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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철도순직자조혼비, 조선철도 1천리 돌파가 남긴 기념물

2019년 10월 29일 158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주도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편찬한 <신자전(新字典) >(1915)의 말미를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뜻이 완전히 색달라졌거나 새로 창안되어 일본 등지에서 흘러들어온 여러 한자어들을 따로 묶어 수록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달러(dollar)를 불(弗)로 쓴다거나 센트(cent)를 선(仙)으로 표기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또한 서양식 미터법의 도입에 따라 미터(m)는 미(米)로, 그램(g)은 와(瓦) 또는 극(克)으로, 리터(ℓ)는 입(立)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가령 천(粁)과 같은 글자인데, 미터(米)가 천(千)개 모여 있는 모양이므로 이는 곧 ‘킬로미터’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천(瓩)이라는 글자 역시 그램(瓦)이 천(千)개이므로 ‘킬로그램’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야드 파운드법에 따른 한자어에도 재미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는 촌(寸, 치)이나 척(尺, 자)과 같은 재래식 단위표기의 개념을 결합 활용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되는데, 예를들어 촌(吋)은 인치(inch)이며, 척(呎)은 피트(feet)이며, 마(碼)는 야드(yard)이며, 리(哩)는 마일(mile)을 나타낸다. 이것들은 전적으로 영국(英國)에서 건너온 단위이므로 대개 촌(吋)은 영촌(英寸)이라 하고, 척(呎)과 리(哩)는 각각 영척(英尺)과 영리(英里)라고 적어도 상관이 없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야드 파운드법에 따른 한자식 표기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역의 하나가 바로 철도 관련 분야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철도라고 하면 종주국이라고 하는 영국의 영향이 월등히 큰 측면이 있으므로 이곳에서는 유달리 미터법보다는 야드 파운드법이 선호되는 경향이 우세했다. 따라서 정거장 사이의 거리라든가 철도선로의 총연장은 몇 킬로미터가 아니라 몇 마일로 기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매일신보> 1915년

기증자료

2019년 10월 29일 129

[기증자료] ▪ 9월 3일 즈시 미노루 씨가 신사 관련 자료 총 184점을 기증했다. 기증자료 중에서 경성여자기 예학교 천우영자(川又榮子)가 손으로 만든 속조끼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와 동일한 자료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속조끼는 군위문품으로 수업시간에 여학생들이 바느질을 하여 전쟁에 나간 군인들에게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 9월 4일 오랜 박물관 후원자인 이치노헤 쇼코(一戸彰晃) 씨가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엽서 등 총 2점을 기증했다. 또한 지난 3월, 군산 동국사에 기증한 자료들을 전시하는 ‘일제강점기군산 역사관’ 개관을 계기로 군산 명예시민이 되었다. ▪ 9월 5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해 일조협회(日朝協会) 아이치연합회 회원인 쿠리모토노부코(栗本伸子) 씨와 카와다 이코히(河田いこひ) 씨가 <쇄미록(초역 상•하 : 히데요시 침략을 받은 조선문화인의 기록)>(2018) 총 2권을 기증했다. <쇄미록>은 조선시대 오희문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쓴 일기로 선조 24년(1591)∼34년(1601) 2월까지 약 9년 3개월간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역자 쿠리모토 노부코 씨는 경성제국대학 시카타 히로시(四方博) 교수의 3녀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1979년 나고야조 선사연구회에서 처음『쇄미록』을 접하고, 일본 정치사나 군사(軍史)적 접근이 아닌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전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역자들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더 이해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번역했다고 한다. 이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에 걸쳐 일본인 독자가 읽기 쉽도록 발췌하여 번역한 것을 기증했다. ▪ 9월 10일 이건제 회원이 문학 관련 도서 13권을 기증했다. ▪ 9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랫동안 연대 활동을 한 조선인 BC급 전범

