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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대와 우려 교차하는 아베 정권 출범-서울신문(06.09.26)
[사설] 기대와 우려 교차하는 아베 정권 출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오늘 일본 제90대 총리에 취임한다. 아베 새 총리는 올해 52세로 전후 태어난 첫 총리이며,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 가장 젊은 총리이다. 아베 새 총리가 단지 젊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한·일, 중·일 관계의 회복을 희망해 왔다는 점에서 일단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기대를 걸고자 한다. 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당내 총재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분간 안정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방향을 잘 잡는다면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들과 안정된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아베 정권의 향방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는 평화헌법의 개정과 집단자위권 확보를 주장했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북한 미사일기지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는 등 대북 강경론도 주도했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를 공표하지 않음으로써 이웃나라를 자극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는 속임수일 뿐이다. 어제 구성된 자민당 지도부의 면면을 보아도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정조회장(정책위 의장)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망언을 일삼은 나카가와 쇼이치 전 농림수산상을 임명하는 등 강성 라인을 전면 배치했다. 오늘 발표될 내각 인선에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침략사를 부인하고 이웃나라를 무시하는 것은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이즈미 외교 노선을 되풀이한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지도력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새 총리는 핵심 외교 문제를 모호한
日자민 “우향우”-서울신문(06.09.26)
日자민 “우향우” 일본 집권 자민당 아베 신조 새 총재는 25일 나카가와 히데나오(62) 정무조사회장을 간사장에 임명하는 등 당 3역 인사를 단행했다.총무회장에는 니와 유와(62) 전 후생상, 정조회장에는 나카가와 쇼이치(53) 농림수산상을 각각 기용했다. 국회대책위원장에는 니카이 도시히로(67) 경제산업상, 간사장 대리에는 이시하라 노부테루(49) 전 국토교통상이 임명됐다.아베 총재와 같은 모리파 소속으로 9선의 나카가와 간사장은 게이오대를 졸업한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 출신이다.모리 내각에서 관방장관과 과학기술청장관을 지냈으며 고이즈미 정권에서 국회대책위원장과 정조회장을 역임했다.자민당내 각 파벌과 두루 친밀하며, 특히 독자의 목소리를 내는 참의원 중진들과 인맥이 두텁다. 간사장으로서 자민당의 명운이 걸린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대책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아베 총재의 후견인역 격이다. 나카가와 쇼이치 정조회장은 일제 종군위안부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망언’을 하고 각료로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올해를 포함, 거듭 참배했다. 아베 총재와 색깔이 흡사한 대북(對北)강경·우파로 분류된다. 그의 기용으로 자민당의 정책이 더 오른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이날 인사에서는 자민당 총재선거서 아베 총재에 협력한 파벌 출신은 발탁됐으나, 지지가 흐지부지했던 파벌은 철저히 배제된 친정체제 구축 인사로 비쳐졌다.
김장훈 “동해 독도 알리기는 계속된다.”
김장훈 “동해 독도 알리기는 계속된다.”(스포츠월드, 10.03.10)
요미우리, “MB 독도발언은 사실”…논란 재연될 듯
요미우리, “MB 독도발언은 사실”…논란 재연될 듯(마이데일리, 10.03.10)
식민지 피해배상 최대 걸림돌은 미국이었다-오마이뉴스(06.09.24)
식민지 피해배상 최대 걸림돌은 미국이었다 일제 패망 60년이 넘도록 식민지 피해배상 문제가 완결되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의 무능 때문인가 아니면 일본 정부의 몰염치 때문일까? 그러나 한·일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최대 변수를 제외하고는 올바른 인식을 도출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제 패망 이후에 동북아 패권국가로서 한일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제1공화국 당시 한·일 식민지 배상문제에서 미국이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자 주> 식민지 배상청구 문제는 정부수립 이전부터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남조선 과도정부(南朝鮮過渡政府) 시기부터 이 문제가 논의되었던 것에서 그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남조선 과도정부란 1947년 6월 3일 군정법령 제141호에 의해 민정 이양을 목표로 설립된 기구로 미 군정청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출범 2개월여 만인 1947년 8월 13일 남조선 과도정부는 ‘대일 배상요구조건 조사위원회’라는 조직을 구성했다. 이 위원회에서 산정한 대일 배상요구액은 1948년 4월말 현재 기준으로 410억 9250만 7868엔이었다. 그리고 대통령 이승만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8월 17일 기자회견과 9월 30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한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대일 배상요구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대일배상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여기서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은 한국이 연합국 즉 전승국의 일원으로서 대일 배상요구에 참여해야 한다는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한민족축전, 문화부 외면에 해외동포들 ‘상처’-스포츠조선(06.09.22)
