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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역사단체들, KBS에 ‘단단히’ 뿔났다
KBS의 이승만, 백선엽 미화 다큐에 대해 역사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것”이라며 매우 우려하고 있으나, 정작 KBS 내부에서는 ‘수신료 인상’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을 염려해 ‘친일 독재 방송 저지 투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KBS가 독재자 이승만에 이어 친일파 백선엽 장군 미화 다큐까지 추진하고 나서자 항일 독립운동 단체, 4.19 혁명 단체, 6.25 민간인 희생자 유족 단체들은 언론단체와 함께 9일 ‘친일·독재 찬양 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상황이다. 이들은 KBS의 행태에 대해 “근현대사를 송두리째 왜곡하고 분탕질을 쳐서라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친일, 독재, 수구세력의 준동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러고도 어떻게 국민들에게 수신료를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분개하고 있다. KBS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KBS 내부 게시판인 코비스(KOBIS)에는 ‘친일 독재 비호 방송 저지 투쟁’을 진행 중인 KBS 새 노조에 대해 “(수신료 인상을) 목전에 두고 집중이 분산되고 있다”며 비판하는 의견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KBS 직원 A씨는 “(수신료 인상의) 결과를 목전에 두고 집중이 분산되고 있다. (수신료 인상 달성이)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상태에서 혹시 수신료 인상을 배아파하는 불순세력이 (있느냐)”며 “친일이고 독재이고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선순위는 수신료 현실화”라고 밝혔다. 8일 게시된 이 글에 대한 ‘반대’ 숫자는 9일 현재 37에 불과한 반면, ‘찬성’ 숫자는 반대의 두배 이상인 81에 이른다. 직원 B씨도 “수신료 인상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中 광복군 지휘소 터 나이트클럽 전락
(상하이=연합뉴스) 김대호 특파원 = 항일 독립투쟁에 앞장섰던 광복군의 중국내 유적들이 관리소홀로 기념 표지석도 하나 없이 방치된 채 나이트클럽, 자전거 주차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9일 상하이총영사관에 따르면 중국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시 런민중루(人民中路) 226호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휘소 부지에 맨해튼 나이트클럽이 들어서 성업하고 있다.2층의 대형 돔 형태인 나이트클럽 건물은 또 내부 홀 주변 공간에 룸살롱도 개설돼 있다.광복군 지휘소는 한국 독립 이후 한동안 원래 모습을 유지했으나 1950년대 인민극장으로 변모한 후 수년 전부터 나이틀클럽과 룸살롱으로 개조됐다. 광복군 3지대는 김학규 광복군 고급참모 겸 제2특무대장이 안후이성과 산둥(山東), 장수(江蘇), 허난(河南) 등에 거주하던 한국 교민 자제들을 대상으로 모병활동을 벌여 설립됐다. 김학규 특무대장은 광복군 모집위원회를 구성, 일본군 후방까지 침투해 한국인 사병들과 연락하며 민족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들어올 것을 설득하는 임무도 수행했다.광복군 3지대는 1944년 병력수가 100여명에 달했고 나중에 205명까지 확대됐다.푸양시에서 1시간 거리인 린췐(臨泉)시의 광복군 훈련반은 린췐제1중학교의 부지로 편입돼 자전거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훈련반은 현재의 신병 훈련소와 같은 곳이다. 린췐 광복군 훈련반은 1기 졸업생 50명 전원을 전선에 파병했고 2기 졸업생은 광복군 모병처에 남아 신입대원 훈련을 담당했으며 3기 졸업생은 충칭(重慶)의 임시정부와 광복군 총사령부에 배치됐다.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인 광복군 유적들이 이처럼 방치된 것은 정부의 관심 부족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정부는 광복 후 임시정부 청사 복원과 관리에 치중, 광복군 유적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못했다. 또 광복군 유적들이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관리하기가 쉽지
반성, 그리고 용서, 친일은 청산될 수 있는가
