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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예의 바른’ 메르켈, ‘위안부 발언’은 작심했다
남의 집을 방문해 초대한 집주인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지 모릅니다. 더구나 방문자와 초대자가 한 나라의 정상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언론이라는 제삼자가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그런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했습니다. 메시지는 콕콕 짚어 전달하면서 ‘예의 바르다’는 평을 들은 메르켈 총리의 노련함을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 ‘예의 바른’ 메르켈, 독일의 경험만 얘기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은 독일의 경험만을 말할 뿐이라는 전제를 꼭 붙였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일본에 조언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일본에 이래라저래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라’ ‘과거 정리가 화해의 전제조건이다’라는 메시지를 정중하게 날렸습니다. 일본 기자가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 방법을 묻자, 메르켈 총리는 ‘독일이 과거 정리를 하니까 프랑스나 유럽이 독일에 관용을 베풀었다’고 답했습니다. 언론이 이런 답을 어떤 기사로 만들 지 메르켈 총리가 모르지 않습니다. 상대가 직접 반발할 수 없는 화법으로 충고와 조언의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 ‘위안부 발언’은 간접화법으로 전달했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위안부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은 대단히 민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위안부를 끄집어 냈습니다.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입니다. 메르켈 총리와 오카다 민주당 대표의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회담
[뉴스펀딩] 1화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었던 강제징용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당한 여운택 할아버지의 증언 2012년 5월 24일 오후 2시 대법원 1호 법정실. 이날따라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서인지, 법정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재판관은 사건번호와 결과를 빠른 속도로 무표정하게 읽어나갔다. 재판관의 낮은 목소리에 다소 무료하고 짜증도 슬슬 나려했다. 15분 쯤 지났을까. “사건번호 2009다22549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원고 망 박창환의 소송수계인 외 4명,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주식회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사건번호 2009다68620 손해배상청구소송, 원고 여운택 외 3명, 피고 신일본제철주식회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 이게 뭔 소리야.’ 옆자리에 앉아 있던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영석 변호사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겼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 우리 둘은 서둘러 1호실을 빠져나왔다. 검색대 밖에서 이희자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겼습니다.” “이겼대? 정말.” “예.” 말을 한 나 자신도 믿기 어려웠다. 15년간의 싸움,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원폭 피해자 소송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강제동원 피해 소송에서 졌다. 그것을 뒤집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세상에,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 김민철, 보수적인 재판부가 내린 혁신적인 판결 『내일을 여는 역사』, 2012년 가을호.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인’ 120만명 정도가 해외로 징용·징병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군인과 군속 36만 5000여명, 군수기업 등에 노동자로 끌려간 사람 66만 7684명 정도가 확인되었습니다. 수치는 어느
“일본군위안부 문제 ‘주범’은 일제 식민지배와 친일세력”
윤명숙 박사.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짬] 충남대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연구원 윤명숙 박사 “김학순 할머니가 내 연구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옮긴이 최민순, 이학사 펴냄)의 지은이 윤명숙(54·사진)씨의 얘기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폭로한 피해자 김학순(1924~97) 할머니의 공개증언이었기 때문이다. “그해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하지만 식민지 시기 여성 지식인을 염두에 둔 연구 주제에 회의를 느껴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필연이었을까? 그해 9월 김 할머니를 만나,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위안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85년 일본에 건너가 2년 뒤 도쿄외국어대에 들어간 윤씨는 91년 재일동포 역사학자 강덕상 교수가 재직하던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김학순 충격’ 속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연구 주제를 바꿨고 94년 석사, 2000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 공개증언 ‘충격’ 연구주제 바꿔 ‘위안부 문제’ 9년 몰입 ‘일본군위안소제도…’ 박사논문 책으로 업자들 통해 인신매매·취업사기 징모 “왜 조선 소녀들이 팔려갔는지” 규명 ‘강제연행’은 일본 우익의 프레임 불과 그의 이번 책은 2003년 일본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약간 손질해 출간했던 <일본의 군대위안소 제도와 조선인 군대위안부>(아카시서점)를 10여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다시 펴낸 것이다. 위안부 문제 연구의 방향을 가른 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위안소 문제가 제기된 지 25년이 흘렀지만
‘이달의 스승’ 논란에 황우여 “장관이 낄 일 아니다”
[즉석 인터뷰] “추천위 재심사 결과 존중해야… 정치권 개입 안돼” ▲ 11일 오전 즉석 인터뷰에 응한 황우여 교육부장관. ⓒ 윤근혁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논란을 빚고 있는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 사업에 대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중요한 것은) 사과 여부가 아니며, 그 일(추천 재심사)은 교육부 장관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난해 8월 황 장관이 직접 지시한 사업이어서 ‘선 긋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 ‘이달의 친일 스승’ 그후, 너무나 뻔뻔한 교육부와 교총) 황 장관은 11일 오전 서울의 한 학교 방문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나 ‘이달의 스승 사업을 직접 지시했는데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하면서 “이 사업은 우리가 지시를 했지만 선정위원회에서 재심사 중이니까 조금 기다려보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장관은 “지금 재검토를 하고 있는데 (최규동 등 친일 행적 의혹을 가진 이들을) 막 몰아붙이고 매도하는 분위기는 안 된다”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의 문제니까 전문적인 기관의 판단을 존중해야지 정치권 등에서 개입할 것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앞서 교육부는 한국교총(교총)과 함께 선정위원회를 만든 뒤 ‘이달의 스승’ 12명을 뽑아 발표했지만 일부 인사들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된 바 있다. ‘3월,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전 교총 초대 회장의 경우 1942년 6월 “죽음으로써 임금(일왕)의 은혜에 보답하다”란 제목의 글을 <문교의 조선>이란 잡지에 쓴 사실이 지난 7일 드러난 바 있다.
