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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 (03.29)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 (03.22)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1편 _대중가요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 “군국가요에서부터 국가보안법 피해까지” ☞ (03.15) ‘역발상’ 시즌 1: 새로운 시작 그리고 재일조선인단체사전 발간
[한겨레] “이게 무슨 재판이냐” 판사 책상 걷어찬 청년 이명준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6) 천주교정의구현 청년전국연합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이사야 62,1)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리리라.” (시편 137,1.4-6) 사람은 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라고 그리스도교는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한 차원 높은 삶, 무한한 영생의 삶을 전제한 가치관 설정입니다. 생명의 범주에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신의와 우정, 정의와 공정, 동족과 공동체라는 사회의 연대적 가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신앙과 신의, 조국애와 동포애가 바로 그 예범입니다. 교회와 조국, 모교와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때문에 시온과 예루살렘을 기리고 칭송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이 곧 하느님의 현존과 모국의 상징입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단순한 장소를 넘어선 그 어떤 초월적 의미를 지닌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두 가지 유형의 고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의구현 청년전국연합의 이명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이 소중하듯 1970~80년대 수많은 이들에게 명동성당은 아주 귀중한 영적 보루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민족사랑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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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일 연구자 40여명 10년 걸려 ‘재일조선인단체 사전’ 냈죠”
[짬] 민문연 이용창 연구실장 “사전 색인 작업만 두 달가량 걸렸어요. 인명이 5400여명, 단체가 2800여개인데요. 앞으로 <친일인명사전> 증보개정판을 내거나, 새로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할 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이하 민문연)는 최근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서 발족한 조선인단체 551곳의 연혁과 활동을 담은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공동편찬위원장 히구치 유이치, 미즈노 나오키, 김광열)를 냈다. 2012년에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이 함께 편찬 작업에 착수했으니 꼬박 10년이 걸렸다. “국내의 재일조선인 연구자 9분과 일본 연구자 29분이 참여했어요. 일본은 재일조선인 전문 연구자와 함께 지역을 연구하는 분들도 여럿 참여했죠. 사전 내용의 65%는 한·일 연구자들이, 나머지는 민문연 편찬팀 연구원들이 나눠 썼죠.” 민문연 동료 연구원 다섯과 함께 이번 사전 편찬 실무를 이끈 이용창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중앙대 사학과에서 ‘동학천도교단의 민회 설립운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실장은 2004년부터 민문연 상근연구원으로 활동해왔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 민문연 사무실에서 이 실장을 만났다. 1200쪽이 넘는 이 사전은 민문연이 창립 이후 네 번째로 펴낸 일제 시기 전문 사전이다. 가장 먼저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2004년)을 냈고 이어 <친일인명사전>(2009),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통감부·조선총독부편>(2017)을 발간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낼 때 일본과 중국 쪽 조선인 사회 동향이 궁금했어요. <친일인명사전>은 지금도 객관성이나 치밀함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해외와 국내 지역 쪽 조사가 미흡했거든요. 1945년 기준으로 일본에만 조선인 2백만 이상이 살았어요. 그 시절 일본에 조선인 조직이 뭐가 있었고 활동은 어땠고,
[한겨레] 윤 당선자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주역’ 이배용 ‘특별고문’에
박근혜 정부 때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역임 임시정부 정통성 부정·친일 독재 미화한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등으로 활동 2015년 ‘국정화’ 발표에 직접 나서기도 역사학자들 “역사적 퇴행” 시도할까 우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4일 박근혜 정부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의 주역이었던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원) 원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자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주도한 인물을 특별고문이라는 상직적 자리에 앉히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시도된 ‘역사적 퇴행’이 새 정부에서 재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 당선자는 이날 이화여대 전 총장 출신이기도 한 이배용 전 원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한 이유에 대해 “평소 국민을 사랑하고 두려운 줄 아는 애민 정신이, 진정한 국가지도자상임을 강조해온 그의 가치관이 윤석열 정부와 지향점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고문은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3년 9월부터 2016년 9월까지 한중원 원장을 맡았다. 한중원은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3대 역사 연구 국가기관으로 꼽힌다. 2018년 교육부가 발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를 보면, 이 전 총장은 청와대의 추천으로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는 청와대가 역사교과서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된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전 총장도 청와대 수석이나 그 이상급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었다고 백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 전 총장은 2015년 10월 교육부가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오마이뉴스] ‘식민지 조선 최고의 슈퍼스타’ 남인수 이야기
