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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용산역, 침략군대가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공간 – 군용철도 경의선과 경원선의 분기점이 용산에서 형성된 까닭은?

2018년 10월 20일 129

식민지 비망록 40 이순우 책임연구원 「경성급용산」 지도자료에 표시된 왕십리의 원래 위치. 이 지도를 통해 왕십리 마을은 서울도성 광희문과 왕십리정거장의 중간쯤에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철도여행안내>, 1915)   서울 성동구에 있는 왕십리역전광장 한쪽에는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흉상과 더불어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그의 시 <왕십리(往十里)>를 새긴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비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과연 이곳이 김소월이 말하는 왕십리가 맞는가 하는 사항이다. 그가 월간종합잡지 <신천지(新天地)> 제9호에 이 시를 발표한 것이 1923년 8월이었다. 이 점 에 착안하여 그 시절과 가장 근접한 ‘경성부 관련’ 지도자료를 살펴보면, 왕십리역 앞쪽에는 ‘행당리’로 표기된 작은 마을이 있었을 뿐이고 정작 ‘왕십리’는 이곳과 뚝 떨어져 지금의 왕십리 뉴타운 지역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여기에서 보듯이 흔히 사람들은 왕십리라고 하면 ‘오리지날’ 왕십리의 위치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왕십리역이거나 왕십리네거리 언저리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위치 혼동은 모름지기 ‘왕십리역’ 그 자체에서 비롯된 일인 듯하다. 이 역은 1911년 10월 15일 일제에 의해 경원선(京元線, 용산~의정부 구간)의 운수영업이 처음 개시될 때 뚝도정거장(纛島停車場)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가 이내 1914년 4월 11일에 왕십리정거장(往十里停車場)으로 개칭되었다. 단순히 기차역의 소재지로 본다면 ‘행당역’ 정도로 명명되는 것이 맞았을 테지만 지명도가 약한 탓에 공연히 중랑천 건너편에 있는 ‘뚝섬’을 가져다 ‘뚝도역’이라고도

가족과 함께 본 식민지역사박물관

2018년 10월 20일 74

박찬희 <구석구석 박물관1> 지은이   자꾸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혼자 가도 좋지만 같이 가면 더 좋을 텐데. “얼마 전에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 생겼는데, 같이 갈래?” 다른 때는 박물관에 가자고 하면 두어 번쯤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는데, 웬일인지 이번은 다르다. 딸아이가 박물관을 본 후에는 자기가 가고 싶은 데 가자며 흔쾌히 대답했다. 같이 박물관을 간다는데 그 정도쯤이야. “그런데 거기 뭐하는 데야?” “옛날에 우리나라가 일본한테 지배를 당한 적이 있어. 그때 역사를 잊지 말자고 만든 곳이야.” 아내와 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지인들과 박물관을 새롭게 보는 활동을 하는 덕분에 개관하기 전 미리 박물관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사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아내와 딸은 어떻게 박물관을 볼지 무척 궁금했다. 요즘 우리 가족이 박물관을 관람하는 방법은 이렇다. 나와 딸아이가 같이 다닌다. 대장 역할은 딸아이가 맡고 나는 딸아이를 졸졸 따라다닌다. 반면 아내는 따로 다니며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박물관에서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박물관 입구였다. 그곳은 일반적인 박물관과 다르다. 입구를 따라 늘어선 벽에는 후원한 사람과 단체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이 벽 자체가 무엇보다 강렬한 박물관의 역사였다. 후원자들은 자기 이름을 찾아보면서 얼마나 뿌듯해 할까. 1층은 관람자를 맞이하는 공간이다. 의자와 책상이 놓인 널찍한 곳으로, 나중에는 기획전시 실로 사용할 계획이란다. 딸과 같이 둘러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초석을 놓은 임종국 선생님의 글 앞에서 섰다. 이런 글은 실제로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심의방청기

