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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TBC] 대구 근대사 주역? 알고 보니 ‘친일’

2022년 3월 4일 2108

[앵커] 제103주년 삼일절을 맞아 역사에 손 놓은 도시, 대구시의 역사인식 문제를 전해드립니다. 대구시가 운영하는 박물관과 근대골목 관련 투어에 친일 인사들이 버젓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구시는 이를 알고도 좀처럼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박철희 기잡니다. [기자] 대구시의 전신인 대구부가 1929년 도입했던 대구 부영버스, 대구 근대역사관의 대표 체험 공간입니다. 안내 음성 “말 그대로 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중교통이지예. 자, 이 버스를 타고 대구 근대거리를 보고싶다카면 지금 출발합니데이, 오라이“ 90여 년 전 거리 풍경이 펼쳐지자 관람객의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관람객 “와, (옛날) 대구 시내 볼 수가 있네” “옛날 이(대구근대역사관 인근) 동네” “아, 이거 괜찮네…” 버스가 금융거리로 진입하면서 나오는 안내 음성, 안내 음성 “경일은행은 1920년에 대구의 제일 큰 부자였던 장길상 형제들이 중심이 돼서 설립된 은행이라고 카네예. (경상)합동은행은 대구 출신의 유명한 부자인 정재학 씨가 대구의 한국인 경제인을 모아 설립한 대구은행의 후신입니다. 1920년대 금융공황, 일제의 은행 통합 때에도 경영권을 지켜냈다 아인교. 대단하지예?“ 하지만 이들의 친일 행적은 뚜렷합니다. (CG) 1918년 조선총독부 관보에 장길상과 정재학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일왕 즉위 기념관을 짓는데 건축비를 기부해 은배를 하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CG ) 정재학은 한일병합과 일왕 즉위에 기여한 공로로 수차례 일제의 포상을 받는가 하면 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와 총독부 산업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1919년 3.1운동 확산을 막기 위한 대구 자제단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CG)

[오마이뉴스] 드러난 52억 재산… 거물급 친일파의 화려한 이력

2022년 3월 3일 2186

[김종성의 히,스토리] 이완용 내각 법부대신 조중응… 광복회, 재산 국가귀속 신청 3·1절 하루 전날인 2월 28일, 광복회(회장 직무대행 허현)가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내용을 발표했다. 거물급 친일파의 재산을 찾아내 국가귀속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광복회는 28일 자 보도자료에서 “103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이완용 내각의 법무대신으로 임명되어 체포한 의병장과 을사오적 암살단을 종신형과 유배형으로 처벌하고, 이완용과 함께 ‘합병조약’을 주도한 대가로 자작 작위를 받은 조중응의 재산을 그의 후손들이 급조하여 만든 조씨 종중 명의로 교묘히 둔갑시켜 숨겨놓은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2필지(면적 116,500제곱미터, 공시가 52억 상당)를 찾아내어 법무부에 국가 귀속을 신청하였다”라고 발표했다. 허현 광복회장 직무대행은 “광복회의 친일재산 국가귀속 (신청) 성과는 민족정기와 역사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3·1 운동의 헌법 이념과 역사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마지막 1필지까지 환수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다짐했다. 조중응은 누구인가 보도자료 속의 ‘처벌’은 ‘주청’으로 수정돼야 한다. 현대식 표현으로는 ‘구형’이나 ‘건의’였다. 대한제국 시절의 일이었고, 처벌권은 고종 황제에게 있었다. 보도자료 속의 사건이 언급된 1907년 7월 3일 자 <고종실록>에는 법부대신 조중응이 한 일을 “주(奏)”라는 한자로 표기했다. 조중응이 한 일은 의병들을 처벌해달라고 고종에게 아뢰거나 주청하거나 상소하는 일이었다. 친일파가 주도권을 잡은 뒤였으므로 실질적 의미에서는 조중응 같은 친일파들이 의병들을 처벌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조중응은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친일 행적의 규모나 수준에서는 이완용에 별로 뒤지지 않는다.

