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책임』 17호 표지, 여는글, 차례(PDF)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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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11월 말 ‘민주화운동기념관’이 개관한 후 ‘폭력과 치유’ 수강생들과 함께 다녀왔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기념관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친 내용들이 권력에 의해 부정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겼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견학을 결정하기까지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불편한 마음은 견학을 하고나서 풀리기보다는 오히려 더 커져버렸다.
불편함의 정체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기념관을 대표하는 이름 때문이었다. 기념관의 원래 이름, 아니 유족과 시민단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문가들이 모여 합의한 이름은 ‘민주인권기념관’이었다. 매우 당연한 이름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폭력을 노골적이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공간이다. 여기서 수많은 활동가와 시민들이 간첩으로 빨갱이로 ‘조작’되었다. ‘조작’은 벌거벗은 폭력과 고문의 힘이었다. 그 어떤 강인한 육체와 정신도 이 폭력 앞에서 허물어졌다. 이 공간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못했다. 인간의 권리란 법전 속에나 있을법한 저 너머 세계의 사치였다. 말 그대로 인권이 완전히 부정된 공간이었다. 그것도 국가의 이름으로. 따라서 새로운 공간은 마땅히 인권을 전면에 내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취임한 이재오 이사장은 이름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꾸고 공동운영위원회를 폐기했다. 권력의 힘으로 공간의 상징성을 거세하고 민주적 절차와 숙의를 거쳐 만든 민관 공동기구를 폐지한 것이다. 독재정권의 어두운 역사와 이를 극복한 민주주의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식의 논리를 동원해 개명을 합리화했다. 인권 침해의 현장과 이를 극복한 영광스런 운동의 역사를 함께 다루고 있으니 더 좋은 것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로서는 국가 폭력과 민주화운동 두 개의 역사, 두 개의 전시(공간 M1과 M2)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과 감정을 버리지 못했다. 이름을 바꾸니 현장의 상징성을 부정할 수 없어 억지로 둘을 꿰맞췄다는 비판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름만이 아니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두 개의 내용을 넣다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와 많은 정보가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상상할 여지를 없앤다. 그럴 경우 차라리 하나를 버리는 것이 원래의 공간이 가진 상징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포기하는 그 내용이 장소의 구속을 크게 받지 않고 어디서나 실현할 수 있는 전시와 기념이라면 선택은 더 쉽다. 최첨단의 전시 기술과 기법이 사용된 민주화운동의 화려한 역사 전시는 반드시 그 장소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에둘러 말했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이름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꿔야 한다.
둘째는 재현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과연 국가 폭력의 모습을 제대로 재현해냈는가. 이 질문에 나로서는 긍정적인 답을 하기가 무척 어렵다. 고문과 조작이 기획되고 집행되었던 대공분실의 핵심 건물인 M2가 보존되었기 때문에 외형상 재현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폭력의 체계와 구조가 공간 활용이라는 명분 때문에 가시화되지 못한 채말로만 설명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더구나 가해자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단지 피해자들만 남아 있는 현장이다. 한국 과거청산에서 뼈아픈 비판 중 하나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 현실이 이 공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만의 추념공간은 국가폭력 현장의 물리적·역사적 원형 보존에서 실패한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오랫동안 싸운 것은 민주인권기념관이 ‘증언하는 건물(building as evidence)’로서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기념관이 재현에 성공하지 못한 배경에는 피해자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재현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탓도 있지 않을까. 세상과 완전히 고립되어 호소할 길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절망감과 불안감, 폭력 앞에 무너져 내리는 신체에 대한 공포감들을 현재의 공간은 상상하게 할 수 있을까. 지금 공간은 그런 폐쇄성, 공포, 절망감 등을 해체시켜 버렸다. 세상과 단절시켰던 벽은 사라지고 그저 흔적만 남았다. 그 흔적은 단절과 절망을 상상하게 만들지 못한다. 경험자에게만 흔적은 트라우마로 재현되어 나타날 뿐이다. 어쩌면 재현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흔적을 통해서 재현에 다가가도록 애쓰는 존재들이다.
현실적 이유 앞에 많은 상징들이 배제되거나 유보되었다. 이름을 바꾸고 유보된 상징들을 다시 우리 앞에 불러내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 일은 피해자와 유족, 활동가와 전문가, 그리고 관계 기관과 시민들이 함께 공동으로 해야 할 과제다. 이 또한 ‘빛의 혁명’이 요구하는 숙제 중 하나이다.