2018년 10월 20일 67

최태신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장관의 건의로 통일임시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사회 개혁의 기초로 사용될 법령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세워진 입법기관이다. 1946년 10월 간접선거로 선출된 45명의 민선의원과 하지 미군사령관이 임명한 관선의원 45명으로 구성되어 1946년 12월 12일 개원하여 1948년 5월에 해산하였다. 이 기간에 입법의원에서 제정한 주요 법률로는 「입법의원선거법」,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 「조선임시약헌(朝鮮臨時約憲) 등이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신천지> 1947년 6월호에 실린 최태신(崔泰信)의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심의방청기」다. 이 자료는 친일파 처단을 규정한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민선의원와 관선의원들의 치열한 대결 양상을 상세히 다루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사료다. – 편집자주   1946년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 기념사진. ⓒ 국가기록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작년(1946년) 12월 12일 개원 직후, 동원법(同院法)을 심의할 때에 동원법 초안에는 특별위원회로서 자격심사위원회, 임시헌법과 선거법기초위원회, 행정조직법 기초위원회, 식량물자대책위원회, 적산대책위원회 등 다섯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규정하였던 것을 원세훈(元世勳) 의원(좌우합작위원회 소속 관선)의 동의에 의하여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전범(戰犯) 간상배(奸商輩)에 대한 특별법률조례기초위원회를 설치하기로 되었던 것이다. 당시 원세훈 의원의 동의가 만장일치로 순조롭게 가결된 것은 아니었던 것만큼 후일에 정원 90 의원 중 무시할 수 없을 반동적 방해 의원이 없으리라고 예상 안된 바도 아니었지만 하여튼 동위원회 설치 가결은 과도입법의원 자체가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에 대한 처벌법 제정을 입법의원 자신의 일대 사명으로 부하(負荷)하고 나온 것이었으니 해방 이후도 민족반역자 친일파가 일반의 원성이 귀에도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치욕을 회피하지 말고 확실하게 기억하자는 배움터입니다

2018년 10월 20일 65

김판수 전북지부 회원 우리는 많은 열성과 많은 노력과 많은 시간을 들여서 준비한 ‘식민지역사박물관’(Museum of Japanese  Colonial History in Korea)을 국치 108년 만에야 문을 열었습니다. 감개가 무량하고 기쁘고 축하받고 자축할 일이지만 국치 후 조국광복을 위하여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재산과 목숨까지도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셨던 독립열사 순국선열 앞에서는 고개 들 면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식민지역사를 부끄러운 역사라고 외면하고 침묵하고 냉담했던 과오를 반성하면서 치욕을 기억하고 무능을 참회하는 성찰과 치열한 각성으로 일본제국 침략전쟁범죄를 낱낱이 명백하게 밝혀두고 끝까지 망각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민문연 가족들의 단합된 의지는 위대했습니다. 우리는 또 한 번 정의가 불의를 이겼다는 기록과 업적을 남기고 한 걸음 더 전진했습니다. 평화를 이룩할 발판을 이루어냈습니다. 우리가 피식민국의 오욕을 씻어내려면 침략국의 침략전쟁책임을 철저히 밝혀두고 철저하게 물어야 합니다. 침략전쟁을 벌이고 악랄한 식민통치로 죄업을 쌓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종전 73년이 지나도록 패전은 인정하지 않고 종전으로만 기억하면서 과거의 침략역사를 번영과 영광으로만 기억하고자 하는 후안무치한 일본은 가엾은 나라입니다. 일본이 침략국인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침략전쟁은 불의이고 범죄이므로 일본이 전범국이었음을 부인할 여지는 손톱만큼도 없음에도 반성이 없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가해국 일본이 우리 피해국의 수난과 고통, 상처와 아픔, 수모와 치욕을 함께 기억하고 전범국의 과오를 깨우치는데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장래에는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고마운 분들은 민문연 회원만이 아닙니다.

제2의 광복군이 되어 통일의 그날까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장병화 회장

2018년 10월 20일 17

  10월 8일 오전 10시 방학진 기획실장과 함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성남산업진흥원을 찾았다. 성남산업진흥원 원장으로 있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장병화 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장병화 회장은 환하고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선한 인상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인데도 구김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정말 그 많은 풍상을 겪으신 분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에게서 아버지 장이호 선생의 광복군 활동, 기업인으로 자수성가하기까지 겪은 경험담,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후 지속해온 역사실천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 : 부친 장이호 선생은 젊은 나이에 광복군에 투신해 국내 진입을 준비하고, 광복 후에도 중국에 남아 동포들의 보호와 안전귀국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뒤늦게 귀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친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답 : 사실, 제가 너무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어린 시절은 외갓집에서 보냈는데, 그때 우리 식구는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죠. 하루 세끼 제대로 먹어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보냈어요. 아버지에 대한 관심보다 눈앞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 먼저였죠. 고생 끝에 음향회사를 차려 자리를 잡아갈 무렵 당시 남대문시장 안에 광복군동지회가 있는 것을 알고 찾아갔어요. 어르신들이 난리가 났어요. 그분들은 저희 가족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고 계셨죠. 너무도 반갑게 절 맞아주셨어요. 동지의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며, 아버지와 지청천장군이 함께찍은 사진을 내보이시며 일제와 맞서 싸우던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주셨어요. 아버지는 열아홉 나이에

