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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배 위에서 “대한독립 만세”…3·28 운동 재현
【앵커멘트】 96년 전 오늘.고양행주나루터에서는 일본 헌병을 피해 배 위에서 독립을 외치는 만세시위가 펼쳐졌는데요. 광복 70주년을 맞아, 잘 알려지지 않은 선상 시위를 재현해 민족 의식을 높이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박성완 기자입니다. 【리포트】 일제 치하에서 울려퍼졌던 독립선언문을 학생들이 또박또박 읽어내려갑니다. 【싱크】김보연/지도중학교 2학년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은 같은 해 오늘, 이곳 행주나루터까지 번졌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날의 함성을 되살리기 위해 150명이 모였습니다. 【인터뷰】최영봉/민족문제연구소 파주지부장 “서울로 유학갔던 학생들이 이 고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선상 만세시위를 하게 됐던 것입니다.” 선창에 따라 ‘독립 만세’ 소리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울려퍼집니다. 【싱크】 “조선 독립 만세! 만세!” 하지만 총탄을 쏘며 저지하는 일본군에 결국 만세행렬은 방향을 돌려 나루터까지 피신합니다. 어부들의 도움으로 배 2척에 올라탄 사람들. 긴박한 상황에서도 독립을 향한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붙잡고 배 위에서도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싱크】현장음 “대한독립 만세!”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선상 저항운동을 경험한 학생들은 선조들의 애끓는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인터뷰】이나원/경기도 고양시 “가짜 상황인데도 이 정도로 무서운데, 실제 상황이었으면 얼마나 더 무서웠을까…. 그 용기에 감탄하게 됐어요.” 무심코 뒤로했던, 우리의 오늘을 만든 과거를 돌아보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OBS뉴스 박성완 입니다. <2015-03-29> OBS뉴스 ☞뉴스원문: 배 위에서 “대한독립 만세”…3·28 운동 재현 ※관련포토뉴스 ▲(고양=연합뉴스)
[뉴스펀딩] 5화. 누가 이 청년을 전범으로 만들었는가
“너무나도 분주한 일생이었다. 26년간 거의 꿈속에서 지내왔다. 불꽃처럼 사라져버렸다. 이 짧은 일생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전혀 자신을 잊고 있었다. 모방과 허무함의 연속, 왜 좀 더 살지 못했는가. 비록 어리석고 불행한 삶일지라도 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더라면 좋을 것을.. 친구여. 형제여. 자신만의 지혜와 사상을 가지시오. 지금, 나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하고, 내 것이라곤 거의 없음에 실망해 있다. 다시 한 번, 고향 생각을 해 보지만, 잘 정리되지 않는다. 아니, 부모님과의 끈이 점점 끊어져가고 있는 듯하다. 내 인생, 최상 최대의 고난이다. 이 방을 나갈 때까지다. 그것도 이제 거의 끝나고,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 자, 힘내자. 9시를 알리는 타종, 느긋하게 유유히 종이 울린다..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누님, 아우야, 행복하기를 바란다. 1번 열차 출발! 장하다. 장하다. 나도 그렇게 하리라. 앞으로 2, 3분이다. 나도 저렇게 만세를 외치리라. 왔다. 때가 된 것 같다. 이것으로 이 기록을 마치려 한다. 세상이여, 행복 있으라.” 1947년 2월 25일. 싱가포르의 창이형무소에서 생의 마지막 아침을 맞은 조문상은 밤새 써내려온 유서의 마지막을 이제 막 끝냈다. 곧이어 철창문이 열렸다. 동료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사형수방인 p홀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걸음, 한걸음, 죽음의 문턱으로 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어 교수대에 선 조문상. 개성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美역사학자들 “집단성명 철회없다”…하버드대 지일파교수도 가세
렉시스 더든 “역사는 편한대로 기억하는 것 아냐”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과거사 왜곡시도에 반대하는 집단성명을 주도한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연합뉴스TV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역사란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 대학 교수 제공) 알렉시스 더든 교수, 일본 보수학자들 ‘위안부 수정’ 요구 비판 맥그로힐 출판사 “역사학자들 지지”…日극우 추정세력들 ‘협박이메일’ 소문도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왜곡 행태를 비판하는 미국 역사학자들의 집단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25일(현지시간) “일본 극우세력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성명을 철회하거나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든 교수는 최근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니혼(日本)대 명예교수 등 일본 보수학자 19명이 미국 교과서에 나온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연합뉴스에 이메일을 보내 이같이 강조했다. 