이번 호에는 네 편의 논문을 실었다. 이 글들은 2025년 8월 9일 ‘광복80주년 기념 학술회의-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김은지의 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단순한 독립운동 단체가 아니라 민주·법치·주권 국가를 실질적으로 구상·운영한 정치체였음을 논증한다. 임시정부는 헌법과 법령을 통해 자유·평등을 핵심 가치로 한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삼권분립과 법치에 기초한 통치 질서를 지향했으며, 외교·군사 제도를 통해 주권 국가로서의 정통성과 실천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류동연은 조선민족혁명당(민족혁명당)을 ‘해방과 국가 건설을 동시에 지향한 혁명 정당’으로 해석한다. 조선민족혁명당은 일제 타도를 1단계, 민주공화국 건설을 2단계 혁명으로 설정하고, 평등·민주·국유화·보통선거 등을 핵심 강령으로 삼았다. 무장투쟁과 국제연대를 통해 해방을 추구했으나, 해방 후 국가 건설 구상은 정치적 조건 속에서 좌절되었다. 홍종욱은 조선공산당의 국가 건설 구상이 민주공화국 → 인민공화국 → 소비에트로 변화하는 과정을 식민지 현실과 코민테른 노선 속에서 분석한다. 민족통일전선과 계급동맹의 긴장 속에서 인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결합한 이행기적 국가 구상으로 제시되었음을 밝힌다. 이규수의 글은 장용석이 김석범에게 보낸 22통의 편지를 통해 해방 직후 청년 활동가가 겪은 해방의 희망과 분단의 좌절, 실천적 투쟁의 의지를 복원한다. 글은 이념 지도부가 아니라 일상의 감정·고뇌·실천에 주목함으로써, 해방 정국을 살아낸 청년들의 현실 인식과 통일 지향의 역사적 의미를 드러낸다.
이번 기고문은 1편의 특별기고와 4편의 일반기고로 풍성하게 구성했다. 군사평론가이자 정치인인 김종대에게 12.3 내란에 관한 주제로 특별기고를 요청했다. 그는 쿠데타의 실패 원인을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고 따르지 않은 군·관료·공무원들의 집단적 불복종, 그리고 이를 지지한 시민사회의 즉각적 대응에서 찾았다. 특히 그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응하는 ‘선의의 평범성’을 제시하며, 민주주의는 위기 순간에 제도 바깥의 비상권력보다 일상의 윤리와 규범을 지키는 평범한 행위들에 의해 스스로 복원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김명환은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내부자의 경험을 통해, 방대한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인력·자료·시간 속에서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무자료 신고, 과중한 업무, 실적 압박과 열악한 처우가 조사 품질을 제약했음을 비판하며, 향후 과거사 진상규명은 조사 인프라와 연구 기반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함을 강조한다. 강변구는 월미도귀향대책위원회의 70여 년 투쟁을 통해 국가폭력이 생명권 침해를 넘어 정주권 박탈로 지속되어 왔음을 밝힌다. 주민들의 기록과 기억은 인천상륙작전의 승전 서사에 가려진 민간인 학살과 실향의 역사를 드러내는 대항기억이며, 이를 연계·보존하는 국가폭력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야지마 츠카사는 홋카이도 슈마리나이 강제노동의 역사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출발점에서 조명한다. 아이누 토지 약탈과 죄수·조선인 강제동원이 철도·댐 건설에 결합된 구조를 밝히고, 전후 민중사 발굴과 유해 반환,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의 실천을 통해 가해–피해의 분단을 넘어 ‘새로운 만남’과 시민적 화해가 가능함을 제시한다. 이나영은 소녀상 훼손과 수요시위 방해가 일본 극우와 연계된 한국 내 역사부정 세력의 조직적 행동임을 분석한다. 일본군 성노예제를 부정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이들의 목적은 기억의 삭제이며, 이에 맞서 수요시위와 소녀상은 집합기억을 형성하는 핵심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글은 역사부정과 혐오를 규제하는 법·제도 정비와 시민적 기억공동체의 적극적 대응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역사왜곡죄’와 표현의 자유라는 충돌하는 두 개의 가치 사이 어디선가에서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지금, 이 글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장소식에는 서로 연결되는 두 개의 글을 실었다. 먼저 김상숙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편향과 파행을 비판하며, 이를 계기로 결성된 ‘중단 없는 과거청산과 역사정의 회복을 위한 대책회의’의 활동을 정리한다. 대책회의는 피해자단체·연구자·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3기 진실화해위원회를 신속하게 설립하도록 법 개정안을 마련한 뒤 국회와 정계에 제출하였다. 동시에 향후 과거청산을 국가 시혜가 아닌 국가폭력 근절과 재발방지 중심의 지속적 거버넌스로 전환해야 함을 제시한다. 나효은·이용은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성과와 한계 및 3기 출범을 위한 정비, 그리고 시민사회 차원의 종합적 전망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를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보고한다. 20년 전 과거사 관련 대회를 열 때와 가장 큰 차이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비록 느리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한 발자국 씩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대회가 아닌가 하는 감상도 아울러 덧붙여둔다.
