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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묘소도 모자라는데 친일파까지 품은 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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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묻힌 대전현충원 유재흥
·김창룡 등 논란에 현충원 “군·경찰경력 충족 묘지안장 막을 근거 없다”

 

(상)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내가 죽거든 국립묘지에 묻지 말고, 생사를 같이 한 임정 요인들이 누워 있는 효창원 묘역에 묻어 달라.”-‘마지막
임시정부 요인
’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유언 중…. 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목숨을 건 희생’의 상징이다. 본래 의미대로면 이곳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혈과 애국지사들이 안장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충원은 ‘친일파의 안식처’란
오명을 쓴 지 오래
. 친일 전력자이지만 이런저런 경력과 공적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69번째 광복절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이에 본보는 우리 지역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등을 중심으로 모두 3회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과 마찬가지로 대전 갑동의 국립대전현충원 역시 친일파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19일 민족문제연구소, 국립대전현충원
등에 따르면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중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은 군인과 경찰 출신을 포함해 보훈청으로부터 애국훈장을 받은 인사
등
28명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9년 공동으로 펴낸 ‘친일인명사전’은 친일반민족행위자
4776
명의 친일 행적 등을 담았고, 지금까지 친일파 논란에 있어 주요 기준점이 되고 있다.


이 사전에 등재됐지만 대전현충원 안장자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은 제19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유재흥과 일본군 헌병 출신인 김창룡이다
.


2011년 11월 대전현충원에
묻힌 유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 육사
(55기)를 나와 1943년 보병 대위 시절 조선인 학병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을 한 행적이 드러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유 씨의 경우 한국전쟁 때 3군단장으로 현리전투를 지휘했지만 자신의 부대가
중공군에게 포위되자 혼자 경비행기로 포위망을 빠져나가 전투 패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전시작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군인으로서의 공적조차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김 씨 역시 그동안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가장 ‘문제적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관계자는 “일본군 헌병출신인 김 씨는 독립군 체포에
앞장선 인물이자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로 지목된 인물
”이라며
“
이런 인물의 묘가 국립묘지에 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처럼 일본군에 속해 일제를 위해 활동했지만 광복 이후 군 경력이 인정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인물은 김석범, 신현준, 백홍석, 송석하
등을 포함해
21명에 달한다.


이 밖에 현재 대전현충원에는 친일행적이 확인돼 보훈청으로부터 서훈이 취소된 강영석과 박성행 등 2명도 여전히 안장돼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전현충원은 현행법에 따라 문제가 없다면 설사 ‘친일파’라도 이장할 수도, 안장을 막을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대전현충원 관계자는 “현행법상 군이나 경찰 등 경력 요건이 충족되고, 전과 등의 흠결이 없다면 국립묘지 안장을 막을 근거가 없다”며 “안장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은 보훈청에서 하는 것이고, 서훈이 취소된
경우라도 유족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강제 이장은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2014-8-20> 충청투데이

☞기사원문: 애국묘소도 모자라는데 친일파까지 품은 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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