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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외침과 식민지배, 독재에 상처받은 인왕산

2014년 11월 1일 1244

<새연재> 유영호의 서울 성곽 역사기행 (6) 필운대·사직공원·국사당 ▲ 인왕산 성곽(사직동~창의문) 답사구간 [자료-유영호] 인왕산 성곽(사직동 ~ 창의문 구간) <필운대(弼雲臺)>, 권율의 사위가 된 개구장이 소년 이항복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다시 성곽 길로 돌아오며 성곽 안쪽으로 사직공원과 배화여고가 보인다. 배화여고는 필운대라는 곳으로 사직공원 보다 좀 멀리 있지만 도원수 권율과 관련된 것이니 먼저 가보도록 해보자. 배화여고 뒤뜰에 큰 암벽이 있는데 이 암벽에는 ‘필운대(弼雲臺)’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는데, 이곳은 이항복의 집터이다. ‘필운’은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이항복의 호이다. 그런데 본래 이 집은 권율의 집이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사위 이항복에게 이 집을 주고 자신은 앞서 보았던 성밖 행운동으로 옮긴 것이다. 여기 암벽에 쓰여진 ‘필운대’라는 글자는 이항복의 글씨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그의 후손 이유원의 글씨라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필운대’라는 글씨 옆에 이곳을 설명하는 글은 분명 이유원이 쓴 것이다. 여기에 그는 필운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할아버지 옛날 살던 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푸른 돌벽에는 흰구름이 깊이 잡겼도다. 끼쳐진 풍속이 백년토록 오래 전했으니, 옛 조상들의 의복과 모자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弼雲臺(필운대)’각자. 백사 이항복이 처가인 권율장군의 집에 얹혀 살던 시절에 바위에 새긴 글이라 한다. 사진의 가운데 부분은 이항복의 후손이며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이 쓴 글로 필운대를 설명하는 글이다. [사진-유영호] 우리는 ‘이항복’하면 어려서 이웃에 살던 죽마고우 이덕형과의 ‘오성과

내년 초등 “박정희 독재 감추기 심각”

2014년 11월 1일 453

[분석] 올해 교과서와 내년 적용 ‘실험본’ 교과서 비교… 교육부 관료가 기획 ▲ 초등<사회5-2> 실험본 교과서(오른쪽)와 올해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표지. ⓒ 윤근혁 내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배울 예정인 <사회> 교과서가 이전 교과서에 비해 ‘박정희 미화, 독재 감추기가 심각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정교과서인 이 교과서의 편찬기획자 4명은 모두 교육부 관료들이다. 이런 사실은 30일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과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들이 내년 적용 초등 <사회 5-2> 실험본 교과서와 올해 같은 과목의 교과서를 입수해 해당 내용을 비교,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실험본은 정식 적용 전 시범학교에 먼저 배포하는 교과서인데, 이 내용 가운데 일부는 수정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신 헌법 등 독재 행위를 주도한 주체를 이전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명시한 반면, 실험본은 ‘박정희 정부’ 또는 ‘정부’로 바꿔치기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서술로 보인다. 사라진 박정희 책임… “박정희→(박정희) 정부”로 바꿔치기 이를테면 이전 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다”(114쪽)고 서술한 반면, 실험본은 “박정희 정부는 유신 헌법을 통과시켰다”(145쪽)고 돼 있다. 유신체제에서의 국민 탄압에 대해서도 이전 교과서는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에 강하게 맞섰다”(114쪽)고 표현했지만, 실험본은 “정부는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였다”(145쪽)고 적었다. 주체를 빼놓는 서술 방식은 이 뿐만이 아니다. ▲  분석 결과. ⓒ 윤근혁 이전 교과서는 “유신 헌법에 의해 대통령 선출은 간접선거의 형태로 바뀌었다”(117쪽)고 이른바

[토요에세이] 줄줄이 박중양(朴重陽)

2014년 11월 1일 670

<2014-11-01> 한국일보   ☞기사원문: [토요에세이] 줄줄이 박중양(朴重陽)

‘논란’ 교학사 <한국사>, 전국 2곳 추가 채택

2014년 11월 1일 415

경기 안산 특성화고는 채택… 장교 자녀학교는 내부논란 중 ▲ 교학사의 <고교한국사> 교과서 표지. ⓒ 윤근혁  전국 고교 가운데 2곳에서 친일·독재미화 지적을 받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올해 추가 채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유인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실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사> 검정교과서 채택 대상 고교 450여 곳 가운데 경기 안산공고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는 안산지역에 있는 사립 특성화고다. 또한 같은 경기도지역에 있는 군 장교 자녀학교인 한민고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 등을 놓고 내부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 관계자는 “다른 검정교과서에 대한 출판사 선택은 모두 끝났지만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서만 내부 (교과)협의회를 계속 열고 있는 상태”라면서 “(출판사 선택이) 민감한 사항이어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내부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등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이 학교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 시도를 하다가 학부모들의 반발 등으로 채택 시기를 올해로 늦춘 바 있다. 교학사 회장이 재단이사장을 맡아온 인천 한 고교의 <한국사>교과서 채택 시기는 2015년이다. 지난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국에서 부산 부성고 한 곳이었다. 고교 <한국사>는 교학사를 비롯해 8개 출판사가 교과서를 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2014-10-3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논란’ 교학사 <한국사>, 전국 2곳 추가 채택

