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img-top-introduce[1]

주요기사

친일 인사를 스승 삼은 교육부 ‘예고된 망신살’

2015년 3월 10일 1005

<2015-03-10> 한국일보 ☞기사원문: 친일 인사를 스승 삼은 교육부 ‘예고된 망신살’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천황 위해 죽자’던 최규동 포스터 폐기된다 ☞뉴스1: 김승환 교육감 “교육부 ‘이달의 스승’ 선정 관련자 문책해야” ☞서울신문: [사설] 친일파를 ‘이달의 스승’으로 뽑은 정신 나간 교육부 ☞뉴스토마토: ‘이달의 스승’ 친일행적 논란..교육부 검증 실패 ‘허둥지둥’ ☞매일경제: 최규동 친일파 행적 드러나…교육부, `이달의 스승 선정 12명 모두 재검증` ☞경향신문: 최규동 친일 행적 논란에 교총 “일부 행위로 전 생애 매도 말아야” ☞YTN: 교육부 선정 ‘이달의 스승’ 최규동…친일 행적 논란 ※관련영상  

친일파 가옥은 넣고 반민특위 터는 빼고…이해못할 ‘미래유산’ 선정

2015년 3월 10일 880

노천명, 서정주, 김성수. 친일 논란 인물들의 가옥이 서울시에 의해서 ‘서울 미래 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이한열 열사 기념비와 반민특위 본부 표석 등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조아라 피디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사슴이란 시로 잘 알려진 노천명 시인이 1947년부터 1957년까지 거주했던 가옥입니다. 서울시는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일 이곳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했습니다. 서촌에 얼마 남지 않은 한옥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는 게 선정 이유였습니다. 전통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노천명 시인이 포함돼 있어, 시민단체와 학계의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천명 시인은 일제강점기 시절 태평양 전쟁 중에 전쟁을 찬양하고 전사자들을 칭송하는 시들을 쓰는 등 친일 행각을 벌였습니다. 노천명 시인이 일제의 강제징병을 찬성하는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라는 시를 보면 친일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서울시가 선정한 미래유산에 친일파와 관련된 곳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관악구 남부순환로에 위치한 서정주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서정주 가옥과 종로구 계동길의 김성수 가옥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노천명 시인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로, 일찍이 창씨개명을 하고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썼습니다.   교육인 겸 언론인, 기업가였던 김성수는 조선총독부의 태평양전쟁 지원을 찬양하고 독려한 점이 인정돼 친일파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박사] “행적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일반 분들이 (유적에) 가서 봤을 때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친일행적에 대한 부분도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4·3 진압 경찰, 육군소령 계급장 달다’ ·

2015년 3월 9일 2897

<김관후의 4·3칼럼>(42)치안국장을 역임하고 육군헌병대장으로 전역한 홍순봉 홍순봉은 누구인가? ‘제9경찰청(제주도)장 김봉호(金鳳昊)씨는 5일 부로 사임하고 그 후임에는 공안과장 홍순봉(洪淳鳳)씨가 임명되었다 한다.’-조선일보 1948년 10월 6일 ‘육본 특별명령 제131호(1949년 6월 29일) 국방부장관 신성모/ 1. 이익흥(李益興) 15111 임 육군 헌병 소령/ 홍순봉(洪淳鳳) 15112 임 육군 헌병 소령/ 안익조 15113 임 육군 헌병 소령/ 김정채 15114 임 육군 헌병 대위/ 김홍걸 15115 임 육군 헌병 대위/ 백원교 15116 임 육군 헌병 대위/ 박경후 15117 임 육군 헌병 대위/1949년 7월 1일부’-육본 특별명령 제131호(1949년 6월 29일) 홍순봉(洪淳鳳, 大村裕造, 1898년 4월 14일 ~ ?, 평남 대동)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만주국 관료이자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남형제산면 태생. 1916년부터 남형제산 면서기와 서천면 수석 서기를 역임했다. 그 후 순사시험에 합격하고 평양경찰서 위생계 내근 순사로 근무했다. 1922년 경부시험에 합격한 뒤부터 평양경찰서 순사부장을 역임했다. 평안북도 경부로 재직 중이던 1931년 만주사변 당시 국경 제1선에서 항일운동 세력을 진압하는 한편 일본군의 군수품 수송 지원, 피난민 구호,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 등에 협조했다. 1934년 3월 1일 만주사변에 협력한 공로로 만주국 건국공로장을 받았으며, 동년 4월 29일 일본정부로부터 만주사변 종군기장을 받았다. 1935년 만주로 이주한 뒤부터 만주국 빈장 성(빈강성) 속관, 규화고장(1935년 ~ 1937년), 젠다오 성(간도성) 경무청 사무관, 특고고장 겸 보안고장(1937년), 젠다오 성(간도성) 경무청 사무관 겸 경정(1939년 7월 27일)을