‘영희’와 ‘철수’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작은 출판사의 꿈

2019년 10월 29일 136

지난 10월 11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판사 <철수와 영희> 박정훈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월간 <작은책>, <보리 출판사>등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다 2006년 사회과학 출판사 <철수와 영희>를 차렸다. 2013년에 도서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김삼웅 엮음)을 제작하며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여 지금껏 후원하고 있다. 매달 연구소에 박 대표가 출판한 책을 한 권씩 기증한다. 문 :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책을 만드는 출판사인가요. 답 : <철수와 영희>는 어린이 ‘영희’와 ‘철수’, 어른 ‘철수’와 ‘영희’가 건강하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움이 되는 책을 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6년 8월 15일 출판사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130여 종의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위한 인문, 사회, 생태 도서를 펴냈습니다. 대표 도서로는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최종규 저), <파브르에게 배우는 식물 이야기>(노정임 저),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이철수, 하종강, 배경내, 송승훈 저),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이유미 저) 등이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어린이, 청소년 도서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에게 사회과학책은 생각을 강화할 뿐 바꾸기는 어려운데 어린이와 청소년은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시기라 책의 영향력이 더욱 큽니다. 그래서 저희 출판사의 청소년 책들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꼭 알아야 할 정치, 역사, 사회, 종교, 환경 등의 주제로 여러 시리즈를 펴내고 있으며 모두 국내 저자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을 잘 담기 위해서는 국내 저자가 집필해야 한다는

‘식민지개발과 수탈의 현장에 서다’ 김제·군산 답사 진행

2019년 10월 29일 120

[초점] ‘식민지개발과 수탈의 현장에 서다’ 김제·군산 답사 진행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연세대근대한국학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답사 프로그램 ‘식민지 개발과 수탈의 현장에 서다 – 김제·군산지역 역사기행’이 10월 5일(토) 전북지역에서 55명이 참가하여 진행되었다. 답사 해설은 허수열 충남대학교 교수가 맡아 주었다. 서울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40여 명과 전북지역에서 합류한 후원회원 10명, 그리고 진행스텝으로 임무성, 김혜영, 김무성 상근자가 참여하였다. 3시간여를 버스를 타고 달려 신태인에 도착한 답사단은 점심을 같이 먹고 낙양취수장을 찾는 것으로 답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구마모토 농장, 벽골제, 만석보터, 죽산보유허, 해창관문 등을 탐방하며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에 남겨진 깊은 상처를 목격하였다. 뿐만 아니라 허수열 교수의 생생한 설명을 통해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번 답사는 근대 한국이 형성되는 공간으로서의 중요한 역사문화적 현장을 직접 탐방하며 강의를 통한 교육을 병행함으로써 역사인식을 제고하였고 아울러 근대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관심과 열린 시야를 갖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더구나 허수열 교수는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삶이 좋아졌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였고, 근대한국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연구방향을 제시하여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번 답사에는 현지의 전북지부 회원들이 함께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고, 김재호 지부장은 참가자 전원에게 새로 도정한 햅쌀을 한 부대씩 선물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도쿄에서 함흥으로: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학술회의 열려

2019년 10월 29일 51

[초점] ‘도쿄에서 함흥으로: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학술회의 열려 10월 4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며, 서울시·강북구·식민지역사박물관이 후원한 ‘도쿄에서 함흥으로: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의 취지는 3·1운동 100주년을 정리하면서, 1919년 그때 우리 민족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독립정신과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일본에서 새로 발굴된 〈2·8독립선언 서명자 취조기록〉과 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함흥지방법원 검사국 검사 이시카와의 함경도 지역 3·1운동 관련자 기소 준비자료 〈대정8년 보안법사건〉을 처음으로 집중 분석하였다. 학술회의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1부와 2부 주제 발표 및 3부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개회식에서 임헌영 소장의 개회사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환영사, 그리고 한완상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의 격려사,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1부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서 최우석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2·8과 3·1 사이-3·1운동 준비과정을 중심으로’를 발제했다. 최 연구원은 3·1운동의 준비과정에서 2·8독립선언이 끼친 영향이 매우 컸다고 말하고 재일조선인유학생 송계백 고국 방문 시점의 분석과 민족대표들의 독립청원에서 독립선언으로 변화과정을 정리하여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였다. 이어서 미야모토 마사아키(宮本正明) 와세다대학 대학사자료센터 연구원이 ‘취조기록을 통해 본 2·8독립 선언으로의 도정’을 발제했다. 여기서의 취조기록은 2012년 일본에서 발굴된 「東京辯護會·第二東京辯護士會合同圖書館所藏刑事訴訟記錄」 속에 포함된 「출판법위반」 부책(簿冊)이다. 미야모토 연구원은 2·8 독립선언 서명자(최팔용, 김도연, 김철수, 백관수, 윤창석, 이종근, 송계백, 김상덕, 서춘)를 일본 경찰과 검찰이

