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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스프레이 테러로 되돌아본 연구소 수난사

2017년 5월 26일 347

일요일인 4월 23일 오전 1시경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연구소 3층 사무실 출입문과 현판 등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달아났다. CCTV를 통해 확인해 보니 이 남성은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약 2분간 스프레이를 뿌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서슴없이 스프레이를 뿌린 것을 보니 적어도 한차례 이상은 사전 답사를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일명 ‘스프레이 테러’가 발생한 것인데 최초 발견자는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 나온 한 상근자였다. 이튿날 경찰에 신고하고 동시에 언론에도 널리 알렸다. 언론이 크게 보도해준 덕분인지 관내 동대문경찰서는 신속히 수사에 들어갔다. ‘과학수사’ 조끼를 입은 감식반은 물론 동대문경찰서장도 직접 연구소를 방문해 범인 검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범인 검거는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번 달은 스프레이 테러를 계기로 그동안 연구소 겪었던 크고 작은 수난사를 잠시 되돌아보고자 한다. 연구소가 본격적으로 수구세력(뉴라이트, 어버이연합 등)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일 것이다. 연구소는 그해 7월 1일 <만화 박정희>를 출간하며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 행각을 고발했고 이어서 8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을 발표하여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듯 박정희를 비롯한 주요 친일파들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기정사실화하자 수구세력의 반격이 곧바로 이어졌다. 매일 사무실로 전화하여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의 욕설을 퍼붓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더 나아가 국민행동본부, 자유수호국민운동, 대한민국 HID청년동지회, 나라사랑어머니연합,

‘천황즉위’ 기념으로 지은 일본인 사찰에 갇힌 명성황후의 위패

2017년 5월 26일 262

1882년 6월 10일(음력), 임오군란(壬午軍亂)의 와중에 성난 군인들이 창덕궁으로 밀려들자 왕비 민씨(명성황후)는 급히 궁궐 밖으로 도망친다. 홍재희(洪在羲, 홍계훈)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간신히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난 이들 일행이 몸을 숨긴 곳은 화개동(花開洞, 지금의 화동)에 있는 사어(司禦) 윤태준(尹泰駿)의 집이었다. 이곳에서 이틀을 머문 뒤에 벽동(碧洞, 지금의 사간동과 송현동 일대)에 있는 익찬(翊贊) 민응식(閔應植)의 집으로 다시 피신하였다가 마침내 6월 15일 서울을 벗어나 저 멀리 여주와 장호원으로 이어지는 도피행로에 올랐다. 이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1903년 무렵 명성황후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석의 건립이 한창 추진된 적이 있었다. 감모비각(感慕碑閣)라고 불렀던 이 비석의 건립 장소로 최종 선정된 곳은 바로 임오군란 때의 피난처로 인연이 있던 화개동 장원서(掌苑署) 터였다. 하지만 이 당시 모금운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는지 비각은 그럭저럭 완공이 되었으나 비석에 글자를 새기는 일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한동안 잊힌 감모비의 존재가 다시 부각된 것은 1915년 가을의 일이었다. 이 당시 대정천황(大正天皇)의 어대전(御大典, 즉위식)이 11월 10일에 거행되었고, 이에 맞춘 기념행사의 하나로 선당(禪堂)의 건립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매일신보』 1915년 11월 11일자에는 이에 관한 건립경위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경성묘심사별원(京城妙心寺別院)에서는 거(去) 10일 오전 10시부터 엄숙한 어대전축성기도회(御大典祝聖祈禱會)를 거행하였는데 우(右) 축도회 종료후 고토 노사(後藤老師; 後藤瑞巖)는 어대전기념사업으로 좌(左)의 취지서와 여(如)히 다년 황패(多年 荒敗)에 귀(歸)한조선불법(朝鮮佛法)의 부활을 도圖)하기 위하여 선당건립(禪堂建立)의 지망(志望)을 발표하였는데 내회(來會)한 음량회(蔭凉會) 회원 제씨는 기(其) 지의(旨意)를 익찬하여 시(是)의 기성(期成)에 취(就)하여

[시론] 5월, 혁명상미성공(革命尙未成功)

