석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등 향후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전범기업 상대 손배소 연이어 승소 2018년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2024년에 이르기까지 강제동원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고 있다. 그러나 2023년 윤석열 정부는 포스코 등 우리 기업의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라는 해괴한 해법을 내놓고 원고들에게 이를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우리 연구소 등 지원단체와 소송 대리인단은 일본 정부와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조차 요구하지 않는 굴욕적 ‘제3자 변제’를 규탄하고 대법원에 특별현금화명령에 대한 조속한 최종 판결을 촉구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 130년, 러일전쟁 120년 기획 행사 추진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 130년, 러일전쟁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한일조약, 비틀린 한일관계의 원점을 보다〉

2025년 1월 24일 76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한일조약, 비틀린 한일관계의 원점을 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1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에 걸쳐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이번 교원연수 〈한일조약, 비틀린 한일관계의 원점을 보다〉는 2025년 한일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지난 60년, 길게는 100여 년의 한일 역사 갈등의 기원과 전개, 한일조약의 문제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졌는지를 총 7강에 걸쳐 다루었다. 첫 강의는 〈유골 문제에서 야스쿠니 문제까지 – 인권과 평화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맡았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부터 야스쿠니 유골 반환까지 강제동원 피해자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국제 관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개인의 인권이 후순위가 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강과 3강은 김민수 남산고 선생님과 이경훈 화홍고 선생님이 강제동원 문제, 역사 쟁점에 대해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지를 학교 현장에서 가르쳤던 사례를 중심으로 강의했다. 4강은 우쓰미 아이코 케이센여학원대학 명예교수가 〈잘못 끼운 첫 단추-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전후보상문제〉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우쓰미 아이코 교수의 강의와 더불어 1991년 NHK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조문상의 유서’를 감상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사쿠라이 히토시 디렉터와 질의 응답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5강 김창록 경북대 교수의 〈한일조약, 무엇을 해결했나-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서는 한일회담 외교문서를 분석하여 청구권 협정의 문제점을 알아보았는데, 강의가 끝나고도 질문이 이어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교원연수는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의 〈한일조약, 그 후-미해결 과제들과 강제동원 피해자 운동〉과 김민철 경희대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창립대회

2025년 1월 24일 76

[초점]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창립대회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창립대회가 1월 8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그동안 반민특위 관련 단체는 반민특위 위원과 조사관을 역임한 분들의 후손들로 구성된 ‘반민특위·국회프락치기억연대’라는 임의 단체로 있었다. 그러다 지난 해 6월 6일 ‘반민특위 강제해산 75년 기억행사’ 개최를 계기로 반민특위 명예회복의 기회가 마련되었다고 판단하고 법인 설립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이다. 여러 차례의 내부 논의 끝에 사단법인 설립을 결의하고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해 제1호로 친일부호 박흥식(화신백화점 사장)을 체포한 날인 1949년 1월 8일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 창립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동안 창립대회 준비에 앞장서며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사무총장에 임명된 이영국(반민특위 이봉식 조사관 아들, 전 휘문고 음악교사, 우리 연구소 서울남서지 부장 역임) 후원회원은 반민특위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약 700명이 참가해 약 2,800만 원의 기금이 모금되었다고 보고했다. 이날 창립대회에서는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 김정륙 선생을 이사장으로 김웅진 제헌의원의 따님 김옥자 여사,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문국주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 이영국 사무총장이 이사로 선출되었고 법인 설립 이후 방학진 기획실장이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창립대회는 음악대학 재학 중인 남민주·연우 자매의 축가와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의 특강으로 마무리했다. 앞으로 반민특위기념사업회는 국회 법인 등록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법인 설립 후에는 반민특위 관련 기념·교육사업과 학술회의는 물론 친일세력이 자행한 반민특위 와해공작과 국회프락치사건 진상규명 작업에도 힘쓸 예정이다. • 방학진 기획실장

