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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DVD

친일인명사전

2016년 8월 27일 1934

친일인명사전이란? 2009년 11월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전 3권)에는 일차로 4,389명의 친일행위자를 수록했다. 편찬사업의 주간연구소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여 지식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주고 친일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1991년 출범하였다. 연구소는 이후 18년간에 걸쳐 『친일파 99인』 『청산하지 못한 역사』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  『일제협력단체사전』 등 다수의 친일문제 연구서를 발간하고 지속적으로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개최하여,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 시민권 확보에 성공하였다·. 특히 지난 2004년 초에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 전개되어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하였다. 편찬위원회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5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80여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되어 이 역사적 사업을 완수하였다. 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 지방편, 해외편), 식민지통치기구사전, 자료집, 도록 등 총 20여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완간할 계획이다.   친일파의 개념 편찬위원회가 채택한 친일파에 대한 정의는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이다.

친일문학론

2016년 8월 27일 323

『친일문학론』 임종국 저 이건제 교주, 민족문제연구소 편 | 신국판| 640면|35,000원|ISBN: 9788993741100   반세기만에 거듭난 ‘친일파’ 연구의 고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문학론』 교주본 발간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인 1966년 7월 출간되어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으며, 1970-8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기 옥중 필독서로 인기를 끌었던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이 한층 정교해진 내용으로 다시 선보였다. 초판이 발간된 지 거의 50여 년 만에 사실상의 개정판이 발간된 것이다. 『친일문학론』은 친일문제 연구의 단서를 연 기념비적 저작으로 문학은 물론 각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저술과 논문들이 여기에서 시사점을 얻었으며 이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도 그 정신사적 원류를 『친일문학론』에서 찾고 있다. 『친일문학론』이 없었다면 ‘친일’이라는 금기의 영역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 온전한 성역으로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교주본 『친일문학론』은 원저의 골간을 건드리지는 않았으나 전면적인 검증을 거쳐 오류를 바로잡고 읽기 쉽게 재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첫째, 원저에 기술된 기초 사실이나 인용문을 철저히 원자료와 대조하여 오기와 오역, 착오 등을 바로잡았다. 둘째, 어려운 한자말이나 당시 용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나아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사항을 각주(전체 각주 373개)로 처리하였다. 셋째, 한자어, 인명, 지명 등을 가능한 한 한글화하고 필요할 경우에만 한자를 병기하였다. 378명의 한자 표기 일본인명을 각종 근거를 찾아 일본어 발음으로 풀어낸 것도 특기할만한 성과이다. 넷째, 주요 전거인 『매일신보』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2016년 8월 27일 193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의 현장 보고서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출간 왜 역사학자들은 거리로 나섰나? 지난 겨울 역사를 전공하는 원로 학자와 중진 교수들은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 강의를 이어갔다. 이들을 강의실에서 길거리로 내몬 주범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박근혜 정권이었다. 2014년 정권의 노골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뉴라이트 계열의 교학사 고교 한국사(이하 교학사 한국사)가 검정절차를 통과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이승만 박정희 등 특정인물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위인전에다 현대 정치사의 주요한 문제를 모두 북한 탓으로만 돌리는 기형 종북주의 역사책, 엉터리 통계와 인터넷에서 떠도는 잘못된 자료를 무단으로 사용한 표절과 오류투성이의 역사책이라는 등 온갖 오명을 입고서 교학사 한국사가 탄생한 것이다. 교육부가 교열부라는 오명까지 감수하며 갖은 편법과 특혜를 동원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노골적으로 지원했음에도 학교 보급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워 뉴라이트의 완전참패로 끝났다. 뉴라이트에게만 압도적인 특혜를 부여한 경기였음에도 완전참패로 끝나자 정권은 아예 경기판을 갈아엎어버렸다. 2015년 1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역사 국정화를 언급한 이래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온갖 탈법, 불법을 자행하며 결국 11월 3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를 확정 고시하였다. 이에 8월, 교학사 한국사 반대운동을 전개해온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주도하여 전국 480여 개 학술·교육·시민단체가 하나로 결집하여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상임대표 한상권, 이하 국정화저지넷)를 출범시켰다. 출범 이후 국정화저지넷은 성명서 발표와 서명운동, 거리 선전 및 전시회, 천막농성, 홍보동영상 제작, 범국민대회 개최, 헌법소원을 위한