『반일 종족주의』 비판 첫 학술토론회 열어

2019년 10월 29일 70

[초점] 『반일 종족주의』 비판 첫 학술토론회 열어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는 첫 학술토론회가 지난 9월 30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역사왜곡을 넘어 강제동원 피해자를 모욕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등 역사부정을 일삼고, 일본 ‘넷우익’과 연계하여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기할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제기되었다. 연구소는 『반일 종족주의』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자 관련 학계에 긴급토론회를 제안했고 일본군‘위안부’연구회와 함께 개최하게 되었다. 연구소에서는 박수현 사무처장이 친일청산 부정론 비판을, 김민철 연구위원이 강제동원 부정론 비판을 발표했고, 일본군‘위안부’연구회에서는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가 일본군‘위안부’ 부정론 비판을, 김창록 경북대 교수가 ‘법을 통해 본 반일종족주의의 오류’를 다루었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승만학당이 유튜브에 개설한 이승만TV를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위기 한국의 근원 : 반일 종족주의”라는 제목의 동영상 강의를 옮겨 놓은 책이다. 7월에 발간된 지 두 달 만에 10쇄를 찍었고 ‘우파 도서 베스트셀러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이 기이한 현상을 지적한 강성현 교수는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기술로 가능해진 파급력”, 이를 통한 “한일 우파 간 역사수정주의 네트워킹”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박수현 사무처장은 이들이 실증적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내용 대부분이 역사학계에서 이미 낡아 폐기된 이론이거나, 의도적인 비틀기, 과장, 날조와 무지가 빚어낸 궤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승만학당의 교장인 이영훈을 중심으로 주익종, 이우연 등 뉴라이트 학자들은 식민지근대화/미화론자들로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영훈 등이 2000년대 후반

망명지사들 가족방문기(5) 휘하에 십만의 대병(大兵) 말없는 26년 전 구지(舊址), 소련서 활약하는 김광서(金光瑞) 장군

2019년 10월 29일 34

[자료소개] 편집자 주–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자유신문』 1945년 10월 11일자 기사 「망명지사들 가족방문기(5)-김광서 장군편」이다. 자유신문사는 해방 직후 해외에서 독립을 위해 싸워온 망명지사들 가족을 방문하여 망명지사의 근황을 알아보는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김광서 장군 편에서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연고자들을 인터뷰했다. 이 자료를 통해 해방 직후 망명지사들에 대한 관심과 성원이 대단히 컸음을 알 수 있다.   해외에 망명한 혁명지사 중 로서아로 망명하여 이래 26년 동안 그곳에 있다는 김광서(일명 金擎天) 씨의 가족을 방문코저 더듬더듬 알 만한 길을 통해 처음 얻은 소식은 이러하였다. 사직골 막바지 전 부기동 아래 무덕문 뒤로 찾으면 아직도 전에 그가 살던 구지(舊址)가 있으리라는 대단 명료치 못한 말이었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단서이었다. 무덕문 옛터라는 곳은 전에 일본인중학이던 경성중학 뒤 그리고 일인 관리들의 사택이 있는 동리이었다. 그러나 이러타 할 구지를 찾을 수 없어 그 동리에서 나아서 자라서 지금 70이 넘었다는 사직골 막바지의 고로(古老)를 찾으니 자기가 잘 아노라 하면서 들려준 이 얘기에서큰 광명을 발견하였다. 고로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기 세집들이 많이 들어앉은 터가 바로 그 김대장댁 터이요. 지금 번지로 사직정 161번지(166번지의 오기-편집자)지요. 기미년 만세를 불렀던 바로 전 해(1918년) 가을에 김대장이 일본서 우리 동리에 나와 사시게 되었지요. 그때는 집 한가운데 연못이 있었고 연못가로 큰사랑, 작은 사랑이 이었는데 날마다같이 굉장히 손님들이 많이 오시더군요. 그때 식구는 김대장

