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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의 두 얼굴]①’유신’을 외치다 죽은 두 정객,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

2017년 10월 26일 2675

소작농의 아들에서 일국의 지도자로  ‘유신’의 명암을 극명히 보여줬던 공통점 시대를 초월해 여러모로 닮았던 두 정객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매해 10월26일은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과 1979년, 10.26 사태가 마주하는 날이다. 70년의 시간적 간극을 두고 이날 죽은 한국과 일본의 두 거물급 정객,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토 히로부미는 ‘유신’을 슬로건으로 했던 점과 함께 여러부분에서 공통점이 발견되는 역사 속 인물들이다. 그 공통분모의 기반에는 동아시아의 전통 사회체제의 붕괴와 서구화의 과도기를 겪은 ‘근대화 1세대’들의 인생역정이 들어있다. 두 인물의 공통분모는 둘다 소작농의 아들에서 출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 야마구치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리스케(利助)와 일제 치하 경상도 구미에서 역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마사오(正雄). 이 두 사람의 유년시절엔 장차 이 둘이 일국의 역사를 뒤바꿀 거물급 정치인이 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오늘날에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식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건립한 교육기관이었던 송하촌숙(松下村塾)에 들어갔던 제자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제자라고 할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신분이 워낙 낮았던 탓에 그는 교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 서서 수업을 들었다고 전해지며 쇼인의 제자들의 하인 일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한 수준이었다. 요시다 쇼인조차 그에게 아무 능력이 없는 인물이라 평했을 정도였지만 그가 여기서 만든 인맥은 훗날 그가 출세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됐다. 상당한 굴욕을 당하면서도 굳이 송하촌숙에 기거했던 것은 그의 강한 출세욕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세욕에서는 박 전

[보도자료] 제11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2017년 10월 23일 3006

[보도자료] [초청장] 제11회 ‘임종국상’ 수상자 선정 학술부문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사회부문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한 주관단체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1회째이다.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6 사회·언론 부문 6 등 12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9월 26일 열린 심사위원회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를, 사회부문에는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를 제11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조재곤 교수는, 『한국 근대사회와 보부상』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민영환 :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 등 학계의 주목을 받은 다수의 저서를 내놓은 한국근대사 중견 연구자이다. 그는 학술연구뿐만

[보도자료] 야스쿠니 문제의 UN인권기구 제기를 위한 국제회의 취재 협조 요청(10.20)

2017년 10월 20일 1847

[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일본 정부의 일부 관료와 정치인들은 세계 여론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매년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입은 아시아의 시민들에게 가해를 되풀이하는 것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침략신사 야스쿠니는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를 미화하는 야스쿠니사관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역사 갈등을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전쟁시설이며, 평화헌법의 개정을 시도하고 있는 일본의 극우세력은 야스쿠니의 역할과 위상을 점점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3.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와 국회 강창일 의원은 오는 20일(금) 오후 1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국제인권의 시점에서 야스쿠니를 보다Ⅱ’라는 주제로 야스쿠니 문제의 UN인권기구 제소를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합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회의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 변호사, 활동가 등 전문가들이 야스쿠니문제를 한일 양국의 역사갈등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국제 인권의 시점에서 조명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야스쿠니문제의 해결을 UN 인권기구에 호소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4. 많은 관심과 함께 취재를 부탁드립니다(첨부: 웹자보, 자료집). 끝

민족사랑 2017년 10월호

2017년 10월 19일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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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

2017년 10월 17일 1698

3화 수리온부터 사드까지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군의 적폐청산과 개혁방향 진행: 김미화  출연: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이경주ㅣ종합편집: 문석진ㅣ타이틀: 이정온ㅣ카메라: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ㅣ메이크업 : 강도겸ㅣ기술: 박성영 ㅣ연출: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 한겨레TV <2017.10.17> ☞기사원문: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 (안보) ※ 관련영상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 (경찰)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 (검찰과 국정원) <2017.9.26>

국가 인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1명이나 국립묘지 안장

2017년 10월 20일 2817

김해영 의원, 국정감사 자료 분석… 김백일, 이응준, 이종찬 등 많아 국가에서 인정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무려 11명이나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부산연제)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2005~2009년)가 공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11명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총 7명이 안장되어 있다. 1966년 안장된 김백일은 만주군 상위와 만주군 한인특설부대 부대장을 지낸 사람이지만 6·25당시 제1군단장으로 참전해 무공훈장 태극장을 받은 장관급장교 출신이다. 1985년 안장된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출신으로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으나 6·25 당시 수원지구 방위 사령관으로 참전, 체신부 장관까지 지냈다. 또 이종찬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금치훈장까지 수여받았지만, 6·25 당시 육군 수도경비 사령관으로 참전,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냈으며, 1983년에 안장됐다. 만주군 상위와 간도특설대 근무했던 김홍준은 ‘순직군경’ 자격으로 2015년, 연희전문학교 교수 등을 지낸 백낙준은 문교부 장관을 지낸 국가사회공헌 자격으로 1985년에 안장됐다.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소좌를 지낸 신응균은 1996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일본군 중좌를 지낸 신태영은 1974년에 각각 국립묘지에 묻혔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총 4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모두 장관급 장교 출신이다. 김석범은 만주군 상위 출신으로 만주국 훈6위 주국장을 수여받았고 1998년 안장됐다. 백홍석은 경성 육군병사부 과장 출신으로 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2003년에 안장됐으며, 송석하는 간도특설대 중대장 출신으로 만주국 훈5등 경운장을 수여받았고 1999년 안장됐다. 신현준은 간도특설대 창설기간

“[친일인명사전] 공공도서관에 비치해야”

