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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이완용의 선정비, 창고에 있다고 죄가 사라지진 않는다

2026년 3월 9일 187

매국노 이완용의 자취를 찾아 떠난 전북 부안 줄포 답사기 “이완용의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었나요?” 이번 주말(7일) 답사는 한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이 잘못된 사실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대개 독립운동가들은 영남 출신이 많고, 호남에 유독 친일파들이 많다고 말씀하셨단다. ‘보수의 본향’이라는 대구와 경북 사람들의 긍지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땅이라는 자존심에 기인한다고 설명하시더란다. 나름의 수긍 가는 논리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는 여전히 농업의 경제적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때였다. 호남평야와 나주평야 등 너른 들이 펼쳐진 호남은 지역의 토호와 권세가들의 ‘먹잇감’이었다. 권력에서 밀려나 좌천되더라도 물산이 풍부한 호남으로 발령되길 바랐고, 그들에게 지역민에 대한 수탈은 일상이었다. 이완용이 호남 출신이라는 착각은 그와 관련된 자취가 서울 주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어서 생겨난 듯하다. 당장 그의 무덤이 전북 익산에 있었다. 지금은 직계 후손에 의해 파묘되어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해방 직후부터 그의 무덤은 온 국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어 훼묘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파묘 당시 그의 유해가 담겼던 관 뚜껑이 한때 인근 대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그조차 지금은 사라졌다. 그와 먼 친척뻘이었던 역사학자 이병도가 친일 잔재 청산을 주장하며 박물관에서 꺼내어 불태웠다고 알려져 있다. 친일 잔재 청산의 대의를 강조했지만, 우봉 이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조상의 행적을 지우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병도 자신도 지난 2009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되었다. 하긴 친일파가 친일

[제주의 소리] 반란 프레임 깨는 4.3의 새 이름 ‘해방기 제주 통일독립 항쟁’

2026년 3월 9일 252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③ 김동윤 / ‘해방기 제주 통일독립 항쟁’ 연구를 위하여 2028년이면 제주4.3은 80주년을 맞는다. 기나긴 야만의 시간을 지나, 특별법 제정과 희생자 보상까지 성사되는 등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월 5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 제5회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는 4.3 연구의 2기를 여는 자리로 평가받을 만큼, 유의미한 내용들이 공유됐다. [제주의소리]는 독자들과 함께 4.3 80주년 이후를 함께 고민하고자, 4.3융합전공과 함께 제5회 학술대회 기조발제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4. 해방기 제주 항쟁의 의의와 4.3의 재구성 그렇다면 1948년 4월 3일의 무장봉기는 무의미하다는 것인가. 무의미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그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고,41) 반면에 5.10단선을 분쇄했다는 통일독립 항쟁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4.3 봉기는 그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제주 남로당이 나름의 사정에 따라 이행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오히려 이에 앞서 일제 말기의 상황에서 이어지는 해방기 제주도민의 상황, 특히 1947년 3.1절 기념식 집회로 폭발된 제주도민의 거대한 움직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그것이 남북협상운동을 만나면서 5.10단선 반대 투쟁으로 꽃피었음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는 판단이다.  3.1절 기념식으로 분출된 혼연일체의 열정과 더불어 제주도의 해방기 통일독립 항쟁에서 특히 두드러진 성과는 5.10단선 거부라고 할 수 있다. 단선 반대 열기가 여타 지역보다도 뜨거웠고,42) 결국 가시적인 결실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민들레] K-민주주의 시대, 이재명 정부에서 국보법 끝장내야