근현대사기념관 독립민주시민학교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특별강좌 진행

2019년 10월 29일 37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독립민주시민학교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특별강좌 진행 근현대사기념관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개최된 ‘백산무역과 경주최부자의 독립운동-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기획전시와 연계하여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는 주제로 독립민주시민학교 특별강좌를 진행하였다. 최부자를 비롯한 한국 전통 명문가와 자산가의 청부(淸富) 정신과 일제시기 독립운동을 조명함으로써 지도층의 사회적 도덕적 책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고귀한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강좌는 9월 21일에서 10월 6일까지 매주 토, 일 오전 10시에 진행되었고, 매 강좌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특별강좌와 기획전시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 주었다. 첫 번째 강좌는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 상임이사가 〈마지막 ‘경주 최부자’ 최준의 독립운동〉이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기획전시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 이외에도 경주 최부자 고택에서 발견 된 많은 유물의 사진 자료들을 확인하고 최부자 댁의 ‘청부 정신’과 최준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 수 있는 강의였다. 2강 〈백산 안희제의 독립운동 방략〉에 대해서 국민대학교 김성민 교수가 강의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산 안희제선생의 민족교육운동과 백산상회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3강 경주 최부자 주손이신 최염 선생의 회고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고령의 연세임에도 할아버지 최준 선생에 대한 기억과 최부자 댁의 많은 일화를 들려주었고,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듯 한 추억과 함께 최준 선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4강 〈연해주

식민지역사박물관 가을역사강좌 ‘사료를 읽다, 근대 역사와 만나다’

2019년 10월 29일 40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가을역사강좌 ‘사료를 읽다, 근대 역사와 만나다’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진행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연세대근대한국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가을역사강좌가 9월 5일부터 시작하여 10월 22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일 시         강 사   주 제 9.5 .  (목) 서민교 진중일지에 기록된 의병학살 9.10.  (화) 권보드래 매일신보로 본 3•1의 밤 9.17.  (화) 예지숙 회고록으로 본 친일여성들의 기억과 망각 9.19.  (목) 이태훈 시사평론을 통해 본 친일의 논리 9.24.  (화) 이임하 전쟁미망인 구술로 본 한국전쟁 9.26.  (목) 이형식 일기와 서한으로 읽는 식민지 조선의 침략자들 10.1.  (화) 이순우 항공사진으로 본 식민지 경성의 공간 10.8.  (화) 최우석 한일관계사료집으로 읽는 독립운동사 10.10.(목) 김민철 일기로 본 일제말기 전시수탈과 강제동원 10.15.(화) 송병권 GHQ문서에 담긴 해방 전후 한반도와 패전 일본 10.17.(목) 전명혁 일제강점기 형사사건과 형사기록물(치안유지법사건) 10.22.(화) 김승은 한일시민의 투쟁으로 공개된 한일회담 외교문서 사료를읽다,근대역사와만나다’를 주제로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화, 목요일 7~9시에 진행하는 강좌임에도, 매회 30여 명이 넘는 인원이 꾸준하게 참석하여 역사학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근현대사의 전개와 그 속에서 부단하게 움직인 한국인의 삶을 포착하고자 하는 강좌여서 내용이 쉽진 않다. 일기·서한집·사진 등 개인의 기록, 진중일지와 명부·신문(訊問)자료·외교문서 등 전시기 기록과 통치사료, 선언문·사료집 등 독립운동 관련 기록, 그 외에 신문·잡지 등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는

해방이 아닌 침략구호, ‘대동아공영권’

2019년 10월 29일 176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41년 일본에서 제작한 <대동아공영권지도大東亞共榮圈地圖>이다. 일본의 산업조합중앙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가정의 빛(家の光)>이 창간한 지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부록으로 발행한 지도다. 지도는 일본과 일본의 점령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국경선과 항공로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일본의 적이 본토를 폭격하는 가상도를 최상단에 배치하고 아래로 일제가 꿈꾸었던 대동아의 인구, 면적, 일본인 진출 수 등 각종 통계표를 작성하였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한 ‘정한론(征韓論)’을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정한론자들이 주장한 직접적이고 전격적인 군사점령 대신 ‘함포외교(Gunship Diplomacy)’라는 우회 침략의 방식을 취했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1875)과 강화도조약(1876)을 통해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전쟁 등 조선 민중의 강력한 저항을 유혈 진압하면서 마침내 한반도를 강점하기에 이르렀다(1910). 일본의 야욕은 이에 멈추지 않고 한반도를 전초기지로 삼아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대륙침략을 본격화했다. 쇼와(昭和)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군부는 ‘황군(皇軍)’을 자처하며 군국주의로 나아갔고, 한반도 지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만주와 몽고를 일본의 생명선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로 만주침략을 강행한 것이다. 여기에 대공황에 따른 정치·경제적 위기를 타개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결합하면서 군부의 모험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 개전 두 달 만인 11월에 벌써 동북 3성 전역을 장악하였으며, 다음해인 1932년 3월에는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일본은 점령지역 철수를 권고한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파시즘 체제로 전환하면서 노골적으로 침략전쟁을 확대해 나갔다. 193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