▲2월 24일(화) 밤10시 50분 ~ 11시 30분(40분간)제 22회 (2월 24일)반성, 그리고 용서, 친일은 청산될 수 있는가 1.기획의도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함께 치르고 문화 개방을 통해 한 걸음 가까워진 듯 하지만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과 반일감정은 가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반일 감정은 지난 36년 간의 식민지로 인한,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이다. 최근 송병준 후손의 땅찾기 소송과 홍난파기념관 건립, 그리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으로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친일청산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친일청산을 통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청산을 하려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인지, 반성과 용서, 이를 통한 화해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살펴보려고 한다.2 주요내용1) 친일의 기준지난 1월 19일. 옛 반민특위가 있었던 명동의 한 은행 앞에 국가에서 해내지 못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모금 5억원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150여명의 네티즌이 모였다. 친일청산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 옛 군수시절 친일 했던 이항녕 박사의 자신의 과거 고백을 들어보고, 인명사전편찬 운동을 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을 통해 가장 민감하게 대두되고 있는 친일의 기준에 대해 정확히 짚어본다.** 옛 군수시절 친일행적을 고백한 이항녕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 방학진 사무국장2) 물타기 수법을 둘러싼 논쟁박정희를 비롯하여 홍난파에 이르기까지 친일행적이
공식마감이후 쏟아진 모금 뒷얘기
공식 마감 이후 쏟아진 <친일사전> 모금 뒷얘기 오프라인까지 확산…삼일절 ‘팔도독립군 총 거병의 날’ 행사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방학진(vacationji) 기자 ▲ 2004년 2월 5일 민가협 주최 목요집회에서도 성금 모금이 이뤄졌다 ⓒ2004 민족문제연구소 지난달 8일부터 19일까지 이뤄진 네티즌들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기금 모금은 ‘과거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가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역사정의실현의 열기는 더 나아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 19일 5억 달성 기자회견과 촛불모임이 있은 후 적지 않은 질문이 연구소로 쏟아졌다. 질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가장 많은 질문은 ‘모금을 중단하는 것이냐’를 묻는 것이었다. 19일 정오 현재 7억 1359만원 모금 지난 1월 8일 부터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용 모금은 모금 개시 11일만인 1월 19일 5억원 모금을 달성했다. 이는 당초 8월 15일 광복절까지로 예상했던 것을 훨씬 앞당겨 달성한 것이다.<오마이뉴스>는 당초 모금액 5억원이 달성됨에 따라 공식적인 모금은 일단락 짓고 모금 창구를 민족문제연구소로 넘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모금 열기는 식지 않아 그로부터 5억원 모금이 달성된지 한 달 뒤인 2월 19일 현재 7억원을 넘었다. 구체적인 액수는 19일 정오 현재 총 모금액은 총 713,599,696원 (31,075건)으로, 국민은행분은 332,436,788원(13,018건), 농협분은 185,715,907원(8,402건) 이다. 이밖에 신용카드 등으로 접수된 금액은 195,447,001원(9,655건)이다. 이 질문에 대해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의 힘으로>라고 구호를 바꿔, 이번에 확인된 성금 모금
지금도 말할 수 없다(2)
이 만화는 인문만화교양지 싱크(SYNC)에 연재하고 있는 조남준 작가의 “지금도 말할 수 없다” 제 2편이다. 전재를 허락해 준 싱크 편집진과 조남준 작가께 감사드린다. 글, 그림 조남준 : 시사만화가. 1966년 서울 출생. 8년간 <한겨레21>에 “시사 SF”를 연재. 그외 내일신문 “만화같은 세상”, 경향신문 “메모리즈” 등으로 활동했다. <▶ 전자책 보러가기> ☞ 지난 호 보러가기 ☞ 인문만화 교양지 “싱크” 누리집 바로가기
‘마지막 광복군’ 김준엽 선생의 대장정 90년
지난 7일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사회과학원 이사장)이 향년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항일투사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시대의 지성’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웠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일대기를 돌아볼까 한다.김준엽 선생은 1944년 일본 유학 중 학병으로 징집되었다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다. 광복군 제 2지대에 배속돼 특수공작훈련을 받은 뒤 항일무장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서 이범석 장군의 부관으로 복무했다. 건강비결을 물으면 “특별히 운동하는 것도 없어, 유격훈련 혹독하게 받고 공동묘지에서 돌베개로 잠들고 했던 게 도움이 되나봐” 라고 답하기도. 