2017년 5월 26일 467

우리 민족사에서 5월은 평화와 자유로 아늑한 푸른 계절의 여왕이 아닌, 살육과 탄압의 눈물로 얼룩진 울분의 달이었다. 5・16과 5・18의 긴 질곡 속에서 2017년 5월 9일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 생명이 약동하는 5월을 되찾게 해주었다. 실로 멀리로는 유구한 한민족의 자주정신의 승리요, 가까이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념의 구현이자 항일민족해방투쟁 선열들의 염원의 성취이자 민족통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순절하신 모든 영령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아, 5월의 태양이여, 한껏 화사하게 빛날지어다. 돌이켜보면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0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낭랑한 목소리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을 또박또박 읽던 그 순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5월 10일 오전 8시 10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의결할 때까지 두 달 동안 온 국민은 정치평론가로 표변했고 방방곡곡이 국회처럼 정치토론장이 되었다. 가족과 친인척, 동창과 고향친구, 직장 등 모든 인간관계가 살벌해질 정도로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치열한 대립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였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게이트를 공개한 이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낸 이 웅혼한 1700여 만 시민들의 촛불혁명은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의 대선 패배와는 달리 5월 민주선거혁명을 성공시켰다. 흔히들 자발적인 시민 개개인의 참여가 촛불혁명의 성공 요인이라고 편하게 말하지만, 사실은 오랜 기간에 걸친 시민운동단체들의 굳건한 투지와 응집력과 선구적인 향도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잊어서는

봄날은 간다 – 대구 갑부 서병조의 친일 인생

2017년 5월 26일 635

신주쿠공원 관앵어회 초대 1934년 4월 20일, 봄을 맞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공원은 벚꽃으로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주쿠공원은 벚꽃 명소다. 양복과 기모노로 한껏 갖춰 입은 사람들이 공원을 가득 메웠다. 주인공은 벚꽃이 아니었다. 일본 천황과 황후를 비롯해 황족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고위 관료들과 외국인들도 제법 보였다. 일본 각지에서 초대받아 온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날 신주쿠공원에서는 관앵어회(觀櫻御會)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벚꽃놀이다. 관앵어회는 가을에 열리는 관국어회(觀菊御會)와 함께 일본 궁중의 공식행사였다. 일제는 천황이 국민들과 함께 국화와 벚꽃을 감상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국화와 벚꽃은 일본 황실을 상징한다. 이 행사를 통해 황실의 위엄을 드높이고, 국민들에게 평화롭고 풍요로운 일본이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했다. 벚꽃을 감상하는 사람들 틈에 식민지 조선에서 온 중년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이자 조선을 대표하는 실업가 서병조(徐丙朝, 1886~1952)였다. 작년 추석에는 관국어회에 초대받는 광영을 입었습니다. 올해 다시 관앵어회에 초대되는 광영을 입으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에는 제 처와 함께 지존의 용안을 뵈었으니 진실로 감격하였으며, 일대의 광영입니다. 일본 황실이 여는 관국어회와 관앵어회,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특별히 초대 받은 인사들만 참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본 황실 무늬가 금박된 초대장을 받았다. 특히 조선에서 민간인이 초대된 것은 1929년부터였고, 한 번에 한두 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1934년 관앵어회에 초대된 조선인은 중추원 참의인 서병조와 박영철(朴榮喆) 두 사람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진실을 지켜낸 세기의 재판실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고

2017년 5월 26일 99

역사적 진실을 지켜낸 세기의 재판실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고  신학재 회원 최근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침략 역사를 부인할 뿐 아니라 위안부 할머님들이 동의하지 않는 위안부 합의를 해놓고는 불가역적 합의니 이제 종료되었다느니 망발하고 있는 와중에 유럽판 홀로코스트인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독일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뮌헨 다하우 유대인 수용소의 보존을 통해서 과거를 반성하고 있기에 대학살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극우주의자들이 수십년 간 독가스에 의한 대량학살을 부인하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거꾸로 요구한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더구나 독일인이 아니라 승전국인 영국의 역사저술가 데이빗 어빙은 가스실 대학살을 부인하고 장장 30여 권의 저서를 써서 희생자 숫자가 과장되었으며 히틀러의 지시가 없었다고 강변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미국의 유대학 여교수가 저술한 『홀로코스트 부정하기』라는 책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런던 법정에 고소하여 1996년 9월 5일부터 2000년 1월 11일까지 총32번의 공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최종 공판 끝에 334페이지의 판결문을 통해 여교수가 승소하고, 이 재판 이후 데이빗 어빙은 오스트리아에서 기소되어 3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점을 볼 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과제인 위안부문제에 비하면 형편이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독가스에 의한 학살인 경우에는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고, 아무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더라도 별도의