김종필 받아쓰기, 거짓 역사 만드는 중앙일보
[비평] 5·16 쿠테타 미화하고 좌익전력 선긋기… 굴절된 현대사, 아전인수 왜곡 증언 쏟아내 어렸을 때 술꾼인 아버지의 폭력 속에 있다가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았지만 술·담배를 멀리한 채 그림 그리기에 빠졌던 한 사람이 있다. 약 5000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유태인 학살의 책임자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개인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그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는 동시에 역사적 검증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부터 김종필 전 총리 인터뷰 연재를 시작했다. 2일 첫 인터뷰 연재에 중앙일보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불편해 왼손으로 커피 잔을 든 김 전 총리’의 사진을 사용했다. “그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는 사진설명은 인간적 연민과 경외심을 모두 자극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했다는 인터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을 좌익세력과 선을 긋고, 성공한 쿠데타를 혁명으로 둔갑시키려는 김 전 총리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 2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 인터뷰에서 그는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김 전 총리는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며 부패한 군의 개혁(정군)과 장면 총리가 이끄는 무능한 정부의 개혁을 위해 “혁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배계층과 사회구조가 바뀌어 과거와의 단절이 있어야 하고 민심을 담아야 혁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4·19도 미완의 혁명인데 어떻게 5·16이 혁명일 수 있느냐”며 “진짜 민심을 담은 혁명을 원했다면 4·19 때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달의 친일 스승’ 그후, 너무나 뻔뻔한 교육부와 교총
‘이달의 스승’ 사업 지시한 황우여 장관 사과해야 ▲ 교육부가 일선 초중고에 보낸 최규동 홍보 포스터. ⓒ 교육부 “역사를 한 가지 교과서로 균형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 책임이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지난 1월 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균형 있는 역사’란 명분을 내세워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겠다’는 속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이달의 친일 스승’ 뽑은 교육부 이날 황 장관은 다음과 같이 역사교육에 대한 소신을 덧붙이기도 했다. “역사만큼은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역사)교과서 오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쯤 뒤인 지난 1월 중순부터 교육부와 한국교총은 ‘이달의 스승’ 12명을 뽑기 위한 선정위원회를 3차례 열었다. ‘존경받는 사도상을 정립하기 위해 이달의 스승을 선정해 스승 존경 풍토를 높이도록 하라’는 지난해 8월 황 장관의 지시에 따른 준비 작업이었다. 황 장관은 지난 1월 23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독립유공자를 선정하듯이 ‘이달의 스승상’을 매달 선정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달의 스승’을 뽑는 방식이었다. 황 장관 말대로 국정교과서처럼 획일적 방법을 써서 ‘분쟁의 씨앗’을 없애려는 이유였을까? 교육부는 선정위원 9명을 자신들과 보수교원단체인 한국교총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골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퇴직교장단체인 한국교육삼락회 회장을 선정위원장으로 세우고 교총 대표 1명,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2명 등으로 위원을 구성했다. 교육부가 지난 2월 17일 낸 ‘이달의 스승’ 선정 관련 보도자료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뉴스펀딩] 2화 “일본 가서 공부 더하고 돈도 벌어올게”
후지코시에 끌려갔던 13살 소녀 이야기 후지코시 이이토 다레가 윳다 사쿠라 하카게노 키노시타데 징지부 미쓰이가 있다소오다 와타시와 만마토 다마사렛다 … 쯔레데 유쿠노와 야스케레도 온나와 노세나이 기송센… (후지코시 좋다고 누가 말했나 벗나무 잎 그늘 아래에 징집부 미쓰이가 말했단다 나는 감쪽같이 속았다. … 끌고 가는 건 쉬워도 여자는 안 태우는 귀국선…) ” 할머니 그게 무슨 노래예요? “ 응? 해방되고 나서 아직 후지코시 공장에 있을 때 불렀던 노래, 숙소가 2층이었거든. 난간에 나가 있다가 일본사람이 지나가면 그 사람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불렀지, 그때는 이제 일은 안 하고 집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시간이 많았어, 어떤 언니가 가르쳐 줬는데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고 노래만 생각나네.”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식량과 무기를 생산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노동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여자근로동원의 촉진에 관한 건』(1943.9) 『여자정신근로령』(1944.8)을 시행하며 조선인 여자아이들을 끌고 가 군수공장에서 무기를 생산하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쿄 아사이토 누마즈 공장 등에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징용당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예전 신문이나 피해자들의 학적부를 보면 후쿠오카, 나가사키 등과 만주에도 근로정신대가 동원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근로정신대로 국내와 해외로 동원당한 피해자가 얼마나 있었는지 전체적인 정확한 현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른 최희순 할머니는 1931년 2월 생으로 올해 85세입니다. 전주에서 소학교 6학년을 다니던 13살 때 일본인 교장선생님과
