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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유상규(1897~1936, 독립운동가)

2018년 7월 2일 101

  만화가 박운음 홍익미술대학 출신의 SNS 1인 미디어 만화가로서 고 노무현대통령 캐릭터를 이용한 만화와 일러스트 등을 그리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드라마틱한 정치역정을 다룬 웹툰 『노공이산』과 캐릭터 일러스트 모음집 『바보 노공화』가 있으며, 청진기를 들고 독립운동에 몸 바 이태준, 김필순, 박서양, 황에스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만화 <조국의 심장을 지켜라>를 펴냈다.

흑석동 한강변 언덕 위에 한강신사가 건립된 까닭은? – 서울 지역 곳곳에 포진한 일제 침략신사들의 흔적

2018년 7월 2일 228

식민지비망록 37 흑석동 한강변 언덕 위에 한강신사가 건립된 까닭은? – 서울 지역 곳곳에 포진한 일제 침략신사들의 흔적   이순우 책임연구원 옛 한강신사 터를 활용하여 지난 1994년에 재건된 ‘효사정’의 모습.   한강대교를 남쪽으로 건너 서울현충원 방향으로 500미터 남짓 걷다보면, 지하철 9호선 흑석역(중앙대입구)에 조금 못 미쳐 한강변 쪽으로 약간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 하나를 만나게 된다. 1955년 6월 25일에 건립된 학도의용병현충비(學徒義勇兵顯忠碑) 앞을 지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효사정(孝思亭)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나타난다. 효사정은 원래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恭肅公) 노한(盧閈, 1376~1443)의 별서(別墅)였다고 전해지는 유적이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했던 곳에다 정자를 짓고 때때로 이곳에 올라 모친을 그리워했고, 멀리 개성 땅에 묘지를 쓴 부친을 추모했다고 하여 ‘효사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기금천현(衿川縣)‘누정(樓亭)’조에“노량나루터 남쪽 언덕에 있는 정자”라는 정도의 간략한 내용이 남아 있긴 하나 사실상 이것만으로는 더 이상의 정확한 원위치 고증이 어려운 상태이다. 하지만 지난 1994년에 서울 정도 600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리는 사업의 하나로 한강주변의 유적지를 복원 정비하는 계획이 추진되었고 이때 편의상 부득의하게 지금의 자리를 선정하여 정자를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곳이 진짜 효사정 자리인지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이 정자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강 쪽 전망이 참으로 빼어나다는 점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소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내내 ‘한강신사(漢江神社)’라는 시설물이 터를 잡고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도 꼭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후지이 가메와카(藤井龜若)가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주부, 역사정의 실현에 나서다

2018년 7월 2일 138

[인터뷰]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주부, 역사정의 실현에 나서다 – 워싱턴지부 주희영 사무국장 방학진 기획실장 인터뷰•박광종 선임연구원 정리   6월 12일, 일전에 귀국한 워싱턴지부 사무국장인 주희영 회원을 연구소로 초청해 오전 11시 30분부터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은 마침 북미정상회담이 있는 날이라 모두가 가슴 졸이며 좋은 결실을 맺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주희영 회원은 2000년 결혼 이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미주 한인사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적폐청산운동과 통일운동에 진력하였다. 또한 작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 워싱턴지부를 결성하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문 : 워싱턴지부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답 : 워싱턴에 민족문제연구소 지부를 세우자고 제안한 분은 윤흥로 선생입니다. 작년 대선이 끝나고 나서 윤 선생은 이명박・박근혜 시기에는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규탄 시위에 진력했다면 이제 새 시대를 맞아 우리 진보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 방안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지부를 결성해서 활동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윤흥로 선생은 고려대 의대 출신으로 워싱턴 지역에서 40여 년간 진료활동을 하면서 각종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오신 분이라 저를 비롯한 워싱턴 교포사회의 활동가들이 그 제안에 적극 찬동하였습니다. 작년 7월 제가 먼저 방한해 연구소를 방문해 지부 설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9월에 윤 선생이 워싱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회장 자격으로 청와대의 초청을 받게 되었을 때 연구소를 방문해 지부 설립에 대한

