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폭파 의거’ 81주년 기념식 열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문화전문기자] 해마다 7월 24일이 되면 시계탑이 우뚝 솟은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을 찾습니다. 1935년에 지어져 90여 년 동안 동일한 외관으로 자리를 지켜온 이 유서 깊은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민관’이었습니다. 십여 년째 해마다 이곳을 방문하는 까닭은 광복 직전, 조선 땅의 혈기 넘치는 세 젊은이(조문기ㆍ강윤국ㆍ유만수)가 시한폭탄을 터뜨려 친일파들의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무산시켰던 위대한 거사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부민관 폭파 의거 81주년 기념식이 서울특별시의회 로비와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 광복회 화성시지회 등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의거의 주역인 유만수의 아들 유민 선생을 비롯해 윤대성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등 60여 명이 참석하여 독립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렸습니다. 특히 2부에서는 경기도가 기획한 인공지능 제작 영상(20분)을 시청하며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되새겼습니다.




영상은 당시 대회를 주동했던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행위자 박춘금의 악행을 낱낱이 보여주었습니다. 박춘금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색출에 앞장서고, 이봉창 의거 뒤엔 사죄단을 만들어 일본 궁성 앞에서 사죄하는 쇼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는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선전대회를 연 인물입니다.
이 지독한 친일의 현장을 목숨 걸고 무산시킨 이들이 바로 세 명의 청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조문기 지사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태생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입니다. 16살에 일본 군수공장으로 건너가 조선인 차별에 맞서 파업투쟁을 주동했고, 귀국한 뒤, 대한애국청년단을 조직해 부민관 거사를 성공시켰습니다. 광복 이후 통일을 이루지 못한 분단된 조국에서 독립유공자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포상 신청조차 거부했던 선생은, 말년에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력하셨습니다.



반면, 같은 화성 출신의 유명 음악가 홍난파는 말년에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곡들을 작곡해 부민관에서 음악회를 열었고, 결국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몇 년 전 화성시에서 홍난파 기념관을 세우려다 무산된 일이 있습니다. 이제 화성특례시는 대중적 인지도에 이끌려 홍난파 선양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서슬 퍼런 결기와 지조를 보여준 조문기 애국지사를 널리 알리고 선양하는 데 앞장서야 마땅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해마다 이 고귀한 폭탄 의거 기념식을 후원하고 있는 광복회 화성시지회의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마지막 의열투쟁의 불꽃이 후대에 길이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양인선 문화전문기자
<2026-07-26> 우리문화신문
☞기사원문: 조문기 지사 –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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