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8월 15일! 운요호사건으로 일제의 조선 침탈이 시작된 지 70년, 망국이라는 국치를 당한 지 35년. 기나긴 통한의 세월을 넘어 광복의 그날이 왔다. 감격과 환희에 젖었던 그날로부터 다시 80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 기나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진정한 광복이 왔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분단 조국이라는 엄중한 현실도 그러하거니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뿌리 깊은 친일 세력의 끊임없는 역사 도발을 마주하면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곤 한다.
최근 일어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망언 사태가 그 단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김형석은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뉴라이트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이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는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항일 독립전쟁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 시각과는 다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의 유서까지 왜곡하여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어라라며 ‘두 아들이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했다”라고 하면서 역사 이면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명색이 독립기념관장이란 자가 광복 8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에 경축식 기념사에서 내뱉은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내용에 많은 이들이 경악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광복이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는 주장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연합국의 기여를 인정하지 못 하겠다라는 뜻이 아니라, 김형석의 언설에 독립운동 폄훼라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침탈이 시작된 그 때부터 우리 민족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였다. 국내는 물론 중국 관내와 만주에서 연해주에서 미주에서 심지어 제국의 심장부에서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전개된 독립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끈질기고 치열했다. 무장항쟁과 의열투쟁에서 노동자·농민운동, 학생운동, 기생·해녀·백정들의 조직운동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계급, 남녀노소, 지역을 불문하고 전 민족적으로 벌어졌다. 일제에 대한 항거는 최후의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여운형 선생 등은 일제 패망 1년 전부터 조선건국동맹이란 비밀결사를 조직해 해방에 대비했다. 해방 며칠 전인 7월 24일에도 마지막 의열투쟁인 ‘경성 부민관 폭파 의거’가 일어나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들과 아시아 각국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광복을 맞은 그 날에도 일제에 저항하다 체포된 수많은 지사와 민중들이 옥고를 치르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쓴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 즉 ‘큰 소리로 길게 탄식하며, 일본의 패망을 미리 조문한다’란 유묵이 최근 일본에서 반환되어 국내로 들어왔다. 안 의사가 115년 전 이미 일본의 패전을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일제의 패망은 필연이었으며,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이었다.
뉴라이트의 역사부정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김형석의 견강부회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함석헌 선생이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 표현하기는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이는 성서를 인용한 것으로 정작 책을 관통하는 내용은 씨알(민중 또는 민족)들의 피흘림과 고난이 극심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하늘이 준 떡’은 고난을 겪은 씨알에 대한 하늘의 보상으로 겸손히 수용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전후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기만적 언행은 2011년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왜곡·인용한 문창극과 궤를 같이한다. 2014년 민족문제연구소는 문창극의 온갖 망언 시리즈를 추적해 총리 후보에서 사퇴시키는 데 일조한 바 있다. ‘계우회 사건’ ‘성서조선 사건’ 등으로 일제에 의해 수차례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른 지사 함석헌을 모욕한 제2의 문창극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윤봉길 의사의 유언을 끌어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한 행태는 거의 범죄에 가까운 수준이다.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는 본지는 온 데 간 데 없고 거두절미하고 에디슨이라니. 자신이 악의적으로 선열의 유언을 편집해놓고, 아직도 언론의 왜곡보도 탓을 하고 있으니 그 후안무치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패륜적 망언을 자행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친일파는 살아있다!”이다. 아니 “친일파는 활개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윤석열이 대거 임명한 뉴라이트 출신 기관장들이 임기제를 핑계로 버티면서, 여전히 역사·교육·언론 등 부문에서 우리의 정신사를 오염시키고 있다.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충남 지부 등 시민단체들은 며칠째 김형석 사퇴를 요구하며 독립기념관장실 앞에서 농성 중이다. 독립기념관 노조까지 반발하고, 정치권에서는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래도 김형석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이제 하루도 너무 길다. 조속히 법을 개정해 김형석과 그 아류들을 힘으로 끌어내리는 것만이 해법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세열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2025-08-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는 살아있다, 독립기념관장의 망언이 보여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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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립기념관장 인사 만행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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