더든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가 후원한 시스템에 갇혀 인권을 유린당한 역사적 사실 자체이며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와 관련한 연구와 저술, 강의 활동을 하는 이들의 학술적 자유를 지지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하타 교수 등은 지난 17일 도쿄(東京) 주일외국특파원클럽(FCCJ)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출판사 맥그로힐사 교과서의 군위안부 기술 중 8곳에 대한 수정을 공식으로 요구했다. 하타 교수는 지난해 고노(河野)담화 작성 과정 검증에 참여한 인사이고 일부는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나 일본 최대 규모의
[2015.3.25] 스티븐슨 암살, 테러인가? 의열인가 1
▲ 라디오백년전쟁 : 스티븐슨 암살, 테러인가? 의열인가 1 ☞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645926 ☞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50325nrh1.mp3
친일인사 ‘이달의 스승’ 선정위원, 줄줄이 사퇴표명
[발굴] 황우여 장관, “선정위에 맡겨 사업 계속하겠다”라고 했지만… <img width="570" height="360" style="text-align: justify;" src="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5/0325/IE001812203_STD.jpg" ▲ 지난 3월초 정부 세종청사에 설치됐다 철거된 ‘3월, 이달의 스승-최규동’ 입간판. [기사 수정 : 25일 오후 4시 11분] ‘이달의 스승’ 사업이 친일 논란을 빚자 선정위원회 소속 위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사퇴했거나 사퇴할 예정인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선정위에 모든 일을 맡겨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9명 선정위원 가운데 상당수가 사퇴했거나 사퇴 의사” 25일, ‘이달의 스승’ 선정위원에 따르면, 전체 9명의 위원 가운데 많게는 4명이 그만둘 예정인 것이다. 교육부는 선정위 명단을 기자들은 물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의원들에게도 일절 공개하지 않아 왔다. (관련 기사 : ‘천황 위해 죽자’는 이가 민족의 스승? 교육부, 최규동 초대 교총회장 선정 논란) 이날 한 선정위원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1명은 이미 선정위에서 나갔고, 나머지 위원 2~3명도 사의를 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선정위원은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 선정을 2월부터 재촉하는 바람에 시간에 쫓겨 큰 실책을 저질렀다, 우리도 답답하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뽑힌 분들(이달의 스승 12명)에게 망신만 준 형태였다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후 교육부는 결국 기존 계획대로 올해 ‘2월의 스승’ 발표는 하지 못했다. 대신 ‘3월의 스승-최규동’을 1순위로 내세웠지만 ‘친일 선정’ 논란에 휘말렸다. 이어 이 선정위원은 “이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1명은 1차 회의만 참석하고
[재판으로 본 현대사](24)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사건 (下)
ㆍ대폿집서 “유신 나빠” 말했다 징역 10년… “그렇지” 공감했다고 징역 3년… ■ 큰 사건에 가려진 서울대 의대생들의 수난 흔히 ‘긴급조치 1호 사건’ 하면 앞서 살펴본 세 사건처럼 재야 지도자나 종교인이 구속된 큰 사건만 거론한다. 그러나 이 밖에도 긴급조치 1호로 처벌받은 사람은 많았다. 여기에선 당시의 판결문 등 기록과 자료에서 확인되는 ‘피고인’들의 저항과 수난에 대해 잠시 살펴봄으로써 큰 사건의 그늘에 가린 그들의 고난을 ‘다시 보기’하기로 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이근후(23), 김영선(23), 김구상(24)은 1974년 1월18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 의대 도서관에서 ‘새해가 되면 지난날의 모든 어려움을 씻어줄 새 날이 올 것을 기대했건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더 굵은 쇠사슬과 더 큰 자갈뿐이 아니었던가?’로 시작해 1·8 긴급조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독재적 탄압조치라며, 그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 일동 명의로 된 격문(檄文)을 낭독하였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는 학우들과 1·8 긴급조치의 철회와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8 긴급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라.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작성하여 학생들에게 널리 알렸다. 위의 세 학생은 곧 검거되었고, 헌법 개정의 청원을 선동하고 긴급조치 1호를 비방하였다는 이유로 이근후는 징역 10년, 김영선·김구상은 각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74 비보군 형공 제6호 사건 판결). | 일러스트 | 박건웅 ■ 민주통일당 간부들의 징역 15년, 그리고 민초도 정치권에서는 민주통일당의
민주주의 국민행동 발기인대회 (2015.03.24)