세계한민족축전, 문화부 외면에 해외동포들 ‘상처’ 정부의 속좁은 처신에 천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동포들이 상처를 받게 생겼다.21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2006세계한민족축전에는 멀리 브라질에서 노구를 이끌고 고국을 찾은 독립운동가의 자손인 고광순옹(85)을 비롯해 입양아 출신 박지현씨(여ㆍ31ㆍ노르웨이) 등 41개국에서 550여명의 해외 동포들이 참여했다. 이 축전은 지난 89년 서울올림픽 1주년 때부터 재외동포들에게 한민족의 자긍심 고양과 해외동포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작됐다. 지난 몇년 전까지는 대통령이 청와대에 이들을 초대해서 다과를 베풀며 따뜻하게 환영했다. 이후 참가자수가 많아지면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통령의 축하메시지를 읽고 대신 환영해왔다. 하지만 올해 문화관광부는 89년 이래 계속되어온 전통을 깨고 대통령은 물론, 문화관광부 장관도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이유는 이 축전의 주최, 주관처인 국민생활체육협의회(국체협)가 이강두 회장대행 선출 후 문화부 승인도 받지 않고 행사를 치르는 만큼 이 행사 역시 파행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문화부 조현재 체육국장은 “회장대행에 대해 문화관광부가 승인도 하지 않은 위법성을 가진 단체 행사여서 장관이 갈 순 없다”고 답했다. 올해만 해도 볼리비아, 에콰도르, 칠레, 온두라스, 보츠와나, 수리남 등지의 동포들이 속속 고국 땅을 밟고 있다. 21일 아내 곽영애여사(82)와 함께 55년만에 고국을 찾은 고광순옹은 “죽기 전에 한번 고국 땅을 밟고 싶었다”며 “이번 방문 기간에 제2 고향 부산을 비롯해 잘린 남쪽 땅을 가슴에 담아 가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고창희 선생은 1921년 대한독립 임시군정부를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고, 일제의 관청 파괴,
[영상]김장훈 “독도지킴이로 바뀐 내 호칭, 무섭고 싫었다”
[영상]김장훈 “독도지킴이로 바뀐 내 호칭, 무섭고 싫었다”(경제투데이, 10.03.10)
요미우리,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발언’ 허위보도 아니다”
요미우리,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발언’ 허위보도 아니다”(ytn, 10.03.10)
-연합뉴스(06.09.21)
<한민족축전 참가한 독립유공자 후손> 한민족축전 참가한 독립유공자 후손 고광순씨, 브라질 초기이민사 ‘산증인’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고향인 평양에 한번 가보고 싶어.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 브라질로 이민해 사는 55년 동안 한 번도 못 갔거든. 이왕이면 통일이 된 고향 땅에를 가봐야 할텐데…,”독립운동가 고창희(高昌熙.1887-?) 선생의 장남인 고광순(87) 씨는 2006 세계한민족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아내 곽영애(82) 여사와 함께 21일 귀국했다.고광순 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한번 고국 땅을 밟고 싶었다”며 “이번 방문 기간에 제2 고향 부산을 비롯해 잘린 남쪽 땅을 가슴에 담아 가겠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일제강점기 만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고창희 선생은 1921년 대한독립 임시군정부를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으며 일제의 관청 파괴, 친일관리 처단을 계획하고 모험청년단을 조직해 활동 중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10년간 수감됐다 풀려나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아버지가 독립운동 한 사실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 나중에 자라면서 어머니와 친척, 주위사람들로부터 듣고 알았어. (독립운동 사실은) 가족에겐 모든 것이 비밀이었어”고 씨는 “아버지가 출옥했을 때 잠깐 얼굴을 봤을 뿐 그 이후엔 거의 보지 못했다”며 “고학하면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했다.일본 교토중학교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그는 원산수산시험장에서 일하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했다. 유일한 동생 고화순(75)씨는 황해도 재령에 살고 있으며 누나 3명도 평양과 신의주에 생존해 있다.고광순 씨는 가난과 사상문제로 고민하다 1962년 브라질
부처님은 죽이라고 했는가-한겨레신문(06.09.26)
부처님은 죽이라고 했는가 불교적 신념이 강한 내가 한국 종단의 ‘신도’가 되길 거부하는 이유 …교리를 왜곡해가면서 전쟁 이데올로기를 생산해온 동아시아 종단의 치부 ▣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나의 내면적 신앙이 어떻게 돼도 어떤 조직적 종교의 신도로 칭하지 않으려 한다. 종교 조직을 멀리할 이유 중 하나는 전쟁이라는 야만의 극치에 대한 종교들의 무력함에 따르는 환멸이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지역은 역사적으로 ‘종교전쟁’을 해본 일은 없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국가가 자행하는 전쟁 행위에 대한 종교 집단들의 협력은 구미 지역에 비해 훨씬 가시적이었다.물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제동을 걸지 못한 구미 지역의 주류 교단들에 면죄부를 줄 일은 없지만, 구미 지역에서 전쟁을 일관되게 반대하는 비주류 교단들마저 놀랍게도 동아시아에서는 전쟁의 협력자로 돌변하곤 했다. 일본 퀘이커의 변절예컨대 구미에서 병역거부·반전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아온 퀘이커들을 생각해보자. 1894년에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거의 모든 일본인 퀘이커들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국가와 천황에의 보은’을 앞세워 ‘전쟁 지지’와 ‘적극적인 협력’을 밝혔다. 결국 일본 퀘이커들은 세계 퀘이커 공동체와 일시적으로 관계를 끊어야 했다. 또한 일본인 퀘이커로서 가장 유명했던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1862~1933) 박사는 1898년에 영문으로 일본 무사도의 찬양론을 쓰는 등 군국 일본의 대외 홍보에 일익을 담당하게 됐다. 여호와의 증인 등 극소수만 제외하고는 퀘이커와 같은 정통 평화 교단들마저도 병역 거부를 선언하지 못한 게 근대 동아시아의 현실이다. 성경책에서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나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