2026년 3월 9일 182

이종형 등 친일 매국 세력이 만든 희대의 악법 반민특위 맞서 생존 몸부림…치안유지법 뿌리 여순항쟁 직후 제정, 숙군 종료 직후 1차 개정 87년 6월 항쟁 뒤 일부 수정, 독소조항 그대로 대부분 형법으로 대체 가능…민주주의에 역행 UN인권이사회, 국가인권위 지속적 폐지 권고 해방 직후 당면 과제는 친일 과거사 청산과 자주독립 국가 건설입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친일파 청산을 반대합니다. 실제로 해방 직후 노덕술, 하판락, 안정묵을 비롯해 친일 고등계 경찰들은 쥐새끼처럼 숨어버립니다. 아예 경찰서에 출근하지 않습니다. 1945년 8월 16일~9월 초순 경찰서 출근율이 20%에도 미치질 않았습니다. 1945년 해방 직후인 8월 16일~8월 23일 1주일 동안 전국에 걸쳐 사적으로 경찰을 응징, 처단한 사건이 177건 발생합니다. 그중 111건이 조선인 경찰에 대한 응징, 처단이었습니다.1) 조선인 경찰이 일본인 경찰보다 2배 많았습니다. 조선인 고등계 형사들의 고문 악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경찰 수사는 곧 고문이기에 다리 관절 꺾기 고문, 화롯불에 달군 쇠젓가락 고문, 비행기 태우기, 통닭구이, 전기고문, 고춧가루 물고문은 기본이었습니다. 주사기로 항일지사의 피를 뽑아 다시 항일지사의 얼굴에 뿌린 착혈 고문를 자행한 자도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배후를 대라며 15살 어린 중학생의 혀를 펜치로 잡아 빼 죽이기도 했습니다.2) 친일 경찰의 고문 기술은 해방 후 1990년대까지 이어져 ‘수사=고문’으로 인식됐습니다. 특히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의 남영동 칠성판 물고문과 관절 뽑기 등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이근안은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한겨레] 아직 한국은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 [.txt]

2026년 3월 9일 155

‘위대한 지도자’와 ‘잔인한 독재자’ 사이를 오가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신간 ‘박정희 이데올로기’는 이같은 찬반의 구도를 반복하기보다, 박정희라는 인물을 떠받치고 있는 사상과 체계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과 한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공과’의 목록이 아니라, 박정희라는 이름을 가능하게 한 시대와 정치의 문법이다. 그런 점에서 5·16 쿠데타 이전까지 ‘박정희’를 빚어낸 그의 생애와 행적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소농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구미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6년 내내 뛰어난 성적으로 일본인 교사들의 신임을 받았고, 반장을 도맡으며 또래 위에 군림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뺨을 때려 그에게 맞지 않은 동급생이 드물었다고 한다. 총명함과 통솔력, 승부 근성, 권력의지는 이 시기부터 그를 수식하는 핵심 어휘들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했지만, ‘교련’이나 ‘체조’를 제외하면 성적이 바닥이었다. ‘나폴레옹 전기’와 히틀러의 ‘나의 투쟁’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을 탐독하며 군사적 영웅상에 매혹됐던 그에게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은 흥미를 주지 못했다. 졸업과 동시에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나, 결국 ‘군인’의 길을 택해 만주군관학교에 진학한다. 나이와 혼인 경력으로 원칙적으로 입교가 어려웠지만, ‘혈서’를 써서 지원함으로써 합격했다. 만주군관학교 2년과 일본 육군사관학교 2년에 걸친 교육은 박정희의 개인적 성향은 물론 이후 ‘박정희 체제’로 불릴 통치 방식의 원형을 형성했다. 일본 극우 파시즘과 군국주의,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 규율

[연합뉴스] 감사원 “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제외는 잘못”

2026년 3월 9일 122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면서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한 3명의 의사(義士) 가운데 조문기 선생을 제외한 것은 잘못이라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6일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보훈부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관련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부민관 폭파 의거는 1945년 7월 친일단체 ‘대의당’이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자 독립투사들이 폭탄을 터뜨린 사건이다. 보훈처는 2022년 10월 ‘2023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당시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한 3인방 중 유만수·강윤국 선생만 7월의 독립운동가에 포함했다. 보훈처는 감사 과정에서 조 선생의 광복 이후 수형 사실이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어 선정에서 제외한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이에 감사원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계획의 검증 기준은 친일 행적, 북한 정권 활동 사항 등”이라며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수형 사실을 이유로 조 선생을 선정 위원회에 상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업무 처리이고, (나아가) 이를 이유로 위원회에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보훈부에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고 조 선생을 이달의 독립운동가 후보로 재상정해 심의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hapyry@yna.co.kr <2026-03-01> 연합뉴스 ☞기사원문: 감사원 “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제외는 잘못” ※관련기사 ☞KBS 뉴스: 감사원 “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제외는 잘못”

