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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 ‘애국심’ 내세워 정치가 교육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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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교육과 애국’ 만든 사이카 히사요 감독
“어떤 정당도 교육과 학문의 자유 침해 안 돼”

7월 28일 저녁 요코하마의 소규모 극장 ‘시네마 린’에서 ‘교육과 애국’ 상영이 끝난 뒤 이 영화를 제작한 사이카 히사요(왼쪽) 감독과 사와다 류조 프로듀서가 ‘감독과의 대화’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화는 일본 정부가 교과서 검정제도를 통해 교육에 개입, 2차 대전 당시 저질렀던 일제의 전쟁 범죄를 교과서에서 지우고 가르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 온 역사를 담았다. 요코하마=최진주 특파원

“일본의 학교는 마음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정부가 선택한 사실과 인정한 사상만 가르친다. 교육의 목적은 똑같이 생각하는 아이들을 대량생산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과 애국’은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에서 제작된 오래된 흑백 영상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을 비판하는 이 영상은 관객에게 말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교육이 그때만의 일일까?’

‘교육과 애국’은 민영방송 MBS에서 20년 넘게 교육 현장을 취재해 온 사이카 히사요(斉加尚代) 감독이 2017년 제작한 TV용 다큐멘터리에 취재를 더 해 영화로 다시 만든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조항을 교육기본법에 담은 후, 교과서 검정제도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질렀던 전쟁 범죄를 교과서에서 지우고 가르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 온 다양한 사례와 사실을 담았다.

지난달 28일 요코하마시의 작은 극장 ‘시네마 린’에서 사이카 감독을 만났다. 그는 극장에서 열린 감독과의 대화 및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 등을 통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문부과학성의 역사교과서 검정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7월 28일 저녁 요코하마의 소규모 극장 ‘시네마 린’에서 ‘교육과 애국’ 상영이 끝난 뒤 이 영화를 제작한 사이카 히사요(왼쪽) 감독과 사와다 류조 프로듀서가 사인회를 하고 있다. 요코하마=최진주 특파원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례적 성공’ 평가

영화에는 교과서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출판사가 위안부 문제를 상세히 기술했다가 우익 단체로부터 부당하게 공격당해 도산한 사례가 나온다. 또 일본군 위안부가 언급된 교과서를 채택한 한 학교에 ‘반일 좌파 교과서’ 사용을 중지하라는 엽서가 수백 통씩 밀려든 사례와 위안부 문제를 학교에서 가르친 교사가 요시무라 히로후미 당시 오사카 시장(현 오사카부 지사) 등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비판당하고 갖은 고초를 겪었던 일도 소개된다. “역사에서 배울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보수 인사의 인터뷰 장면에선 관객들의 실소가 터져 나왔다.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60여 개 소규모 극장에서 순차 상영되고 있지만, 지난 5월 13일 공개된 후 약 2개월 반 만에 3만 명 가까이 관람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례적 성공’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7월 12일 오후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한일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의 교과서 개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가야 가쓰히코 역사교육자협의회 사무국장, 스즈키 도시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 대표위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 운영위원장, 허미선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도쿄=연합뉴스

교과서 속 빵집이 ‘화과자’ 가게로 수정… 이유는 ‘애국심’ 고취

그가 2017년 이 주제로 TV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해 3월 발표된 교과서 검정 결과였다. 아이가 산책을 하다 ‘빵집’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글이 수록된 초등학교 1학년 도덕교과서 내용이 문부과학성 검정 의견을 따라 ‘화과자(일본의 전통과자)’ 가게에서 만나는 것으로 수정됐다. ‘학습지도요령’에 있는 ‘나라나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에 비춰 볼 때 부적절하다는 검정의견이 나왔던 것이다.

사이카 감독은 “이에 앞서 2006년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는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주민 집단 자결 사건에 ‘일본군의 명령이나 유도가 있었다’는 취지의 기술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둘 다 1차 아베 내각이 출범한 2006년 교육기본법에 ‘애국심’ 조항이 담기면서 시작된 문제로, 두 사건의 뿌리는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감독은 2017년 작품을 새롭게 영화로 만들면서 지난해 4월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종군 위안부’는 ‘위안부’로 쓰고 ‘강제연행’은 ‘징용’이나 ‘동원’이 적절하다는 각의 결정(내각 결정)을 하고, 이에 따라 교과서에 들어간 해당 표현이 모두 삭제된 사실을 추가로 취재해 담았다.

하지만 교과서 편집자와 문부과학성의 전직 교과서 조사관 등 관련자는 줄줄이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재에 응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문부과학성이나 정치인에게 찍히면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현장에서 얼마나 압력을 느끼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올해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에 전쟁 중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관해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는 취지의 설명(붉은 밑줄)이 실려 있다. 누가 피해자를 위안부로 동원했는지나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모호하게 설명돼 있다. 도쿄=연합뉴스

“역사 용어를 정부 견해에 따라 수정, 푸틴의 ‘애국 교육’과 차이 있나”

영화 공개 일정을 발표한 올해 2월 24일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부르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하는 점을 언급하며, “학술적 견해를 무시하고 역사 용어를 정부 견해에 따라 수정하는 교과서 검정은 과연 이것과 다르냐”고 되물었다.

그가 영화를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은 것은 ‘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사이카 감독은 “어떤 정당도 교육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 이 가치는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이룩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코하마=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2022-08-01> 한국일보

☞기사원문:
“일본 교과서 검정제도, ‘애국심’ 내세워 정치가 교육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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