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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2014년 10월 31일 587

관동대지진 학살 특별법 추진하는 김종수 목사 ▶“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기사의 사진‘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김종수 목사가 30일 자신이 사역하는 충남 천안 병천리 아힘나평화학교에서 기자와 만나 특별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천안=허란 인턴기자 “1923년 일본 관동 지역에서 적어도 6600명의 조선인이 이유도 없이 죽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요. 누군가는 저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데 말이죠. 목회자로서, 교육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30일 충남 천안 병천리 아힘나평화학교에서 만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관동 학살법 추진위)’ 공동대표 김종수(52) 목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 목사는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특별법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9월 일본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당시 일본 정부가 독물 투입 등 일본인에게 테러를 자행했다는 누명을 재일 조선인들에게 씌워 수천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김 목사는 2006년부터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일하고 있다. 2007년 7월 도쿄에서 사건 당시 발행된 신문과 조선인 학살 장면을 기록한 사진 등을 서울로 가져와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후 서울대 역사학과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을 끈질기게 설득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처음부터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김 목사는 천안의 작은 대안학교인 아힘나평화학교의 대표교사로 아이들을

“전략적 봉쇄차원 소송… 오만하다”

2014년 10월 30일 563

[인터뷰] 양권모 경향신문 논설위원 및 디지털뉴스팀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훼손 했으니 엄벌에 처하도록 해달라는 보수단체 또는 보수논객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국민과 세월호 가족을 몰아붙인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비판까지 고발대상이 됐다. 고발 대상자엔 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언론사 대표, 기자, 논설위원, 학자, 평론가(방송인) 등 여론을 움직이는 이들이 망라됐다. 서북청년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이도 있다. 고소고발은 박 대통령이 지난달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부터 검찰 수사와 함께 봇물처럼 쏟아졌다. 의문의 7시간 동안 ‘정윤회’와 밀회 가능성을 언급한 산케이신문의 전 서울지국장은 검찰에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보수단체·논객의 고발과 검찰수사와 기소로 이어지는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가장 많은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하고 있는 보수 칼럼니스트 심상근씨는 자신의 이런 고발행위에 대해 고발당사자들이 반박을 한 것에 대해서도 고발장을 접수했다. 피고발인의 목소리를 실은 미디어오늘 역시 고발대상에 포함됐다. 고발당한 이들이 이런 세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들어봤다.<편집자주> [관련기사] ① “‘아버지 닮았단 말이 모욕? 박정희가 혐오스럽나” ② 허지웅, 서북청년단 건으로 고발돼 “사실관계조차 틀렸다” ③  조국 “내가 살인교사범? 웃음밖에 안 나와” ④ 한겨레 “조선일보 칼럼과 비교한 것일 뿐” 경향신문 측은 보수칼럼니스트 심상근씨의 고발에 대해 ‘전략적 봉쇄’를 통한 일종의 압박이라고 비판했다. 심씨는 경향신문에 대해 두건의 고발장을 접수했다. 양권모 논설위원은 지난달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의병전쟁을 선포하다

2014년 10월 30일 1551

[박도 실록소설 ‘들꽃’ (8)] # 제2장 13도 창의 군사장 허위 ③ <들꽃> 해제 제목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 돼지감자꽃으로, 예쁜 꽃과는 달리 그 뿌리에는 돼지코처럼 못생긴 감자가 달려 있다. 그래서 ‘뚱단지’라는 별명이 붙었나 보다. ⓒ 박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1905년 고종 황제(광무황제)는 을사늑약을 끝내 재가하지 않았다. 고종 황제는 이 늑약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고, 국제사회에 호소해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고자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3인의 밀사를 파견했다.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전 평리원 예심판사 이준, 전 주러시아공사관 이위종 3인이었다. 이들 세 밀사가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조선 정부(대한제국)가 믿었던 러시아마저도 일본 측에 고종 황제의 밀사 파견을 밀고하고, 만국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에게 전문을 보내 밀사들의 참가신청을 거절케 했다. 국제관계는 그제나 이제나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냉혹한 힘의 논리와 자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때그때 적과 동지 관계로 흘러갔다.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른 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케 했다. 이 한일신협약은 조선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기 위해 법령제정권· 관리임명권· 행정권 및 일본 관리의 임명

