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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일제하 친일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2012년 3월 6일 744

“일제하 친일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사,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인도 최초의 총리 네루가 독립 투쟁 시절 감옥에 갇혀 지내며 매일 어린 딸(훗날 인도의 수상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 ‘세계사 편력’에 실린 3·1 운동에 관한 내용. “3.1 운동은 조선 민족이 단결하여 자유와 독립을 찾으려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일본 경찰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숭고한 독립운동이었다. 조선에서 대학을 갓 나온 젊은 여성과 소녀들이 학생 신분으로 투쟁에 참가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네가 듣는다면 틀림없이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 민족대표 33인은 국내 대표…또 다른 독립선언서들흔히 3·1운동, 독립 선언하면 파고다 공원과 민족대표 33인을 대표격으로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아는 민족대표 33인은 국내 대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1919년 3월 1일을 전후하여 국내뿐 아니라 동경, 길림, 용정, 미국, 하와이, 시베리아, 대만, 상해 등 국내외에서 70여 종의 서로 다른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으로 전해진다. 발견된 것은 20여 종 정도.   이 중에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도 있다. 1982년 일본정부의 비밀문서 속에서 일본어로 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순한글 원본이 1983년 11월 미국에 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여사의 로스엔젤레스 자택에서 발견되었다. 발표된 곳은 중국 지린 – 길림(吉林)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슬프고 억울하다. 우리 대한 동포시여, (우리 여성도) 같은 국민, 같은 양심의 소유자이므로

“친일인명사전 기부 프로젝트”,3일만에 목표 달성

2012년 3월 2일 1325

  우리 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이 3·1절을 계기로 공동으로 추진한 소셜펀딩 개미스폰서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_친일인명사전 기부 프로젝트”가 단 3일 만에 목표액 4,895,000원을 달성함으로써 모금을 성공적으로 마감했다. 한 달간 예정으로 시작했던 모금이 이렇게 초단기간에 끝난 사례는 아름다운재단이 개미스폰서 사업을 진행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2004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 캠페인이 전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불과 11일 만에 5억 원의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역사정의실현에 대한 시민들의 간곡한 정성들이 모인 결과라 할 수 있다.소셜펀딩 개미스폰서 누리집에 실려 있는 “친일인명사전 기부 프로젝트” 페이지를 전재한다. – 편집자 주 –   기부자 명단(가나다 순) 강미나30,000원 강석렬50,000원 강소영50,000원 강승희10,000원 공경록10,000원 공선희10,000원 곽병철100,000원 권달현20,000원 김경환10,000원 김광하50,000원 김근호30,000원 김기영50,000원 김단주20,000원 김동환10,000원 김두환10,000원 김미경10,000원 김민혁20,000원 김민환30,000원 김상규50,000원 김성재15,000원 김수진10,000원 김승완30,000원 김아란25,000원 김영용10,000원 김유미10,000원 김은성10,000원 김은오30,000원김은주20,000원 김은혜30,000원 김재현10,000원 김정희30,000원 김종우10,000원 김종인20,000원 김준석50,000원 김지현10,000원 김창호100,000원 김태수30,000원 김현욱50,000원 김현주50,000원 김혜인10,000원 김화영10,000원 김희선1,000원 김희선10,000원 나윤석50,000원 나혜영10,000원 남궁상10,000원 남미라10,000원 남유정20,000원 노승연10,000원 두현호10,000원 류상요50,000원 류지혜1,000원 명범식100,000원 문철100,000원 민지숙10,000원 박갑석20,000원 박기태10,000원 박선준50,000원 박성욱10,000원 박세휘1,000원 박순섭50,000원 박시연5,000원 박영준50,000원 박유경10,000원 박재호10,000원 박준영10,000원 박해영50,000원 박현진30,000원 백선주30,000원 백은옥250,000원 서경옥10,000원 서은주10,000원 서화영50,000원 손홍균20,000원 신선영50,000원 신창호30,000원 신호영5,000원 심현정10,000원 안은실20,000원 안혜진10,000원 양보람10,000원 양선주50,000원 양정석20,000원 엄재석20,000원 오상훈200,000원오주은30,000원원종천10,000원 유병진10,000원 윤제성20,000원 윤제성20,000원 이명기10,000원 이미호30,000원 이상미50,000원 이상화20,000원 이상화30,000원 이세진30,000원 이영경30,000원 이용훈100,000원 이운영10,000원 이윤주10000원 이종욱100,000원 이주환30000원

