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부활동
[전남일보] 김순흥 지부장 ‘역사정의 실천 시민운동가 상’
광복회 ‘역사정의 실천 상’ 시상식 이건상 총괄본부장 ‘역사정의 실천 언론인 상’ 수상 김순흥 지부장 ‘역사정의 실천 시민운동가 상’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23일 광복회 광주시지부 광복회관에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에게 ‘역사정의 실천 시민운동가 상’을, 이건상 전남일보 총괄본부장 겸 선임기자에게 ‘역사정의 실천 언론인 상’을 각각 수여했다. 광복회는 올해 처음으로 시민운동가, 교육가, 정치인, 언론인 가운데 역사정의를 실천한 인사를 선정, 수상하고 있다. 김주원 광복회 광주시지부장은 김원웅 회장을 대신해 인사말에서 “김순흥 지부장과 이건상 기자는 우리시대의 독립군으로 친일잔재 청산과 조선의용대 등 숨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알려왔다”고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김순흥 지부장은 수감소감으로 “항일 애국지사와 독립군들은 춥고 낯선 땅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항일의 길에서 맹렬하게 싸웠고, 그리고 장렬하게 순국했다”며 “오늘의 이 영광을 먼저 독립군 선열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이건상 본부장은 “분단과 반공, 이념의 장벽에 갇혀 아직도 반쪽의 독립운동사에 머물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제한 뒤 “좌우를 아우르는 온 쪽의 독립운동, 가려진 독립운동의 역사를 드러내고 선양하는 일에 더욱더 매진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으로 구성된 공법단체로 3·1절, 광복절 기념식 주관, 국내외 독립운동사적지 발굴 등 민족정기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다. By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게재 2020-12-23 17:06:35 <2020-12-23> 전남일보 ☞기사원문: 이건상 총괄본부장 ‘역사정의 실천 언론인 상’ 수상
[노컷뉴스] 전북 출신 친일파·친일 잔재 면면 보니
전북도, 친일 잔재 전수조사 용역 결과 김성수·김연수 형제, 서정주, 신상묵, 채만식 등 118명 관료나 군인·경찰이 다수, 종교·언론계도 포함 일본제국주의 강점기 전북 출신 인사의 친일 행적과 잔재 청산을 위한 전라북도의 연구용역이 마무리됐다. 이번 용역에선 전북 출신 친일파 명단을 추리고, 지역에 산재한 친일 잔재를 조사했다. 21일 전라북도에 따르면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 전북 출신 친일 인사는 118명, 친일 잔재는 131건으로 조사됐다. 전북 친일 인사 명단은 이번 용역을 맡은 전북대 산학협력단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을 기초로 작성했다. 도내 출신지가 명확하지 않은 36명을 제외하면 시·군 중에선 전주 출신 친일 인사가 2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익산(10명), 군산(7명), 남원·고창·정읍·임실(각각 6명), 김제(4명), 무주·진안·장수·완주·부안(각각 2명) 등이다. 일제강점기 전북에 속했던 충남 금산 출신은 3명이다. 고창 출신으로 고려대학교와 동아일보를 설립한 김성수와 그의 동생으로 삼양사 창업주인 김연수, 전북경찰국장을 지낸 신상묵, 시인 서정주 등 친일 행적이 잘 알려진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또, 중추원 참의를 지낸 강동희, 3·1운동 진압 목적으로 설립된 전라북도자성회장을 역임한 백낙신, 지역유력자로 일제에 국방금품을 헌납한 한인수가 친일파로 지목됐다. 종교계 인사로는 기독교 조선장로교단 총무·장로교 목사였던 김종대, 국민총력 천도교연맹 상무이사 박완, 유재환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이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언론·문학계에선 이익상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 이창수 매일신보 논설위원, 소설가 채만식이 친일파로 꼽혔다. 전북 출신 친일 인사의 활동분야를 보면 관료나 군인·경찰이 69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오마이뉴스] “진주성 안 ‘친일파’ 비석 여럿,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박철홍 시의원 문제제기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알리자” “비석군의 어떤 비석 주인공은 친일행위를 했고, 애국지사도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같이 모아 두다 보니 마치 모든 비석의 주인공이 공적이 있거나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의 비석을 모두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그 비석의 주인공이 어떤 친일행적을 했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해놓아야 한다. 애국지사 비석과 같이 있다 보니 혼동이다. 더구나 왜적과 싸운 역사가 뚜렷한 진주성 안에 친일인사의 비석이 있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이 17일 진주성 비석군에 있는 일부 비석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날 박철홍 진주시의원도 진주시의회 정례회 5분자유발언을 통해 일부 비석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헤야 한다고 제시했다. 진주성 비석군에 친일행적 정태석·정상진·정봉욱 있어 진주성 안 경절사와 청계서원 앞에는 ‘비석군’이 있다. 1973년 문화재보호협회 진주지부가 당시 진주성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놓았던 것이다. 비석군에는 ‘1604년 이수일 진주목사 음애비’와 ‘1656년 성이성 목사 청덕 유애비’를 포함해 30여 기가 있다. 비석군에는 친일행위가 있는 인사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태석(鄭泰奭), 정상진(鄭相珍), 정봉욱(鄭奉郁)이다. 정태석(진사)은 지주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당시 진주 최고액 1만188원을 기부했고. 1938년 진주 유지들의 모임인 ‘연재계’ 회장으로 300원의 국방성금을 헌납했으며, 1938년 <조선시보>에 ‘전승신년’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5년과 1938년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상장을 받았다. 정상진(창씨명 烏川相珍)은 지주이면서
