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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프레시안] 강제동원 피해자 측, 윤석열 정부와 “신뢰관계 깨졌다” 민관협의회 불참
피해자에게 정부 의견서 제출 설명했다는 외교부에 피해자 측 “설명이 아니라 통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회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피해자들의 권리 시행을 늦추기 위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는 과정에서 피해자 측에 사전 통보도, 사후 설명도 없어 신뢰관계가 깨졌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3일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상대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지원단(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및 피해자 대리인(법무법인 해마루 장완익·임재성·김세은 변호사)은 서울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 및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외교부와 피해자 측 사이에 신뢰관계가 파탄났다고 판단한다”며 “이에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이후 민관협의회 불참을 통보한다”고 밝혔다. 앞서 외교부는 7월 26일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심에 대해 민사소송규칙에 근거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일 이 의견서에 “한일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라며 “민관협의회는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는 차원”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외교부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이후 원고 및 피해자 측에 내용을 설명드렸다”며 “피해자 분들에게도 의견서 제출 사실 및 내용을 전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해당 의견서 제출을 사전에 피해자들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정부 입장을 확인하고 공개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의견서 제출에 대해 민관협의회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오마이뉴스] ‘백마 타고 온 초인’을 기리다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 80주기 추모제 열려 지난 3일 늦은 오후 6시, 경북 구미시 임은동 왕산 허위 선생 기념공원에서 허형식 장군 제 80주기 추모제가 유족 및 구미 시민 등 50여 명의 참배객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고도 장엄하게 열렸다. 이번 추모제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하고, 광복회 경북지부가 후원했다. 이날 추모제는 식순에 따른 국민의례와 분향, 헌화에 이어 김영덕 민문연 구미지회장의 행사 의의, 이재섭 고문의 공적보고, 허형식 장군의 조카 허창수 옹의 유족 인사에 이어 <허형식 장군>을 쓴 필자의 작품 배경 이야기가 있었다. 필자는 구미 출신으로 선산 구미는 충절의 고장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현대사에서 그런 인물을 발견치 못하던 중, 1999년 여름 항일유적 답사 길에 북만주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을 만나자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감동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듬해 홀로 북만주 벌판의 허형식 장군 희생지에 들꽃을 헌화한 뒤 귀국하여, 10여 년 도 닦듯이 오대산 월정사 등지에서 작 이 작품을 집필하여 마침내 세상에 내놓았다. 장엄한 허형식 장군의 생애 장세윤 박사(전, 동북아 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는 허형식 장군의 장엄한 생애에 대해 ‘자유와 정의, 평등과 해방을 위한 최후의 전사’라는 추모사를 했다. 장 박사는 일찍이 <허형식 연구>라는 논문을 국내 처음으로 발표한 바 있다. 장군께서 북만주 경성현(현,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기슭에서 순국하신 지 어느덧 8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잊힌 장군님의 고귀한 희생과
[오마이뉴스] 구청장 바뀌고 ‘민주’ 쏙 빠져, 12년 역사 축제명 칼질 논란
서대문구, 독립민주축제→독립페스타 변경, 추진위원들 잇달아 사퇴… 서대문구 “광복에 중점” 구청장이 바뀐 서울 서대문구가 12년 간 진행해 온 ‘서대문독립민주축제’의 축제명에서 ‘민주’란 단어를 뺐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축제 추진위원(자문위원)회를 ‘패싱’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또 바뀐 축제의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일부 추진위원들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서대문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문석진 전 구청장이 지난 2010년부터 3번 연임하다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이성헌 구청장이 당선해 지난 7월 1일 취임했다.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으로 바뀌자 축제명에서 ‘민주’ 빠져 서대문독립민주축제는 지난 2010년부터 광복절(8월 15일)에 맞춰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진행돼 온 서대문구의 대표 축제다. 조례에 근거한 서대문구 축제위원회의 지난해 4월 회의록을 보면, “서대문독립민주축제는 서대문구뿐 아니라 서울시에서도 일부 지원받는 축제다. 평가점수도 비교적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라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18일 서대문구 축제 관련 SNS에 이 축제 이름이 ‘서대문독립페스타’로 바뀌어 있는 홍보 포스터가 올라왔다. ‘민주’를 삭제하고 ‘축제’를 ‘페스타’로 바꾼 이름이었다. 이를 확인한 일부 추진위원들은 ‘축제명 교체 과정에 추진위원회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며 서대문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추진위원들의 문제 제기에 서대문구 측은 ‘광복절 전후로 축제를 진행해야 하니 급히 홍보 포스터부터 올렸다. 사전에 알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뒤에 별다른 논의는 없었고, 서대문구는 지난 7월 29일 추진위원들에게 축제명 변경 등이 포함된 계획안을 이메일로 전달했다.