‘독도 대포’, 문화재 등록 촉구 기자회견문

2012년 3월 2일 851

  영토주권 수호 상징물 ‘독도 대포’, 문화재 등록 촉구 기자회견문 지난 2008년 8월, 문화재청이 독도에 소재한 이른바 ‘독도수호 대포’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과 한승수 국무총리가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중단시킨 사실이 어제 처음 언론보도로 공개되었다. 더구나 정부(외통부, 총리실)가 문화재 등록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그 시점은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만나 일본 교과서 학습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겠다고 밝히자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와 맞아 떨어진다. 우리는 먼저, 독도수호의 상징적 의미가 큰 ‘대포’를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함으로써 ‘우리 영토에서 주권을 행사하고자 했던’ 문화재청의 당연한 조치가 일방적으로 중단된 배경과 그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러한 조치가 이명박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에서 기인되었다면 이를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독도는 과거 일제가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점령당한 우리 영토다. 따라서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망언을 일삼는 것은 곧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의 권리, 나아가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완전한 독립을 부정하는 역사왜곡 행위인 것이다. 이는 곧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를 망각하고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독도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의식과 부활하는 제국주의 망령의 종식은 물론,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문제와 다름없다. 정부가 일본의

2012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 안내

2012년 2월 29일 675

※총회자료집 내려받기  

[웹진] 반민특위, 지금도 말할 수 없다!

2012년 2월 28일 2502

    만화로 해부하는 금단의 역사, 친일파! 강요된 침묵과 은폐의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한 역사 바로잡기를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다. 열렬한 국민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반민특위의 활동, 그리고 이승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시대의 진실이다.   이 만화는 인문만화교양지 “싱크(SYNC)”에 연재하고 있는 조남준 작가의 “지금도 말할 수 없다. 반민특위 제5화”이다. 전재를 허락해 준 싱크 편집진과 조남준 작가께 감사드린다. ※싱크 블로그 바로가기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싱크”는 인문, 역사, 철학, 교양, 시사 분야를 망라하는 국내 유일무이의 만화교양지로 호를 거듭할 수록 탄탄한 구성과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구독신청 및 문의는 싱크 공식 블로그를 통해 가능하다   글, 그림 조남준(@cnjoon) : 시사만화가. 1966년 서울 출생. 8년간 <한겨레21>에 “시사 SF”를 연재. 그외 내일신문 “만화같은 세상”, 경향신문 “메모리즈” 등으로 활동했다. http://blog.naver.com/jnjoon ※반민특위 제5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4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3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2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1화 바로보기 ※프롤로그 바로보기

이승만-박정희가 한국 정통성을 대표한다고? 차라리 왕조를 세워라!

2012년 2월 27일 1472

‘이승만-박정희’가 한국 정통성을 대표한다고? 차라리 왕조를 세워라! 박한용 연구실장 “박정희 기념관, ‘친일’과 ‘독재’ 정당화하는 범죄의 재구성” 조선일보 2월22일자 사설 ‘대한민국 正史를 견인해 낸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글은 비록 외부의 기고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이승만, 박정희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홍보란이었을 뿐이다. 참모부로서의 조선일보의 몰역사성과 시대착오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 그리고 이승만 추종자와 박정희 추종자가 왜 한 통속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조선일보가 이러한 한 통속 놀음의 보금자리임도 잘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만든 ‘이승만’ 기념관도 만들라고? 기고자인 김일주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한국 보수세력의 원조는 누가 뭐라해도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부국대통령’ 박정희”이며 두 사람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인맥을 통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민중의소리▲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참석자들이 2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대한민국을 정통성을 대통령을 지낸 특정 인물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혀를 찰 노릇이다. 낡은 왕조 시대를 살고있거나 개인 우상숭배에 젖어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발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울러 김 사무총장은 부국대통령 박정희의 기념관은 세워졌으나 정작 그 선구자인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기념관이 세워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없이는 박정희가 없다는 사실을 강변했다. 박정희가 남로당 전력 때문에 사형 당할 뻔 했을 때 감형 결재를

“박정희 기념도서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다”

2012년 2월 22일 1307

“박정희 기념도서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다” CBS 김중호기자 “일제 시대에 혈서쓰고 만주국 장교가 돼서 항일세력과 싸우고, 독재를 했던 사람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시킬 수 있겠습니까?”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의 목소리는 격앙돼 갔다. 박 실장은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을 ‘범죄의 재구성’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사회에서 우리자식들에게 기념화할 수 없는 내용을 기념한다는 것으로, 이것(기념 도서관)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라는 것이죠.”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이라는 명칭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과(過)는 외면한 일방적인 우상화 목적이 드러나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미 추진 주체 자체가 추모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더구나 올해는 유신 40주년이 됩니다. 박정희 지지자들도 부정하지 않는 유신독재의 망령을 씻어서 미래로 갈 수 있어야지 이런 기념관이 되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특히 아이들의 역사관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미래는 역사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독재를 하고서도 기념받을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카다피도 마찬가지고 많은 독재자들이 산업화를 이야기했다”며 일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18년 동안 독재를 하신 분이에요. 명분은 근대화를 하기 위해 독재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럼 앞으로 모두 다 근대화하거나 산업화를 하겠다고 하면 독재를 해도 되겠죠?” 기념도서관 건립 추진이 13년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 국민화합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될 수

기념관이 웬말이냐, 친일·독재 사과하라!