[한겨레21] 6·10만세운동 100주년, 반공 덧칠 지워야 할 때

2026년 3월 5일 240

박정희 체제 ‘민족주의 계열 운동’으로 왜곡… 사회주의 비밀결사, 위기 속 끝까지 주도 2026년은 6·10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26년 6월 발발한 항일 시위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를 기리는 사회적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100주년이라는 전환점을 맞아 이 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정체성을 고양하는 데 긍정적인 기여를 하리라 생각한다. 해명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 6·10만세운동의 주체와 성격 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역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은 말끔히 해결되기는커녕 오늘날에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논란의 불길은 연구자 이현희가 지폈다. 그가 연구논문을 발표한 때는 반공을 국시로 표방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시기였다. 이현희는 사회주의 비밀결사가 6·10만세운동을 이끌었다는 기존 통설에 맞서 반공주의 역사인식을 제기했다. 6·10만세운동의 주도체와 전개 과정이 사회주의 계통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견해는 잘못이라고 명시했다. 그 대신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는 순수한 민족적 학생층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1 이 견해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간행하는 관변 역사서와 그에 호응하는 학자들에 의해 이 견해가 확산됐다. 나아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까지 올랐다. 이 견해는 오랜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어느덧 통설의 지위를 점하게 됐다. 이현희의 의도적 오독과 과대평가 이현희는 사회주의 계열이 6·10만세운동을 계획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의 계획은 실천에 옮겨지기 전에 경찰에게 발각됐고, 6월7일을 고비로 해서 붕괴됐다고 해석했다. 그러면 6월10일에 발발한 만세시위운동은 누가 주도했는가. 사회주의와는

[경향신문] “교활한 왜적 두들겨 팰 수 있을 것”···일제 본토 침공 불사한 항일 비밀결사단 총재의 편지

2026년 3월 4일 160

3·1절 앞두고 ‘조선민족대동단’ 기획전시 김가진이 무정부장 박용만에 보낸 서신 첫 공개 자필 대동단선언 원본선 “혈전을 불사코자” 비폭력 저항 방점 ‘3·1독립선언’과 다른결 “한 번 북을 울림에 교활한 왜적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무기를 두들겨 팰 수가 있을 것이고…세 번 북을 울림에 동경만(東京灣·도쿄만)에서 말에게 물을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항일 비밀결사 단체 조선민족대동단 총재인 김가진(1846~1922)이 대동단의 무정부장이던 박용만(1881~1928)에게 1920년 3월12일자로 보낸 편지의 일부다. 1919년 결성된 대동단은 그해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 시도했고, 제2의 독립선언서로 불리는 ‘대동단 선언’을 같은 해 11월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제 본토 침공을 꿈꾸기도 했다.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지난달 27일 개막한 전시 ‘조선민족대동단-혈전을 불사코자’는 대동단의 일제 본토 침공 기도가 드러난 김가진의 편지를 사상 처음 공개하고 있다. 이 편지는 김가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보관하던 유묵 중에 있었는데, 그 내용이 최근에 탈초(흘려 쓴 글씨를 읽기 쉽게 바꿈)하던 과정에서 처음 확인됐다. 김가진은 69세의 고령으로 대동단의 총재가 됐으며 이후 임정에서 고문으로 활약했다. 박용만은 임정의 외무총장을 지내며 독립군을 통한 무장 투쟁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독립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두 사람을 오간 편지는 단순한 희망 사항을 품고만 있지 않았다. 김가진은 “중국과 친교를 맺고, 미국과 연합하며 과격파와 협약을 체결하고, 이어서 러시아 영토 중에 가장 가깝고 적합한 곳을 우리 군사상 중심근거지로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부천시장 출마예정자들과 정책협약식

2026년 3월 4일 221

부천시 항일운동기념사업 추진 본격화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이하 부천지부)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앞서 부천의 항일독립운동을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제시해 부천시장에 출마하는 사람들과 2월 28일과 3월 1일 이틀에 걸쳐 정책협약식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부천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은 총 3명으로 부천지부는 각 캠프 관계자들과 협의를 통해 일정을 조율했다. 정책협약식 내용에는 ▲부천 중앙공원 내 ‘부천항일운동기념탑’ 건립 ▲부천지역 3대 항일운동 및 기타 항일운동에 대한 연구용역 추진과 안내판 설치 ▲부천시 관내 항일유적에 로고빔 설치 ▲원미산 춘덕약수터 내 ‘가짜 의병장 박진 전승비’ 철거 등이 포함됐다. 한병환 예비후보와는 2월 28일(토) 오전 10시 30분 진행됐다. 한 예비후보 “부천지부가 제안한 정책을 이번 선거에 적극 반영해 부천의 자랑스런 항일운동을 시민들에게 알리며, 동시에 노동과 민주화운동을 정리해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관을 만들겠다”라고 했다. 서진웅 예비후보와는 3월 1일(일) 오후 3시에 진행했다. 협약식에 앞서 부천지부 운영위원들과 서진웅 예비후보 캠프사람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서 예비후보는 “이번 부천지부가 제안한 정책을 시장이 되면 적극 펼쳐 부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역사를 시민들이 더 많이 알고 문화예술화해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광민 도의원은 현직에 있어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아 ‘예비후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민주당 경기도당에는 등록해 부천시장 경선에는 참여한다고 했다. 김 도의원은 “부천지부가 제안한 정책에 모두 동의하며, 시장이 되면 시정에 적극 반영해 완성될 수 있도록