[팩트TV] 민주주의 국민행동 발기인대회(1) [팩트TV] 민주주의 국민행동 발기인대회(2) 2015년 3월 24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에서 민주행동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망치부인 전화 인터뷰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망치부인 인터뷰와 깔끔정리] 망치부인 전화 인터뷰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망치부인을 모르면 정상적인 국민이 아니다. ^^.. “함세웅 신부 정동영과 함께 정당 운동한다” 보도는 명백한 오보” “민주주의 국민행동은 범시민 대중운동조직” “보수. 진보 모두 결과에 책임 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황우여 “이달의 스승 선정 계속할 것”
“친일논란 반성하지만 교사 사기 위해”… 선정위원도 유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이달의 스승’ 선정에 대해 “사업을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24일 밝혔다. 황 부총리는 이날 서강대에서 열린 인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달의 스승을 선정하는 이유가 교사들의 사기 진작에 있는 만큼 계속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1년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12명에서 8명의 친일 행적이 뒤늦게 밝혀졌던 것 【서울신문 3월 23일자 9면〉 에 대해 “행정적 실수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재판을 하듯이 따질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서라도 좋은 교사상을 정립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검증을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달의 스승 선정위원회에 대해서는 “모시기 어려웠던 분들을 모셨던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선정위원회를 그대로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1호 선정자인 최규동 서울대 전 초대총장의 친일 행적이 불거지자 교육부가 재검증을 의뢰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우려를 표했다. 이용창 편찬실장은 “밀실에서 검증 작업을 하기보다는 각계의 교류를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5-03-25> 서울신문 ☞기사원문: [어수선한 ‘캠퍼스의 봄’] 황우여 “이달의 스승 선정 계속할 것”
민족생활의학자 해관 장두석 선생 별세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평생을 통일운동과 민족생활의학을 전파해 온 해관(海觀)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이 25일 새벽 지병이 악화해 별세했다. 향년 78세. 1938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장두석 선생은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집을 떠나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자연 치유를 경험했고 1975년 자연건강대학을 설립해 민중의학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활동을 하는 등 민주화와 통일, 노동, 환경, 농민운동을 하다 도피 생활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습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다 군사법원에서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1년 4월 사면 석방됐다. 1989년에는 민족생활학교를 설립해 4만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고 독일, 중국, 일본, 캐나다 등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2000년에는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고향 화순에 양현당을 설립해 최근까지 민족생활의학을 전파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자연치유를 원하는 중증 환자들에게 햇빛, 산소, 물, 소금, 곡물·채소 등 5대 영양소와 단식으로 구성된 바른생활건강법을 제시했다. 배달문화선양회를 설립해 해마다 개천절 행사를 마련한 고인은 지난해 10월 2일 북한을 방문해 평양 단군릉에서 단군제 봉행 행사를 열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단식'(1993), ‘민족생활의학'(1994),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1997), ‘병은 없다'(2013), ‘바른생활건강수첩'(2015)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동례(75) 여사와 아들 영철(57·광주시 사회복지 장애인취업지원센터장)씨가 있다. 빈소는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8일 발인해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 062-220-3352) minu21@yna.co.kr <2015-03-25>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족생활의학자 해관 장두석 선생 별세 ※관련기사 ☞통일뉴스: 민족생활의학 전도사 해관 장두석 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