[뒤끝작렬]”天皇위해 죽자”는 국정교과서 나올라

2015년 3월 9일 836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역대 천황은 반도의 민초들에게 갓난아기처럼 애무육성하심으로써 오늘의 영예를 반도 민중에게 짊어지게 하신 성스러운 배려에 감격한다. 반도동포는 남녀노소 한결같이 이 광영에 감읍해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해야 한다. 군무에 복무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황국신민교육의 최후의 마무리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은 위에 소개한 세 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누굴 떠올리셨나요? 얼핏 ‘매국노’의 대명사 격인 이완용이나 박제순 같은 이를 필자로 지목하기 십상일텐데요. 그러면서 마음 속에 몇 마디 욕설이 벌써 지나간 분도 계실테죠. 하지만 이 글을 쓴 이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에도 우리 민족이 받들고 기려야 할, 특히 삼일절의 고귀한 정신이 깃든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사람입니다. 이쯤 되면 상당히 황당하시죠? 그 주인공은 바로 백농 최규동(1882~1950)입니다.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로서, 대성 및 중동학교 등에서 수학교사와 교장으로서 후세 교육에 헌신했다”. 그를 ‘이달의 스승’ 1번 타자로 뽑은 정부의 설명입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16일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함께 ‘이달의 스승’ 12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는데요. 당시 교육부가 발표한 올해 ’12명의 스승’을 그대로 옮긴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3월 :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 최규동 △4월 : 식민지 농촌

“기자 양반이 봤다면 온정신으로 못 돌아다녔을겨”

2015년 3월 9일 590

[증언] 1950년 대전 골령골 학살 현장 ▲  박성하(80)씨가 65년 전 학살 현장을 가르키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그가 증언 도중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어이구~ 어이구~ 생각만 해도 기가 막혀. 사람이 할 짓이 아녀. 짐승이 할 짓이지…. 못할 짓이지. 설령 죄를 지었어도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거여…. 참혹했어. 만약 기자 양반이 봤다면 온정신으로 못 돌아다녔을겨.”  최근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 곤룡길) 현장에서 만난 박성하(80, 충북 옥천군 군서면)씨는 그때를 되새기며 몇 번씩 고개를 가로저었다. 65년 전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어느 날. 박씨는 15살 앳된 소년 시절이었다. 여느 때처럼 마을 뒷산에 바람을 쐬기 위해 올라갔다. 그가 살고 있는 충북 옥천군 소재 사향마을은 지금의 곤령터널을 사이에 놓고 대전시와 경계에 들어서 있다. 마을 뒷산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앞쪽은 대전시고 뒤쪽은 옥천군이다.  “죽이고 또 죽이고…” 2시간 동안의 학살 현장 ▲  박성하(80)씨가 학살터에 서서 자신이 현장을 지켜봤던 산등성이를 가르켰다. 철탑 부근이 박씨가 지목한 유해매장 추정지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당시 뒷산 새질리 골짜기 능선에는 큰 아름드리 참나무가 정자나무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재를 넘어 오가는 사람들은 참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거나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곤 했다. 그날도 소년은 참나무 아래서 대전 쪽 산 아래를 바라보며 무심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산 아래 저만치에서 트럭이 한 대 올라와 멈췄다. 이어 총을

불교계 이완용 ‘이회광’ vs 항일 ‘한용운’-‘백용성’