방응모 사건 파기환송심 판결

2017년 5월 26일 115

지난 5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방응모가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6월 29일 방응모의 행위들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제2조의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고, 이러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이 제기됨에 따라 이루어진 네 차례의 재판 끝에 이루어졌다. 전 조선일보사 사장 고 방우영이 원고로, 또한 조선일보사와 방상훈이 소송의 보조참가인으로 참가한 이 사건에서 2010년 12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은 방응모의 다른 행위들의 경우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지만 제2조 제14호의 “일본제국주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 이에 대한 항소심에서 2012년 1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은 군수업체에 관한 부분도 친일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여 제1심 판결을 뒤집었고, 이에 대한 상고로 2016년 11월 9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한 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군수품 제조업체에서 일정한 직위로 재직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자료들에 비추어 군수품 제조업체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거나 업무집행에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의 행위를 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해석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방응모의 행위는 군수업체를 운영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고 다음에 이번 판결이 나온 것이다. 방응모 사건의 피고인 행정자치부장관 측은 이러한 기준 속에서 대응 논리를 개발하여야 했고 새로이 발굴된 자료들도 제시하며 파기환송심에 임하였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상고심인 대법원의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초점] 역사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1 ‘역적’ 출범

2017년 5월 26일 62

연구소는 5월 15일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역사적폐 청산’(줄임말 역적) 홍보방송을 내보냈다. 연구소는 그동안 박정희기념관 설립 저지,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반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저지,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이르기까지 친일 청산에 앞장서 왔고, 이번 최순실 게이트 때에도 전국 각지의 회원들이 촛불항쟁에 적극 나섰다.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1 ‘역적’은 이명박근혜 9년간 쌓여온 역사적폐를 치우라는 촛불혁명의 역사적 소명을 담아내고자 기획되었다. 팟캐스트 ‘역적’에는 교육홍보실 박한용 실장을 주축으로 하여 방은희, 임선화, 송민희, 오경아 등 상근자가 참여하고 외부 인사로는 김세호 PD가 총괄 기획, 노기환 MC가 진행을 맡는다. 시즌1 ‘역적’은 총 20회로 구성될 예정이다. 1회부터 10회까지는 역사적폐의 주범은 누구인지? 이들의 역사쿠데타 음모와 논리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리고 11회부터는 구체적인 역사적폐의 실체들을 파헤치고 우리가 청산해야 할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그동안 외부강연과 방송출연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역사적폐의 모든 것을 청취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5월 22일에 방송될 제1화에서는 ‘누가 역사적폐의 주범인가’라는 주제하에 고추장을 이용한 우리 시대 진보 보수 수구의 판별법, 대한민국 헌법 1조의 의미, 제1공화국의 비밀=보수와 수구의 뿌리 그리고 건국절의 배경 등 박실장만의 예리한 분석과 재치 있는 비유로 한국 수구의 기원을 파헤칠 것이다. 박실장의 대담이 메인 요리라면, 다양한 부대 메뉴도 준비중이다. 그 중 하나가 ‘이것이 실화냐?’이다. 화제의 역사현장을 찾아가 전문가의