친일파 민영은의 청주 땅 4년6개월만에 ‘시민 품으로’

2014년 11월 1일 595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의 토지 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가 청주 상당사거리에 설치한 민영은 땅찾기 소송 승소 기념 동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친일파’ 민영은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챙겼던 청주 도심의 ‘알짜’ 땅이 곧 시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온다. 법무부가 민영은의 후손 5명을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 소송이 연내 마무리되면 문제의 땅은 최종 국가 소유가 된다. 후손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청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반만이다. 민영은은 1905년 6월 충주농공은행 설립 위원으로 활동했고, 1913년 5월부터 6년간 충북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일찌감치 친일 활동에 나섰던 대표적 친일파 인사다. 민영은의 후손 5명은 2011년 3월 청주 도심인 청주중학교와 서문대교, 성안길 부근에 있는 12필지(총 1천894.8㎡)의 도로를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며 청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청주지법 1심 재판부는 2012년 11월 후손의 승소를 판결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꼭 1년 뒤 원심을 깨고 청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는 민영은이 취득한 문제의 땅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추정되며,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의 국가 귀속 결정에 제외된 사정만으로 이를 뒤집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친일재산조사위가 규정한 ‘국고 환수 대상’에서 제외된 토지가 친일재산으로 인정되는 첫 사례였다. 이후 후손들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자 법무부는 문제의 땅을 국가로 귀속하기 위해 지난 2월 24일 후손을 상대로 소유권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가 귀속 재판도 적잖게 애를 먹였다. 후손 5명 중 미국에 사는

너희는 애국자인가, 전봉준이 묻는다

2014년 10월 31일 2238

전봉준, 혁명의 기록 이이화 지음/생각정원·1만4000원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나카쓰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 지음 모시는사람들·1만3000원 오늘 우리에게 120년 전의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육십갑자를 두번 돌아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건 아닐까. 주변 열강들은 새삼 제국주의적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나뉘어 서로 물어뜯기에 여념 없다. 위정자들은 가진 자들 편에 붙어 제 잇속 차리기 바쁘고, 국가안보를 외세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며, 내부 분열을 부추겨 정권 연장을 꾀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구한말 당시와 비슷하다는 걱정이 많은 요즘, 전봉준과 동학혁명을 되새기는 책 두권이 나왔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쓴 <전봉준, 혁명의 기록>은 수십년에 걸친 현장 답사와 자료 조사 끝에 ‘증류’한 맑은 액체 같은 책이다. 수식을 배제한 담백한 문장으로 전봉준의 생애를 되살려낸 평전이자, 동학혁명의 처음과 끝을 기록한 역사서다. 역적으로 몰려 금기시된 전봉준과 동학혁명은 신화로 구전되며 윤색이 더해진 터였다. 지은이는 주민들의 증언이나 동학군이 남긴 자료뿐 아니라 조선 관군 및 일본군의 기록을 뒤져 사실을 좇았다. 사실에 관한한 보수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철저하다. 지금까지 나온 동학혁명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사실에 가까운 책이라고 감히 평할 수 있겠다. ▲전봉준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이 유일한 사진은 전북 순창에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일본 사진가 무라카미 덴신이 일본 영사의 허락을 받아 찍은 것이다. 생각정원 제공 지은이는 전봉준이 “싸움패인 줄만 알았더니

[인터뷰] 11년만에 승소한 근로정신대 피해자 “공부하러 갔다가 위안부 낙인…결국 이혼까지”