[뉴스포스트] 일제가 철거한 돈의문과 옛 건물들

2022년 3월 9일 1014

돈의문 박물관 마을, 그리고 경교장과 홍난파 가옥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돈의문, 즉 서대문은 어디에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서대문 로터리,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앞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돈의문은 그곳이 아닌 정동사거리에 있었다. 서대문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이다. 정동사거리에 가도 그곳에 서대문이 자리했고 한양도성이 지나던 곳이라는 것을 알기는 어렵다. 네거리 한 견에 놓인 ‘돈의문 터’ 안내 팻말이 전부다. 일제강점기 전차 노선을 뚫고 주택지를 개발하기 위해 훼손한 돈의문과 인근의 한양도성은 작은 안내문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후에 들어선 건물들도 거의 헐리고 일부만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남아 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1396년에 처음 세운 돈의문은 1413년에 폐쇄되었다가 1422년에 다시 세워 새문(新門)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돈의문 안쪽 마을을 새문안골 혹은 새문안 동네로 불렀다. 지금도 인근에 새문안을 상호에 붙인 곳이 있다. 1915년 일제는 도로확장을 위해 돈의문을 철거했고 이후 한양도성도 훼철되며 집과 건물이 들어섰다. 새문안 일대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과외방 골목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주변에 명문 고등학교들과 유명 입시학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새문안 도로변에 사무용 빌딩이 들어서며 인근 골목의 주택들은 식당으로 변신하는 곳이 많아졌다. 2000년대 이후 서울 도심 개발 붐으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자리한 동네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철거 후 근린공원으로 바뀔 뻔했다. 하지만 2015년 서울시는 돈의문 인근 동네가 근현대 서울의 모습을

[한겨레] 방에서 마이크 켜고 “대한독립 만세”…메타버스에서 맞은 3·1절

2022년 3월 2일 1098

서대문형무소역사관·식민지역사박물관 메타버스로 103주년 3·1절 행사 가상공간 익숙한 어린이 참여 몰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1일 오전 11시 시민들이 한구절씩 독립선언문을 읽어내려가는 영상이 상영되고, 막바지에 “대한독립 만세!”라는 선창이 나오자 참석자 200여명이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여느 3·1절 행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오프라인이 아닌 메타버스 플랫폼 ‘모임(MOIM)’ 속 가상공간이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이날 디지털 가상공간인 메타버스를 통해 103주년 3·1절 행사 ‘메타버스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대강당으로 보이는 공간에 앉혀놓고 클래식 크로스오버 그룹 ‘레이어스 클래식’의 연주와 창작집단 ‘탈무드’의 3·1만세운동 재현 연극 등을 감상했다. 행사 중간중간 ‘박수하기’ 기능으로 박수를 보냈고, 두 차례 마이크를 켜고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었다. 간혹 연결이 불안정하고 영상 재생이 끊기는 일이 있었지만, 메타버스 행사를 중계하는 유튜브 댓글창에는 “다 같이 만세를 외치니 감동적이다”, “처음 진행하는 거라니 참을성을 가지고 독립투사를 추념하자”는 댓글이 올라왔다. 오미크론 확산세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 어렵다 보니 여러 단체들이 메타버스를 활용해 ‘코로나 3년 차 3·1절’을 기념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3개월 전부터 메타버스를 이용한 행사를 준비해왔다. 지난달 23일부터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재현한 맵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제페토 내 역사관 맵을 방문해보니 실제 역사관 외벽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똑같이 볼 수 있었다. 옥사 안으로 들어가니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연합뉴스] “3·1운동 103년 된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자들, 역사왜곡”