기증자료

2018년 10월 20일 15

심정섭 지도위원 제69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102점 보내와 9월 5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9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박OO이 1950~60년대에 문교부, 전라남도지사 등에서 받은 발령·호봉 통지서, 위촉장, 이력서 등이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재호 회원, 우편저금통장 4점 기증     • 9월 6일 김재호 회원이 강제동원으로 후쿠오카에 끌려간 큰아버지 김도원 씨의 우편저금통장 4점을 기증했다. 김도원 씨는 1940년 일본 후쿠오카현 탄광으로 끌려가 1944년 2월 15일 작업 도중 탄광 이 무너져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사망했다. • 9월 12일 이성재(경기동부지부) 회원이 <일본지리풍속대계> 등 도서 3점을 기증했다. • 9월 27일 최사묵(서울강남서초지부) 회원이 조선총독부 철거 잔해 1점을 기증했다. 최사묵회원은 1905년 을사늑약에 울분, 1906년 충남 당진 소난지도에서 의병활동을 하여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의병대장 최구현 선생의 손자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기증 잇달아   • 9월 10일 이치노헤 쇼코 씨가 <國旗>, <進駐軍が寫したフクオカ戰後寫眞集>(1983) 도서 2점 을 기증했다. • 9월 14일 즈시 미노루 씨가 신사 관련 자료 총 103점을 기증했다. 2년마다 발행되는 야스쿠니 신사화보 <靖國>와 특히 「誉之家」(명예의 집) 기념문패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기에 출정한 병사가 전사 하면 유족의 집 문패 옆에 나란히 부착하는데 이 기념문패를 부착한 집은 ‘명예의집’으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 9월 27일 재일교포 박정화 씨가 소장자료를 기증했다. <조선화보>, <평화통일> 등 총 4박스를 포장해서 보내주셨다. 귀중한

프랑스 내셔널 아카이브 초청전 ‘콜라보라시옹’ 광주에서 열려

2018년 10월 20일 17

  프랑스 내셔널 아카이브가 2014년 해방 70년을 맞아 기획한 〈라 콜라보라시옹, 비시 파리베를린 1940~1945〉 특별전이 10월 11일 광주에서 개막되었다. 연구소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주최하고 내일을여는역사재단·식민지역사박물관이 후원하여 민주항쟁의 상징인 광주에서 열리게 된 이번 전시는 연구소가 2016년 서울시청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한 부역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랑스는 해방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전쟁협력자와 전쟁범죄자를 추적하여 단죄하는 역사청산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초청전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완벽한 진상규명을 위해 새롭게 힘을 모으고 있는 광주에서 열리는 의미는 무엇보다 크다. 이를 반영하여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2018 파리-광주, 끝나지 않은 과거청산’을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프랑스의 과거청산작업을 통해 역사를 바로 잡는 일에 시효와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개막식에는 프랑스 내셔널아카이브 니콜라 우즐로 부관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나의갑 관장 및 5.18민주화운동 관계자, 연구소 함세웅 이사장, 김순흥 광주지부장 및 지부회원들과 언론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 이번 전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다. 2016년 서울시청 전시 개막식에도 참여한 바 있는 프랑스 내셔널아카이브의 니콜라 우즐로 부관장은 바쁜 일정에도 광주를 찾아 이번 전시에 큰 성원을 보내주었다. 우즐로 부관장은 개막식에 이어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누구나가 역사적 진실을 알아야 하며, 국가가 모든 기록을 숨김없이 공개하는 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 개최

