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극장가 흥행 1위를 달리는 영화 <암살자(들)>을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해 숨진 사건의 배후가 당시 정부였다는 가설을 제기해 야권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검사 출신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사자명예훼손죄에 명백히 해당한다”고 하자 제작진은 “창작의 산물로만 봐달라”고 맞섰다.
29일 경향신문이 판례를 찾아본 결과 역사적 사건을 다룬 창작물이 실제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된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사자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 다만 허위사실을 적시한다는 고의가 있어야 하고 역사에 대한 주관적 의견 표명에 대해선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KBS 드라마 <서울 1945>를 연출한 PD 윤모씨와 작가 이모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택상 전 국무총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06년 기소됐으나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010년 대법원은 “허구적 묘사가 역사적 개연성을 잃지 않고 있는 한 허위라거나 허위의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해선 안 될 것”이라며 “이승만에 대한 추측 또는 평가에 불과한 정도만으로 이승만이 친일파적인 행위를 했다는 구체적인 허위사실의 적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감독 김모씨와 PD 최모씨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7년 기소됐지만 1·2심 무죄가 나온 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9년 항소심 재판부는 “실체적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명백하게 허위라고 할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들에게도 허위라는 의사가 있었다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선 배심원 대부분이 무죄 평결했고, 재판부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김상훈 법무법인 트러스트 대표변호사는 “<암살자(들)>은 ‘실화 바탕으로 각색됐다’는 안내 자막으로 시작하며 주요 인물도 실제와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며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법원 판례를 고려하면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죽은 사람의 친족이나 자손이 직접 고소해야 기소할 수 있는 친고죄이다. <암살자(들)>에 대해선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 EG그룹 회장 등이 직접 고소해야 경찰 수사가 가능하다. 과거 <서울 1945>에 대해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씨와 장택상 전 총리 딸인 장병혜씨, <백년전쟁>에 대해선 이인수씨가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이날 <암살자(들)>의 허진호 감독 등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전 시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족이 아니기 때문에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시의원은 “고인의 역사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 아니라 유족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허진무 기자
<2026-09-30> 경향신문
☞기사원문: ‘암살자(들)’의 육영수 저격사건 정권 배후설…사자명예훼손죄 처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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