민들레의 비상

2016년 8월 27일 190

책소개 『민들레의 비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의 하나로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이다. 지복영 여사는 1919년 4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거목이던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서울에서 태어나 망명한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중에는 한국광복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다가 2007년 4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회고록은 지복영 여사가 삶을 마감해야 할 날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노년의 나이에 초고를 쓰기 시작한 이래 고치기를 거듭했지만 끝내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 못해 제목도 붙이지 않은 ‘미완’의 육필 원고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대학노트 세 권 분량의 육필 원고 가운데 마지막 원고에 각주의 형태로 약간의 보완을 한 것은 지복영 여사의 두 아들이다. 원래는 두 아들의 이름을 같이 올려야 하지만 아우가 한사코 형의 이름만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우겨서 큰 아들인 이준식의 이름만 정리한 이로 올렸다. 저자소개 저자 : 지복영 저자 지복영은 1919년 4월 서울에서 지청천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될 때 여군으로 입대했다. 처음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기관지 『광복』을 편집하는 일을 하다가 1942년 4월부터 안휘성 부양에서 광복군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광복군 총사령부 비서를 거쳐 해방 직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2007년 4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2년 5월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저자 : 이준식 (정리) 저자(정리) 이준식은

내일을 여는 역사 63호

2016년 8월 27일 193

<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올해부터는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기로 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특집1> 유신체제는 왜 몰락했나? – 공안사찰: 감시와 자기검열의 일상화 / 김원 – 공장새마을운동과 민주노조운동 / 유경순 – 제도언론의 정착, 민중언론의 태동 / 김한종 – 교육 통제와 학교 교육 / 김한종 – 대중문화 통제: 감성까지 국정화하려는 오만 / 이하나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던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벌써 3년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걸었던 복지 중심 공약을 실천한 것이 거의 없다. 지난 4.13총선에서 현 정부의 실정을 꾸짖는 준엄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고도 국회가 정부 발목을 잡아서 아무 것도 못 했다고 남의 탓만 하여 청와대에 모였던 전국 언론사 국장들을 아연하게 했다. 국회가 여소야대 국면에 돌입하여 정권이 레임덕에 빠질 국면에 임해서도 박대통령은 여전히 전세계를 돌면서 정상 외교를 한다. 이란에 가서는 자그마치 42조 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양해각서 체결조차 실패한

내일을 여는 역사 62호

2016년 8월 27일 155

이번 호의 첫 번째 특집으로 ‘해방 70년의 역사적 성찰’이라는 기획좌담을 마련했다. 해를 넘겼지만 오히려 담담하게 민족사의 전개과정을 돌아보고 역사적 과제를 진단해보기 위해서다. 서중석, 김용흠, 박한용, 김성보 네 명의 학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 그 자체라 할만 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과 국제적 영향력 등을 되짚으면서, 시대의 분수령이 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조선후기부터 진행된 내재적 발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주적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었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 아래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근대 초기의 역사적 경험,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이 좌우합작운동의 형태를 취하며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해방 직후 터져 나온 민족 내부의 저력, 잔혹한 독재하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의 의의 등에 대해서 참석자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뉴라이트가 한국 역사학계의 역사인식을 ‘자학사관’이라고 폄하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성장지상주의에 대해서도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공박했다. 흔히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들을 일제 천황제 파시즘에 뿌리를 둔 쌍생아로 비유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날 ‘자학사관’ 타파를 외치는 데서도 이들 간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가 과연 한국근현대사를 자학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좌담은 명쾌하게 밝혀주었다. 본격적인 논의는 차후로 미뤄졌지만 참석자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납득하기 힘든 기형적 현상들의 결정적 원인을 분단구조에서 찾았다. 그 해법 또한 분단구조의 해소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일을 여는 역사 62호

2016년 8월 27일 119

이번 호의 첫 번째 특집으로 ‘해방 70년의 역사적 성찰’이라는 기획좌담을 마련했다. 해를 넘겼지만 오히려 담담하게 민족사의 전개과정을 돌아보고 역사적 과제를 진단해보기 위해서다. 서중석, 김용흠, 박한용, 김성보 네 명의 학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 그 자체라 할만 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과 국제적 영향력 등을 되짚으면서, 시대의 분수령이 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조선후기부터 진행된 내재적 발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주적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었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 아래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근대 초기의 역사적 경험,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이 좌우합작운동의 형태를 취하며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해방 직후 터져 나온 민족 내부의 저력, 잔혹한 독재하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의 의의 등에 대해서 참석자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뉴라이트가 한국 역사학계의 역사인식을 ‘자학사관’이라고 폄하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성장지상주의에 대해서도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공박했다. 흔히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들을 일제 천황제 파시즘에 뿌리를 둔 쌍생아로 비유하지만, 공교롭게도 오늘날 ‘자학사관’ 타파를 외치는 데서도 이들 간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가 과연 한국근현대사를 자학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좌담은 명쾌하게 밝혀주었다. 본격적인 논의는 차후로 미뤄졌지만 참석자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납득하기 힘든 기형적 현상들의 결정적 원인을 분단구조에서 찾았다. 그 해법 또한 분단구조의 해소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와 책임 8호