“해방은 우리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

2014년 10월 30일 786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청산리·봉오동·대전자령대첩 제94주년 승전 기념식 열어 94년전 한국독립군이 청산리, 봉오동, 대전자령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것을 기리는 ‘제94주년 승리전승기념식’이 27일 오전 백번김구기념관에서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사)한국유공자협회 임우철 회장은 기념사에서 “독립군 정신의 부활을 위해 결연히 일어서려 한다”며, “이 기념식을 통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복받을 수 있도록 주어진 역사적 소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대표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인천가림고 박장식 군과 인천 미추홀외고 김동기·장한륜 군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일본이 전범국가로서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사과는 커녕 그 악행들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인면수심적인 행동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며, 역사의 수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新)독립군으로서의 다짐을 굳세게 다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기념식에 이어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만주지역 무장투쟁과 3대 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이었다. 이 연구위원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는 멀리 의병전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독립전쟁은 항일독립운동의 최고 최후의 형태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독립운동 투사를 길러낸 것도 독립전쟁의 중요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독립운동의 특징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무장독립투쟁으로 일관했다는 점과, 독립운동 선열들은 우리 민족 뿐만아니라 인류평등, 세계평화, 민족간 평등에 이바지한다는 이상으로 투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45년 8월15일의 해방은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듯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강대국의 시혜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이라고 독립운동의 의미를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겠다는 구상은

[2014.10.29] 한국현대사의 악몽 시월유신 2편

2014년 10월 30일 396

☞ 방송 [바로듣기] ※라디오백년전쟁: [2014.10.29] 한국현대사의 악몽 시월유신 2편 ☞[팟빵]http://www.podbbang.com/ch/6647?e=21526481

할아버지 두 번 죽인 이인호, 더는 안 된다

2014년 10월 29일 754

[주장] 친일파 조부는 두둔하고 김구는 능멸… 이인호 KBS 이사장, 사퇴해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나라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랑의 대표적 인물로 학교와 사회가 가르쳐 준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었다. 매 학기 방학이면 빠지지 않는 권장 도서도 <백범 일지>였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출마한 유력 후보 대부분은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백범 선생을 빠지지 않고 꼽았다. 그런 나라 사랑의 핵심 인물인 백범 선생이 지금, 이 나라에서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세월호 망언으로 논란을 빚은 정미홍씨가 제일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난 6월 정씨는 한 언론사 초청 강연에서 “지금 김구 선생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분은 김일성에 부역한 사람이고, 좌파 역사학자들이 영웅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라고 망언했다. 나는 이 제보를 처음 받고 믿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백범 선생에게 이런 망언을 공개리에 할 사람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 “김구 건국공로자로 볼 수 없다” 지난 22일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이인호 KBS이사장의 김구 선생에 대한 역사발언이 커다란 후폭풍을 낳고 있다. ⓒ 채널A화면갈무리  김일성 부역자 김구? 도 넘은 망언 정미홍씨 강연 음성 파일을 직접 들어본 결과, 제보는 사실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정미홍씨는 강연 중 “김구는 시골 출신으로 조선의 독립운동만 하다가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분단은 안 돼!’, 이래 가지고 이쪽(남쪽)에서 선거를 한다고 하니까 그냥 무단으로 김일성을 만나러 갔어요.

KBS 이인호와 MBC 안광한, 갈 데까지 가보라!

