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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상龍床에 오른 순직경찰의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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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30

▲ <순직경찰·소방직원초혼향사록> 표지(왼쪽) 명단은 순직연월일, 관직·씨명, 출신지·생년월일, 순직 이유와 장소로 구성되어 있다.(오른쪽) 3·1운동 당시 수원(현재 화성)에서 시위대의 돌에 맞아 숨진 일본인 순사 노구치와 가와바타가 ‘순직자’ 명단에 올라 있다. 매년 이런 순직경찰을 위해 초혼제가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 순직경찰관·소방수 초혼제(1935년 4월 21일), <시정25년사> ⓒ민족문제연구소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일제강점기 순직경찰과 소방관들의 초혼제(혼령을 위로하는 제사) 명부인 <순직경찰·소방직원초혼향사록殉職警察·消防職員招魂享祀錄<(이하<향사록>)이다. 순직경찰 중 일부는 지난 호의 소개자료 서울종로경찰서 사진첩의 「순직자의 늠름한 모습」에서 소개된 바 있다. 의열단원 김상옥이 쏜 총에 맞고 즉사한 순사부장 다무라와 보합단원에게 죽은 곤도와 이정선인데 이들도 <향사록>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순직자’를 단순히 기념사진첩에 수록하여 ‘귀감’으로 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순직경찰관초혼제’를 열고 성대한 제사를 지내어 그들을 기리고 조선인들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함으로써 체제에 순응시키고자 했다.

1937년 5월 1일자로 작성된 <향사록>에 수록된 순직경찰과 소방직원은 총 315명으로 경찰은 1910년 8월 10일부터 1937년 2월 3일까지 281명, 소방원은 1919년 9월 5일부터 1936년 8월 28일까지 34명이 기재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순직연월일, 관직·씨명, 출신지·생년월일, 순직 이유와 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순직연월일 : 대정8년(1919년) 3월 28일, 관직씨명 :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
순직 이유 : 경기도 수원경찰서 관내에서 소요사건이 있을 때 폭동진압 중 돌에 맞아 중상을 입고 사망

이처럼 ‘순직경찰관초혼제’의 향사 대상은 불령선인이나 소요사건의 폭도에게 죽은 자, 이른바 ‘비적匪賊’에게 죽은 자들인데 뒤집어 말하면 항일 투사들에게 죽은 순사들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제사를 지낸 장소가 하필이면 조선왕조의 정전(正殿 : 국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국가적인 행사가 치러지던 곳)인 경복궁 근정전이고, 순직경찰을 위한 제단을 임금의 자리 즉 용상에다 설치했다는 것이다.

제1회 순직경찰관초혼제는 1921년 4월 26일 남산공원 앞의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이때 참석한 면면을 살펴보면 사이토 총독, 미즈노 정무총감, 이완용, 송병준, 기타 칙임·주임 문무관 및 유족 내빈 다수이고 게다가 경기도 경찰관 300명이 도열해 있었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남산공원 앞 광장, 왜성대, 광화문경찰관강습소 등 다양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가 1926년 7월 4일 제6회 순직경찰관초혼제 때 처음으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초혼제를 가졌다.

1927년에는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총독부 청사에서 열렸으나 1928년부터는 줄곧 경복궁 근정전을 향사 공간으로 활용했다. 경복궁에서는 전람회다 품평회다 운동회다 봉축행사다 하는 잡다한 기념행사들이 수시로 벌어졌고, 특히 1917년 화재로 손상된 창덕궁 대조전 복원을 핑계로 1920년 강녕전과 교태전마저 뜯겨나간 이후에는 경회루나 근정전조차도 온갖 연회와 각종 대회가 벌어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조선의 법궁을 훼손함으로써 왕실의 존엄과 민족자존심을 무너뜨리려 기도했다. 그것도 모자라 20년 가까이 매년 용상을 일제 군경의 혼전으로 삼아 초혼제를 지내는 야만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근정전을 조선의 야스쿠니로 만들어 조선인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놓겠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악랄한 수법은 오히려 반발과 분노만 키울 뿐이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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