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초등학생 대상 역사 캠프 ‘어린이백범학교’ 열려
제33회 어린이백범학교가 연구소와 청년백범 공동주최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강화도 산마을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초등학교 4~6학년생을 대상으로 열린 이번 어린이백범학교에는 모두 28명의 어린이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효창원의 임정요인 묘소, 삼의사 묘소, 백범 묘소를 참배한 뒤 백범기념관을 견학했다. 이어 산마을고등학교로 이동해 연극 민요 독립운동사 독립군가 등을 배우고 인근 수영장에서 물놀이 시간도 가지는 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청년백범은 홍소연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조선동(예원학교 교사), 안성균(산마을고교 교장) 회원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역사운동단체이다. ∷ 방학진 사무국장
최후의 항일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의거’ 기념행사 열려
지난 7월 23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 폭파 의거’ 71주년을 맞아 연구소는 광복회 화성시지회(지회장 안소헌)의 후원으로 의거 현장인 당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부근 서울 정동 일대를 답사한 데 이어 의거 71주년 기념식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거행했다.회원과 시민 등 약 30여 명이 참가한 이번 답사는 이순우 연구위원이 안내를 맡아 성공회성당, 수학원 터(양이재), 경성방송국 터, 이왕직미술품제작소 터, 영성문 터, 경기여고 터, 구세군회관, 미국대사관저, 서울시립미술관(독립신문사, 경성법원청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중추원, 조선사편수회), 서울시청사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의거 7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순서로 진행됐다.특별히 이날 기념식에서는 작년 의거 70주년을 맞아 재현한 연극 ‘정의의 폭탄’을 녹화한 16분 분량의 요약 영상을 상영하여 참가자들에게 부민관 폭파 의거와 의거의 주역인 유만수 강윤국 조문기 등 세 분 독립투사의 삶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역사의 현장인 경성 부민관은 일제시대인 1935년 건립되어 여러 차례 명칭과 용도가 바뀌었으며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현재까지 서울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서울시의회 양준욱 의장과 사무처의 지원으로 본회의장을 기념식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참가자들은 기념식을 마치고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 전 – 칼을 쳐서 보습으로’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 재조명, 기념사업회 창립 추진
“〈날개옷을 찾아서〉 – 조국 독립을 위해, 비행기로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기 위해 천신만고끝에 비행사가 된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의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의 이야기입니다.이 책을 읽으며 눈물 한바가지는 흘렸습니다.”이 글은 정혜주 회원이 작년 8월 펴낸 ????권기옥 평전????을 읽고 박원순 시장이 6월 22일 자신의트위터에 올린 내용이다.정혜주 회원은 2005년 개봉된 영화 〈청연〉의 오류를 〈오마이뉴스〉에 4회에 걸쳐 기고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데, 〈청연〉이 박경원을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로 잘못 소개하고 그녀의 친일행적을 은폐하고 있는 점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후 독립운동 특히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권기옥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도 자연스레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7월 14일 권기옥기념사업 논의를 위해 정혜주 작가를 비롯해 평전 출판을 맡은 하늘자연출판사 정근화 대표, 김진한 충북지부장, 방학진 사무국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권기옥 선생이 공군창설에 기여한 주역 중 한사람이라는 점에서 공군사관학교가 있는 청주의 회원들과 충북지부의 역할도 주목된다.이날 모임에서는 기념사업회 창립은 잠정적으로 10월로 정하고, 역사의식과 대중적 신망이 높은 분을 기념사업회의 대표로 모시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연구자와 독립운동가 후손, 문화예술계 인사, 권기옥·이상정(시인 이상화의 친형, 독립운동가) 부부와 연고가 있는 분들을 임원으로선임하여 기념사업을 활성화하기로 결의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시민들 분노 격렬한 규탄 집회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가 열린 7월 12일 서울 힐튼호텔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야욕을 상징하는 행사라고 지적하며, 침략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한국 영토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외교적 무례이자 도발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사드배치 결 정이 자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내팽개친 채 미국과 일본의 전쟁수행 도구로 전락한 것 이라고 평가하며, 이런 상황에서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가 열린 것은 너무나 치욕적이라고 분개했다.행사시작 시간인 오후 6시가 가까워지고 각국 외교관들과 한국 정부 측 인사들이 속속 나타나자 집회에 참가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외교관 차량의 행사장 진입을 막으며 강하게 항의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도 집회 현장을 찾아 “위안부 문제 해결도 안하면서 남의 나라에서 무엇을 하느냐. 분해서 못견디겠다”고 항의했다.이번 집회에는 연구소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부장들이 직접 참석해 열기를 북돋웠다.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참을 수 없는 일본정부의 오만, 그 보다 더한 한국정부의 비굴함 주한 일본대사관이 오는 12일 백범 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 코앞의 한 호텔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62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것이라고 한다. 60주년이었던 지난 2014년 롯데호텔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가 반대 여론에 직면한 이후 대사관저로 장소를 변경한 사실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올해 다시 대한민국 수도의 심장부에서 공공연하게 도발과 다름없는 행동을 벌이는
