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일제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제작 배포한 영문판 식민통치보고서, 애뉴얼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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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수비대 앞에서 양반유생에 대한 은사금 수여식이 이뤄지고 있는 광경.(애뉴얼리포트(1910~1911),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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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감부가 발행한 <한국의개혁과 진보에 관한 애뉴얼 리포트(1908~1909)>의속표지. 이 책자에는 한때 오스트리아 비인대학교도서관 소장자료였다는 스탬프가 남아 있다.(왼쪽) 새롭게 제호가 변경된 <조선의 행정에 관한 애뉴얼 리포트(1922~1923)>의표지.(오른쪽)

강원도 삼척군(三陟郡)에서 상치(尙齒)의 은전(恩典)에 욕(浴)한 최동욱(崔東昱) 외 37명의 양반유생(兩班儒生)은 성은(聖恩)의 우악(優渥)하심을 감격하여 성덕(聖德)을 만세에 전하기로 거월(去月) 3일 천장가절(天長佳節)에 복(卜)하여 동군(同郡) 읍내 서단 죽서루(竹西樓)의 측(側)에 고(高) 8척(尺) 5촌(寸), 폭(幅) 2척 4촌, 후(厚) 8촌의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其) 기석(基石)은 융기한 천연의 대반석(大盤石)을 이용하였다는데, 전면에는 ‘天長地久’ 후면에는 ‘明治 四十四年 十一月 三日 立 天皇在上 葛人西蜀 命我總督 召化南國 恤窮褒節 耆老兩班 勸業省稅 臣民一體 江原道 三陟郡 兩班耆老 崔東昱 金炯國 外 三十六人’이라 서(書)하고, 건립위치는 풍광이 명미(明媚)하고 조망이 절가(絶佳)한 강원도 팔경(八景) 중 유명한 처(處)이라더라.

이것은 <매일신보>1911년12월6일자에수록된「천장지구(天長地久)」제하의기사이다.여기에는 삼척에 사는 ‘얼빠진’ 양반유생들이 천황의 은사금 하사에 감읍한 나머지 그 공덕을 길이 기리고자 삼척 죽서루 옆에 ‘천장지구’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는 소식을 담고 있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한 회유책의 하나로 친일귀족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은사금을 광범위하게 살포하였다. 이때 양반유생의 기로(耆老)로서 은사금을 받은 자가 12,115명이오, 효자절부(孝子節婦)로서 포상은사금의 대상자가 3,209명이며,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으로서 구휼은사금을 받은 이가 무려 70,902명에 달하였다.

위에 나오는 삼척지역의 양반유생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은사금 사령서(辭令書)를 수여받는 장면이 담긴 사진자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장기를 내건 삼척수비대 앞에서 이들이 양쪽에 차례대로 도열한 광경이 포착된 이 사진의 출처는 조선총독부가 1911년 12월에 펴낸 <애뉴얼리포트(1910~11년판)>이다.

이 책자는 원래 1908년 12월에 통감부에 의해 ‘1907년판’이 처음 나온 이래로 글자 그대로 해마다 간행된 ‘연차보고서’이다. 이러한 영문판 홍보책자를 제작 배포하게 된 것은 일제가 자신들의 식민통치 덕분에 조선의 형편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널리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래선지 영어제목에도 <Annual Report on Reforms and Progress in Korea(Chosen)>로표기되어있다.이제호는1922~1923년판에와서야 <Annual Report on Administration of Chosen>으로변경되었다.

이들 책자에는 다수의 사진자료도 함께 곁들여 있는데, 대개는 학교, 병원, 감옥, 법원, 경찰관서 등 관공서 신축과 관련된 것을 비롯하여 도로개수라든가 식산장려와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때로 조선총독이나 정무총감이 지방순시를 하는 장면이라거나 기념식수를 하는 모습을 담은 것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식민통치의 실상을 살펴보는 사료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우리 연구소에는 1908년과 1912년 사이의 상황을 담은 네 권의 묶음 책이 확보되어 있는데, 이것의 옛 소장처가 ‘오스트리아의 비인대학교도서관’이었다는 스탬프가 찍혀 있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이 책자가 얼마나 먼 이방에까지 두루 배포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자료가 서방세계에 속속 주입되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가 펴낸 기관지 <조선>1933년 5월호에보면, <브리타니카백과사전>의 최신판인 제14판에 게재된 ‘조선(Korea)’ 항목에 기술된 내용이 오류와 편견에 가득 차 있는 것이라 하여 조선총독부가 문서과장의 명의로 이에 정식 항의했다는 소식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각종 사진과 ‘영문시정연보’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덧붙여 해당항목의 오류를 지적한 결과 다음번 개정판에 이 내용을 반영하여 수정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때 총독부가 함께 발송한 ‘영문시정연보’는 바로 <애뉴얼리포트>를 가리키는 표현인듯하다. 이러한 사례만 살펴보더라도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가 해외홍보 하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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