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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부친 친일’ 보도한 MBC 징계 취소 결정-연합뉴스(07.12.02)
`국회의원 부친 친일’ 보도한 MBC 징계 취소 결정
4,370명 수록된 친일인명사전 다음달 공개
4,370명 수록된 친일인명사전 다음달 공개(ytn, 09.10.28)
친일인명사전 발간
친일인명사전 발간(아시아경제, 09.10.28)
헌재 “방송위, MBC ‘PD수첩’ 경고 처분 취소하라-한국일보(07.12.02)
헌재 “방송위, MBC ‘PD수첩’ 경고 처분 취소하라
헌재 ‘국회의원 부친 친일보도’ 문화방송 징계 취소-한겨레신문(07.12.02)
헌재 ‘국회의원 부친 친일보도’ 문화방송 징계 취소
“엄상섭·장우성 친일사전 넣어도 된다”
“엄상섭·장우성 친일사전 넣어도 된다”(경향신문, 09.10.28)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민족문제연구소 <공고>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다음과 같이 친일인명사전[친일문제연구총서 중 1차분인명편(전3권)]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합니다. 때 : 2009년 11월 8일 (일) 오후2시곳 : 숙명아트센터(숙명여대 안) 2009. 10. 27.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윤경로 ·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병상 <모시는 말씀>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늘 애쓰시는 선생님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청산의 기치를 높이든 지 18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구성되고 민족사 정립의 대역사에 착수한 지 8년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이들의 정성과 염원이 합쳐진 끝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이 첫 결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핵심 부분인 친일인명사전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입니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여기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대과업을 추진해 온 힘은 오로지 국민적 지지와 성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그간의 성과를 국민 여러분과 회원 동지들 앞에 보고 드리고, 친일문제연구총서 완간과 역사자료관 건립 등 막중한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역사의 진전을 바라는 선생님. 바쁘시더라도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고, 역사정의를 향한 도정에 지혜와 힘을 보태주십시오. 고맙습니다. 2009. 10. 27.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윤경로 ·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병상 오시는 길 숙명여대 위치 학교 내 행사장(숙명아트센터) 위치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윤 경 로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출간되었습니다. 짧게는 이 작업을 위해 편찬위원회가 꾸려진 지 8년 만의 일이요, 길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와해된 지 꼭 60년 만의 일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친일인명사전>
“야스쿠니 신사 너는 내 운명”-시사IN(07.11.19)
“야스쿠니 신사 너는 내 운명”
유관순·김구 모욕 작가에 벌금형 선고-한겨레신문(07.12.05)
유관순·김구 모욕 작가에 벌금형 선고
기온 마츠리의 기원은 고대 한국이었다
이윤옥·김영조 교토 기온마츠리(祇園祭)는 도쿄 간다마츠리(神田祭), 오사카 텐진마츠리(天神祭)와 함께 일본 3대 마츠리라 불리며 매년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교토 시내 중심부와 야사카신사(八坂神社)에서 행해진다. 기온마츠리의 최절정은 화려한 32기의 야마보코 순행(山巡行, 이하 “가마행렬”로 바꿔 부름)이며 이 밖에도 마츠리 기간 내내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기온마츠리 총본사인 교토 야사카신사 마츠리를 시작으로 일본 곳곳에서 펼쳐지는 기온제만도 수십 곳에 이른다. 기온마츠리의 유래 지금부터 1,100여 년 전인 869년 교토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오늘날과 같은 전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전염병 발생을 신,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고즈덴노 일명 스사노오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재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으며 당시 일본의 전국 66개 행정단위를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끝에 뾰족한 창을 달고 12톤까지 나가는 커다란 가마 호코(왼쪽)소나무 등을 위에 꽂은 1톤 이하로 비교적 작은 가마 야마(오른쪽) 그 뒤 오닌의 난(1467-1477년)때 마츠리는 중단되었으나 1500년에 민중의 손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중국과 페르샤, 벨기에 등에서 들어온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나타낸 장식용의 직물. 벽걸이 등으로 쓰임)등을 가마장식에 쓰게 되어 화려함을 더했다. 장식품의 호화로움 때문에 가마는 ‘움직이는 미술관’이라고도 불린다. 종종 화재를 만나 가마가 불타는 일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민중의손에 의해 복원 재현되어 마츠리의 전통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현재 마츠리에 쓰이는 가마는 야마(‘山’이라는 한자를 쓰며 무게 0.5톤~1톤 규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