임종국 선생을 기리는 기념조형물 건립추진위원회 발족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임종국 선생(1929~1989)을 기리는 조형물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7월 9일 충남 천안시 충청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조형물 건립은 연구소 천안지회(지회장 전훈진)에서 처음 제안하였으며, 지난 4월부터 천안을 비롯해 인근 직산 홍성 제천등지를 돌며 조형물 건립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준비위원 회의를 가져왔다.이날 발족식에는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지철 충남교육감, 임종국 선생의 누이동생 임경화 여사, 김순흥, 이순옥, 허남해, 김재광, 최종진 지부장을 비롯해 천안지역 주요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관계자 등 약200여 명이 참석했다.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에는 이용길 전 천안민주단체협의회 의장이 선임됐다. 추진위는 임종국 선생의 조형물 건립비용을 시민 모금 형식으로 충당하기로 하고, 독립기념관 천안삼거리공원신부공원 등을 조형물 설치 후보지로 선정해 관련 단체와 교섭 중이다.조형물은 임종국 선생의 27주기 기일인 11월 12일 제막 예정이며 성금을 낸 분들의 이름은 조형물 뒷면에 새겨질 예정이다. 조형물 제작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김운성 작가가맡았다.• 모금계좌 : 우리은행 1005-802-225500(예금주 :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관련 사이트 : www.facebook.com/yim1112• 모금액 : 17,547,812원(총 304명, 8월 10일 14:30 현재) 임종국선생 조형물건립에 함께 해주신 분들(가나다 순)가명현 강동화 강봉화 강세희 강영근 강은선 강종권 강주호 고영현 공희덕 구미성 구본경 구자명 구한울 권성주 권수현 권영완 권위상 김경식 김관석 김다함 김단희 김도연 김동식 김동원 김동주 김동호 김묘진 김문기 김미형 김병준김새봄 김선명 김선정 김성곤 김성택 김세현 김송희 김순주 김승은 김시연 김영옥 김영태
‘광복’과 함께 ‘국치’를 기억하자 –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광복’과 함께 ‘국치’를 기억하자 –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1910년 8월 22일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비밀리에 조인했다. 병합조약은 일주일이 지난 8월 29일 순종의 칙유를 통해 내외에 공포되었고, 이로써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10년 12월 4일 신반도사에서 발행한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이다. 사진첩을 발간한 신반도사는 서언에서 “조선의 병합은 동양평화의 기초를 공고히 하고 반도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으로 특히 원만하고 평화롭게 이 대사 병합의 해결을 본 것은 진실로 주목할 만한 일로… (병합의) 성사를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간행한다고 밝혀 ‘조선병합’을 ‘경축’하는 의미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취지로 발행된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은 총 100쪽에 걸쳐 다양한 사진 자료를 담고 있는데, 강제병합의 주역들인 일본과 조선의 인물 사진 170여 장, 특별한 행사의 인물단체 사진 20여 장, 경성의 모습 44장, 지방의 명소와 고적 사진 86장, 조선의 풍속 사진 42장 등 약 400장의 사진을 싣고 있다. ‘조선’ 사진첩임에도 불구하고 첫머리에 실린 사진은 메이지(明治) ‘천황’ 부부의 초상과 그 후 계자인 요시히토 ‘황태자’ 일가족이다. 황실에서 왕가로 전락한 조선왕실 일가는 다음 순서로 밀려났다. 또한, 조선총독부 최초 관보와 대한제국 최종 관보,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를 함께 실어 조선의 병합은 ‘원만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첩에는 수많은 인물
망국의 굴욕, ‘천황’에 바친 헌상품 – 성환참외와 충주담배에서 호피(虎皮)와 비원자기(秘苑磁器)까지
[식민지 비망록 4] 이순우 책임연구원 <1> 1일 오전 10시부터 이왕 동비(李王 同妃) 양 전하는 대조전(大造殿)에서 왕족 및 어친척(御親戚) 등, 그 다음으로 선정전(宣政殿)에서 조선귀족 및 이왕직고등관 등의 축하를 받으시고 10시 30분부터 총독관저를 방문하여 야마가타 정무총감(山縣 政務總監)에 축하인사를 교환하며 천황, 황후, 황태후 3폐하 및 황태자전하께 축사(祝詞)의 집주방(執奏方)을 청하시고 다시 오후 1시로부터 덕수궁에 문안하시고 동(同) 2시에 환궁하실 예정이라더라. <2> 창덕궁 이왕 전하께서 매년 1월 1일에는 총독관저를 방문하옵시고 천폐(天陛, 천황폐하)에 신년어례(新年御禮)의 전주(傳奏)를 총독에게 친히 의뢰하셨으나 금년에는 하세가와 총독(長谷川總督)이 영제(令弟)의 복중(服中)에 있으므로 총독관저 어방문은 권정(權停, 임시로 정지)하옵신다더라. ‘요지연도’ 병풍과 비원자기가 포함된 일본천황에 대한 헌상품 내역 (『매일신보』 1918년 1월 30일자) 이것은 <매일신보> 1914년 1월 1일자 및 1918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각각 수록된 기사 한 토막이다. 이에 의하면 경술국치 이후 창덕궁 이왕(昌德宮 李王)으로 신분이 격하된 것도 모자라, 새로 상전(上典)이 된 일본 ‘천황’에게 아뢰는 새해인사를 전보(電報)로 올려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해마다 새해 첫날부터 몸소 총독관저에 행차를 해야 했던 ‘전직 황제’ 순종의 서글픈 처지가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 그런데 나라를 잃은 옛 통치자가 감내해야 했던 굴종과 수모의 실상은 때마다 철마다 일본 ‘천황’과 황실에 바친 헌상품(獻上品) 행렬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야말로 별의별 품목들이 ‘성의 표시’ 차원에서 바다. 건너 일본으로 건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1917년 6월 당시 이른바 ‘일한병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