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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과서’ 명칭으로 국정화 반발 우회…“국민 우롱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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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방침 논란 확산


여권 “8종 교과서 통합 추진”

교육부 산하위에 편찬 맡겨도

‘정부주도’ 본질은 안 변해

교학사 집필·뉴라이트 학자만

대거 참여 불보듯


교사·시민단체 “이름 바꾸면 속을거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전남시민사회단체·정당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전남 무안군 전남도의회 앞에서 ‘친일·독재 미화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거센 반대 여론을 의식해 ‘국정 교과서’ 대신 ‘통합 교과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교과서 발행과 관련한 현행 법령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조어다. ‘국정’이라는 용어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가치중립적인 ‘통합’이라는 표현을 써 조금이라도 반대 여론을 완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선 전형적인 ‘꼼수’라고 비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7일 “국가가 정한다고 하니 오해가 있다. 국정 교과서라기보단 통합 교과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현재 교육부 산하에 별도의 위원회를 신설해 8종의 교과서를 통합한 ‘통합 교과서’를 만드는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논란이 돼온 국정 교과서와는 다른 종류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실체는 보수·진보 모두 반대하는 ‘국정 교과서’와 똑같다.


우선 현행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서는 교과서 구분을 국정과 검정, 인정으로만 구분한다. 통합 교과서라는 분류 자체가 없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교과서 발행은 정부 정책인 만큼 법률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현행 법령은 국정·검정·인정제만을 두고 있는데 통합 교과서라고 하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법률체계를 왜곡해 사기를 치는 것에 다름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대신 교육부 산하에 ‘별도 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해서 국가 주도 국정 교과서라는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같은 규정의 제2조에서는 ‘국정도서(교과서)’의 정의를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 도서”로 표현한다. 이어 제5조에서는 “국정도서는 교육부가 편찬한다. 다만, 교육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정도서는 연구기관 또는 대학 등에 위탁하여 편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교육부 산하 위원회에 교과서 편찬을 맡기더라도 국정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일 뿐이다.


특히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통합한 통합 교과서”를 만드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교학사를 빼곤 7종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누구보다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검정 교과서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높은 미래엔 교과서의 집필자인 조왕호 대일고 교사는 “새로 도입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크게 바뀌어 기존의 사회사·경제사가 정치사 위주로 변하고 근현대사 비중이 줄어들었다”며 “기존 검정 교과서 내용을 가져다 쓸 수가 없고, 7종 집필진도 참여를 안 할 텐데 어떻게 통합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조 교사는 이어 “정부 여당이 통합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나서면 2015 교육과정 ‘개악’에 참여한 인사나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뉴라이트 학자 등이 참여할 텐데, 학계 주류도 아닌 인사들만 참여한 교과서는 통합 교과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는 국가 정체성 형성과 국민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통합 교과서’가 아닌 ‘분열 교과서’라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화 강행 결심을 굳혔다는 보도가 나온 7일 전국 각지와 세계 14개국 재외동포들한테서 ‘국정화 반대 선언’이 잇따랐다. 방은희 역사정의실천연대 사무국장은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놓고 등을 돌리고 ‘시민 불복종’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독재적인 교과서를 만들면서 이름 하나만 바꾸면 국민들이 속아 넘어갈 거라고 여겼다는 건 정말 국민을 바보로 아는 처사”라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2015-10-8> 한겨레 

☞기사원문: ‘통합교과서’ 명칭으로 국정화 반발 우회…“국민 우롱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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