36년 전 맺지 못한 인연, 친일청산운동으로 대신하겠습니다

2017년 5월 26일 42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전에 살고 있는 대전민중의꿈 대표 김창근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요? 저는 선생님을 잘 압니다. 그것은 36년 전 선생님과 제가 천안에서 함께 하게 된 우연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천안 청수동과 풍세를 지나 광덕에 가면 호두가 많이 나는 광덕산이 있었지요. 그 산자락 공원묘원에 선생님이 모셔져 있더군요. 무려 36년이 지나 선생님의 영전에 절을 올리면서 생전에 뵙지 못한 회한과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엄혹한 시절 선생님과의 인연을 끝내 맺지 못했지만, 너무 늦게 찾아뵌 것을 용서해 주실 수 있는지요? 1980년의 봄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기였고, 저는 당시 천안경찰서 남부파출소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공직에 있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친일청산과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민족주의자의 길을 걷던 20대의 열혈청년이었지요. 당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심취해 있던 저는 친일청산을 위해 저술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을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소문과 저술활동에 전념하시는 분을, 아무런 소개도 없이 경찰관이 불쑥 찾아가는 게 결례일 것 같아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서재인 ‘요산재’가 있던 삼룡동은 마침 제가 담당한 지역이라서 호구조사를 핑계로 찾을 수도 있었지만, 호구조사라는 것이 실제로는 주민 사찰하는 수단이어서 그 또한 선생님께 불편을 드릴 것 같아 하지 못하였지요. 그리고 1981년 7월 ‘아람회사건’으로 구속되어 선생님과의 만남을 끝내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2017년 5월 26일 69

일본에서 수화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무라 메구미 씨가 교류하고 있는 청각장애우들의 소장자료를 전달받아 4월 11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지난 11월에도 장애우들의 소장자료를 전달한 메구미씨는 지속적인 교류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자료기증을 유도하고 있다(민족사랑 2016년 11월호 참조). 이번 기증자료는 교과서, 지도, 엽서 등 문서류로서 특히 1944년 문부성에서 발행한 <중등문법>에는 패전 후 전쟁과 관련된 예문을 검은 색으로 칠한 흔적도 남아있다. 한편 기타무라 메구미 씨의 연구소 방문은 4・16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해 방한하면서 이루어졌다. 야노 히데키 씨, <계간 삼천리> 등 도서 기증 4월 16일, 야노 히데키 씨(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잇는 모임 사무국장)가 <日本歷史の圖鑑>(1957), <季刊 三千里> 등 총 40권을 기증했다. 특히 <季刊三千里>는 강재언, 김달수, 이진희 등 재일 조선인 학자들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총 50호를 발행한 진보적인 일본어판 종합잡지다. 김지하 오적필화사건, 김대중납치사건 등 한국의 정치문제와 강화도사건 100년, 3・1운동 60주년 특집 등 한국의 역사, 문화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4월 16일 히다 유이치 씨(일본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가 <現場を歩く, 現場を綴る: 日本·コリア·キリスト教>(2016) 등 도서 3권을 기증했다. 문응상 회원(강원지부), 전교조 활동 자료와 도서 기증 4월 12일, 문응상 회원이 교무수첩, 월급명세서, 40년간 들고 다닌 가방, 학생들의 편지, 신문스크랩, 도서 등 귀중한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했다. 1981년 교사생활을 시작한 문응상 회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이전 ‘교사협의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교조 활동에 참여해 왔다. 문 회원은 방안 가득 채웠던 자료와 도서를 모두 기증하고

[기고]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좀 더 잘 보려면

2017년 5월 26일 50

* 이 글은 <프레시안> 4월 28일자에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모든 것 – 영국 명예훼손 재판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진실이 법정에 서게 된 파라독스 이 영화는 실제 재판(어빙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라고 이름 붙여진 유대인대학살을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이를 규탄하는 역사학자 사이의 대결을 극화하고 있다. 어빙사건은 유럽 곳곳에서 신나치 등 극우세력들이 등장하고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미국의 립스타트 교수는 용기 있게 이러한 흐름을 고발하는 책을 썼다. 이에 대해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영국학자 어빙은 영국법원에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걸었다(영국의 High Court라는 법원은 대개의 영한사전에는 고등법원이라고 번역되고 있고 영화의 번역도 이에 따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제도에서 말하는 항소법원으로서의 고등법원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제1심 법원 역할을 한다). 립스타트는 졸지에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피고의 자리에 서야만 했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어빙이 민사이든 형사이든 피고석에 앉았어야 했을 터이다. 부정론자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지키려는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된 이 역설은 어빙과 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서 재판하려고 했기 때문에 생겨났다(재판이 끝난 뒤 립스타트는 과연 2005년에 ‘법정에 선 역사(History on Trial)’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소송이 제기된 1996년의 시점에는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는 물론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부정하는 것도 범죄로 처벌하고 있었다. 어빙은 전략적으로 그렇지 않은 영국을 선택한 것이다(영국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