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논평] 반 헌법적 역사관을 지닌 이기동 한중연 원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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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반 헌법적 역사관을 지닌 이기동 한중연 원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1.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이 국정감사장에서 행한 행동과 발언이 각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원로 역사학자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 돌출행동도 문제이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반 헌법적 역사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좌충우돌 발언이다. 그는 2008년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이 쓴 『한국 근·현대사』 추천사에서, “좌파 역사학계가 범한 근본적 오류가 이 책을 통해 바로잡혔다”고 하였다. 그리고 2013년에는 ‘뉴라이트’ 교학사 『한국사』 에 대한 역사학계의 비판에 대해, 이는 “(교학사 교과서) 필자들의 역사관이 지난 10여 년 간 우리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임이 분명하다”며,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였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역사학계 전체를 좌파로 호도하고 있는 데서 그의 비뚤어진 역사인식과 정치적 편향성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2. 이기동 원장은 2010년 뉴라이트 기관지인 『시대정신』 좌담회에서, “일본 사람들이 (행정제도, 사법제도, 교육제도 등) 근대적인 시설·제도를 도입한 것이 결과적으로 해방 후 한국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공업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 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발언하였다. 일제의 식민지배 덕분에 한국이 민주화와 공업화에 성공했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드러내놓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친일파야말로 근대화, 자본주의화, 경제발전 등에 앞장 선 ‘근대문명의 선구자’이며, 독립운동가는 일제의 문명화 노력을 훼방한 ‘시대착오적인 폭도’가 되고 만다. 그러나 헌법은 전문에서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계승하고”라고 하여, 독립운동의 전통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제헌헌법에서는 친일청산을 역사적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3. 이 원장은 지난 4일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운동권 연표’라고 폄하하였다. 이어 “국가 권력에 대한 대항사로서 항쟁사로서만 현대사를 꾸민다면 소위 반항심을 고취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는”것이라고 하여, 독재에 대한 저항을 자라나는 학생들이 배우는 게 반항심을 고취하는 수단이라고 치부하는 저열한 역사 교육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4·19민주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발전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를 애써 무시하거나 축소한 교학사 교과서 비호에 적극 나선 것도 이러한 역사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은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혀,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 국민적 저항권 행사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헌법은 반독재 민주화가 국가적 목표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4. 이 원장은 제주4.3항쟁에 대해 “공산폭도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하여, 가해자의 입장에서 색깔론을 디밀었다. 제주4·3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작성한 「4·3진상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는 사건 발생 반세기만에 정부가 공식 인정한 4·3종합보고서라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보고서는 ‘민간인 집단살상에 관한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미군에게 있다’고 하였으며, 4·3사건을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이라고 공식 인정한 4.3항쟁을, 역사연구에서 무엇보다 실증을 중요시한다는 역사학자가 ‘남로당의 사주를 받은 공산폭도들의 무장반란’이라는 극우세력의 억지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5. 이 원장의 수구-냉전적인 역사인식은 발해사에 대한 이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교육부가 공개하지 않는 국정교과서 초본을 비밀리에 보고 “통일신라시대를 남북국시대로 기술했다”며, 이런 기술에 대해 “보통 남북국시대라는 표현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좌파에 가까운 역사가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라고 하였다. 남북국시대란 발해와 통일신라가 양립했던 시대를 뜻한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거란에게 멸망한 발해 주민을 적극 포섭하였다. 그러나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신라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바람에, 이후 발해가 있던 만주지역의 대륙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무대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반도 중심의 역사인식이 고착화되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실학자들의 민족의식 고조,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 제기, 간도지방 귀속 논쟁이 벌어지자 발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고조되었다. 이에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삼국시대에 이어 남북국사가 설정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여 ‘남북국시대론’의 물꼬를 텄다. 신채호 역시 『삼국사기』의 봉건성과 사대성을 비판하고 발해사를 중시하여 대륙의 역사를 우리 역사권내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1970년대에 이르러 ‘분단체제 극복과 민족통일의 실현’이 역사학의 시대적 과제임을 자각한 역사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남북국시대론’이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이 원장은 이러한 전후 과정은 외면한 채 ‘대한민국 정통론’이라는 수구-냉전적 입장에서, 학문적 연구 성과마저 색깔론으로 재단하려 하고 있다.

6. 이상 일련의 주장들은 이기동 한중연 원장이 친일-분단-독재를 정당화하는 어용 역사학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최상급의 법규범인 헌법은 독립운동-평화통일-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반 헌법적인 역사관을 지닌 인사가 관련 서류와 이력서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장에 선임되는 특혜를 누리게 된 것은, 그가 국정화에 찬성하는 몇 안 되는 한국사 원로학자라는 희귀성 때문일 것이다. 이 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한중연 교수들은, “국정교과서는 폭압이 난무하는 20세기 역사의 산물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는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구시대적 유물이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한중연 교수들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함으로써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구시대적 역사가’ 임을 스스로 인정한 이기동 원장의 사퇴를 강력히 촉구한다. <끝>

2016년 10월 10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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