[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현장 답사 진행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지난 6일 오후 ‘인천지역의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 현장‘을 돌아 보는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 네 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1, 2부로 나눠 ‘인천지역의 근대 노동운동 역사 돌아보기’와 ‘노동문학 현장 탐방’ 순으로 진행됐다. 1부 해설은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2부는 장회숙 인천도시디자인연구소장이 각각 맡았다. 답사단은 인천일보 강당에서 열린 사전 강의에 이어 중구청-최초의 노동쟁의 현장인 야적장-인천역-송월동 일대의 공장지대-노동문학의 현장 외국인 묘지-동일방직-인천도시산업선교회 등을 차례로 돌아봤다. 이 교수는 사전 강의를 통해 “인천은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된 도시지만 수도 서울의 관문 항구로 어느 지역보다 일찍 노동자 계층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황해문화 2014년 여름호(통권 83호)에 실린 윤진호 인하대 교수의 특별기고 ‘개항기 인천항 부두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인용, “인천은 한국 노동운동이 처음 발화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 논문은 한국 최초의 노동조합이 인천항에서 설립됐고 이 조합에 의해 1892년 이전에 이미 노동쟁의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만약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국노동운동사를 새롭게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1898년 함경남도 성진부두조합이 한국 최초의 노동조합이고, 같은 해 목포에서 발생한 부두노동자의 쟁의가 최초의 근대적 노사분쟁’으로 알려져 왔다. 이어 ▲정미업 선미여공들의 투쟁 ▲인천 성냥공장의 원조인 ‘조선인촌 주식회사 여공들의 지난한 파업 투쟁 ▲일본육군조병창 등을 사례를 들며 “인천은 식민지체제에 저항한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이며 일제 강제동원의 현장이자, 징용노동자의 귀국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식민지시대
[한겨레] 친일 조작가의 황토현전적지 전봉준 동상, 철거 뒤 재건립 추진
정읍시, 12억원 예산안 편성 친일작가의 작품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전봉준 장군 동상이 철거되고, 새로 건립될 전망이다. 전북 정읍시와 민족문제연구소 정읍시회는 2021년도 정읍시 예산안에 황토현전적지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고 재건립하는 예산 12억원을 편성돼, 의회에서 심의 중이라고 2일 밝혔다.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황토현전적지에 1987년 10월 건립된 이 동상은 친일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했다. 이 동상 및 배경 부조 시설물은 높은 화강암 받침대 위에 짙은 청동색으로 높이 6.4m, 좌대 3.7m, 형상 3.7m 규모다. 이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인물이어서, 그동안 동학관련 단체 등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친일인명사전에서는 김경승이 “1942년 6월3일자 <매일신보>에 ‘더 중대한 문제는 재래 구라파의 작품의 영향과 감상의 각도를 버리고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 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일 것입니다. 나는 이같이 중대한 사명을 위해 미력이나마 다하여 보겠습니다’라는 기고문을 게재할 정도로 친일행적이 뚜렷”하다며 “해방 이후 만들어진 조선미술건설본부에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시의회에서 예산이 확정되면 시는 이달 중으로 시민소통위를 거쳐 동상건립추진위를 꾸리고 공모를 거쳐 △지금 자리에 세울지 △전봉준 장군 동상을 포함해 혁명 3대 지도자인 김개남·손화중 장군을 건립할지 △농민군의 군상을 세울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 동상은 사적지 안에 세워져 문화재청 허가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권대선 민족문제연구소 정읍지회장은 “일제에 나라가 병탄된 지 110년을 맞은 올해
[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죽산의 생애와 꿈 돌아보기’ 행사 개최