2017년 10월 20일 2955

임헌영 소장은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를 맡은 이래 친일 청산을 위한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1970년대 대표적 문학평론가인 그는 간첩으로 몰리며 두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관련기사 – 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 보수세력이 친일파 되살리는 까닭은? –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친일 행적’이라니 – 그에게 기독교는 ‘포장지’더군 지난 9월17일 대검찰청 공안부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태영호 납북 사건’ 등 6건의 조작 사건 피해자 18명에 대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먼저 잘못된 수사와 기소를 인정해 ‘셀프 재심’ 청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재심 권고 대상으로 밝힌 ‘문인간첩단 사건’ 등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의 추가 ‘셀프 재심 청구’ 대상자 중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대표적 문학평론가인 그는 문인간첩단 사건 외에도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두 번째 옥고를 치렀다. 두 사건 모두 진화위 조사 결과 고문에 의한 조작임이 드러난 바 있다. 임헌영 소장은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를 맡은 이래 친일 청산을 위한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06년과 2009년 각각 <친일인명사전>(전 3권)을 펴냈고, 2012년에는 현대사 시리즈 <백년 전쟁>이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임헌영 소장을 만났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1970년대 재일동포

[논평] 국정교과서 적폐청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관건이다

2017년 10월 13일 1928

[논평] [다운로드] 국정교과서 적폐청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관건이다 1. 엊그제(10.11)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가, 박근혜정권의 교육부가 실시한 국정화 전환 의견수렴 과정에서, 행정예고 마지막 날인 2015년 11월 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의견서가 부당한 방법으로 대량 접수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어 <보도자료>를 통해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추진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등이 의견수렴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수사 의뢰를 하도록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되었던 국정교과서 찬성을 위한 ‘차떼기 여론 조작’이 사실로 드러난 데 따른 일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2. 당시 ‘차떼기 제출’ 논란이 되었던 일괄 출력물 형태의 의견서 제출 박스에는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올역사)의 스티커가 부착되어 배달되었는데, 문제의 박스들을 보낸 올역사라는 단체는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가 구성을 주도했다. 양 교수는 2015년 11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모임’ 102인 성명에 이름을 올리고, 발표회견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KBS 심야토론에 ‘국정화 지지 패널’로 나와 “검정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국정교과서 찬성 움직임을 주도했다. 양 교수는 국정화 찬성 의견 서명지 인쇄물 주문을 최종 ‘오더’한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언론은 “양 교수가 인쇄 의뢰를 오전에 맡기고 저녁에 출력물을 실어갈 때까지 하루 종일 지켜봤으며, 계산은 신용카드로 몇 번 나눠서 했다”고 보도했다. 어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찬성의견 103박스를 출력하고 교육부로 옮긴 ‘올바른 역사교과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무엇이 담겼나

2017년 9월 28일 3658

1916년 7월 일제는 조선 문화유산의 조사와 보존을 심의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조사방법의 유형은 일반조사·특별조사·임시조사 등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고구려·백제·신라·한사군·임나와 관련된 지역이 집중 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는 고적조사위원회의 실제 목적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밝히기보다는 식민사학의 논리를 찾는 데 있었음을 방증한다. 1922년 12월 등장한 조선사편찬위원회와 이를 이어받은 조선사편수회가 철저하게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서를 발간하는 데 몰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1939년 2월에는 조선인의 만주 이민을 국책사업으로 간주하여 ‘이민위원회’를 설치했다. 만주 개척은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한 오랜 계획의 일부분이었고, 일본인의 이민이 사실상 실패하자 조선인이 적극 동원됐다. 그 해 8월 ‘개척민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한 위원회는 △농업·공업·광업 분야의 실제 기술자 파견 △청년의용대를 늘려 개척민 지도자로 활용 △강원도와 함경도의 화전민을 만주 삼림지대로 파견 등을 의결했다. 이처럼 조선인의 만주로의 이주는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통제되었다. 위의 두 사례는 일본이 조선 식민지배 과정에서 위원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통감부·조선총독부 편>은 그동안 실체조차 파악되지 않았던 조선총독부 산하의 140여개의 위원회에 관한 정보를 모두 담았다. 위원회는 식민지 조선이 당면한 현안에 대한 심의·조사·자문·징계·조정의 기능을 갖추고, 긴급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위원회가 한시적으로 운영됐음에도 그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식민지 조선에서 모든 사안이 총독 1인의 제왕적 리더십에 따라 처리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는 위원회를 통해 많은 부분이 결정된 측면도 있다”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전쟁 막는 일 아닙니까?”

2017년 10월 5일 2359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뉴라이트 진영에서 이승만 국부론을 내세우며 48년 건국설을 밀어붙일 때 역사학자 조한성은 책『한국의 레지스탕스』를 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비밀결사 단원들이 목숨과 맞바꾸면서도 소망했던 새로운 조국 꿈을 추적했다. 그들의 투쟁은 때론 성공하고 많은 경우 패배했지만 그들이 흘린 선혈에서 대한민국이 비롯되었다고 조한성은 말한다. 이후 그는 『해방 후 3년』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해방 후 역사가 미소 양국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 민족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분단도, 전쟁도 모두 외세 탓인가?” 역사학자 조한성을 만났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이유는 그의 저술이 우리 사회에 던졌던, 그 참신한 질문 때문이다. 43세의 이 역사학자는 늘 치밀한 사료분석으로 새로운 관점과 상상을 선사했다. 인터뷰는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이루어졌다. 현대 사학의 원로이신 서중석 선생님께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현대사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한성: (웃음) 이제 서중석 선생님 그만 팔아먹어야 하는데…. 대학 1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당시 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