[기자회견] 강제동원 관련 민관협의회 피해자 측 입장
[다운로드] [입장문] 강제동원 관련 민관협의회 피해자 측 입장 2022. 8. 3.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상대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지원단(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피해자 대리인(법무법인 해마루 장완익·임재성·김세은 변호사) 현재 민관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 현재 2회까지 진행된 민관협의회에서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이 전달할 의견은 대부분 전달하였다고 판단합니다. · 또한 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 및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외교부와 피해자 측 사이에 신뢰관계가 파탄났다고 판단합니다. · 이에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이후 민관협의회 불참을 통보합니다. 1. –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 지난 두 차례 민관협의회에 참여하면서 전달할 내용들을 전달하였습니다. 민관협의회가 의결(결정)기구가 아닌 의견수렴 기구라는 점은 외교부 측이 수차례 밝혀왔는바, 피해자 측 의견전달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판단합니다. 2. –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외교부가 2022. 7. 26. 대법원에 미쓰비시 중공업의 국내 자산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매각명령결정 재항고 사건 2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한 행위(이하 ‘외교부 의견서 제출’)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합니다. 재판거래 또는 사법농단이라는 범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민사소송규칙을, 그 범죄의 공범이었던 외교부가 과거에 대한 아무런 반성없이 그 규칙을 다시 활용해서 강제동원 집행절차를 지연시키려는 모습은 재판거래의 피해자들인 강제동원 소송 원고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 외교부 의견서 제출행위는 절차적으로 피해자 측의 신뢰관계를 완전히 저버리는 행위였습니다. 민관협의회라는 공개적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 절차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음은 물론 피해자 측에 사전에 어떠한 논의나 통지도 없이 의견서가 제출되었습니다. 피해자 측이
[보도자료] 6월민주항쟁이 낳은 작가 ‘이상호’ 초대전 열려
[보도자료] [다운로드] 6월민주항쟁이 낳은 작가 ‘이상호’ 초대전 열려 6월민주항쟁 35주년을 기념해, 민족문제연구소 주최 식민지역사박물관 주관으로 6월민주항쟁이 낳은 작가 이상호 초대전이 열린다. 8월 4일부터 10월 2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이상호, 역사를 해부하다》란 제목으로 개최되는 이번 초청전시는, 1987년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제작에 참여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후 펼쳐진 35년간에 걸친 작가의 인생역정과 창작세계를 오롯이 담아냈다. 전시는 이상호 작가의 대표작 중 53점을 엄선하여 〈1987년 광주의 길 위에서〉 〈나주정신병원의 환우들〉 〈병실에서 아버지〉 〈자화상-나, 이상호〉 〈우리 역사, 우리 기억〉 〈해결되지 않는 이 세상〉 〈5·18 광주정신〉 〈세상을 향해 외치다!〉 등의 소주제로 재구성하였으며, 작가의 삶과 작품 활동을 연대기적으로 추적 그의 의식세계의 변화를 조명한다. 이상호의 작품들은 판화, 데생, 크로키에서부터 기념우표, 포스터 등 다양한 기법과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대작들에 차용된 탱화 기법은 작가 특유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상호 작가는 1960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2년 조선대 회화과에 입학하였으며, 선전물을 제작하고 시민미술학교 강사로 활동하는 등 미술패 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이 와중에서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 사건으로 미술인 최초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수사과정에서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극악한 고문수사를 당하였으며, 이로 인해 30여 년간에 걸쳐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는 등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됐다. 이상호 작가는 “내 자신이 미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87년
[연합뉴스] “연대로 차별 이겨낸 日 우토로, 평화의 발신지로 거듭나야”
20년 우토로 취재기 펴낸 나카무라 일성 “허물도 가감 없이 기록” “한일 시민단체 협력해 우토로發 평화교육 프로그램 만들어야”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강제퇴거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자 우토로의 재일동포는 하나로 뭉쳤습니다. 도움을 주는 일본인들이 함께했고, 한일 양국 시민단체도 힘을 더하면서 보금자리를 지켜냈습니다. 우토로는 이제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됐습니다.”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의 저자로 최근 방한해 부산, 인천, 광주 등에서 강연회를 연 재일동포 3세 저널리스트 나카무라 일성(中村一成·53)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별 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연대’의 경험을 살려 우토로가 평화의 발신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교토부 우지(宇治)시 소재 우토로는 일제강점기 군사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재일조선인이 전쟁이 끝난 후 방치되면서 생겨난 조선인 마을이다. 이후 1980년대 후반 강제 퇴거 위기에 몰렸지만, 재일동포들은 물론 한일 시민단체의 도움과 양국 정부의 지원으로 2018년부터 시영주택에 입주하게 됐다. 지난 4월에는 평화기념관도 들어섰다. 기념관은 차별의 상징이던 우토로 마을이 한일 시민 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난 것을 널리 알리고, 문화 교류의 거점이 되도록 돕고자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양국 시민들도 힘을 보탰다. 나카무라 씨는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일하다 독립해 2011년부터 재일조선인과 이주자, 난민, 사형 문제 등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자 시절을 포함해 20년간 우토로 마을을 취재해온 나카무라 씨는 “주민의 증언 등 구술을 모으고 녹음한 분량이 산처럼 쌓였는데, 1세들은 점점 세상을 떠나고