‘왜 다시 죽산인가’…강화서 되새기다 민족연 ‘역사 현장 시민답사’ 이원규 작가 강연·안내 성황 “국가유공 수훈이 진정한 복권”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22일 ‘강화 죽산 조봉암 생가터와 청년기 활동 및 추모비’를 살펴보는 ‘역사 현장 시민답사’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답사는 강화에서 나고 자라 청년기를 보냈던 죽산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업적과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기획됐다. 죽산 연구에 독보적인 지위를 굳혀 온 소설가 이원규 작가의 강연과 안내로 진행된 행사에는 강화와 인천지역 주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답사단 일행은 죽산의 모교인 강화초등학교를 출발, 생가터 표지석이 남아 있는 강화읍사무소를 거쳐, 갑곶돈대 앞 진해공원추모비와 선원면 생가터를 차례로 살펴봤다. 이원규 작가는 답사에 앞서 진행된 강연에서 ▲죽산의 출생과 소년시절 ▲3.1 만세운동과 청년시절 ▲독립운동과 고난기 ▲광복 후의 영광과 굴레 ▲53년 만의 무죄선고 ‘햇빛 속으로’ 등 시기별로 조봉암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죽산의 생애 죽산은 1899년 강화 선원면에서 출생했다. 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강화군청 사환 임시고원으로 취직했지만 3.1 만세운동에 참가해 구속과 고문을 되풀이하며 ‘민족적 각성’을 다져 나갔다. 일본과 러시아 모스크바 유학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자의 길로 접어든 죽산은 국내와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눈부신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다. 중국에서 체포돼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형극의 수감 기간을 겪은 뒤 출옥해 인천에 정착했지만, 광복 직전인 1945년 1월 예비구금령으로 헌병대에 구속돼 감옥 안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직후 여운형, 박헌영 등과
[노컷뉴스] 전두환 방문이 기념인 시골마을, 후대의 판단은 달랐다
전두환 씨 1983년 1월 2일 정읍 송령마을 방문 ‘기념비’ 주민과 점심, 금일봉 전달…주민의 날 정한다는 결의 마을 총회 열어 철거…”5·18 관련 전씨 잔재 청산” 뜻 전북의 한 농촌 마을 주민들이 총회를 열어 투표 끝에 ‘전두환 방문 기념비’를 철거했다. 5·18 민주화 운동 40년, 전두환 씨 방문 비석이 세워진 지 37년 만이다. 16일 정읍시에 따르면 지난달 6일 내장상동 송령마을 주민들은 ‘전두환 방문 기념비’를 철거했다. 지난 8월 송령마을 모정에서 주민 총회를 열고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명이 ‘전두환 방문 기념비’ 철거를 찬성했다. 이 마을엔 143세대, 163명이 거주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송산동 순방 기념비’라고 적혀 있는 비석은 지난 1983년 1월 2일 전두환 씨가 송령마을 방문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세워졌다. 1985년 1월 당시 주민 등이 성금을 모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석의 뒷면에는 ‘전두환 씨가 새마을 훈장을 받은 마을 주민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금일봉으로 1030만 원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돈으로 마을의 경제 기반을 다지는 한편, 전두환 씨가 다년간 1월 2일을 주민의 날로 정하고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갖기로 결의했다’는 내용도 새겨졌다. 그간 이 전두환 씨 방문 기념 비석에 대한 시각이 갈리면서 조기 철거가 이뤄지지 않았다. “마을에 방문한 상징성이 있는데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과 함께 “독재자 흔적의 청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교차했다. 정읍시 관계자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오마이뉴스] 백선엽부터 곽낙원까지, 걸으면서 배우는 현충원 속 역사
대전현충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개최 백선엽, 김창룡 vs. 조문기, 곽낙원’ 15일 오후 2시, 대전현충원에서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됐다.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는 이 행사는 장군 묘역에 안장된 김창룡, 백선엽과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조문기, 곽낙원의 삶을 비교하는 이야기로 진행됐다. 김창룡은 대전현충원에 묻힌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급) 출신의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책임자로 장군 제1묘역(69번)에 안장돼 있다. 김창룡의 묘는 현충일마다 파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이장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 10일 사망한 만주국군 중위·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은 친일 경력으로 인해 대전현충원 안장 당시부터 반대가 거셌다. 백선엽은 지난 7월 15일 장군 제2묘역(555번)에 안장됐다. 김창룡, 백선엽과 대비되는 인물로 선정된 이들은 독립유공자 제3묘역(705번)에 안장된 조문기 지사와 독립유공자 제2묘역(771번)에 안장된 곽낙원 지사다. 조문기 지사는 1945년 7월 24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부민관 폭파 의거’를 거행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을 지냈다. 곽낙원 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국내 및 중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곽낙원 지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고, 곽낙원 지사의 묘 바로 옆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 지사의 묘(772번)가 자리했다.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장군 제1묘역 아래 주차장에서 개회식이 진행됐다. 개회식은 순국선혈 등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날 개회식에서 인사말에 나선 광복회대전지부 윤석경 지부장은 “일제강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