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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거사는 덮어두고…한일 정상 “미래 산업 협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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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문서화 된 합의문 발표
사회문제 협의·대북공조 확대도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문구만
시민단체 “실용외교에 정의 가려져”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정상회담을 열어 미래산업 분야 협력과 당면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협의 확대, 대북 공조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 언론 발표문’을 채택했다. 한·일 양국이 정상회담 뒤 문서화된 합의문을 발표한 것은 17년 만이다. 대통령실은 ‘셔틀외교 조기 복원’을 통해 양국 관계가 ‘선순환 궤도’에 올랐다고 자평했지만, 위안부·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일본 정부 입장과 다르지 않은 원론적 언급에 그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23일 저녁 일본 도쿄에 있는 이시바 총리 관저에서 두 시간가량 정상회담을 연 뒤 “한-일 관계의 발전 방향과 주요 실질 협력 방안, 한반도 평화와 북한 문제, 주요 글로벌 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고 밝혔다. 경제와 관련해선 수소·인공지능 등 미래산업 분야 협력 방향을 논의하는 한편, 정책 분야에선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집중, 농업 위기, 재난 안전 등 양국이 함께 직면한 과제들에도 해결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기 위한 협의체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워킹홀리데이 확대 등 젊은 세대의 요구가 큰 인적 교류 활성화에도 뜻을 모았다.

한반도 문제도 언급됐다. 이시바 총리는 “지역 정세에 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여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일·한·미 삼국 간에 긴밀히 공조해 대응해 나가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서 긴밀한 공조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공감했다.

두 정상은 관세 협상과 동맹 현대화 등 대미 현안과 관련해서도 경험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4일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소인수 회담(핵심 참모 배석 회담)의 상당 시간을 대미 관계 및 관세 협상 등에 할애했다. 이시바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경험이나 그동안 느낀 점을 우리에게 도움말 형태로 얘기하는 방식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 측에는 감사하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첨예한 현안인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등 과거사 이슈는 언급되지 않았다. 두 정상이 채택한 공동 발표문에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한-일 관계의 기반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시바 총리는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하여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언급했다”는 원론적 문구만 담았다.

이를 두고 국내 역사학계와 과거사 단체 등에선 “전향적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유감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본이 말하는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에는 2015년 ‘아베 담화’(전후 70년 담화)에 담겨 있는 “미래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라는 내용도 포함된다는 이유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소송을 대리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실현 가능한 실용주의적인 과거사 접근 방법이 있는데도, 과거사는 아예 이야기하지 않고 덮어두겠다는 접근 자체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의기억연대는 “한마디로 ‘실용외교라는 명분에 역사정의가 가려진’ 정상회담이고 합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의 사법주권을 무시하는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한국 대법원 판결로 이미 파탄이 난 ‘1965년 체제’를 답습하려는 정부의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등 식민지배와 관련한 개인 청구권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에 대해 공동 발표문은 어떠한 문제의식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가장 중요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이자, 국교 정상화 60년을 계기로 양국의 기본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음을 감안해달라는 입장이다. 위성락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과거사) 문제는 구체적 현안에 대한 논의였다기보다는 과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 또 과거 문제를 어떻게 다룸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협력을 추동할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철학적 인식, 기본적 접근에 대한 논의였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현안에 대해선 앞으로 이어질 후속 회담에서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형철 서영지 기자, 도쿄/엄지원 기자 newiron@hani.co.kr

<2025-08-24> 한겨레

☞기사원문: 과거사는 덮어두고…한일 정상 “미래 산업 협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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