2015년 3월 9일 1962

제96주년 삼일절 행사에 군산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찾은 이유…. ▲ 군산시 구암동 3·1운동 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제96회 삼일절 기념식 장면     조종안   [신문고뉴스] 조종안 기자 =  어제(3월 1일)는 제96주년 삼일절이었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오전 9시쯤 집을 나섰다. 화사한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왜놈 헌병의 닛폰도(日本刀) 칼날처럼 예리하다. 집 앞에서 52번 버스를 타고 ‘3·1운동 기념관’이 있는 구암동산 입구에서 내렸다. 구암동산은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기미 독립만세운동(군산 3.5 만세운동) 발상지로 성역화 사업이 한창이다. 96년 전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던 군산 영명학교(제일고 전신)와 멜볼딘여학교(영광여고 전신) 후배들, 극단 ‘둥당애’ 단원들, 구암동 자치위원회 풍물단 등이 펼치는 3·5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어 3·1운동 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과 ‘한강 이남 최초 3·1운동 발상지’ 상징탑 제막식을 끝으로 이날의 행사를 모두 마쳤다. 우리가 ‘친일 승려’ 몰라보는 것, 교육에도 문제 있어 삼일절 기념행사가 끝나고 군산시 금광동에 있는 동국사(東國寺)로 방향을 잡았다. 동국사(등록문화재 제64호)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이 땅의 농민들을 착취해서 부를 이룬 대농장주(미야자키, 구마모토 등)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일본식 사찰로 식민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동국사 ‘일제침탈 사료관’에 전시된 자료들을 돌아보는 방문객들     조종안   삼일절에 일본식 사찰을 찾은 이유는 제5회 기획전(환수 문화재 근·현대 불교사 특별전: 2월 16일~5월 31일)이 열리고 있어서였다. 동국사 대웅전 ‘일제침탈 사료관’에 전시된 불교관련

어느 소신 판사의 용기, 이런 게 ‘명판결

2015년 3월 9일 1780

[판결 대 판결 ⑫] 친일 판사 취소 사건 vs. 친일파 후손 땅찾기 제동 사건 또다시 3.1절이다. 친일청산 실패는 단순히 한국현대사의 오점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의 후퇴였다. 친일세력들이 친미로, 다시 반공으로 살아나면서 부와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친일이 단 한 번도 단죄를 받지 않은 탓에 친일파의 후손들은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소송도 불사한다. 법의 이름으로 친일의 기득권을 용인할 것인가. 판결과 판결 12번째는 친일과 관련된 사건이다. 친일 딱지를 지우려는 후손들의 행정소송과 친일파 조상의 땅을 찾으려는 후손들의 땅찾기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어떻게 판결했을까. ①친일판사 결정 취소사건과 ②친일파후손 땅찾기 사건을 살펴보자….기자말         [판결 1] ‘친일판사 결정 취소’ 사건 ▲ 친일 딱지를 지우려는 후손들의 행정소송과 친일파 조상의 땅을 찾으려는 후손들의 땅찾기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어떻게 판결했을까. ⓒ sxc [사례 1] 그는 조선말기인 1892년에 태어났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았던 그는 1917년 약관의 나이로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가 되었고, 1945년까지 판사로 일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판을 성실히 수행했다. 의열단원으로 활동한 이수택 등 독립운동가들의 단죄도 마다하지 않았다. 총 50여 명의 항일투사들이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조선총독부는 3차례 훈장을 수여했다. 일제가 물러가자 이번엔 대한민국 판사로 일하다 1948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일제 시대 법조인 고(故) 유영 판사의 이야기다. 그는 ▲ 독립운동가들의 재판에 간여했고 ▲ 약 25년간 재판소 서기,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훈4등, 5등, 훈6등

“기자 양반이 봤다면 온정신으로 못 돌아다녔을겨”

2015년 3월 9일 1344

[증언] 1950년 대전 골령골 학살 현장 ▲  박성하(80)씨가 65년 전 학살 현장을 가르키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그가 증언 도중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어이구~ 어이구~ 생각만 해도 기가 막혀. 사람이 할 짓이 아녀. 짐승이 할 짓이지…. 못할 짓이지. 설령 죄를 지었어도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거여…. 참혹했어. 만약 기자 양반이 봤다면 온정신으로 못 돌아다녔을겨.”  최근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 곤룡길) 현장에서 만난 박성하(80, 충북 옥천군 군서면)씨는 그때를 되새기며 몇 번씩 고개를 가로저었다. 65년 전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어느 날. 박씨는 15살 앳된 소년 시절이었다. 여느 때처럼 마을 뒷산에 바람을 쐬기 위해 올라갔다. 그가 살고 있는 충북 옥천군 소재 사향마을은 지금의 곤령터널을 사이에 놓고 대전시와 경계에 들어서 있다. 마을 뒷산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앞쪽은 대전시고 뒤쪽은 옥천군이다.  “죽이고 또 죽이고…” 2시간 동안의 학살 현장 ▲  박성하(80)씨가 학살터에 서서 자신이 현장을 지켜봤던 산등성이를 가르켰다. 철탑 부근이 박씨가 지목한 유해매장 추정지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당시 뒷산 새질리 골짜기 능선에는 큰 아름드리 참나무가 정자나무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재를 넘어 오가는 사람들은 참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거나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곤 했다. 그날도 소년은 참나무 아래서 대전 쪽 산 아래를 바라보며 무심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산 아래 저만치에서 트럭이 한 대 올라와 멈췄다. 이어 총을