2022년 3월 2일 1262

시민단체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3·1절 민족자주대회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오늘은 3·1운동 103주년이 되는 날이지만 일본 식민지배 35년 동안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을 고통에 빠뜨렸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0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식민지 통치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습니다.” 전국민중행동,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양대 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일절을 맞아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3·1운동 103주년 기념 민족자주대회’를 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대회사에서 “지금 우리나라에 제2의, 제3의 이완용이 얼마나 많은가. 일본은 그들을 믿고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는 것”이라며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북이 함께 살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김영환 강제동원 공동행동 정책위원장은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탄압뿐만 아니라 조선인에 대한 강제동원 역사를 지우려 하고 있다”며 “유네스코 등재를 단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탄압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고, 세계 모든 사람이 사도광산 보존 가치를 인정할 때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어떠한 공격과 적대행위에도 굴하지 않고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세계 최장기 집회 수요시위를 지켜내고 일본 정부가 세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똑바로 지켜보고 행동할 것”이라며 “이것이 3.1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103년 전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한 그 정신은 지금 한미일 동맹에 반대하고 우리 민족끼리 손잡고

[더팩트]이재명 표 ‘일제 잔재 청산’ 경기 곳곳에서 시행

2022년 3월 2일 1204

수원 4곳 안성 2곳 하남 1곳에 안내판 설치 [더팩트ㅣ수원= 김경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경기도지사 재직 때 추진해온 ‘일제 잔재 청산’ 사업이 3·1운동 103주년을 앞두고 경기지역 기초단체 곳곳에서 시행됐다. 당초보다 작은 규모로 시행됐지만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1일 경기도에 따르면 2019년 10월 18일부터 2020년 4월 17일까지 민족문제연구소에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그 결과 경기지역 ▲친일인물 257명 ▲친일기념물 161개 ▲친일 인물이 만든 교가 89개 ▲일제 상징 모양의 교표 12개 선정했다. 이와 관련 경기도는 당초 친일 잔재와 관련한 동상, 기념비 등 상징물 30곳을 선정한 뒤 이곳에 안내문을 설치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자문위원회 자문를 거치면서 수원시 4곳, 안성시 2곳, 하남 1곳 등 모두 7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지난해 6월 수원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긴 ‘치산치수지비’, 수원 팔달산에 위치한 홍난파 노래비, 수원시청 앞 88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홍난파 동상, 옛 농촌진흥청 구내에 있는 ‘혼다 코스케’ 흉상 등 수원 4곳에 지난달 22일 역사를 바로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안성시 대덕면사무소에 있는 서상준 안성군수 ‘청덕불망비’와 최태현 안성군수 ‘청덕애민송덕비’ 등 2곳과 하남시 창우양수장에 있는 광주(하남) 방규환 광주수리조합장 기념비 1곳도 지난달 23일 안내판이 설치됐다. 한편 경기도는 올해 3~4월, 8~9월 등 두 차례 수요조사를 거쳐

[한국일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더라’ 후손들의 삶, 정말 그랬다

2022년 3월 1일 1361

<2022-03-01> 한국일보 ☞기사원문: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더라’ 후손들의 삶, 정말 그랬다

[오마이뉴스] “일본은 전쟁범죄 사죄하고 역사왜곡 중단하라”

2022년 3월 1일 1002

제103주년 3.1절 맞아 평화나비대전행동, 3.1평화행동 개최… 윤석열 후보 발언 비판 제103주년 3.1절을 맞아 일본의 식민지배 사죄배상을 촉구하고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대전시민 평화행동이 열렸다. 평화나비대전행동은 1일 오후 대전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일본 식민지배 사죄배상! 한반도 평화실현! 3.1평화행동’을 개최했다. 이날 평화행동에는 허태정 대전시장과 장종태 전 서구청장,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김율현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박규용 대전충남겨레하나 상임대표, 김창근 대전충청5.18유공자회장, 문성호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등 시민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 손에는 ‘일본은 전쟁범죄 인정하고 사과하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수요집회 지지한다’는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함께 들었다. 이날 행사는 한기복 전통타악그룹 굿 대표의 북공연으로 시작되어 민중의례와 규탄발언, 문화공연, 만세삼창, 거리행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첫 발언자로 나선 박규용 대전충남겨레하나 상임대표는 “일본은 한반도를 강제 침탈하고, 전쟁에 우리 민족을 강제 동원해 희생시켰으며,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에 있어서 범죄의 흔적을 지우고 미화시키기에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더 나아가 일본은 군함도에 강제징용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한 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 내용을 삭제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강제징용의 현장인 사도광산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이렇게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 정부에 대한 사죄반성을 요구하는