광복 80주년 새해 첫날 효창원 참배

2025년 1월 24일 66

[초점] 광복 80주년 새해 첫날 효창원 참배 우리 연구소 서울지역위원회(위원장 권위상)와 청년백범(대표 조선동), 국회의원 김용만 의원은 광복 80주년 새해 첫날 오전 11시에 효창원을 참배했다. ‘새해 첫날 효창원 참배’는 청년백범이 30년 전부터 이어온 소박한 행사로 이날은 독립운동가 후손, 회원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정요인 묘역, 삼의사 묘역, 김구 선생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참가자 중 한명은 태극기가 극우 세력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안타까움에 ‘데니 태극기’를 들고 행사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임정요인 묘역에서 올드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행사를 시작했다. 삼삼오오 가족, 지인들이 함께 온 참가자들의 간단한 자기소개에 이어 임정요인 묘역에 안장되어 계신 동암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선생이 감사 인사를 했다. 삼의사 묘역에 이어 김구 선생 묘소에서는 청년백범 회원이 나누어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나라〉를 읽었고 끝으로 김구 선생 증손자인 김용만 의원이 12.3 내란 당일 일화 등과 함께 새해 인사를 했다. 방학진 기획실장의 해설로 효창원 참배를 마친 참가자들은 효창원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당초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가하여 3개의 식당에서 각각 식사했으며 식비는 차영조 선생과 청년백범이 일괄 결제했다.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방문하여 김승은 학예실장의 안내로 기획·상설 전시를 관람했으며 이어서 윤경로 식민지역사박물관장이 새해 인사를 했다. 차영조 선생은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아버지인 동암 차리석 선생의 순국 80주기이기도 한데, 민족문제연구소가 앞장서 준비해 평소보다

[신년사] 평등의 상징인 응원봉을 들고 함께 나아갑니다

2025년 1월 24일 384

[신년사] 평등의 상징인 응원봉을 들고 함께 나아갑시다 함세웅 이사장 연구소 회원과 가족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며 영육간 건강을 기원합니다. 저는 새해 첫날의 강론을 회원들과 함께 나누며 다시 묵상합니다. 올해는 을사년 뱀의 해입니다.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하라”는 성경 말씀을 체화하며 온 겨레 만민을 위한 <역사기도>를 올립니다. 이이화 선생님은 우리 겨레의 현실을 <역사전쟁>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전쟁 중에는 누구나 다 정성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립니다. 올해가 바로 기도와 기억의 해입니다. 1905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을사늑약의 120주년 1945년, 일본 침략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지만 사실 미국과 소련의 점령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의 아픔 80주년 1965년, 비굴한 독재자 박정희의 한일굴욕외교 6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 세 주제와 사건을 마음에 깊이 되새기며 올해를 우리 연구소 회원들은 온 겨레와 함께 참으로 환골탈태, 재생의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곧 민족사의 괴물이며 암 덩이인 윤석열을 파면합니다. 3년 남짓한 윤석열의 기간은 우리 민족사의 오욕을 압축한 고난과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아니,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 회의와 함께, “있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잖아!”하며 기막혀했습니다. 이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과거 파렴치한 모든 인물과 사건을 압축한 우리 시대의 흉물입니다. 이 괴물들을 우리는 차례차례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괴물과 함께 친일, 친미, 반민족 매국노들, 곧 국민의 힘, 부패 정치인들, 거짓 목사, 거짓

『소년세계』 제11권 제1호(1905년 1월) 신년대부록

2025년 1월 24일 76

[소장자료 톺아보기 66] 러일전쟁 참전 육군 무장 이름 알아맞히기 현상 공모 『소년세계』 제11권 제1호(1905년 1월) 신년대부록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잡지 『소년세계』는 러일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1905년 1월, 신년호 부록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한 일본 육군 지휘관의 사진 88장을 실은 대형 화보를 제공하였다. 한가운데는 오야마 이와오(大山巌) 육군총사령관을 배치하고 다음 동심원에는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郎) 총참모장,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구로키 다메모토(黒木爲楨) 오쿠 야스카타(奥保鞏)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 육군대장 등등 11명을 두었으며 나머지 76명의 육군 군인 사진은 16개의 줄에 맞추어 방사형으로 펼쳐놓았다. 전체적인 사진 배치를 볼 때 흰 바탕에 붉은 태양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욱일기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들 사진 안에는 1번에서 88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사진 주위에는 빙 둘러서 글이 빽빽이 인쇄되어 있는데 이것은 메이지 일왕이 1904년 2월 10일 공포한 러시아에 대한 선전 포고(露國に對する宣戦の詔勅) 전문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왕좌에 앉은 일본 천황인 본인은 이에 나의 충직하고 용감한 모든 신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라고 시작하는 러시아에 대한 선전 포고의 요지는 러시아의 만주 병합이 한국의 독립유지와 극동평화를 침해하기에 일본이 러시아에 화평안을 여러 차례 제시했으나 러시아가 번번이 거절하자 항구적인 평화 회복을 위해 무력에 호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부록의 해답법에 관하여>(111쪽)에는 신년 대부록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대부록의 연대기(聯隊旗)에는 현재 유명한 육군 무장이 모두 88명이 나오는데 이들 무장은 여러분이 이상적인 인물로 평소에 쉽게 알 수 있기에 시험삼아 그가 누구인지 맞춰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