2014년 10월 31일 566

“제 나이 12살 때였어요. 일본인이었던 담임 선생님이 일본에 가면 (1년 먼저 근로정신대에 갔던) 언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죠. 또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도 할 수 있고 언니와 한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어요. 어린 마음에 언니도 보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어서 일본으로 가겠다고 했죠.” 30일 오후, 1940년대 일본 군수기업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정주(84) 할머니는 벌써 70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 김 할머니에게는 한 살 터울의 언니가 있었다. 김 할머니의 언니도 그가 일본으로 가기 1년 전 ‘일본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할머니는 언니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후지코시,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정주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공부시켜 준다고 속여 데려가더니 일만시켜… 한 명이라도 정해진 일 못하면 밥도 안줘 풀까지 뜯어 먹었다” “여수, 순천, 벌교 등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 1천여명이 함께 갔어요. 그땐 일본에 도착만 하면 먼저간 언니가 마중 나와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막상 도착해보니 언니는 없었고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더라고요. 군부대 막사 같은 곳이었는데 사방에 철조망이 쳐져 도망갈 수도 없는 곳이었죠. 상하의로 이뤄진 국방색 군복 한 벌과 신발주머니 크기의 하얀색 위생주머니 하나만을 받고 일주일

“아이고~ 재미없다” 우금티 영령들의 목소리 들리네

2014년 10월 31일 460

공주역사트레킹 2편 ▲ 우금티 우금티에 쓰러져 있는 조형물들.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간 동학농민군들의 모습과 겹쳐져, 좀 서글퍼 보인다. 올해 여름에 촬영한 사진. ⓒ 곽동운 공주역사트레킹 1편 : “내가 설명하려고 했는데…” 토박이한테 당하다 ? 수직이든 수평이든, 장염 걸린 사람에게는 힘들다 공산성 탐방을 마친 트레킹 팀은 중동성당을 지나 본격적인 도보여행에 나섰다. 옛 공주 읍내는 분지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가지를 두고 둥글게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지형을 기반으로 도보 여행길을 개척했기에 해변가나 강변을 걷는 길보다는 좀 험하다. 본격적인 등산보다는 덜해도 급경사가 있는 구간이 몇몇 있다는 것이다. 등산이 수직적인 개념이라면, 트레킹은 수평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트레킹도 지형을 타고 가야하기에 일정 부분에서는 수직적으로 올라가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등산도 봄소풍 가듯 평평한 길을 걸을 때도 많다. 개념 정의에서는 수직과 수평으로 나누어지지만 지형이라는 구체적인 물리적 공간에서는 중첩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베이스 캠프로 삼고 있는 관악산 둘레길의 경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등산로였다. 그런데 걷기 열풍을 타고 ‘둘레길’로 변신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지형적, 개념적 정의들도 컨디션이 좋을 때나 귀에 들어올 것이다. 장염 때문에 배앓이를 하는 사람에게 수직이든 수평이든 힘든 것은 매한가지 일 테니까. 그랬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서게 되니 공주토박이 분보다는 장염에 걸린 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장염 특성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지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죽기 전 진심어린 사과 원해”

2014년 10월 31일 1206

일제 강제동원피해소송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대법원이 2012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배소에서 청구권을 인정한데이어, 10월 31일 서울중앙지법은 “후지코시는 강제동원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상임대표 이희자)가 주도하였으며 장완익 변호사(연구소 이사)가 변론을 맡았다. – ‘편집자’ ▲’재판을 마치고’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의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인 30일 오후 피해자 할머니들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밖으로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1인당 8천만원∼1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죽기 전에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걸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기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30일 오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일본 후지코시 상대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선고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이복실(82) 할머니는 언성을 높여 이렇게 말했다. 그 는 “1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됐는데 (보상금을) 다 줬다, 다 끝났다고 하는 게 기업이냐”며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싸워왔다”고 강조했다. 이복실 할머니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된 후지코시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원고들 중 한 명이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강제 동원돼 노역에 시달렸던 피해자와 유족 31명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후지코시가 이들에게 각각 8천만∼1억원을 배상해야

일본에 그렇게 당하고도 동남아에 밀린 한국, 왜?

2014년 10월 31일 823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1> 한일협정, 아홉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여덟 번째 이야기 주제는 한일협정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이야기 마당 4∼8] 친일파[이야기 마당 9∼15] 학살[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이야기 마당 42∼53] 5.16쿠데타 [이야기 마당 54∼62] 제3공화국 [한일협정,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아니었으면 일본 자금도 못 들여왔다? [한일협정, 두 번째 마당] 아베 외조부 “돈으로 박정희를 만족시키면 된다” [한일협정, 세 번째 마당] “일본을 형님으로 모시겠소”, 고개 숙인 박정희 [한일협정, 네 번째 마당] 짓밟힌 한국, 일본·미국 짬짜미에 또 당했다 [한일협정, 다섯 번째 마당] 이대생들은 왜 ‘미장원·화장 자제’를 결의했나 [한일협정, 여섯 번째 마당] 조선·동아는 어쩌다 괘씸죄로 청와대에 찍혔나 [한일협정, 일곱 번째 마당] 또 망언한 일본…한국 정부는 왜 덮는 데 급급했나 [한일협정, 여덟 번째 마당] 반공 목사들이 박정희에게 정면으로 반기 든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