중국에 진군한 일본군 부대로 배속 받은 뒤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고 장준하 선생과 만나고, 함께 파촉령을 넘게 되는데, 남양에서 중경으로 가는 길목에 가로 놓인 파촉령은 거친 산맥을 넘는 고개로 너무 험해 제갈공명도 넘기를 꺼렸다 하고, 제비도 못 넘고 포기한다는 전설의 준령으로 일본군도 거기서 진군을 멈췄던 곳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지금 이 형벌은 다시는 못난 조상이 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다. 우리 후손들에겐 결코 이런 고생을 물려주지 말자” 다짐들을 하며 7일간 눈보라를 뚫고 파촉령을 넘었다고 한다. 장대한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팔로군과 신사군, 그리고 국부군 지역을 넘나들며 일본군의 추적을 따돌리고, 눈덮힌 파촉령을 맨 몸으로 넘어 중경 광복군 부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여정, 그것이 ‘6천리 장정’이다. 최초 항일우국지사 중 한 분인 신규식 선생은 무관 출신으로 을사늑약 때 분을 못 이겨 자결 시도, 경술국치로 국권을
누가 왜 일제 잔재 청산을 반대하는가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중음신(中陰身)으로 묶여있는 동안 ‘친일인명사전’ 편찬 모금운동은 범국민적인 지지를 얻고있다. 민족반역자를 역사적으로 심판하려는 보통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여의도의 두꺼운 돌집을 뚫고 철심장을 가진 비보통 ‘선량’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그들에게 급한 것은 구속 동료 의원의 석방, 미국의 파병 요구에 냉큼 응낙하기, 자신의 섬지기 검은 돈은 원천 봉쇄하면서 다른 당의 됫박 돈이 구리다고 추궁하려는 청문회, 개혁 정책을 물 타서 식은 죽 만들기, 그리고 가장 간절한 오, 17대 국회에 개선장군처럼 ‘선량’으로 복귀하려는 야망이 아니던가. 우리 보통사람들, 이만큼 속아줬으면 됐다. 이제 불과 두 달 앞이다. 아마 다다음 주면 우리 앞에 고개 숙이고 온갖 감언이설, 조삼모사로 등장할 터이다. 제발 더는 속지 말자. 대체 누가 일제잔재 청산을 반대하는가. 어떤 개혁이든 강력한 반대자는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인 게 세상의 기본 이치인지라 이 쟁점도 예외는 아니다. 이해 관계가 명백한 상대는 어떤 정당성이나 논리와 대의명분과 설득에도 움쩍 않는다. 친일반민족 행위자인 국민 전체의 0.0001%쯤이 이에 해당될까. 이 극소수의 반민 세력이 독립운동가, 강제 징용, 입대, 정신대, 부역, 공출 등등 일제의 직간접적인 희생자인 절대다수를 누르고 큰소리 칠 수 있었던 도깨비 방망이는 외세 의존과 분단과 독재와 군부통치라는 일제와 다를 바 없었던 강압체제였다. 이제 민주화 시대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던 질서를 바꿔야
독립유공자 후손 10명중 6명 ‘하층민’
경향신문 2004년 2월 19일치 보도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은 독립유공자 후손들만의 자조섞인 푸념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임이 확인됐다. 경향신문이 국내 언론사상 처음 실시한 ‘독립유공자 유족실태 설문조사 결과’ 독립유공자 후손 10명 중 8명이 고졸 이하 학력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학력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낮은 교육수준은 직업선택의 기회를 박탈해 후손 10명 중 6명은 현재 직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또 가난과 궁핍으로 이어져 10명 중 6명이 자신의 생활·경제수준이 ‘하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지난 2일부터 17일까지 전국 6개 지역의 독립유공자 후손 2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경제·생활수준이 ‘하층에 속한다’는 응답자가 59.4%(133명)나 되는 반면 ‘중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이는 40.1%(90명)였으며, ‘상층에 속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1명뿐이었다. 결국 자신의 생활·경제수준이 ‘중·하층에 속한다’는 응답이 99% 이상으로 ‘의식조사’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학력과 직업에 대한 답변을 보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더 구체적으로 입증된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서는 응답자 225명 중 131명(58.2%)이 ‘무직’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농업 44명(19.6%), 회사원 12명(5.3%) 순이었다. 학력은 무학이 25명(11.1%), 초등졸이 43명(19.1%), 중졸·중퇴가 31명(13.8%)으로 독립유공자 후손 절반 가량이 중졸 이하의 학력으로 교육을 제대로 못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국가보훈처가 연금 등 보훈혜택과 관련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생활수준을 조사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언론사·민간연구소가 후손들에 대한 생활·경제·학력수준 실태조사를 종합실시한 전례는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립묘지에 묻힌 친일파