2012년 2월 21일 589

  [박정희 기념관 폐관 촉구 기자회견 성명서] 기념관이 웬말이냐, 친일·독재 사과하라!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가 처참하게 능욕당하는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독재자 박정희의 기념관이 도서관이라는 가면을 쓰고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간 우리는 박정희 우상화의 본산이 될 기념관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지원이 일시 철회되는 성과도 거두었으나, 수구세력의 집요한 압박으로 결코 만들어져서는 안 될 기념관이 들어서는 참담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국민들의 압도적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 대기업들의 기부금과 혈세를 동원 기념관을 개관한 일은 수구세력이 저지른 또 하나의 반역사적 폭거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말인가? 박정희는 안정된 교직을 팽개치고 삼수한 끝에 혈서지원이라는 묘수까지 써가며 자발적으로 황군의 장교가 되었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다는 감탄을 들으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괴뢰 만주국의 군인이 되어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다.해방이 되자 기민하게 광복군에 편입하여 국내로 들어왔으며, 시류를 좇아 남로당에 가담하고 군부 내 좌익세력의 핵심으로 암약하였다.여순사건이 일어나 사세가 불리해지자 숱한 동지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넣은 대가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리를 보전하였다.이승만 정권 때부터 틈만 나면 쿠데타를 운위하며 정치군인으로서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마침내 기회가 오자 다수 군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5·16쿠테타를 일으켜 4월혁명의 정신과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민정이양·군부복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반칙과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위키리크스 공개 주한미대사관의 비밀전문

2012년 2월 17일 1308

위키리크스 공개 주한미대사관의 비밀전문 한국의 과거청산에 부정적 시각 드러내,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민간 활동까지 정보 보고 박한용 연구실장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출발하여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저항방송 ‘뉴스타파’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전문 중 한국의 과거사청산과 관련한 주한미대사관의 정보보고를 분석 조명했다. 2월 17일 방영된 뉴스타파의 4회차 보도에 의하면, 미대사관은 한국의 과거사청산이 한일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으며, 이명박 정부의 친일노선에 대해 노골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가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비밀전문에는 미대사관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대해서 미 본국정부에 보고한 사실도 담겨있어 민간의 과거사청산운동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비밀전문은 전체적으로 한국의 과거사청산에 대한 미국의 예민하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미 대사관은 이명박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취임식 이래 “일관되게 한일관계를 미래에 초점을” 맞추겠으며, “(한일)과거사문제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미대사관은 일련의 보고서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이 시종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즉 이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자신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특사로 일본에 파견하고 당시 주일 유명환 대사를 외교장관으로 임명한 사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일본을 찾은 것에 대해 후쿠다 수상이 ‘이대통령의 정책이 일본과 관계를 우선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감사를 표한 사실, 이에 대해 이대통령이 후쿠다

11일만에 5억… ‘박정희 아들’도 못 막았다

2012년 2월 17일 1104

11일만에 5억….’박정희 아들’도 못 막았다 박윤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서울 시민들은 반성해야 한다? ‘국가정상화 추진위원회’라는 단체에 따르자면 그렇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정체성을 수호’하겠다며 2008년 설립된 이 단체가 2010년 발표한 친북반국가행위인명사전(친북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름도 버젓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북인명사전>의 탄생에는 <오마이뉴스>도 한몫(?)했다. 2004년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손을 잡고 모금 활동을 벌인 결과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친북인명사전>은 바로 이 사전에 대한 대항마였다. 기자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적으나마 힘을 보탰다. 어머니의 주도하에 온 가족이 성금을 냈다. 그리고 <친일인명사전> 발간 소식을 접한 얼마 후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CD 1장이 집으로 배달됐다. 이번엔 아버지가 CD를 신청한 것이다. 그 속에는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떤 역경을 거쳐 왔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기록물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이 담겨 있었다. 이승만의 거짓과 불의 그리고 친일인명사전의 아버지 ‘임종국’ 다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이야기로 막을 올린다. 해방 이후, 그는 권력 의지에 불탔다. 미군정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으니 대통령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문제는 취약한 지지 기반.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김구와 독립운동 세력은 눈엣가시였다. 결국 이승만은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을 한다. ‘청산’의 대상인 친일파와 손을 잡고 거꾸로 독립운동 세력을 ‘청산’해 나간 것이다. 1949년 6월 6일 친일청산기구인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같은 달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서거한다. 이 대목과 관련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로써 우리 역사는 거짓과 불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