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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아주경제] 매달 180만원 받는 대한민국학술원회원, 김활란 등 초대멤버…태생은 ‘친일’
서울대 출신 78.6%…국내 최고 권위있는 학술원, 다양성 부족 지적 1954년 설립돼 학술발전에 공적이 있는 인문·사회·과학 학자가 회원이 되는 대한민국학술원 역대 회원 15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7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학술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 등 역대 회원 중 15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다. 자료에 따르면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회원 15명은 김 전 총장을 비롯해 백낙준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 유진오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이병도, 고승제, 고황경, 김동화, 김두헌, 김준보, 남흥우, 박일경, 신기석, 신석호, 이인기, 이항녕이다. 이 가운데 고승제, 김두헌, 신기석, 신석호, 유진오, 이병도 6명은 초대 멤버다. 학술원 회원이 되면 임기가 평생 보장되며 매달 180만원 회원 수당을 받고, 회의참석·학술연구지원비를 받는다. 박 의원은 “사실상 (권위 있는) 학술원이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로 시작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2004년 학술원에서 간행한 역대 회원 행적 내용을 통해 이들의 친일 행위를 옹호하거나 은폐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전 총장의 경우 대표적인 여성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꼽히지만 친일행적을 마음대로 폄론해선 안 된다며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 전 총장 역시 1930년대 중반부터 1945년까지 친일 행적이 있지만 해당 내용을 간행본에 기술하지 않았다. 학술원 친일논란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출신이 회원 145명 중 114명을 차지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출신 회원은 78.6%이며, 연세대 출신 7명(4.8%),
[SBS] 공덕비로 포장 못 하도록..친일파 ‘죄상비’ 세운다
일제 때 친일파 상당수는 마치 애국을 한 것처럼 포장돼 공덕비가 세워진 경우가 많은데요, 공주시가 친일파의 공덕비 앞에 이들의 실체를 담은 죄상비를 차례로 설치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결코 가려질 수 없습니다. 강진원 기자입니다.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박제순은 구한말 공주 우금치에서 2만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학살한 인물. 이후 외부대신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했고 내각의 수장에 올라 일본의 귀족작위까지 받은 대표적인 친일파입니다. 공주 이인면사무소 앞에는 박제순의 공을 기리는 거사비가 125년 지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동학농민을 비적으로 표현했는데 박제순이 비적을 소탕하고 백성을 구하니 편안해졌다는 등의 낯뜨거운 공적이 4련시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해준/공주대 사학과 명예교수 :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막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충청 관찰사였던 박제순입니다. 그 사람이 친일파의 대표인 을사오적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공적만 표현했기 때문에….] 세계유산 공산성 앞에도 충청관찰사였던 박중양, 김관현의 공적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잠업을 키웠다는 내용인데 실상은 모두 중추원 참의로서 조선인의 징병을 독려하는 등 친일 행각을 벌였습니다. 공주시가 친일파들의 공적비 앞에 죄상비를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반민족적 행위를 낱낱이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박제순 비석 앞에는 그가 일본군과 함께 동학군 진압에 앞장섰고 을사오적으로 지탄받고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박중양과 김관현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탄받는다는 사실을 역시 비석 앞에 적시했습니다. 애국으로 포장된 일방적인 표현을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 교육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강석광/공주시 문화재과장 : 친일 행적이 명확한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개혁의 대상이 된 한국 판사 검사 권력지향. 그들만의 리그. 역사적으로 친일, 군사정권, 재벌의 이해에 영합한 행태 이런 한국 판검사의 뿌리는 일제 식민지부터 찾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뿌리는 미군정 시기에 있다. 일제에 협력했던 판검사들이 그대로 살아남았고, 더구나 미군정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법률가들이 양산되었다. [팟빵-바로듣기] [다운로드]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오마이뉴스] 여주시, 친일논란 시가 교체… 새 곡 ‘꿈꾸는 여주’
제8회 여주시민의 날 시상식서 공표, ‘이등병의 편지’ 김현성 작곡가 제작 경기 여주시가 새로 개정된 시가(市歌) ‘꿈꾸는 여주’를 공표했다. 앞서 여주시는 기존 ‘여주의 노래’ 작곡가 김동진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로 인해 작년 2월 말부터 노래 사용을 중단하고 시가(市歌) 개정사업을 추진해왔다. 새로 개정된 여주시가(市歌)는 지난 3월 발표한 전국민 가사 공모전 최우수작 ‘꿈꾸는 여주'(김응혜 작사)에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가수 김현성씨가 곡을 붙였다. 가수겸 작곡가인 김현성씨는 처가의 고향인 여주시 흥천면에 20년 전에 정착해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11일 제48회 여주시의회 임시회에서 ‘여주시 상징물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이 최종 의결돼 지난 달 23일 제8회 여주시민의 날 시상식에서 새로운 여주시 시가(市歌) ‘꿈꾸는 여주’가 처음 선을 보였다. 임영석 시민소통담당관은 “새로운 시가(市歌)는 시민 누구나 쉽고 즐겁게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서 “앞으로 ‘꿈꾸는 여주’가 여주시민의 화합과 단결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노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꿈꾸는 여주’는 여주시청 홈페이지(https://www.yeoju.go.kr) 여주시 소개 코너에서 악보와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또 여주시 공식 유튜브에도 관련 동영상들이 소개돼있다. <2020-10-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여주시, 친일논란 시가 교체… 새 곡 ‘꿈꾸는 여주’ ※관련기사 ☞뉴스1: 여주시, 친일 논란 대체 새 시가(市歌) ‘꿈꾸는 여주’ 공표 ☞연합뉴스: 여주시, 친일논란 딛고 시가 ‘꿈꾸는 여주’로 교체 ☞파이넨셜뉴스: 여주시, 새로운 노래 ‘꿈꾸는 여주’ 공표