2014년 10월 29일 667

[미디어오늘 972호 사설] 역사란 정말 무섭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사람들 중에는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죽지 못해 친일부역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친일부역 인사들은 일제가 망하지 않고,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일제의 ‘개돼지’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35년이란 세월은 질곡에 시달려 온 힘없는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게 길고도 긴 시간이었겠지만,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심판하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시간일 수 있다. 독재 정치도 마찬가지다. 어떤 독재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식인이나 요직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역사와 기록을 더욱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 공영방송의 수뇌부는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매우 안타깝고 가련하다. 특히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이인호 KBS 이사장은 측은하기 짝이 없다. 그녀가 KBS 이사와 이사장직에 오른 진짜 이유와 목적은 갈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는 “갈 데까지 갔다.” 이인호 이사장이 한 발언 중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우리 헌법과 헌법정신을 송두리째 부인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다.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시한 이 전문은 종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러차례 헌법을 뜯어고친 독재자

기미가요 트는 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정하는 꼴

2014년 10월 29일 855

// ☞ 인터뷰 [바로 듣기] ▷ 한수진/사회자: 방송 중에 기미가요가 웬 말이냐.. 엊그제 한 종편방송이 토크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기미가요를 내보내서 논란이 되고 있죠. 자, 일제강점기에 우리민족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심 있는 일본인들 중에도 기미가요의 내용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이야기도 들리고 있는데요. 종편 방송이 무심코 틀었던 이 기미가요,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중앙대학교 노동은 교수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노동은 교수 / 중앙대학교: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우선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기미가요라는 노래가 방송전파를 탄 게 어떤 점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 노동은 교수 / 중앙대학교: 기미가요가 침략전쟁의 상징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기미가요가 일본 국가로 이미 공식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침략전쟁의 상징을 우리가 그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게 이제 문제가 되는 거죠. ▷ 한수진/사회자: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 하는 말씀이시고요. ▶ 노동은 교수 / 중앙대학교: 네. ▷ 한수진/사회자: 하나하나 좀 여쭙겠습니다. 기미가요가 일본 국가인 것은 맞는 거죠? ▶ 노동은 교수 / 중앙대학교: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노래라는 의미의 가요라는 말이 들어가요. ▶ 노동은 교수 / 중앙대학교: 그래서 기미라는 노래, 그런 뜻이 아니고 이게 이제 일본어기 때문에 이제 ‘천황이’ 할 때 ‘기미가’까지가 그렇거든요. 가는 설명하는 거니까, 그 다음에 요는 대대로 그런

일제시대에도 살아남은 독립문, 이런 사정 때문이다

2014년 10월 29일 1494

중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상징으로 제작… 이완용이 현판 글씨도 써 ▲ 독립문 주변은 널찍한 공원으로 동네 주민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 김종성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서울시 서대문구 무악재 고개를 신나게 내려오다 보면 도로가에 널찍하게 자리한 독립문공원이 나타난다. 머리 위로 인왕산이 보이고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나무들이 풍성해 잠시 쉬어가곤 하는 곳이다. 이 독립문 공원엔 명소가 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이외에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서재필 동상 등이 있다. 그 가운데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이국적인 모양새로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독립문(사적 제32호)이다. 조선 말기 갑오개혁(1894~1896)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독립협회가 세운 19세기 말의 자주민권, 자강운동의 기념물이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독립’이란 이름 때문에 언뜻 보면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지어진 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반일(反日)의 상징이 아니라 반청(反淸)의 상징물이다. 조선이 더 이상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독립된 자주국임을 천명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의 주도 아래 고종의 동의를 얻어 진행했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떠 만든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뜻 있는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조선의 ‘독립’을 원했던 일제의 검은 속셈 ▲ 독립문 앞에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던 영은문(사진 아래)의 주춧돌이 서있다. ⓒ 김종성. 자료사진 독립문은 그 취지대로 원래 있던 자리에 서 있었던 ‘영은문(迎恩門)’을 허물고 세워졌다. 영은문은 수백 년에 걸친 조선과 중국의 종속 관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영은문은 ‘은혜로운 이들을 맞이하는 문’이란 뜻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