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협적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이 조국독립을 위해 좌우합작으로 결성한 신간회.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시험문제의 주관식으로 한번쯤은 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신간회가 창립된 지 올해로 79주년이 됐다. 15일 오후 3시 서울YMCA 강당에서는 1927년 2월 15일 동장소에서 출범했던 신간회의 창립7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사)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나와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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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
신간회가 창립된 지 올해로 79주년이 됐다. 15일 오후 3시 서울YMCA 강당에서는 1927년 2월15일 동장소에서 출범했던 신간회의 창립7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사)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나와 축사를 했다. |
방상훈 사장은 이상재, 신석우, 안재홍, 조만식 선생을 거론하며 “일제하 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하셨던 분들이 신간회의 회장과 발기인으로 참여했다”면서 “신간회와 조선일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역설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가 당시 ‘신간회 기사 일속’이라는 고정란을 둬 활동상황을 상세히 보도했고 장기연재물 및 사설과 논설을 쓰는 등 “조선민중들에게 신간회의 활동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알렸다”고 말했다. 방 사장은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를 ‘신간회의 기관지’로 규정하고 우리 신문에 갖은 탄압을 가했다”고 덧붙였다.
신간회는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며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강령을 갖고 있었다. 일제에 기생해 민족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기회주의를 배격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방응모가 인수한 이후의 조선일보는 과연 어떠했는가. 신간회 강령 앞에 떳떳할 수 있는가. 방상훈 사장이 자신의 할아버지 대부터 저질러온 반민족행위를 반성하는 속에서 이같은 발언을 했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방 사장은 반성의 내용이 담긴 발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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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조선일보가 창간된 것은 1920년. 창간초기에는 이상재, 신석우, 안재홍 등 민족주의자들이 참여하면서 ‘항일민족지’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광산재벌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해 사장에 취임한 1933년부터 조선일보는 달라졌다. 천황폐하를 받드는 적극적 친일언론으로 변신한 것이다. 방응모 이후 조선일보가 조선총독부로부터 무슨 탄압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방응모에서부터 방일영(방우영의 형), 방상훈 3대에 걸쳐 내려온 조선일보의 족적은 친일반민족, 군사독재찬양, 숭미반북 색깔론으로 점철된다. 방씨조선에는 신간회(1927~1931)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방 사장은 이날 낯 뜨겁게도 그들의 ‘방씨조선’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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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기자 |
신간회와 조선일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역설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
방 사장은 축사에서 “신간회에 참여한 분들은 침략자와 손을 잡고 실력을 양성하자는 류의 타협주의 노선을 걷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들의 활동목표가 “경제적 예속을 탈피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쟁취하며 청소년과 여성의 형평운동을 지원하고 근검절약운동을 전개하며 파벌주의와 족보주의를 배격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방 사장은 이어 “이는 21세기 오늘날의 시점에서 바라봐도 낡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새롭고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의미 있는 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방 사장은 “지금이야말로 신간회가 이뤄내고자 했던 좌우합작의 기저에 깔린 통합과 포용의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통합과 포용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사적 진실이 사회적 진실로 자리매김되고 반성과 화해가 우선돼야 한다. 진실규명 없이, 가해자의 반성 없이 어떻게 화해가 되고 통합이 될 수 있는가. 방상훈 사장의 말에는 이 중요한 키워드들이 빠져 있었다. 진실과 반성 없는 통합·포용은 모든 잘못을 덮고 가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신간회 창립 79주년 축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보면서 지금의 조선일보와 신간회 참여인사들이 만들었던 1920년대 조선일보를 갖다놓고 한번 비교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똑같은 점이 있기나 한지.
한편 이날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축하연주도 신간회의 정체성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사회자는 이렇게 소개했다. “다음은 현악4중주단 코리아앙상블에서 축하연주를 해주겠습니다. 곡목은 선구자입니다.” 선구자라니. 선구자는 조두남이 친일시인 윤해영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친일노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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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
일제강점기 비타협적 민족주의진영과 사회주의진영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좌우합작으로 결성했던 항일운동단체 신간회. 그런데 신간회 창립79주년을 축하하는 연주곡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친일노래 ‘선구자’였다. |
“그 ‘선구자’가 그 ‘선구자’가 아니었어?” 선구자의 진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곡으로 손꼽히는 선구자. 만주벌판을 내달리는 독립투사를 그린 노래로 인식되지만 가곡 선구자는 그 선구자가 아니었다. 일제가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우려 애쓰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윤해영은 만주에서 노골적으로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썼던 친일 문인이었다. 윤해영이 만주괴뢰국을 찬양한 ‘락토만주’란 시에도 ‘선구자’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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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
현악4중주단 코리아앙상블이 ‘선구자’를 연주하고 있다. |
친일노래 선구자는 지난해 12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최 사학법반대 집회에서도 울려 퍼진 바 있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선구자’를 부르며 마치 구국투쟁에 나서는 결연한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일제로부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좌우민족운동가들이 뜻을 모아 창립한 신간회. 그러나 신간회 79주년을 맞는 뜻 깊은 자리에서는 ‘친일신문’ 사장이 축사를 하고 친일노래 선구자가 불러지고 있었다.<시민의신문, 06.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