[강북구] 로저 셰퍼드(Roger Shepherd)의 온라인 남북 백두대간 답사기
2006년, 2007년에 한국의 백두대간 지역을 시작으로, 2011년, 2012년에 북한지역 백두대간을 종주한 최초의 외국인 로져 셰퍼드(Roger Shepherd)!!! 통일 염원이 담긴, 그의 “남북한 백두대간” 답사기를 <강북구 온라인 인문학 강좌>에서 만나 보세요!
[KBS] [취재후] 친일작가 춘향 영정 60년 만에 철거…마지막까지 ‘쉬쉬’
친일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이 봉안된 지 60년 만에 철거됐습니다. 이달 초순까지만 해도 철거를 미루기로 하면서 남원시 안팎은 소란스러웠는데요. 광한루원 곳곳에 철거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현수막이 내걸렸고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가 잇따랐습니다. 철거냐 아니냐를 두고 오락가락하던 남원시는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당연한 시대적 과업의 첫걸음을 내딛으면서도 끝까지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 천재 어진화사에서 친일 부역자로..’이당 김은호’ 반세기 넘게 광한루원 춘향 사당에 봉안돼 있던 춘향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지난 1961년 그린 작품입니다. 원본은 남원 향토박물관에 보관되어있고, 복사본을 춘향 사당에 걸어두었는데요. 이당 김은호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그린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사로 잘 알려졌습니다. 조선 말부터 근현대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면서 잠시 독립운동을 했던 적도 있지만, 이내 변절했습니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옹호하고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한 그림을 그려 총독부에 헌납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지난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 가운데 미술분야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2009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에도 포함됐습니다. ■ 남원시, 8월 철거 돌연 연기..의회 때문? 춘향 영정교체를 주도하고 있는 남원정신연구원 강경식 대표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남원시가 이당 김은호가 그린 춘향 영정을 철거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고 증언하는데요. 하지만 철거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급기야 철거 시점을 시민 여론조사를 거친 뒤로 미루겠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남원시가 의회에
[부울경뉴스] ≪부마항쟁의 기억, 41년 展≫ 개최
― 정성길 역사화 전시회 ― 올해는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 제41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사단법인 10 ․ 16 부마항쟁연구소> 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10․16 부마항쟁연구소>와 <금정문회회관>이 공동주최하는 ≪부마항쟁의 기억, 41년 展 ― 정성길 역사화 전시회≫가 열린다. 부마항쟁은 대한민국을 민주화의 길로 이끈 위대한 항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산시민들은 부마항쟁을 잘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마항쟁의 역사를 올바로 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역사화 전시회>를 위하여 지난 2년여 동안 오직 화폭에 매달려 있었던 정성길 화백의 말이다. 정성길 화백은 1941년 진주 출생으로 10.16부마항쟁연구소 고문,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회 고문을 맡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고 주관한 사단법인 10․16 부마항쟁연구소 정광민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전한다. 부마항쟁 41주년을 맞이하여 정성길 화백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어 참으로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정성길 화백님은 누구보다도 부마항쟁의 의미를 귀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산사람들이 정작 부마항쟁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정 화백님은 부마항쟁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난 2년간 힘든 작업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에 걸맞은 관심과 열정, 그리고 인고의 노력을 요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전시회는 정 화백님의 그러한 열정과 노력의 산물입니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은 그 하나하나가 부마항쟁의 역사적인 장면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오늘의 이 그림들이 잊혀진 부마항쟁의 역사를 되살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경기일보]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경기도 출신 친일의 군상(群像)