친일작가 가옥에 밀려 미래유산 안 된 반민특위 터

2015년 3월 9일 832

역사 의식 의심스러운 서울시 ‘미래유산’·교육부 ‘이달의 스승’ 선정 친일 논란 인물의 가옥이 ‘서울 미래유산’에 포함되는가 하면, 참스승상을 정립하겠다며 시작한 ‘이달의 스승’ 첫 대상자로 친일 인사가 뽑혀 논란이 예상된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서울시와 교육부의 몰역사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8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일 공개된 서울시미래유산 홈페이지에는 1980년대 대표적 공안사건인 ‘학림사건’의 발원지인 대학로 학림다방과 엘리트스포츠의 요람 태릉선수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대오서점 등과 함께 친일 논란이 제기된 시인 노천명·서정주, 교육자 겸 정치인 김성수의 가옥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종로구 필운대로의 노천명 가옥은 그가 1949~1957년 거주했던 곳으로 “현재 서촌에 몇개 남지 않은 한옥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뽑혔다. 1969년 지어진 관악구 남부순환로의 서정주 가옥은 현재 ‘서정주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두 시인은 태평양전쟁과 강제 징병 찬양시를 써,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됐다. 종로구 계동길의 김성수 가옥은 1918~1955년 김성수가 거주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배후지원 및 민족교육, 민족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던 장소로 보존가치가 있다”는 명목으로 뽑혔다. 하지만 김성수는 조선총독부의 태평양전쟁 동원을 위한 징병 및 학병 지원을 찬양·독려한 점 등이 인정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됐다.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1942~1944년 김성수가 전국 일간지에 태평양전쟁 동원을 위한 징병 및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을 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기고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친일진상규명위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서울시는 2012년 급속한 사회변화

‘천황 위해 죽자’는 이가 민족의 스승? 교육부, 최규동 초대 교총회장 선정 논란

2015년 3월 7일 480

 [발굴]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하더니… “친일행위자 홍보”   ▲  교육부가 정부 세종청사 안에 세워놓은 최규동 홍보 입간판.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교육부(장관 황우여)가 일제강점기 당시 “죽음으로써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논문을 쓴 최규동(1882~1950)씨를 ‘이달의 스승’ 1순위로 뽑아 전국 학생들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홍보전에 나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순위 ‘민족사표’로 내세운 최규동, 살펴보니…   7일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부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아래 교총)와 함께 교총 전신인 조선교육연합회(1947년 창립) 최규동 초대 회장 등 12명을 ‘이달의 스승’으로 뽑은 뒤, 홍보활동에 뛰어들었다. 교육부는 월별 ‘이달의 스승’을 선정해 지난 2월 발표했다. 이 사업의 홍보 예산은 모두 3억5000여만 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8월 황우여 장관의 지시로 교총과 함께 국민의 존경을 받는 분들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하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우선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이달의 스승’ 1순위로 최규동씨를 선정한 뒤 전국 1만2000여 개의 초·중·고교에 포스터 두 장씩을 일제히 보냈다. 정부세종청사에도 최규동씨 홍보 입간판을 내걸었다. 또 교육부는 전국 학교에 동영상, 계기 교육자료 등도 제공한다. 교총은 최규동씨 등에 대한 대국민 홍보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역사정의실천연대 분석 결과, 교육부가 뽑은 ‘이달의 스승’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 친일 전력이 있는 이들이 두세 명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최규동씨의 경우 일제 침략전쟁 시기인 1942년, 일제관변잡지에 일왕(천황)과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논문을 쓴 사실이 처음 발굴됐다.  최규동 “(황)군 복무야말로 황국신민교육의 완성” 교육부는 최규동씨를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일제강점기 교장을 맡으며 ‘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