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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 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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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강원대 대학원 평화학과 이동기 교수

강원대 통일강원연구원 등 공동주최
‘첫 과거사 연구자 활동가 대회’ 주도
민간인 학살과 해외입양 등 논의

“통일강원연구원 경비 지원으로
앞으로 5년 강원도에서 대회 개최
‘3기 진화위’ 능동적 보조·견제 뜻도”

13일 오후 이동기 강원대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가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가 열린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대강의실에서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포즈를 취했다. 고경태 기자

형체를 알 수 없는 주검 하나가 강에 떠오른다. 마을의 과부들은 저마다 주검이 자신의 남편 또는 아버지,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각자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군부가 주검을 태우려 하자 그제야 과부들은 연대한다. 이후 다른 주검들이 하나둘 강에 떠오른다. 36명의 과부는 모두 가족의 주검을 찾는다.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과부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동기(59) 강원대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는 12일 강원대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 대강의실에서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에서 ‘과부들’을 인용하며 개회사를 했다. 이야기 속 떠오른 주검처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국가폭력을 규명하는 과정에서도 해외입양과 젠더 폭력 등 다양한 양상의 인권 침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앞으로 또 어떤 사건이 떠오를지 모른다. 과거사에 얽힌 다양한 이들의 연대와 연결을 강조한 말이었다.

13일 오후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대강의실에서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 마지막 종합토론에서 이동기 강원대 교수(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 오른쪽은 김민철 경희대 교수. 임재근 제공
12일 오후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대강의실에서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에서 집단수용시설 실태에 대한 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임재근 제공

13일까지 1박2일 열린 대회 열기는 뜨거웠다. 수도권과 부산·광주·대구·대전·전주·순천·제주 등 전국 각지는 물론 미국에 있는 연구자도 참석해 민간인 학살과 해외입양, 집단수용시설, 2기 진실화해위 평가와 3기 과제, 지역사회 과거사 현안 등을 놓고 발표와 토론을 했다. 자료집 100부가 첫날 다 나갔다. 젊은층도 눈에 띄게 많았다. 과거사 분야의 연구자·활동가·조사관들이 이 정도 규모로 모인 자리는 처음이었다. 이 교수는 “그만큼 이런 행사에 대한 갈증이 컸음을 방증한다”고 했다. 13일 행사 기획자인 그를 강원대 사회과학대 행정실에서 만났다.

이번 대회는 강원대 통일강원연구원과 한국냉전학회, 한국사회사학회, 5·18학회, 민족문제연구소, 국가폭력연구모임 질기게 등 여러 학회와 과거사 단체들이 공동주최했다. 질기게 대표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처음 대회를 제안했다. 이 교수는 판을 키웠다. 애초 하루로 생각한 기간을 이틀로 늘리고 연구자와 활동가, 조사관이 모두 모여 과거사 전반을 토론하는 장을 만들기로 했다. 강원대 부설 평화·통일 교육 및 연구기관인 통일강원연구원(원장 송영훈)이 행사를 준비했다. 이 교수는 통일강원연구원 평화연구센터장과 한국냉전학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5년 동안 통일강원연구원의 경비를 지원해 매년 강원도에서 행사를 열기로 했다”며 “나아가 기업과 대학이 산학협력을 하듯 인권과 평화 문제에 관해 대학과 시민사회, 피해자 단체들이 연계하는 모델을 만드는 장기 프로젝트를 발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술대회를 정례화하고 국립대 컨소시엄이나 연구소 협력체계를 통해 과거사에 대한 제도적·문화적 틀을 긴 호흡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행사가 열린 강원도는 그간 과거사 정리 문제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영화 ‘1980 사북’을 통해 사북항쟁이 떠올랐다. 1980년 4월 사북 광부들이 생존권 투쟁을 벌인 뒤 잔인한 국가폭력을 당하고, 기나긴 세월 침묵을 강요당했음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고성과 속초 등 동해안 지역 납북귀환어부들의 고문 및 간첩조작 피해는 2기 진실화해위에서 800명 가까이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받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1980 사북’ 기획자였던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이 사북 지역에서, 엄경선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운영위원이 속초에서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이 교수는 “두 사건 피해자들이 사회 하층민인 데다 그들을 보조할 강원도 내 학문적 네트워크나 시민사회 토대가 취약하다는 문제의식을 느껴왔다”며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지역 내 국가폭력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도 전국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 대회에서 재확인했다”고 했다.

12일 오후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대강의실에서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에서 한 방청인이 질문하고 있다. 임재근 제공
12일 오후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사회과학대학 대강의실에서 열린 2025년 과거사 연구자·활동가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재근 제공

이 교수는 대회 주제를 ‘현재를 구하는 과거들’로 정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따왔다. “과거사 정리라는 현재의 노력으로 묻힌 과거를 구해내고, 그 과거를 통해 현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화할 수 있으니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지요. 과거사 정리는 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1999년 2월부터 2007년 8월까지 독일 예나대학에서 독일 현대사를 공부하며 독일과 폴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전역에서 과거사 기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의 노력으로 1989년 레흐 바웬사의 파업투쟁으로 유명한 폴란드 그단스크 부두에 건립된 유럽연대센터는 옛 전남도청 복원사업에, 리스본의 정치범 수용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남영동 대공분실 리모델링에 영감을 줄 수 있었다. 귀국 이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HK)집단연구사업으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평화인문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9년 강원대에서 국내 유일의 평화학과 대학원이 개설된 뒤 2020년 9월부터 이 학과 전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국제평화·인문평화·생태평화 분야로 구성된 이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는 현재 100여명이 적을 두고 있다.

3기 진실화해위가 조만간 출범한다. 이 교수는 학계와 시민들이 모이는 과거사 대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번 대회의 목적은 한마디로 진실화해위를 능동적으로 보조하고 견제하기 위함입니다. 3기 진실화해위가 잘하겠지만 무작정 맡길 수 만은 없어요. 학계와 시민사회가 협력도 하면서 긴장관계도 유지해야 해요. 이런 행사에서 꾸준히 만나 ‘잘될 때까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2025-12-16> 한겨레

☞기사원문: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 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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