2016년 8월 27일 157

<내용소개> 이번호에서는 과거사 재심과 관련하여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소송 과정에서의 인권침해와 2차 피해>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진화위를 비롯하여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진실규명을 바탕으로 많은 피해자나 유족들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하여 재판이 진행되어 왔다. 그 사건들 가운데 일부는 무죄가 확정됨과 동시에 국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은 사건도 있고, 또 일부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시효가 지난 사건으로 판결되어 피해보상에서 제외된 사건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과거사 위원회에 의해 진실규명이 결정되었음에도, 재판 과정에서 증거 부족으로 피해자로 인정되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족들도 많다. 이명박 정부 이후 과거사 재심 과정에서 시효 문제와 보상금 결정 등에 있어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과거사 관련 당사자 또는 유족들의 인권침해와 2차 피해 사례가 중대한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임채도의 <재심과 국가배상 소송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인 재심 사건의 여러 사례를 통해 재심 사건이나 국가배상 소송사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의 실상을 파헤쳤다. 진실 규명으로 인한 재심 사건에서 고문피해자가 가해자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2차 피해, 재심에서 무죄 선고가 되었음에도 검찰 측에 의해 되풀이되는 형식적인 상소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의 배증, 재심과정에서 계속되는 사회적 낙인과 종북몰이 등 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재심사건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에서 재판부의 반성과 사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독재정권 시절 사법부가 내린 잘못된 판결을 반성하는 모습은 하급심에서 주로 볼 수 있을 뿐이고,

역사와 책임 7호

2016년 8월 27일 142

권두언 홍순권 동아대교수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사고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싼 수많은 의논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그 원인을 지적한 의논 중 정부가 짚어낸 ‘적폐’라는 어휘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정곡을 찌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적폐란 말 속에는 이번 참사가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모순의 누적 결과 일어난 사건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 용어의 사용자가 진정으로 이 말의 내포적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썼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번 참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해결 방안으로 정부가 제시한 ‘국가대개조’ 또한 그 참 뜻이 적어도 오늘날 국가 시스템이 지닌 적폐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원대한 구상이라고 한다면 그 신조어에서 풍기는 국가주의적 뉴앙스를 지나치게 탓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지닌 병리적 현상의 종합세트와도 같다고 일컬어지는 세월호 참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인가 근원적인 개혁이 이루어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전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적 대사건이나 전변이 사회적 모순의 적폐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지적이 아니다.올해로 120주년을 맞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도 삼정의 문란이라고 불리던 봉건사회의 적폐가 주요 원인이었다. 농민전쟁이 일어나기 전 수십년 동안 그 적폐가 쌓이면서 ‘민란’(농민봉기)이 반복되었고, 그 적폐의 미온적인 해결이 결과적으로 더 큰 적폐를 만들어 결국은 고부농민봉기에 이어 전국적인 농민전쟁을 초래했던 것이다. 적폐의 해소를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역사와 책임 6호

2016년 8월 27일 138

과거청산전문잡지 <역사와 책임> 6호 발간 민주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해야 하는 제도적 개혁만큼이나 미완의 과거사 청산의 과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번 호에 특집으로 다룬 사할린동포 문제도 그 하나이다. 사할린 한인 동포들이 낯선 땅에 강제로 동원되었다가 해방이 되고서도 방치된 지 올해로 75년째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관심은 부족하다. 그 동안 일부 동포들이 귀환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미비하여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다. 우선 당장 해결해야 할 사할린 동포의 영주 귀국 문제도 중요하지만, 과거사 청산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 대한 역사 연구자들의 관심이 지극히 요청된다. 그만큼 사할린 동포의 유민사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특집>에 실린 배덕호와 최상구의 두 글은 사할린 동포의 강제징용에 대한 이해는 물론 앞으로 대중적 관심과 연구열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논문>에서는 국정원 개혁과 역사교과서의 왜곡 문제를 다룬 두 편의 글이 게재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두 주제는 올해 우리 사회의 정국을 흔들었던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매우 시사적인 주제이지만, 그러나 피상적인 관찰이 아니라 구조적 분석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김민철의 「신우익의 역사공격과 역사인식」은 올해 뜨겁게 역사학계를 달구었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된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를 다룬 것이다. 다만,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자체를 분석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