[한국일보]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 ‘애국심’ 내세워 정치가 교육에 개입”
☞기사원문: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 ‘애국심’ 내세워 정치가 교육에 개입”
[뉴스1] 구미 동락공원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장진홍 의사 92주기 추모제
장진홍 의사 92주기 추모제가 31일 오후 경북 구미시 동락공원 장 의사 동상앞에서 열렸다. 구미시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하고 광복회 구미시지회가 주관한 행사에는 장 의사의 주손인 장상규씨와 후손들이 참석했다. 김장호 구미시장과 안주찬 시의장이 헌화하고 추모사를 했으며 이어 추모공연이 펼쳐졌다. 장 의사는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청년들을 규합해 군사훈련을 지도했으며 중국 베이징에서 폭탄 제조법을 배우고 국내로 돌아와 1927년 영천에서 폭탄을 제조해 포장된 폭탄상자를 배달시켜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은 일제강점기 의열단 3대 의거 중 하나로 이육사는 같은 의열단원인 장진홍이 일으킨이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투옥됐으며 이때 받은 수감번호인 ‘264’가 그의 아호가 됐다. 장 의사는 이후 한 친일파의 밀고로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사형 집행 하루 전에 옥중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구미=뉴스1) 정우용 기자 newsok@news1.kr <2022-07-31> 뉴스1 ☞기사원문: 구미 동락공원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장진홍 의사 92주기 추모제
[연합뉴스] [르포] 조선인학살 100년째 미궁…”물에 처넣고 콘크리트 부어”
나카쓰가와 발전소 건설현장서 벌어진 조선인 학대와 사망 학살 시사하는 복수의 증언…1년 뒤에는 간토학살 참극 (쓰난마치·도카마치시[일본 니가타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거기를 팠더니 인골이 이런 골판지 박스 하나 정도 나왔다.” 일제 강점기 일본 니가타현 산간 마을 쓰난마치(津南町)에 발전소를 만들 때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냐는 물음에 쓰난마치 주민 N씨가 역사 교사였던 사토 다이지(81) 씨에게 1983년 증언한 내용의 일부다. 1922년 무렵 나카쓰가와 상류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할 때 조선인 수백 명이 투입됐는데 ‘나카쓰가와 조선인 사건 학살’이라고 불리는 참극이 실제 벌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진술이 꽤 있다. 조선인들은 중노동에 시달렸고 학대와 가혹행위가 일상적이었다는 것은 여러 경로로 파악된 바 있으나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학살에 관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기자는 사건이 알려진 100년을 계기로 21∼22일 쓰난마치와 도카마치시 일대를 찾아갔다. ◇ “조선인을 매질한 현장에는 무너진 빈집만” 나카쓰가와 조선인 학살 사건과 관련된 현장으로 기자를 안내한 사토씨는 조선인을 구타하거나 괴롭히는 광경은 100년 전 마을 곳곳에서 목격됐다고 전했다. 니가타에 온 조선인들은 ‘한바'(飯場·함바) 혹은 ‘감옥방’이라고 불린 합숙소에서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조선인은 전력회사-원청회사-하청회사-한바의 중층 구조 속에서 착취당했다. 공사 현장은 위험했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중간에서 떼가거나 강제저축을 시키는 바람에 손에 쥐는 월급은 약속보다 훨씬 적었다. 한바는 감독자가 조선인을 구타하고 괴롭히는 공간이었다. 그중 하나가 나카쓰가와 발전소에서 남쪽으로 300∼4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식민지 대중가요 시리즈] 1편, 대중가요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 “군국가요에서부터 국가보안법 피해까지”
[식민지 대중가요 시리즈 1편] (2022년 3월 22일 방송) 대중가요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 “군국가요에서부터 국가보안법 피해까지” 이준희, 이영미와 함께합니다. 19:39 애수의 소야곡 수많은 히트곡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을 설레게 하는 ‘가요황제’. 25년 동안 350곡 정도를 발표한 ‘만년 가수’. 돈 문제에는 철저했고 여성 팬에게는 너그러웠던 구설 많은 ‘돈인수·여인수’ 30:46 이천오백만 감격 당대 최고의 인기와 재능을 선보인 가수였지만, 그래서 더 피할 수 없기도 했던 군국가요 41:53 1961년 공연 현장 육성 가수 데뷔하기 전 중국에 가서 항일운동에 참여할 뻔했다는 회고가 있기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52:41 여수 야화 뜻밖에 국가보안법 초기 피해 사례로도 거론되는 남인수.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음반회사를 설립해 운영. 자신이 직접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프로듀서 역할을 담당하며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 1:08:20 나는 알았네 대구사범학교 출신으로 알려진 친형 최창도의 월북. 북한에서 태어난 조카 최삼숙은 ‘북한의 이미자’라 할 만한 1970~80년대 인기 가수. 그 최삼숙의 딸이 또 석연치 않은 탈북으로 현재 남한에 거주 1:17:28 산유화 백년설, 현인 등과 함께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며 후배 남성 가수들의 전범이 된 가창. 당연하게도 남인수 가창 역시 데뷔 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며 치열하게 다듬어 낸 결과물. 곡에 따라 그에 맞는 목소리를 구사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 보컬리스트 1:26:16 낙화 유수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쇼 비즈니스, 문화 행정·조직화 등에서도 뚜렷한 자취를 남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