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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운암 김성숙 선생,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0001년 11월 30일 1478

2008년 4월의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 – (1898. 3. 10 ~ 1969. 4. 12) –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을 2008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간 : 2008. 4. 1 ~ 4. 30ㅇ 장소 : 민족전통관(제1전시관) 내ㅇ 내용 : 김성숙 선생 유묵 등 18점 1898년 평안북도 철산군 서림면에서 태어난 김성숙 선생은 1916년 양평의 용문사에서 불교에 입문하고, 1918년 경기도 광릉에 있는 봉선사 월초(月初) 스님의 문하로 들어가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근대 사회과학에 눈떴다. 3․1운동 때에는 양주․포천 등지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무산자동맹 노동공제회에 참여하여 충북 괴산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진상을 서울 본회 및 각 지방 지회에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국내에서 조국광복운동에 진력을 다하던 중 1923년에는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갔으며, 조선의열단에 가입하여 선전부장으로서 활동하였다. 중국 베이징에서 광저우(廣東) 지역으로 옮긴 선생은 1928년 한국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총연맹을 조직하고 조국 광복을 위해 항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1936년에는 상하이(上海)에서 조선공산주의자동맹을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하였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1월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고 상임이사 겸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며 기관지『조선민족전선』의 편집을 맡았다. 이듬해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지도위원 겸 정치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1942년 1월 22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위원으로, 1월 26일에는 3.1절기념주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선생은 광복이 되자, 12월 1일

[모시는 글] 우당 이회영선생 순국 80주년 추모식 및 장학금 전달식

2012년 11월 7일 1199

  모시는 글   우당 이회영선생의 순국 80주년을 맞아,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독립과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하고, 새로운 시대의 일꾼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생명과 재산을 모두 바치신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추모식과 장학금 전달식을 갖고자 아래와 같이 뜻 깊은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부디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아 래   ㅇ 일 시 : 2012년 11월 17일(토) 오후 2시 ㅇ 장 소 : 국립 서울현충원 현충관(동작동 국립묘지) ㅇ 행 사    – 제1부 : 추모식 및 장학금 지급식    – 제2부 : 묘소 참배(독립유공자 묘역)    – 제3부 : 추모 다과회(현혼관)   2012년 11월   우당기념사업회 회장 홍일식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윤경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연락처 : 우당기념관 02-734-8851/2, www.woodang.or.kr  

만화로 보는 6월민주항쟁! CD 발간

2008년 3월 20일 896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이사장 지선)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로 보는 6월민주항쟁 ‘100℃’>를 CD롬으로 제작하였습니다. 해당 내용을 정리 요약한 것을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부탁드립니다.파일 내려받기

[방송안내]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08년 3월 8일 1236

그것이 알고 싶다(465회) 방영일 : 2008-03-08 ○ 제 목 : 일본처녀 아키코의 진실찾기 – 야스쿠니에 맞선 일본인(가제)○ 방송일시 : 2008년 3월 8일 (토) 밤 10시 55분○ 연 출 : 강 범 석 / 작 가 : 박 진 아 ** 야스쿠니합사 취소소송은 누구의 돈과 땀으로 이루어졌나?일본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에는 2만 1천여 우리 조상들의 혼백이 모셔져 있다. 한국의 가족들에게는 그 생사여부도 알려주지 않고 일본의 전쟁영웅인 야스쿠니의 신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이 합사를 철회해 달라며 피눈물로 호소했지만, 이에 대해 야스쿠니측은 이미 야스쿠니의 신이 됐기 때문에 취하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유족들은 2001년 일본정부를 상대로 합사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그 후 2006년 5월까지 긴 싸움이 이어지며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장 5년에 걸쳐 이어진 기나긴 소송의 비용을 댄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또한 한국의 유족 단체들이 어려운 지경에 빠질 때마다 “조금만 더 힘내자”며 힘차게 손을 건넸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우리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에 분노하고, 그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분노하고, 축구 한-일전을 보며 흥분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인 재판 지원을 위해 회의를 하고, 변호사를 수배하고, 한국인 피해자들의 일본 초청 비용을 모으기 위해 적잖은 돈을 마련해온 사람들.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