군인부터 예술가ㆍ법조인ㆍ공무원까지… 낯 뜨거운 ‘친일 행적’ 마지막 무관생도이자 日 육사 동기 홍사익과 안종인 나라 배반하고 호의호식한 고위공무원의 전형 김종한 작곡가 홍난파·예술가 윤효중·조선총독부 판사 이명섭 총후봉공 위한 정신운동 앞장 선 사학계 거두 이병도 독립군 맹장 지청천·이종혁과 달리 친일의 길 앞장 해방 후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개념 규정에 어려움 낳아 후손들 밝은 미래 위해 역사의 뼈아픈 반성·성찰 있어야 ■ 군인은 국가의 정체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본인 또는 아들의 ‘군복무’ 문제로 곤혹을 치룬 사례를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다. 그만큼 분단된 대한민국에서 군과 관련된 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이자 중요한 사안이다. 군인은 그 국가의 정체(正體)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대한제국을 침략하면서 친일적 군인을 만들어 내는 데 심열을 기울였다. 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이면서 일본이 한국적(韓國籍) 군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 경기도 안성 출신의 홍사익이다. 그는 1969년 일본이 펴낸 일본 육군사관학교라는 책의 연표에도 영친왕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왕족과 함께 실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그의 실력이었다. 몇 해전 소설가 이원규 작가가 저술한 [마지막 무관생도들]이라는 책을 보면서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는 필자는 부끄러움을 크게 느꼈다. 무엇보다도 이원규 작가의 자료 접근과 소설가로서의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된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소설이 아닌 지청천, 이응준, 홍사익에 대한 평전이었다. 그러면 왜 홍사익은 지청천처럼 일본군을 탈출해서 독립군에 투신하지 못했을까. 개인의 영달과 조국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결합된 천재
[오마이뉴스] “친일파가 제일 다루기 어려웠다… 이렇게라도 기억하는 게 청산”
[인터뷰] 100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다룬 <35년> 완간한 박시백 화백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 <35년>을 지난 광복절에 완간한 쉰여섯의 화백은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독립운동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마도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런데 금방 죽었을 것이다. 나는 달리기도 잘 못하고 (독립군처럼) 총 쏘라고 하면 총도 제대로 못 쐈을 거다. 금세 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라고 밝힌 이유에 대해서 만큼은 “살벌했던 전두환 시대에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도 이미 투옥과 고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던 것”이라면서 “늘 광주항쟁에 대해 생각했고, 학살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것을 청년으로서 가만히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 움직이는 이유가 됐다”라고 밝혔다. 1984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대학시절 전두환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적인 일”로 만화를 그리게 됐다. 그것이 지금은 본인의 업이 돼 살고 있다. 박시백 화백의 이야기다. 그는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시사만화를 그리던 한겨레신문을 그만뒀다. “호흡이 긴 걸 하고 싶었다”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회사를 그만둔 그는 실록 국역CD를 구입해 공부했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권 ‘개국’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후로 10년 스무 번째 이야기 ‘망국’이 탄생하기까지 조선왕조에 천착해 살았다. 그사이 그의 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350만 부라는 실로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자연스레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주목됐다. 그는
[경기일보]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청산되지 못한 아픈 과거 친일파 (1)
경술국치 110년,…아직도 끝나지 않은…친일의 역사 日, 한일병합 토대 육군무관학교 폐교 계획…마지막 생도들 일본육군 중앙유년학교 편입 A급 전범 홍사익 등 대부분 친일의 길 걸어, 잊지 말아야 할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일 나라잃은 가슴 아픈 날, 국민들 무관심 여전… 아직도 법원에서는 친일 관련된 줄소송 대기 중국은 매년 국치일 9월18일 경적 울려 상기, 역사박물관 등 통해 아픈과거 기억하려 노력 ■기억과 기념투쟁 2017년 친일파 인명사전을 주도적으로 펴냈던 국내의 한 연구소에서 일제강점기 식민통치기구 사전을 출간하였다. 발간사에서 “기념해서는 안될 인물들을 기념하는 사회는 분명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기억투쟁은 곧 정의를 세우는 일이며”라고 하면서 이 사전이 나오게 된 배경을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정리했다. 이 사전에는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식민통치기관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수록됐다. 그 가운데 중추원 항목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바로 이완용을 비롯한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등 을사오적과 박영효, 송병준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들이다. 일제가 한국인을 보다 용이하게 통치하기 위해 키워 낸 친일파는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대한제국의 몰락과 친일파 육성책, 군인들 1894년 동학농민군을 상대로 잔학한 학살을 자행했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기 한반도의 물자와 인적자원을 강탈하고 훼손했다. 1910년 8월22일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의 위법체결로 대한제국은 마침내 그해 8월29일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른바 ‘경술국치’로 불린 치욕스러운 날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에게 경술국치는 생소한 역사적인 사건이자 용어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비롯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