[오마이뉴스] 대전지역 항일독립운동 자료집 발간

2022년 3월 1일 1341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62명의 독립운동가 공적 정리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아래 대전지부)가 ‘대전지역 항일 독립운동자료집’을 펴냈다. 대전지부가 최근 펴낸 ‘대전지역 항일 독립운동자료집’은 대전지역독립운동가 사전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바탕으로 대전지역 62명의 독립운동가의 삶과 공적을 수록했다. 수록된 권용두 (1914-1992)는 대전중학교 3학년 때(1929년) 조선인학생단인 선우회에 가입, 일인 학생 구타로 인해 징계를 받고 1931년 비밀결사인 충남전위동맹에 가입했다. 이후 폭정 규탄과 농민 야학으로 인재를 양성하다 체포돼 징역 1년, 3년간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의 공적은 대전공립중학교 생도 명세부, 대전공립중학교 퇴학자 명부, 동아일보 기사 등을 통해 확인된다. 자료집은 또 ‘대전의 지명과 역사’, ‘대전지역 항일독립운동’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또 독립운동가들의 판결문 등 재판기록, 항일독립운동 장소 등을 정리해 함께 실었다. 3.1운동 관련 재판기록을 보면 대전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14명의 판결문이 수록돼 있다. 유성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한 이권수, 이상수 형제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유성시장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군중을 선동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게 하기로 모의하고, 여러 장의 한국기를 만들고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수백 명의 군중과 한국독립 만세를 부름으로써 치안을 방해했다’며 ‘ 조선형사령과 보안법 혐의를 적용 각 징역 1년 2월에 처한다’고 돼 있다. 자료집에는 ‘항일독립운동 왜곡 및 바로잡기’ 사례로 ‘대전독립투사 비문변조사건'(독립운동가 김용원 선생 비문에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이돈직’을 끼워 넣기 한 사건)과 ‘독립운동가 김태원 가짜 유족 등록사건’을 소개했다.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은 “대전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활약은 독립운동사에 한

[경인일보] 앳된 중학생까지 동원 근로보국대 합숙소 결국 철거… 일제 만행 증거 하나 사라져

2022년 3월 1일 1361

일제 강점기 인천 노동사 주목해야·(하) ‘노역을 하는 아이들은 밤마다 소리도 못 내고 울곤 했다…’. 1930년대 인천 지역 정미소·항만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3월1일자 4면 보도=정미소·항만 노동자들 ‘애환’ 고스란히… 깊이있는 연구 필요)을 경험한 일제는 노동자들을 더욱 거칠게 탄압했다. 그러던 중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군수물자 생산에 강제 동원하기에 이른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한 주택가에는 일제 강점기 군수업에 종사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묵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택들이 남아 있다. 일제가 조선의 병참 기지화를 위해 군수업 노동자들에게 공급한 ‘영단주택’이다. 일제 군수물자 생산 ‘병참기지화’ 동구, 공원 조성하며 역사속으로 1930년대 말부터 히타치(日立)제작소, 경성화학주식회사, 조선기계제작소 등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들이 인천에 터를 잡았다. 지금의 인천 부평구, 미추홀구, 동구 지역에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많은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다. 인천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장회숙 대표는 지난달 28일 답사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전쟁 물자를 만드는 데 동원돼 고통 속에서 극심한 착취를 당했다”고 말했다. 인천 동구 화수동에는 일제 강점기 군수업체인 조선기계제작소가 있었다. 1937년 인천 동구에 들어와 광산용 기계와 선박 기계를 주력으로 생산하던 조선기계제작소는 태평양전쟁 이후인 1943년 일본 육군의 잠수함 건조 명령에 따라 조선소로 전환됐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인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근로보국대’를 조직한다. 심지어 1938년 6월에는 어린 학생들까지 근로보국대에 편입시켰다. 당시 조선기계제작소에 동원된 근로보국대 합숙소는 2016년 동구청이 이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