[연합뉴스] “죽으면 군번 대신 써라”…백범이 건넨 ‘광복군 반지’ 첫 공개

2026년 3월 4일 765

‘독수리 작전’ 앞두고 백범이 사비로 맞춰…’결사항전’ 증표 故 송창석 지사 아들 민족문제연구소에 위탁…진위 검증 필요성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직전, 국내 진입 작전을 앞둔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사비를 털어 나눠줬다는 반지가 3·1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됐다. 광복군 대원이었던 고(故) 송창석 독립지사의 아들 송진원(60)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아버지의 유품인 ‘광복군 반지’를 연구소에 대여 형식으로 맡긴다고 밝혔다. 1940년대 중국군 소속으로 일제와 싸우던 송 지사는 1945년 광복군에 합류해 암호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리는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았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당시 임시정부가 미국 첩보부대와 공동 추진한 비밀 연합 작전이었다. 공개된 반지는 무궁화와 별 문양이 특징이다. 번개 표식은 송 지사가 속했던 무전반을 뜻한다. 흔히 알려진 광복군 제1∼4지대 문양과는 다르지만, 1945년 임시정부가 낸 휘장 도안의 장교 표식과 유사하다. 안쪽엔 제품 번호와 ‘한광무전반'(한국광복군무전훈련반)이라는 한문 표식이 남아 있다. 송 지사가 별세(1990년·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전 자필로 남긴 문서에는 이 반지에 얽힌 비장한 사연이 담겼다. 1945년 8월께 충칭에서 산시성 시안으로 넘어온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무전반의 훈련을 시찰하던 중 ‘조국 땅으로 죽으러 가는 이들이니 기념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선임이었던 이재현 지사가 반지를 제안하자, 김구 선생과 지청천 총사령관 등 수뇌부가 사비를 털어 44명분의 ‘훈련 수료 반지’를 마련했다고 기록돼 있다. 송씨는

[한겨레] 일제, 지름 2m ‘왕의 소나무’ 대량학살…백두대간 원시림 초토화 사진 공개

2026년 3월 4일 171

녹색연합, 일제 고성군 원시림 벌목 보고서 발굴 도쿄제대 연구 빙자해 매년 2만본 일본 반출 일제가 연구·실습을 빙자해 한국 백두대간의 원시림을 대량 벌목했다는 일제 스스로의 기록이 발굴됐다. 이 보고서는 왜 한국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없는지, 뉴라이트(친일 우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왜 허구인지를 잘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27일 녹색연합은 도쿄제국대학(이하 도쿄제대) 농학부 부속 연습림(연구·실습용 숲)에서 펴낸 ‘조선 강원도 연습림 적송’이라는 보고서를 발굴해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1931년 3월 도쿄제대에서 펴낸 것으로 지도와 사진 4장, 글을 포함해 모두 16쪽으로 이뤄져 있다. 작성 책임자(인쇄인)는 미야자키 겐조 도쿄제대 농학부 교수다. 이 책을 입수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일본 교원 노조의 도움을 받아 도쿄대의 간행물 관리 기관에서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가 다룬 강원도 연습림은 백두대간 금강산과 설악산 중간 지대인 고성군 수동면 사천리 오소동·고진동 일대이며, 동해안으로 흐르는 남강 주변이다. 현재는 민간인 통제선 북쪽 지역과 비무장지대 일대이며, 백두대간 보호구역과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천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먼저 이 보고서는 이 일대에서 벌목한 나무가 적송, 곧 금강소나무이며, 조선 때 왕실에서 보호한 ‘황장목’(누런 창자 나무)이라고 설명했다. 나무속이 누런 색을 띤다고 붙은 이름이다. 황장목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황장목이 자라는 곳이 바로 고성군 수동면 일대였다. 조선 왕실에서 쓸 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특별히 보호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도쿄제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