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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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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 국가귀속 첫 결정 의미와 과제> 
 




친일파 9명 재산 첫 국가귀속


친일파 452명 재산 추적에는 곳곳 `암초’
조사인력 부족ㆍ공문서 멸실ㆍ친일가계도 작성 곤란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2일 친일재산의 국가귀속 결정은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와해한 지 58년 만에 보는 친일청산의 첫 가시적인 성과라는 의미를 갖는다.

을사조약ㆍ한일합병조약 등 관여자, 그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 일제의 귀족의원이나 중의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여자 등이 반민족 행위를 통해 축적한 부를 후손들에게 물려줬음에도 아무런 민ㆍ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았으나 반세기가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부분적인 단죄가 이뤄지게 됐다는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재산 국가귀속은 100년 전 일본제국주의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의해 유린당했던 우리 민족의 존엄성을 되찾고 친일잔재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의 핵심이다. 이는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과업이자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적 교훈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으로 고희경, 권중현, 권태환, 송병준, 송종헌, 이완용, 이병길, 이재극, 조중응 등이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토지의 소유권은 바로 `국(國)’의 명의로 이전되지만 특별법에 따라 위원회가 지목한 친일파 452명의 재산을 낱낱이 찾아내 환수하는 작업은 향후 과제다.

재산 환수 대상자로 결정된 9명의 은닉 재산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돼 이 재산을 찾는 노력도 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위원회는 “9명이 일제강점기에 보유했던 친일재산은 결정된 것보다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이완용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일본정부로부터 은사공채 15만원(현재 금값기준 30억원)을 받았고 1910년대 보유면적이 확인된 땅만 해도 여의도 면적에 1.9배에 달하지만 일제강점기 초기에 모두 처분됐다”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재산 국가귀속 결정을 받은 이들의 은닉재산과 독립운동가를 살상하는 등 친일의 정도가 심한 이들을 포함한 400여명의 재산을 추적해 국가로 귀속되도록 할 계획이지만 적지 않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귀속 결정난 경기 연천 고희경 토지


작년 7월에 발족한 위원회가 4년 한시기구(2년 연장가능)이고 조사 인원이 부족하다는 점과 친일재산을 추적하는 단서가 될 관련 공문서가 온존하지 않는다는 게 친일파 재산의 순조로운 환수작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한국전쟁 중에 공문서가 많이 멸실됐고 친일행각이 너무 오래 전에 이뤄졌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재산 추적 단서들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후손들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가계도를 만드는 것 또한 같은 이유로 수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원회의 전 직원 104명 가운데 조사업무에 투입되는 인원은 고작 40여 명이기 때문에 전국에 흩어진 땅을 답사하고 사람을 만나고 조사하는 데 손이 달린다.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역사적 책무를 깊이 인식하고 시한(2009년) 내에 452명을 모두 조사하도록 하겠다”라며 각오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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