2018년 10월 20일 15

  연구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유용주)는 10월 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1층 예인홀에서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의 부제가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을 반대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1부에서는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임헌영 소장이 ‘히가시 후미히토(김동인의 창씨명)의 5막 희극’이란 제목으로 기조발제를 하였다. 임헌영 소장은 김동인의 친일행적과 사상계가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한 문단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나는 이때(1967.6. 장준하가 국회의원 출마로 사상계에서 손뗌) 동인문학상은 끝났어야 한다고 본다. 친일언론과 친일문인의 만남은 어떤 공로에도 불구하고 국민 절대다수가 반감을 갖는다”며 1987년부터 조선일보가 이어받은 동인문학상은 철폐되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김자흔, 유순예, 송경동 시인이 항일시를 낭독하였다. 2부 세미나에서 맹문재 안양대 교수의 사회로 이명원 경희대 교수가 ‘김동인의 대일협력과 동인문학상 문제’를, 오창은 중앙대 교수가 ‘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을, 최강민 우석대 교수가 ‘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를 발제하였고 2001년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거부했던 소설가 공선옥 씨의 회고담이 이어졌다. 이명원 교수는 “김동인의 친일행위는 적극적 자발성을 큰 특징으로 한다”며 “글쓰기와 행적 양면에서 적극적으로 대일협력에 앞장선 김동인이 해방 뒤에는 그와 관련해 허황된 자기변호로 일관했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의 왜곡과 자기변호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동인문학상에 대해 “폐지가 가장 명료한 해법”이라며, “문인들이 친일문인 문학상의 심사나 수상을 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조선의용대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열어

2018년 10월 20일 14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는 10월 10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에서 약 70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의용대 창설 8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열었다. 민족혁명당과 약산 김원봉 주도로 결성된 조선의용대는, 한국인 무장부대가 국제 정규전에 독자적 부대 단위로 직접 참전 및 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되어 광복군의 조직과 전투력 증대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윤경로 상임대표의사회로 제1발표는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위원이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을, 제2발표는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이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을, 제3발표는 최필숙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부소장이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그리고 밀양’을 각각 발제했다. 토론에는 조한성 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철행 독립기념관 연구원, 조형열 연세대 연구교수가 참여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의열단의 중심 세력들이 조선의용대로 진화·발전하는 과정, 조선의용대의 북상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그리고 조선의용군으로의 분화, 조선의용대와 밀양 출신 인사들 간의 관계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다만 조선의용대가 남북 분단이라는 제약 때문에 한국무장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참석자들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날 학술회의 자료집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누리집(www.sh100th.org)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 방학진 기획실장

‘반민특위 설립 70주년 기념 특별기획 – 반민특위의 좌절과 부활’ 서울자유시민대학 강좌 개설

2018년 10월 20일 18

민족문제연구소와 근현대사기념관이 기획하고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가 주관하는 2018년 하반기 서울자유시민대학 강좌가 9월 12일부터 11월 28일까지 총 10주 동안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덕성여자대학교 대강의동 104호에서 진행 중이다.     이번 강좌는 반민특위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반민특위의 좌절과 부활’이라는 주제로 개설되었다. 서울평생교육포털을 통해 사전에 강좌를 신청한 수강생은 30여 명이었으나, 현장에서 추가 접수가 이어져 세 차례의 강좌가 진행되는 동안 매 회 실 수강 인원은 30명을 웃돌았다. 강의는 전체 10강을 1, 2부로 나누어 1부에서 친일파 청산의 좌절과 그 영향을 역사적 맥락에서 다루고, 2부에서 친일청산운동의 전개와 의의를 중심으로 현재 역사정의를 실천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첫 번째 강좌는 김민철 책임연구원(경희대 후마니타스 대학 교수)이 ‘해방공간의 친일파 인식’을 주제로 진행했다. 두 번째 강좌는 〈반민특위 연구〉를 저술한 이강수 국가기록원 수집기획팀장이 반민특위의 활동과 해체과정을 상세히 다루었다. 특히 반민특위가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관계기관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침수, 분명치 않음, 군법상 등 이유로 자료를 내지 않은 정황을 소개하며 정부 차원에서의 자료제출을 거부했던 실례를 언급했다. 세 번째 강좌는 2013년 EBS에서 반민특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의 제작이 중단된 데 사표를 제출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진혁 PD가 맡았다. 반민특위의 좌절이 현재 사회의 역사정의를 어떻게 지연시켰는지 본인의 경험에 비춰 생생한 강연을 진행했다. 이후 강좌는 박수현 연구실장이 ‘독재정권과 친일세력의 구조화’를, 이용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