‘4·27 판문점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2018년 7월 2일 120

[특별대담] ‘4·27 판문점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편집자-지난 5월 18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연구소 회원과 시민 5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4·27 판문점선언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특별대담이 열렸다. 신용옥 상임이사(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대담에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남북관계 최고 전문가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전 통일부장관)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이 지니는 역사적 현실적 의미를 진단하고 나아가 북미정상회담의 향방과 동북아평화체제 구축, 경제공동체의 성립 등을 전망하였다. 대담 요지를 정리하여 싣는다. 전체 동영상은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역사TV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minjok.or.kr/archives/98303   1. 4·27 판문점선언에 대한 소회 강만길 : 여러분 반갑습니다. 나도 텔레비전에서 쭉 봤는데 2000년 6·15공동선언 때가 생각납디다. 6·15공동선언 때 두 정상이 평양 백화원에서 선언에 합의했는데, 그 장면을 아무도 찍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시 사진기자를 불러가지고 재연을 했습니다. 이번에 두 정상이 같이 걸으면서 기자들 마음대로 와서 사진 찍게 하고 정담을 나누고, 나무의자 같은데 앉아 가지고 둘이서 한참 이야기하고. 두 사람 사이에 연령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는데도 전혀 그런 걸 느낄 수 없었습니다. 요새 2, 3일 동안에 조금 다른 이야기가 들리고 있어요. 근데 나는 쉽게 극복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날 두 사람이 회담하는 것을 보고 마치 한 집안의 혹은 한 동네의 노소가 모인 것처럼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이게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미칠 거다, 그래서 6·15 때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라는

기증자료

2018년 7월 2일 30

심정섭 지도위원 제65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123점 보내와 5월 17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6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한국문인협회 전남지부에서 발행한 <전남문단>(창간호~제14호)와지난달에이어 여러 협회에서 받은 초청장, 원고 청탁서 등 다양한 편지를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근현대사기념관 2018 상반기 시민강좌 ‘한 시대, 다른 삶’ 개강

2018년 7월 2일 33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2018 상반기 시민강좌 ‘한 시대, 다른 삶’ 개강 근현대사기념관은 특별기획전 ‘한 시대, 다른 삶’과 연계하여 시민강좌를 개설하였다. 1875년 운요호사건 이래 70년간의 일제 침략, 그 중에서도 식민지배 35년은 우리 역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나라와 민족이 위기를 맞은 그때, 어떤 이들은 목숨과 전 재산을 조국의 독립에 바쳤으나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부와 출세를 위해 제 민족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번 강좌는 전시를 기획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과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일제강점기 서로 다른 길을 걸은 다양한 인물들을 대비하여 조명한다. 강좌는 총 7강으로 6월 12일(화)부터 28일(목)까지 매주 화,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되며, 30일(토) 오전 10시 특별강좌와 전시 관람으로 마무리한다. 근현대사를 심도 깊게 공부하고자 하는 일반 성인 40명을 모집하며 수강신청은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www.mhmh.or.kr)와 전화(02-903-7580)로 가능하고 무료로 진행한다. 이번 강좌는 수강을 원하는 시민의 편의를 도모하고 지리적 접근성을 높이고자 2018년 6월에 새로 개관한 삼각산 시민청에서 이루어진다. 작년 9월에 개통한 우이신설경전철을 타고 솔밭공원역에서 내리면 바로 강의실까지 올 수 있다. 1강부터 6강까지 삼각산 시민청 강의실에서 진행되며, 7강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강의실에서 진행 후 전시를 관람한다. 제1강은 신효승 연구원(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이 3대에 걸친 석주 이상룡 일가의 독립운동을 지도와 그래픽을 통해 설명하고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의의를 살펴보았다. 2강에서 권시용 연구원은 일제강점기 언론인과 문인으로 명성을 떨친 심천풍(우섭)과 심훈(대섭) 형제의 일생을 시기별로 상세히 다루고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제5차 유해발굴 공동조사 마무리

2018년 7월 2일 26

[초점]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제5차 유해발굴 공동조사 마무리 연구소와 4.9통일평화재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이 지난 2월 20일부터 4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 86-1번지 설화산 일대에서 진행한 제5차 유해발굴 공동조사가 마무리되었다. 공동조사단은 2월 20일부터 4월 1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4월 12일부터 23일까지 발굴된 희생자의 유해와 유품에 대해 아산시 공설봉안당에서 감식을 진행하였으며, 5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안치식을 치른 후 세종시에 위치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추모관’에 봉안되었다. 조사단은 이 지역에서 최소 208명의 유해와 551점 이상이 유품이 발굴하였는데, 희생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아산지역 부역혐의 사건 당시에 희생된 부녀자와 어린이들로 밝혀졌다. 유해감식 결과 최소 208명 가운데 어른이 150명, 미성년의 어린이가 58명으로 확인되었다. 유품으로는 M1과 카빈 소총의 탄두와 탄피, 비녀, 귀이개, 단추류, 버클, 고무신,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구슬 등과 함께 여성용 비녀가 최소 89점 발견되어 희생자의 상당수가 부녀자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아산시의 예산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엇보다 연구소 아산지회 회원들의 물심양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한편 5월 29일에는 아산시청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제5차 유해발굴조사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선주 공동조사단 단장은 유해발굴 및 감식결과 보고를 통해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 김영환 대외협력팀장

