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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진주성 안 ‘친일파’ 비석 여럿,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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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박철홍 시의원 문제제기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알리자”

▲ 진주성 비석군. ⓒ 민족문제연구소

“비석군의 어떤 비석 주인공은 친일행위를 했고, 애국지사도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같이 모아 두다 보니 마치 모든 비석의 주인공이 공적이 있거나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의 비석을 모두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그 비석의 주인공이 어떤 친일행적을 했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해놓아야 한다. 애국지사 비석과 같이 있다 보니 혼동이다. 더구나 왜적과 싸운 역사가 뚜렷한 진주성 안에 친일인사의 비석이 있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이 17일 진주성 비석군에 있는 일부 비석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이날 박철홍 진주시의원도 진주시의회 정례회 5분자유발언을 통해 일부 비석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헤야 한다고 제시했다.

진주성 비석군에 친일행적 정태석·정상진·정봉욱 있어

진주성 안 경절사와 청계서원 앞에는 ‘비석군’이 있다. 1973년 문화재보호협회 진주지부가 당시 진주성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놓았던 것이다.

비석군에는 ‘1604년 이수일 진주목사 음애비’와 ‘1656년 성이성 목사 청덕 유애비’를 포함해 30여 기가 있다.

비석군에는 친일행위가 있는 인사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태석(鄭泰奭), 정상진(鄭相珍), 정봉욱(鄭奉郁)이다.

▲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좌측 길 옆 3.1운동기념비 아래에 있는 ‘정표환 시혜불망비’.. ⓒ 민족문제연구소
▲ 진주성 비석군에 있는 정태석 비석. ⓒ 민족문제연구소

정태석(진사)은 지주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당시 진주 최고액 1만188원을 기부했고. 1938년 진주 유지들의 모임인 ‘연재계’ 회장으로 300원의 국방성금을 헌납했으며, 1938년 <조선시보>에 ‘전승신년’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5년과 1938년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상장을 받았다.

정상진(창씨명 烏川相珍)은 지주이면서 실업가로, 193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민간공로자 표창으로 은잔을 하사받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했으며, 1938년 3월 <조선시보>에 ‘황군 대승의 봄을 맞이하다’라는 제목의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또 그는 1939년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9년 3월 26일 조선특별지원병 진주후원회 고문으로 선출됐다. 1940년 1월 1일 <매일신보>에 ‘축 황기 2600년 신춘’을 게재했고, 1940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합방 30주년 민간공로자 표창’을 받았으며, 1941년 <매일신보>에 ‘흥아유신’을 축하하는 시국광고 게재 등의 친일행위를 했다.

정봉욱은 1918~1930년 내동면장을 지냈고, 1921년 <매일신보> 주최로 일본 시찰을 다녀왔으며, 1933년 ‘기원절’에 일장기 게양을 독려하고, 1940년 ‘동아의 건설에 유도(儒道)정신을 발휘’라는 경남유도연합회 결성식에 진양군 대표로 참가했다.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쪽 3.1독립운동기념비 옆에는 ‘정표환(鄭杓煥) 시혜불망비’가 있다. 그는 지주로, 1914년 12월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木杯)와 밭 130평을 하사받았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하고. 1939년 1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이밖에 비석군에는 일제강점기 때 면장과 구장을 지낸 김종백(金鍾百) 면장, 정승주(鄭承周) 면장, 이○열(李○列) 평거구장의 비석도 있다.

▲ 진주서 비석군에 있는 정상진 비석. ⓒ 민족문제연구소

박철홍 시의원 “진주성은 자랑이지만 한이 서린 곳”

박철홍 시의원은 이날 자유발언에서 비석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임진왜란 계사년 전투에 7만 민관군이 장렬히 순국한 진주성은 우리에게는 자랑이지만 한이 서린 곳”이라고 했다.

그는 “친일인사의 시혜비가 진주성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부끄럽고 치욕이지만 이를 알리고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역사의 교육 현장으로 알리자는 의견을 피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 후 친일파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독립운동가를 대신해 권력을 장악하고 지배층으로 자리잡았다”며 “오랜 세월이 흘러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는 사라졌지만 진주 명승지에 이름을 새긴 그들의 잘못된 행위와 친일인사의 시혜비가 진주성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잊지 말자는 취지는 시민 모두가 공감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촉석루 아래 의암 쪽 벽면과 뒤벼리에 새겨져 있는 친일파 이름에 대해, 박 의원은 “표지판을 세워 아픈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촉석루 아래 의암 쪽 벽면에는 ‘이은용’과 개명 후 이름인 ‘이지용’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지용은 ‘을사5적’이다.

뒤벼리 쪽에는 구한말 경남도 관찰사로 재직하며 탐관오리로 일제의 침략에 적극 가담했던 이재각(李載覺), 이재현(李載現), 성기운(成岐運)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뒤벼리 앞에는 시민단체가 세운 ‘친일행적 안내판’이 있다. 박 의원은 “뒤벼리에 세워진 알림판은 낙석 방지 철조망 안에 방치돼 있으며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뒤벼리 강변 쪽 인도에 세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지고 읽을 수 있게 해야 된다”고 했다.

촉석루 아래 의암 쪽 음각에 대해, 박 의원은 “이지용, 이은용 글씨를 알릴 표지판을 세우자는 건의는 수차례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진주시에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강 건너편에 알림판과 망원경을 설치하여 쉽고 안전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 진주성 비석군 표지석. ⓒ 민족문제연구소

<2020-12-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진주성 안 ‘친일파’ 비석 여럿,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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