[리뷰] 팟캐스트 <역사를 발견하고 상상하라 미래를> 보통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현상을 찾아내는 것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그렇다면 역사를 발견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약간의 생경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역사라는 거대한 개념을 ‘발견의 대상’으로 두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차라리 “역사 속에서 ‘○○’을 발견하라”고 썼다면 이견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지난 3월 15일 새로운 닻을 띄운 팟캐스트, <역사를 발견하고 상상하라>(이하 역발상)는 바로 이런 물음들에 착안했다. 역사: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총체(總體) ‘역발상’은 첫 에피소드로 식민지 조선의 대중예술인 남인수(南仁樹, 1918〜1962)의 생애를 다룬다. 남인수는 1936년 19세의 나이로 데뷔, 타고난 미성(美聲)과 물 흐르는 듯한 창법, 뛰어난 외모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모은 식민지 조선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그가 남긴 히트곡은 <애수의 소야곡>, <울며 헤어진 부산항>, <낙화유수>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으며 196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발표한 곡들은 1000곡을 넘어간다. 가왕(歌王)을 넘어 ‘가황(歌皇)’이라는 칭호가 따라붙는 인물인 것이다. 이에 ‘역발상’ 또한 이 지점을 먼저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만큼”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 남인수라는 인물이 존재했었다는 것. ‘역발상’은 남인수에 대한 민중들의 사랑, 뛰어난 실력,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존재사적 의의 등에 대한 설명들이 충실하게 이어간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총동원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중의 문화적 욕구와 감성이 생동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역발상’이 청취자에게 제안하는 첫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29편 – 한국행진곡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9편 : 한국행진곡_한종수(한형석 후손) ☞ 28편 : 해방행진곡_손명원(손정도, 손원일 후손) ☞ 27편 : 거국행_박만규(흥사단 이사장) ☞ 26편 : 애국가_김흥태(오희옥 지사 아들) ☞ 신흥무관학교 제8편 :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 ☞ 신흥무관학교 제7편 : 자랑스런 신흥인 ☞ 신흥무관학교 제6편 : 독립전쟁의 주역, 독립군의 총 ☞ 신흥무관학교 제5편 :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 신흥무관학교 제4편 : 신흥무관학교 24시 ☞ 신흥무관학교 제3편 : 서간도는 어떤 곳일까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한겨레]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온다!” 47년 전의 절규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5) 유신 병영국가 고발한 김상진 열사 “아, 용사들이 싸움터에서 쓰러졌구나. 요나탄이 산 위에서 죽었구나. 나의 형, 요나탄, 형 생각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오. 형은 나를 즐겁게 해 주더니 형의 그 남다른 사랑 어느 여인의 사랑도 따를 수 없었는데 아, 용사들은 쓰러지고 무기는 사라졌구나.” (2사무 1,25-27)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히브 12,4)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진지하기 마련입니다. 존재 양식의 질적 전환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의 과거를 생각하고 영생을 기리는 추모와 애도는 그 자체가 감동입니다. 전쟁 중에 사망한 절친한 벗 ‘요나탄’에 대한, 여인의 사랑을 능가한다는 다윗의 칭송과 그 깊은 우정은 바로 아가페 곧 헌신의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민주영령들을 정성껏 기리고 칭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75년은 여전히 억압과 공포로 뒤덮여 있었지만,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청년 학생들의 항거 의지 또한 높아진 한 해였습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한 술책으로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찬성만 가능한 일방통행식의 정치 연극이었습니다. 국민투표로 형식적 지지를 만들어낸 유신정부는 며칠 후 화해라는 명목으로 민청학련 구속자들을 대거 석방함으로써 정치적 국면 전환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더욱 치밀한 공작으로 민주인사들을 탄압했습니다. 특히 동아와 조선투위 기자들을 무더기로 해직시키기도 했습니다. 시신 강제 화장한 뒤
[부천타임즈]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역곡안동네 박제봉 고택 ‘친일파’안내판 설치하라
[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에서 부천시는 역곡안동네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오래된 집이 일제 잔재라고 지적하면서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민문연 부천지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2021년 역곡안동네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오래된 집(역곡동 165번지)이 부천시향토문화재 심사에서 탈락되었으며, 경기도와 부천의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에 의해 일제잔재가 되었음에도 그 어떤 행정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천도시공사가 역곡 안동네 아카이브즈 구축 보도자료를 내면서 친일파 박제봉의 집 사진을 실었다”고 지적하면서 ” 이는 부천시와 부천시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함에 따라 나온 결과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에서는 2020년에는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지원하여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_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을 제작하여 부천지부 홈페이지(minjok21.kr)에 게시하고 경기도 관내 2400여개 초중고에 도록을 보급하였으며, 2021년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추진 공모사업(후원-경기문화재단)에 선정되어 <생활 속 항일음악 음원제작>을 완료하여 부천지부 홈페이지(minjok21.kr)에 게시하고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를 통해 각 교육지청과 초중고에 보급하는 등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 성명서 전문 부천시는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하라 우리는 과거 100년 동안 일제침탈, 식민지배, 독립․항일운동, 해방, 분단, 6.25전쟁 등 수많은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여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방이후 일제에 부역한
[오마이뉴스] 너무 위치 좋은 용산? 왜 이곳은 점령군의 땅이 됐나
윤석열 집무실 이전 검토로 주목… 지리적 특성 탓에 위치 탁월, 폐쇄적 성격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용산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왜 점령군들이 다 여기에 와서 진을 쳤는지 알겠더라. 여기는 너무 위치가 좋다. 그래서 미군이 주둔했나 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용산 위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실제로 윤 당선인이 집무실을 검토하고 있는 용산 국방부 일대는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 주둔을 시작으로 을사조약 1년 전인 1904년부터는 일제가 용산 일대를 위수지역으로 선포해 군대를 들이면서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들이 점유한 곳이다. 광복 후에는 미군이 이어받아 용산 일대를 군사시설로 활용했다. 따져보면 임오군란이 있던 1882년부터 미군의 일부 기지 반환이 이뤄진 2020년까지 138년 동안 용산 땅을 외국군이 점유해 온 셈이다. 그만큼 군사적 요충지라는 뜻이다. 물론 우리 국방부도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을지로1가에 있던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청사로 잠시 사용한 뒤 조선 주둔 옛 일본군사령부(현재 신용산역 인근) 건물로 옮겨 용산 일대에 자리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함께 이전했다. 휴전 이후 다시 일본군 사령부 건물을 국방부 청사로 이용했지만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4년 뒤인 1966년 현재의 용산구 삼각지 부지(삼각지에서 이태원으로 향하는 방면)에 국방부 청사를 신축해 1970년 9월 옮겼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 조금 더 안쪽에 신청사를 건립해서 사용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