기억과 예술에는 이은정의 글을 실었다. 이은정은 해외입양을 인도주의가 아닌 국가폭력·식민적 입양 산업으로 규정하고, 입양인들이 1인칭 목소리로 침묵과 신화를 깨는 과정을 분석한다. 한국은 전쟁·빈곤·국가주의 속에서 대규모 인종간입양을 추진했고, 그 결과 입양인들은 정체성 박탈과 사회적 죽음을 겪었다. 글은 예술·운동·진실화해위 결정 사례를 통해 국가 책임 인정, 뿌리에 대한 권리 보장, 전면적 진상규명과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김윤철의 서평은 『광장 이후』를 통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탈이 아닌 구조적 민주주의 위기의 결과로 해석한다. 극우의 역사적 진화, 청년세대의 정치적 감수성, 불안정 노동의 현실을 분석하며, 사건 ‘이후’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 지성과 일상의 광장, 평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권 민주주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료에는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 특별보고관 파비안 살비올리가 2022년 한국을 방문하여 과거사 전반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 정부 기관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청취한 뒤 2023년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한 ‘대한민국 방문조사’를 실었다. 지난 20년 간 축적되어 온 한국 과거사 문제를 국제 기준의 관점에 평가한 종합 진단서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전문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본지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지가 되었다. 그동안 시간을 쪼개 잡지 발간에 애쓴 편집위원과 실무자, 그리고 소중한 글을 아낌없이 투고한 필자들과 본지를 아껴주신 독자들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기쁜 소식을 하나 더 전한다. 18호부터는 법, 철학, 문학,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서 만든 ‘5·18학회’가 『역사와 책임』 공동 발간 단체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용이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위원장 김민철(경희대학교)
<차례>
여는글
○ 4 / 김민철, 여는글
특집: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 12 / 김은지, 수립 초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주‧법치‧주권’ 국가 구상
○ 40 / 류동연, 조선민족혁명당의 ‘혁명’과 그 추진 활동에 관한 검토 – 해방과 국가건설 구상을 중심으로
○ 72 / 홍종욱, 조선공산당의 인민공화국 구상
○ 113 / 이규수, 장용석의 편지를 통해 본 해방과 분단
특별기고
○ 142 / 김종대, 선의 평범성: 2024년 12·3 비상계엄과 민주주의의 자가 치유 – 악의 평범성을 이긴 한국 민주주의
기고
○ 176 / 김명환, 조사관의 입장에서 본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활동의 실제
○ 207 / 강변구, 월미도 귀향대책위 사례를 통해 보는 국가폭력 아카이브의 가능성
○ 219 / 야지마 츠카사, ‘새로운 만남’을 향한 꿈, 슈마리나이강제노동박물관
○ 242 / 이나영, ‘소녀상’ 훼손과 공격의 진실, 기억공동체의 대응 방안
현장소식
○ 256 / 김상숙, 3기 진실화해위원회 설립을 위한 과거청산대책회의의 활동
○ 267 / 나효은‧이용은, “현재를 구하는” 과거들: 과거사 정리의 쟁점과 과제-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 참관기
기억과 예술
○ 300 / 이은정, 1인칭 목소리가 고발하는 인종간 입양
자료소개
○ 320 / 파비안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 특별보고관 보고서(2023) – 대한민국 방문조사
서평
○ 356 / 김윤철, <광장 이후>의 이후와 시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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