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연구소 인턴십, 배우고 성장했던 귀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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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결 샨티학교 고등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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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상근자들이 마련해 준 김한결 인턴학생의 환송회

내가 다니는 샨티학교는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이다. 경북 문경에 있는 작은 기숙사형 학교인 만큼 아이들끼리의 친밀감이 높다.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는 해외이동 학습인데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은 2학기 두달 동안 해외를 가서 보고 느끼는 학습을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은 해외이동 대신 필수과정이 있는데 사회생활과 직장체험을 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단체나 직장을 스스로 찾고 섭외를 해서 3개월 정도 무급으로 예비 직장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워낙 근현대사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턴십을 생각할 때쯤 그런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었고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런 방면에서 독보적인 단체였기 때문에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고3이 되는 겨울방학에 지인의 소개로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했다. 첫 방문이었는데도 연구소분들은 참 편하게 대해주셨고, 책이나 자료가 많고 전시관도 있어 내가 배우기에는 참 좋을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학교에 복귀 후 학교 일정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연락을 할 방법이 없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늦게나마 연락을 해봤는데 정말 다행히도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 후 간단하게 국장님과의 인터뷰를 마친 후 인턴십 요청을 했고 이를 흔쾌히 받아주셨다.

나는 연구소 인턴십을 잘 해내고 싶어서 학교에서 틈만 나면 연구소가 발간한 책들을 읽었고 학교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직접 연구소 근처에 원룸을 구했다. 인턴십 일정에 맞춰 생활목표를 짜는 등 준비를 마치고 출근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7월, 8월, 9월 총 3달의 인턴십 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연구소로 출근하는 첫날 이었다.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너무 떨리고 설레는 마음에 출근 2시간 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40분 정도 연구소 근처를 맴돌았다.

7월은 적응을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던 달이었다. 연구소분들도 한분 한분 알아가고, 행사와 세미나 등을 통해 많은 인연을 쌓았던 것 같다. 나의 7월 첫 주는 전담해서 맡은 일은 없었지만, 처음치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첫날은 온종일 스캐닝 작업을 했고 그 외에도 비석 옮기기, 회원관리 업무, 회의참여 등 일도 바빴다. 연구소와 내 생활에 적응하려하니 정신없이 1주일이 훅 지나가 버렸다. 둘째 주는 자위대창설기념식 집회를 갔던 게 기억에 남는다. 생각보다 많이 격렬했던 것 같다. 나도 시위를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이때만큼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7월 셋째 주는 좀 널널한 느낌이었다. 도서목록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는 일의 보조 역할을 맡으며 나도 주된 업무가 생겨서 다른 일은 맡지 않았고, 일을 마치고 남는 시간마다 책을 계속 읽었던 것 같다. 7월의 마지막 주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우연히 어린이 백범학교 보조교사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이 깊게 생각하고 하는 말이나, 할 땐 하고 멈출 땐 멈출 줄 아는 행동에 감명을 받았다. 또 같이 보조교사를 했던 형들과의 인연에 감사했다.

이렇게 7월 한 달이 훌쩍 넘어가고 무더운 8월의 생활이 시작됐다. 8월에도 생각보다 행사가 많았고 나의 인턴생활 중 역사적 지식을 가장 많이 쌓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선 연구소 박한용 실장님이 전담하시는 은하수 공부방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다. 은하수 공부방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끼리 모여 세미나형식으로 공부도 하고 친분도 쌓는 곳이다. 나는 또래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여러 가지 의견도 듣고, 실장님이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설명을 해주시던 것이 올바른 역사 지식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 정말 좋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공부방에 참여했다. 또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하는 고등학생 강의가 있었는데 이 강의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일제강점기 시기를 생각해보며 복습도 하고 배우는 계기가 됐다. 세미나와 근현대사 기념관 강의를 들으니 2주가 훅하고 지나버렸다. 셋째 주 광복절에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하는 독립민주기념비 제막 행사도 참여했다. 넷째 주에는 광주에서 했던 친일·항일 음악회를 갔다. 이 음악회가 기억에 많이 남는 행사였는데 일제의 잔재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고, 이런 취지의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8월 행사도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내 인턴십은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다. 사실 하루하루는 참 길게 느껴졌는데 막상 막바지가 다가오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고 공허하고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잘 마무리하고 싶어서 해이해진 마음도 다잡고 내가 맡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9월에는 조계사에서 하는 행사 외에는 사무실에서만 있었는데 8월 행사를 다니며 못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주는 밀린 회원관리와 자료정리를 하는데 바빴고 겨우 끝내고 나니 어마어마한 양의 교정작업이 있었고 넘버링 작업도 해야 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가 길었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아 교정작업과 넘버링 작업은 끝내지 못하고 인턴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마지막에 맡은 업무는 다 정리하고 깔끔하게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3개월 인턴생활 동안 정말 방대한 역사 지식을 배웠고, 감사함을 참 많이 느꼈다. 사실 역사 지식은 행사나 강의가 있으면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시고, 여러 책도 추천해주시고, 주기도 하셨고,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알려주셔서 지식의 폭과 수준이 안 높아질 수가 없었다.

또 감사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나는 커피타고 청소하는 게 일상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먹을 것이 있으면 먼저 챙겨주실 정도였다. 또 배우러 온 거라 사실 잘하는 것도 별로 없고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더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셔서 내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인턴생활이 시작되고 몇 주 동안은 긴장의 순간들이었다.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과하게 눈치를 살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소분들은 언제나 나에게 허물없이 편하게 대해주셨고 사소한 것도 챙겨주시고 혹여 못물어볼까 내가 물어 보기도 전에 알려주시곤 하셨다.

나는 앞으로도 연구소에서 일했던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연구소에서 또 한 번 인턴십을 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연구소 분들께 정말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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