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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일 연구자 40여명 10년 걸려 ‘재일조선인단체 사전’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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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민문연 이용창 연구실장

사전 집필에 참여한 조한성(왼쪽부터) 민문연 선임연구원, 이용창 연구실장, 이명숙 선임연구원, 권시용 선임연구원. 강성만 선임기자

“사전 색인 작업만 두 달가량 걸렸어요. 인명이 5400여명, 단체가 2800여개인데요. 앞으로 <친일인명사전> 증보개정판을 내거나, 새로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할 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이하 민문연)는 최근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서 발족한 조선인단체 551곳의 연혁과 활동을 담은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공동편찬위원장 히구치 유이치, 미즈노 나오키, 김광열)를 냈다. 2012년에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이 함께 편찬 작업에 착수했으니 꼬박 10년이 걸렸다. “국내의 재일조선인 연구자 9분과 일본 연구자 29분이 참여했어요. 일본은 재일조선인 전문 연구자와 함께 지역을 연구하는 분들도 여럿 참여했죠. 사전 내용의 65%는 한·일 연구자들이, 나머지는 민문연 편찬팀 연구원들이 나눠 썼죠.”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표지.

민문연 동료 연구원 다섯과 함께 이번 사전 편찬 실무를 이끈 이용창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중앙대 사학과에서 ‘동학천도교단의 민회 설립운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실장은 2004년부터 민문연 상근연구원으로 활동해왔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 민문연 사무실에서 이 실장을 만났다.

1200쪽이 넘는 이 사전은 민문연이 창립 이후 네 번째로 펴낸 일제 시기 전문 사전이다. 가장 먼저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2004년)을 냈고 이어 <친일인명사전>(2009),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통감부·조선총독부편>(2017)을 발간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낼 때 일본과 중국 쪽 조선인 사회 동향이 궁금했어요. <친일인명사전>은 지금도 객관성이나 치밀함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해외와 국내 지역 쪽 조사가 미흡했거든요. 1945년 기준으로 일본에만 조선인 2백만 이상이 살았어요. 그 시절 일본에 조선인 조직이 뭐가 있었고 활동은 어땠고, 또 일제는 어떻게 통치했고 여기에 조선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조사하고 싶었어요.” 왜 <재일조선인단체사전>을 냈냐는 질문에 이 실장이 내놓은 답이다. 그는 이 사전 편찬이 일본 역사 왜곡에 대한 한·일 시민사회 연대를 위한 공동작업의 의미도 크다고 했다. “2천년대 들어 친일인명사전 편찬위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무렵 일본에서도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졌어요. 그때 한국과 일본 시민과 지식인들이 공동 대응을 고민하다 함께 사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사전은 유학생 모임이나 친목·상조 단체에서 독립운동이나 친일 성향 조직까지 재일조선인들이 만든 다양한 단체를 망라했다. 1927년 서울에서 창립한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 일본 지회만 해도 교토와 나고야, 도쿄, 오사카까지 네 곳을 따로 살폈고 천도교와 불교, 기독교 등 국내 종교 단체와 연결된 조직들도 포함했다. 친일파 박춘금이 1921년 도쿄에서 만든 ‘상애회’와 1937년 중일전쟁 무렵 일본 관 주도로 결성돼 강제동원 노동자를 통제·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협화회’도 본부와 각 지부를 나눠 살폈다.

상애회 오사카본부 편을 보면 이 지역 방적 공장 조선인 여공 100명이 상애회 추방을 요구하며 15일간 파업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방적 공장 자본과 밀착한 일부 상애회원들은 조선인 여공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단다. 홋카이도와 효고 현 등 각 지역 협화회 편에는 일본 치안 당국이 조선인을 옥죄는 데 협화회를 활용한 구체적인 방식 등이 담겼다.

민문연 4번째 ‘일제 시기 사전’
일본 연구자 29명 등 집필 참여
재일 조선인단체 551곳 살펴
“사전 색인 인명만 5400여명
친일인명 사전 개정판 내거나
추가 서훈 때 활용 가능할 것”

이 사전 편찬으로 일본 강점기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있는지 묻자 이 실장은 이렇게 답했다. “보통 재일조선인 하면 핍박받은 것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보니 각 분야에서 매우 다양한 조직과 인물들이 존재했더군요. 천도교만 해도 11개 단체나 됩니다. 무정부주의 단체도 여럿이고 여성단체나 소비조합도 있어요. 주거가 힘든 조선인들이 ‘차가인 조합’을 만들어 비슷한 처지의 일본인들과 함께 주거 문제로 투쟁도 했어요.” 이런 말도 했다. “조선인들은 그 시절 일본에서 조선말을 쓰고 조선옷을 입고 조선풍습을 따르며 살았어요.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조선인으로 산 거죠.”

사전은 용어나 관점 통일이 중요한데 두 나라 연구자들이 함께해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하자 그는 “일본 연구자들도 사전 편찬 취지에 동의하는 분들이라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시각차는 없었다”고 했다. “사실 가장 치열하게 논의한 대목은 사전 제목입니다. 재일조선인 연구자 중에는 재일조선인 대신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인 ‘자이니치’나 ‘재일코리안’을 쓰자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두 용어가 우리한테는 낯설어 재일조선인이라고 하고 대신 책 표지에 한자로 제목을 병기했죠.”

앞줄 왼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이용창 민문연 연구실장, 조한성 선임연구원, 권시용 선임연구원, 이명숙 선임연구원. 강성만 선임기자

사전은 551개 단체마다 조직의 성격을 보여주는 한 줄 설명을 달았다. 예컨대 1922년 결성된 흑우회는 ‘도쿄에서 결성된 조선인 최초의 아나키스트 사상 단체’라고 되어 있다. 민문연이 친일 단체로 보는 상애회 설명은 ‘내선융화·친일 단체’이다. “일본 집필자 중에는 상애회를 친일 단체가 아니라 내선융화 단체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죠. 일본에 살면서 일본 문화 속에 동화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단체라는 것이죠. 우리는 상애회가 한국과 일본 정신의 결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친일로 봤고요. 상애회 한 줄 설명에는 이런 의견차가 반영됐죠.”

사전 집필자들은 모두 원고료를 받지 않았단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참여하셨죠. 일본 연구자 중에는 수십 꼭지를 쓰신 분도 있어요. 사실 출간이 예상보다 늦어져 필자분들이 책은 나오는 거냐며 걱정하셨어요. 민문연이 출간 약속을 지켜 그분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전이 나오자 일본 필자분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이 실장은 애초 한국판과 함께 내려고 했던 일본판 출간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와 일본어 원고가 들어오는 대로 교차 번역을 했어요. 그런데 한국어를 일본어로 고쳤을 때 용어도 다르고 문맥도 달라져 당장은 일본어판 출간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더 논의해 결정하려고요.”

마지막으로 개정판을 낸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싶은지 물었다. “이번 사전을 보면 홋카이도 등 지역 협화회 설명도 주로 일본 중앙정부 쪽 자료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앞으로 지역 관청이나 언론사 그리고 민간 쪽 자료도 더 찾아 보완하고 싶어요. 문화예술 단체도 보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연극이나 영화, 문학 관련 조선인 단체들이 많았는데요. 이들이 예술만 한 게 아니라 사상운동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이런 점을 잘 짚어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2022-03-22> 한겨레

☞기사원문: “한·일 연구자 40여명 10년 걸려 ‘재일조선인단체 사전’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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