고교생들이 위안부 할머니 다큐영화 제작…15일 상영
고교생들이 위안부 할머니 다큐영화 제작…15일 상영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부산의 고교생 5명이 한맺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할머니다’를 만들었다. 부산 동인고와 부산진고 3학년 학생들로 감독에 김재우, 편집 강석원, 조연출 조영인, 김원우, 김준혁 군이 각각 역할을 나눠 영화를 제작했다. 이 학생들은 폐관 위기를 맞은 민족여성역사관에 기부를 하다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현실을 알게 됐고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화가 나 영화 제작에 나섰다. 이들은 직접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민족문제연구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위반부 할머니를 찾아다니며 영상에 담았다. 영화 ‘우리 할머니다’는 15일 오후 3시 부산 부산진구 양정청소년수련관에서 공개 상영된다. ‘우리 할머니다’는 지난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사전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돼 영상제작비 40여만원을 후원받았다. 편집 등 후반 작업은 지역 대학생들이 만든 청년창업기업의 도움을 받았다. wink@yna.co.kr <2015-03-11> 연합뉴스 ☞기사원문: 고교생들이 위안부 할머니 다큐영화 제작…15일 상영
[논평] 교육부는 친일인물을 ‘민족의 사표’로 둔갑시킨 참사를 사죄하고, 역사교육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
[논평] 교육부는 친일인물을 ‘민족의 사표’로 둔갑시킨 참사를 사죄하고, 역사교육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 지난 2월 17일 교육부는 겨레의 사표가 되기에 충분한 교육자, 교사 12명을 ‘이달의 스승’으로 뽑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달의 스승’을 전국 1만2천여 초중고교와 일반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 작업을 벌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달의 스승’ 12명 가운데 첫 번째인 2015년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이는 일제강점기에 중동학교 교장을 지냈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최규동이었다. 그러나 최규동은 결코 겨레의 사표로 뽑히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아니다. 최규동은 징병제 실시를 앞둔 1942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관변단체인 조선교육회 기관지 『문교의 조선』에 발표한 글에서 학생들에게 일본군에 들어가 천황을 위해 죽음을 바쳐야 한다고 선동하는가 하면 교육자들에게는 일본 군인이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고 강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드러난 자료만 놓고 보더라도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 무렵부터 최규동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행위를 여러 차례 한 것이 확인된다. 행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최규동만이 아니다. 12명의 대상자 가운데는 부일 협력 또는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물이 더 있다. 친일 행적이 의심되는 인물에 대해 혈세를 써가면서 기념사업을 벌이려고 한 교육부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교육부와 함께 ‘이달의 스승’ 선정 작업을 벌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최규동의 친일 행적이 뒤늦게 논란이 되자 친일 행위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마저 ‘침소봉대’라고 비판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후기] 정기총회를 보고 나서
작년 12월 캠페인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에 가입하고 3월 7일 열린 정기총회에 처음 참석한 어느 신입회원의 절절한 소감문. 연구소가 처한 열악한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희망을 보았다는 진솔한 글이 우리 모두를 울컥하게 만듭니다. – 편집자 많은 망설임 끝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나같은 사람이 가서 공연히 폐나 되지 않을까 많이 망설였지만,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자리여서 용기를 냈던 것이죠. 솔직히 어마어마한 규모일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청에서 별관으로 나와서 뒤로뒤로 돌아 들어가니 자그마한 후생동이란 곳이 새초롬히 문을 열고 반겨주더군요. 충남지부 회원님들과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안에 들어서선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 동호회원들의 모임이라 해도 좋을 만한 규모와 참석인원들을 보곤 이렇게 초라하기만 한 단체가 그동안 그리도 많은 일들을 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이제사 처음 참여를 할 마음을 낸 저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더군요. 더군다나 함세웅 신부님과 이이화 선생님 등 고매하신 인격자들께서 근엄한 모습 대신 자애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회원님들과 소통하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총회를 지켜보면서, 알량한 2만원의 회비를 내는 것으로 체면치레를 했다고 생각해온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해서 몰둘 바를 모를 정도로 민망해지는 걸 느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강연을 듣고, 기여를 하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시고, 전·현직 임원진들의 임명장 수여 장면 등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분들처럼 회원님들 앞에 당당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