‘3·1운동의 혁명적 성격’ 심포지엄 열려

2018년 7월 2일 27

[초점] ‘3·1운동의 혁명적 성격’ 심포지엄 열려 연구소는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 박혜영)와 함께 5월 31일 오후 1시 30분부터 덕성여대 대강의동 104호에서 ‘3·1운동의 혁명적 성격’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한편, 연구소가 강북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근현대사기념관(관장 한상권) 개관 2주년을 기념하고자 마련됐다. 올해 심포지엄은 왜 ‘3·1운동’이 혁명으로 규정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여성과 청년 노동자 등 새로이 조직화한 ‘3·1운동’ 참여 계층의 성격과 사회변동에 끼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이전 시기와 뚜렷이 구분되는 ‘3·1운동’의 혁명적 성격을 도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3·1혁명’의 이념적 지평〉이란 기조발제에서 3·1혁명의 성격을 민족혁명, 민주혁명, 국제주의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였다. 곧 3·1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독립을 일차적인 목표로 한 민족혁명”이었으며 3·1혁명을 계기로 새로운 근대적 주체-청년, 여성, 노동자-가 우리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3·1혁명은 “국민주권론을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을 이루기 위한 민주혁명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밝히면서 1910년 7월 6일자 ????신한민보????논설에서1919년4월제정된「대한민국임시헌장」까지각종선언서의분석을 통해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사상적 흐름을 짚었다. 끝으로 3·1혁명이 좁은 민족주의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국제주의를 추구했다고 주장하였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3·1운동과 여성의 현실 참여〉 발표에서 여성사에 있어서 3·1운동이 갖는 의의로서 여학생이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했다는 사실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제정한 「임시헌장」에서 남녀평등을 천명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는 점을 들었다. 1920년 이후 전개된 여성의 현실 참여에 대해 ‘사회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2018년 7월 2일 19

[초점]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5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 7층 한상은라운지에서 각계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최덕수 고려대 교수,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 수령자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심사대상은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수여된 17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논문으로 2월 20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9일 심사위원회에서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조재곤 동국대 교수, 장영숙 상명대 교수, 한모니까 카톨릭대 교수, 김태우 외국어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령자인 유바다 박사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그간의 국제법적 연구와 만국공법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구로서 한국사와 국제법 연구자들에게 주목받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등한시해 온 당대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까지 확보하여 분석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앞으로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법적인 지위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혜영 연구원

일제의 폭압정치를 상징하는 총독부 관리의 패검

2018년 7월 2일 132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44 일제의 폭압정치를 상징하는 총독부 관리의 패검 총독부 시절의 관리들이 제복과 함께 착용한 패검.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奏任官)’이 사용한 패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전체 길이는 84cm 정도) ‘총독부 및 소속관서 직원 복제’에 묘사된 패검의 손잡이 부분 세부 문양이다. 오동문양이 2개인 것은 친임관과 칙임관, 1개인 것은 주임관, 그리고 문양이 없는 것은 판임관 용도이다.   1910년 총독부 출범 당시 총독관저에서 촬영한 총독부 고위관료들의 기념촬영사진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들은 일제히 제복 차림에 칼 한 자루씩을 손에 쥐고 있다.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통치기를 언급하자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의 하나는 ‘칼 찬 제복 차림의 일본인 관리’ 모습이다. 이와 관련된 규정의 연원을 살펴보니, 통감부 출범 직후인 1906년 2월 2일에 제정된 ‘통감부 및 소속관서 직원 복제(服制)’에 이미 오동 문양이 새겨진 ‘패검(佩劍)’에 관한 규정이 포함된 사실이 눈에 띈다. 또 다른 일본의 식민지역에 해당하는 대만총독부와 관동도독부의 경우에는 각각 1899년 2월 17일과 1906년 8월 30일에 ‘문관복제’가 제정되는데, 여기에도 한결같이 관리의 제복에 패검을 함께 차는 규정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일본 본국에는 ‘문관대례복제(文官大禮服制)’에 의해 함께 칼을 차는 제도가 없지는 않았으나, 일상적인 근무복에 패검을 착용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칼 찬 제복’은 그 자체가 매우 위압적이며 차별적인 규정이 아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