현충일이 있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매년 이맘 때만 호들갑 떠는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도 없지 않습니만,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의 마음만은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6월에는 뉴스도 호국보훈 관련 기획 아이템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뉴스를 달력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현충일 기획기사를 알아보던 중 문득 지난 4월 장지연 등 19명의 서훈이 치탈된 사실이 떠올랐습니다.<지난 4월5일 SBS 8뉴스 기사>“‘시일야 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언론인 장지연을 비롯한 19명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취소됐습니다. 독립운동의 공보다는 변절 후 친일행적이 더 뚜렷했다고 정부가 최종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서훈을 취소한 것인데… 문제는 이 들 19명 가운데 10명이 국립묘지에 이미 안장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10명의 안장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번호 묘지별 성명 훈격 묘역번호 1 대전현충원 박성행 90 애국장 애국지사 1-212 2 이동락 90 애국장 애국지사 2-488 3 강영석 90 애국장 애국지사 1-264 4 김응순 93 애국장 애국지사 3-360 5 박영희 90 애국장 애국지사 1-166 6 유재기 95 애국장 애국지사 3-891 7 서울현충원 김홍량 77 독립장 애국지사 -196 8 윤익선 62 독립장 애국지사 -134 9 이종욱 77 독립장 애국지사-177 10 임용길 90 애국장 충혼당 2-212-127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 4,776명을 친일파로 등재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위 사람들은 정부가 정식으로 서훈을 취소한 인사들입니다. 이들 중 일부 유족들은 정부의 서훈 취소를 다시
인촌 김성수 친일 논란으로 인촌길 개운사길로 복원
서울 성북구는 안암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사찰 개운사 진입로 이름을 인촌길에서 다시 원래대로 개운사길로 바꾸기로 했다. 구는 지난 2007년 시행된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지난해 6월 개운사 진입로인 ‘개운사길 51’을 주(主)도로인 인촌로의 이름을 따 ‘인촌로 23길’로 바꾸고서 지난달 이를 개운사 측에 알렸다. 그러나 개운사와 항일운동단체들은 “일제 강점기 항일 불교운동의 거점이었던 개운사 진입로에 친일인사 김성수의 호를 딴 이름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명칭 환원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7일 성북구에 따르면 최근 행정안전부에 도로명주소법상 ‘개운사길’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질의해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행안부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사찰은 도로명으로 쓸 수 없지만 지정 문화재인 종교시설을 포함하면 가능하다”며 “개운사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재 5건이 있어 문화재 지정 사찰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성북구는 도로명 재변경 공고를 내고 도로명주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말 이전에 ‘개운사길’을 복원할 계획이다. 개운사 측은 “개운사가 조선시대 세워져 전통이 깊고 항일 불교운동의 중심이기도 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성북구가 늦게나마 깨닫고 지켜주겠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촌 김성수는 일제강점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교장을 맡기도 했으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그가 친일단체에 가담하고 학병제를 찬양했다며 친일행위자로 규정했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 9개 단체로 이뤄진 ‘항일운동가단체협의회’는 개운사길에 이어 고려대사거리~보문역 1.2㎞를 잇는 인촌로를 비롯해 친일인사 인명이나 호가 붙은 전국의 모든 도로명을 변경할 것을 행안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고희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