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5·16쿠데타 발상지’ 문래공원 박정희 흉상 철거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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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박근혜 탄핵소추 의결을 5일 앞둔 지난해 12월 4일, 영등포구 문래동 근린공원의 박정희 흉상에 붉은색 스프레이가 뿌려지고 코 부분 등이 망치로 훼손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일주일 후 영등포경찰서는 흉상 훼손 당사자로 최모 씨(32·조형미술작가)를 특수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기자들은 가장 먼저 ‘동종 전과 용의자’에게 전화로 사건을 친절히 설명하고 난 후, ‘혹시 이번에도 네가 한 짓 아니냐?’ 혹은 ‘이런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동종 전과 용의자는 바로 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입니다.

감시카메라의 보호까지 받고 있는 문래공원 박정희 흉상이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다시금 수난시대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번 달에는 박정희 흉상 수난사의 압권인 2000년 11월 5일 박정희 흉상 철거의 숨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DJP연합정부를 내세운 김대중 후보는 1998년 대선을 앞두고 ‘TK의 대부’라 불리는 신현확을 만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동서화합 차원에서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결과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공동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자민련은 물론 야당인 한나라당까지 모두 건립에 찬성합니다. 이에 대해 270여 시민사회단체들은 2000년 9월 28일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를 결성하였고,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아 반대운동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재야 출신 국회의원들조차 박정희기념관 반대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연대가 구사할 수 있는 전술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박정희기념관 반대 여론 환기를 위해서 뭔가가 필요하다고 다들 생각하던 차에 방학진 당시 조직국장이 박정희 흉상 철거를 제안합니다. 그는 얼마 전 어느 신문기사에서 IMF 외환위기 속에서 실직한 사람들이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문래공원 박정희 흉상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보도를 읽고 흉상 철거를 떠올린 것입니다. 흉상 철거가 목적이라기보다 일종의 충격요법을 구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연구소 상근자들의 동의가 이뤄진 후 철거 방식과 시기가 확정되었습니다. 국민연대가 철거의 당사자가 될 경우 270개가 넘는 참가단체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고 보안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연구소가 실제로 모든 책임을 맡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흉상 제작자인 최기원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홍익대의 민주동문회를 비롯해 인터넷신문 대자보, 서울서부지구 대학총학생회연합, 민주노동당 서대문·은평·마포지구당도 공동추진단체로서 철거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한 공동추진단체를 섭외하기 전에 연구소 회원인 몇몇 경찰관과 변호사를 통해 흉상 철거에 대한 사법처리 전망에 대해 문의한 결과 ‘근린공원 내 시설물 훼손이니 재물손괴죄가 적용되어 벌금이 부과된다’는 자문을 받았습니다. 벌금이 나오면 인터넷 모금을 통해서납부하기로 하고 인터넷신문 대자보를 공동추진단체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즉 ‘철거해도 법적으로 큰문제는 없다’ ‘벌금이 나오면 인터넷 모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 당시 판단이었습니다.

11월 5일(일) 정오로 D-데이를 정하고 전날 밤까지 성명서 준비, 방송 3사를 포함한 언론사에 보안을 당부하며 취재를 요청하고, 철거 현장에 직접 참가할 회원들에게 연락하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습니다. 특히 ‘철거 물품’인 욱일기를 직접 현수막 업체 사장님과 심혈을 기울이며 열심히 디자인한 일 그리고 밧줄과 쇠망치를 철물점에서 구입할 때 철물점 사장님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친일파를 청산한다는 사람이 욱일기를 만들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밤중에 밧줄과 쇠망치를 뭣에 쓰려고 사가나?’ 하는 표정들이었지요.

인터뷰

▲ 영등포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을 기습 철거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민족문제연구소

드디어 철거 당일. 성명서, 욱일기, 밧줄, 쇠망치 등이 담긴 배낭을 메고 11시 40분경 현장에 도착하니 5개 단체 회원들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흉상 근처에 도열해 있지 뭡니까. 나름 보안에 신경 쓰며 준비했건만 공개 기자회견 같은 분위기라니. 몇몇 기자들은 마감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빨리 철거하라고 난리입니다. 곽태영 선생(당시 국민연대 공동대표)이 성명서를 낭독한 후, 한호석 등 연구소 청년회원들이 흉상에 올라타서 욱일기와 밧줄을 걸어 양쪽에서 당길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윽고 “박정희기념관 반대한다”는 구호와 함께 밧줄을 당기니 청동으로 만든 박정희 흉상을 맥없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준비한 쇠망치로 몇몇 어르신들이 흉상을 여러번 내려쳤지만 흠집만 남는 정도입니다.

인터뷰

▲ 영등포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을 기습 철거하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민족문제연구소

그날 저녁 흉상 철거의 생생한 장면이 방송 3사 메인 뉴스로 보도되자 여야 모두 ‘범인을 색출해 엄정 수사하라’고 촉구하였고 검찰도 기다렸다는 듯 주동자들을 강도상해죄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벌금을 예상했는데 강도상해라니. 뜻하지 않은 상황이긴 해도 애초 철거의 목적이 박정희기념관 반대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한 의도였기에 목표는 초과 달성된 셈이었습니다. 이 날 이후 국민연대 활동은 활기를 얻었고 박정희기념관 반대운동도 사회적 의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일로 지금은 고인이 된 곽태영 선생을 비롯해 김용삼(당시 연구소 운영위원장), 노수희(당시 국민연대 공동대표), 서우영(당시 연구소 기획실장), 김현(당시 홍익대 민주동문회장), 이중기(당시 홍익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한정운(당시 홍익대 민주동문회원), 방학진 등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사법처리를 받았습니다. 연구소 역시 실제로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어 경찰이 연구소까지 들어와 관련자를 체포하겠다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김용삼 위원장은 조사과정에서 주동자를 자처하여 다른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감동적인 동지애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홍익대 민주동문회 역시 모교 교수가 흉상을 제작한 것에 대해 대신 반성하는 차원에서 흉상 철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었습니다.

지난 해 11월 영등포 주민대책위원회는 영등포구청 측에 ‘분란 유발시설인 박정희 흉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박정희 흉상을 철거하거나 이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현재 연구소의 입장은 5·16쿠데타 모의장소인 6관구 터에 자리잡고 있는 박정희 흉상을 철거하거나 이전하기보다는 군사반란과 군부독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안내문을 설치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독재자의 악행을 영원히 기억하는것이 철거보다 더 강력한 단죄의 힘을 갖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방학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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